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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61화 (261/283)

##  261화. 목에 난 상처 마음에 난 상처

타천천 이 개새끼. 내 몸에 뭔 짓을 해뒀구나!

손은 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억지로 손가락에 힘을 줘서 버티려 해보지만, 자꾸만 내 손은 떡돌이를 목 조르려 했다.

“도망가!”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떡돌이에게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떡돌이가 숨기고 있을 뿐 사실은 제법 무공을 익힌 몸이란 점이었다.

떡돌이는 놀라는 와중에도 내 손목을 잡고서 버티다가, 내가 외치자 손에 좀 더 힘을 주어 날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 몸은 강시 몸이라 힘이 무지막지했다.

내 손은 떡돌이의 목에 달라붙기라도 한 양 떨어지려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손을 회수하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머리 위뿐이었다. 그조차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내공을 써 내공을!”

실전 경험이 없어서인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떡돌이가 답답해 버럭 고함을 지르는데, 누군가 달려오더니 날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이 닿으려 하자 손이 떡돌이를 놓더니 검날을 잡아챘다.

검을 빼앗아 옆으로 집어 던지고서 나는 반사적으로 승언이의 배를 찼다.

배를 찬 건 내가 찬 거다. 이건 그냥 내 본능으로…….

어쨌든 떡돌이를 더 위협하지 않게 된 건 다행이었으나, 이미 승언의 눈에 나는 황제를 암살하려던 습격자였다.

승언은 다른 단도를 꺼내 내게 휘두르면서, 바닥을 구르는 자기 검을 발로 차 손에 쥐었다.

빠른 속도로 쏘아붙이는 검술 실력은 생각보다 더욱 대단했으나, 이건 내 원래 몸이 아니던가. 피하기 힘들지 않았다.

나는 승언의 공격을 열심히 피하면서 떡돌이에게 외쳤다.

“일부러 한 게 아냐!”

하지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부러 했건 아니건, 나는 황제를 공격한 습격자였다.

나는 승언의 검을 뺏어 부러뜨린 다음, 그의 다리 한쪽을 차 넘어뜨리고서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차라리 내시라고 오해받을 때가 나았어. 습격자라고 오해받게 되다니!’

담을 넘어갔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쫓아온다. 이렇게 쫓겨 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리 반갑진 않지만.

강시 몸이 내 원래 몸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 역시도 원치 않게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 못 가 내 뒤를 쫓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고, 나 홀로 밤의 숲을 달리고 있었다.

멈춰서자 촉촉한 공기가 폐 안 가득히 들어오면서 마음까지 적셨다.

숨도 차지 않네. 나는 쪼그려 앉아서 무릎에 이마를 대었다.

손이 떨려왔다. 무서웠다. 쫓겨서가 아니라, 내가 떡돌이를 죽일 뻔했단 것 때문에.

만약 떡돌이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정말 나는 떡돌이 목을 단숨에 부러뜨렸겠지.

다른 사람 목은 잘 부러뜨리고 다녔지만, 그 대상이 떡돌이이길 바라진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부러뜨린 이들은 모두 날 죽이려던 이들이었지만, 떡돌이는 아니잖아. 그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 * *

조용하던 저택 내부는 순식간에 매섭게 변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호위들 모두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잠들었던 하인들은 모두 깨어나 횃불을 만들어 밤을 밝혔다.

사자 친왕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얼결에 일어났다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월요의 목을 보고 기겁해 물었다.

“목이, 목이 왜 그러십니까?”

월요의 목이 보라색으로 진하게 멍이 들어 있던 것이다. 궁전 전체가 뒤집어질 일이었다. 황제를 습격하다니!

월요는 승언의 부축을 받아 들어와 상석에 앉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의원을 데려와라!”

사자 친왕이 밖을 향해 외치고서야 월요는 입을 열었다.

“되었다.”

목소리가 좀 잠긴 걸 보니, 목을 공격받을 때 성대를 좀 다친 게 분명했다.

“목소리가…….”

“궁에 들어가 황보 궁의에게 치료하게 하면 된다.”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와라! 금창약도!”

사자 친왕은 다시 명령했고, 이번에는 황제도 말리지 않았다.

잠시 뒤, 사자 친왕의 시종이 금창약과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 부드럽고 깨끗한 천을 여러 개 가져와 내려놓았다.

“내가 할 테니 나가보아라.”

사자 친왕은 천을 물에 적시려는 시종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혹시라도 안에 수상한 건 없나 직접 확인한 뒤 월요의 목에 천을 대주었다.

월요는 천을 잡으면서 사자 친왕에게 물러나라 고개를 저었다.

사자 친왕은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이 일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눈치채고서 시무룩하게 뒤로 빠졌다.

월요는 손을 목에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목이 많이 아픈 듯했다.

승언은 그런 월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사자 친왕에게 새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꿍꿍이로 그런 암살자를 데리고 계신 겁니까.”

“그런 암살자라니?”

사자 친왕이 영문을 몰라 묻자, 승언이 다시 이를 갈았다.

“그 백몽인지 뭔지 하는 놈 말입니다.”

“백몽?”

사자 친왕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백몽이 이랬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폐하 눈으로도 보았고요. 소란을 듣고 빨리 달려온 이들도 몇몇은 저와 그자가 싸우는 걸 보았을 겁니다.”

승언의 말에 사자 친왕은 더욱 당혹스러워졌다.

백몽이 천년비이며 천빈이란 걸 아는 그는, 절대로 그녀가 황제를 죽이려 들 리 없단 걸 알았다.

“아니, 정말로 백몽이 그럴 리 없다.”

“그럼 소신의 발을 걷어차고 폐하의 목을 조른 그자는 귀신이란 겁니까.”

