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통제되지 않는 손
이럴 수가! 이건 떡돌이 목소리인데! 왜 떡돌이 목소리가 마차 밖에서 들려오지?
놀라서 사자 친왕을 쳐다보니, 그 역시도 나를 꺼림칙한 눈으로 같이 마주 보고 있었다.
“이 목소리…… 폐하 목소리 같지 않습니까?”
사자 친왕이 작게 속삭이는데, 누군가 마차 창문 옆을 두드렸다.
창문에 매단 발을 슬쩍 치우자, 역시나. 떡돌이다. 떡돌이가 허리를 숙여 창문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놀라서 쳐다보자, 떡돌이는 나와 사자 친왕을 번갈아 보더니 허리를 펴고서 문을 열었다.
그가 문을 열자 뒤로 승언이 하나만 보인다.
뭐야. 설마 떡돌이 저거, 승언이만 데리고 부리나케 뛰어온 건가. 정말 멋없었겠구나.
속으로 혀를 차고 있자니, 마부가 공손하게 서 있다가