“그게 아니라…….”

사자 친왕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월요가 “거울.” 하고 말했다.

승언이 얼른 거울을 가져다 대령하자, 월요는 거울에 목을 비추어보며 말했다.

“승언.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승언은 그래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당연히 쉽지 않겠지요. 몇 번 검을 부딪쳤지만 그자가 얼마나 강한지는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걸 알지 않느냐.”

“…….”

“그자. 자기가 더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게 내공을 써서 막으라 그랬어.”

“그러면서도 폐하를 계속 공격했습니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월요는 자기가 손을 뻗고는 자기가 더욱 괴로워하던 표정을 떠올리고서 사자 친왕을 보았다.

사자 친왕은 창백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자.”

월요가 부르자, 사자 친왕은 입술을 깨물었다. 승언도 사자 친왕을 돌아보았다.

“그 애. 뭐였지?”

“폐하…….”

사자 친왕은 해쓱해져서 월요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아는 게 분명했다.

“솔직히 말해라, 사자. 그 애. 뭐였지? 왜 날 습격한 거냐.”

사자 친왕은 난처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평소 잘 돌아가던 머리까지 굳어진 듯했다.

월요는 목에서 수건을 떼고 거울을 다시 확인했다.

그 사이에 멍은 범위가 더 넓어져 있어서,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아파 보였다.

월요는 그 목을, 특히 손 부분이 유독 진하게 자리 잡은 멍을 보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사자. 나는 그 애가…… 천년비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 말에 승언은 눈을 부릅뜨고 월요를 보았고, 사자 친왕은 다리에 힘이 빠져 옆의 탁자를 짚었다.

승언은 금창약 뚜껑을 벗기면서 반박했다.

“천빈 마마를 어찌 그런 습격자와 비교하십니까!”

그러나 사자 친왕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승언은 눈이 커다래져서 월요와 사자 친왕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정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사자 친왕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맞습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다가는, 그와 천년비 모두 대역죄인이 돼버릴 수도 있었다.

차라리 모든 사정을 다 말하고 월요의 이해를 구하는 게 나았다.

“맞다고요?”

승언이 기가 막혀 중얼거렸다.

“백몽이 천년비라면 왜 폐하를 공격한단 겁니까? 그분이 폐하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그렇지. 그러니 이상한 거네. 나도 폐하 말이 동의해. 뭔가 이상해.”

승언이 재차 화를 냈다.

“그자를 폐하께 끌어들인 게 누군데 그렇게 발을 빼십니까!”

“승언.”

월요가 경고하자 승언은 입을 다물었으나, 여전히 분기가 빠지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월요의 목에 약을 조심조심 발라주었다.

하지만 살짝씩 손이 닿는데도 월요는 아픈지 신음했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는 게 낫겠습니다.”

사자 친왕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해명을 시작했다.

“믿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폐하, 백몽으로 분장해 폐하를 뵈도록 해준 건 저입니다. 원래 천빈 마마는 폐하를 뵙지 않으려 했습니다.”

“날 안 보려 하다니?”

“지금 천빈 마마의 몸으로 폐하를 찾아가면 폐하께 해가 될 거라고요.”

“사내라서?”

월요가 기가 막혀 되묻자, 사자 친왕은 “예?” 하고 황당해 되물었다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사내라니요. 그냥 남장을 한 겁니다.”

“사내도 아니었어?”

“지금 천빈 마마의 몸은 악적으로 유명한 천년비의 몸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몸은 최근에……는 아니고 예전부터 여러 가지로 소문이 안 좋았죠.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온갖 해를 끼치면서 평가가 더욱 떨어졌고요.”

승언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오가자 일단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림자로서, 그는 눈치 빠르게 적당히 말을 알아들어야 했다.

월요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서 눈을 반만 떴다.

“그런 신분으로 폐하께 갔다가, 폐하께서 천빈 마마를 곁에 두려 하면 폐하의 평판에 나쁠 거라 했습니다.”

사자 친왕은 월요의 눈치를 보다가 덧붙였다.

“아기씨에게도요.”

“!”

월요의 눈꺼풀이 흔들렸다.

“어쨌든 남들 눈에 아기씨의 친모는 ‘지금 천비 마마’시니, 자신이 폐하의 총애를 받으면 폐하는 폭군이란 소리를 듣고, 아기씨는 아기씨대로 피해를 받을 거라 여긴 모양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안 나서시겠다는 걸, 얼굴이라도 뵈라고 설득한 건 저였습니다, 폐하. 그분은 폐하를 뵙고 아주 좋아하셨고요.”

사자 친왕은 월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그분이 폐하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보니, 신 역시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승언은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월요에게 물었다.

“저 말을 믿으십니까?”

사자 친왕의 말이 맞다면, 대체 천빈이 황제를 공격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천빈은 황제를 공격하고, 그걸 막으려던 승언 역시 공격했다.

황제 앞에서 내색하진 않고 있지만, 승언 역시도 아까부터 한쪽 다리가 무척 고통스러웠다.

“믿냐고?”

월요는 힘없이 웃으며 되묻고는, 서글픈 눈으로 승언에게 물었다.

“넌 장공주가 짐을 공격한 일을 잊은 거냐. 장공주는…… 짐을 해할 사람이더냐?”

승언과 사자 친왕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승언은 그때 일을 떠올리자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결국 제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장공주가 다시 죽도록 만든 건 월요였다.

그 일로 월요는 그토록 연모하던 천빈조차 보러 다니지 못할 정도로 충격과 시름에 빠져 지냈다.

승언은 식은땀이 났다. 설마…….

“천빈 마마도 그렇게 미쳐가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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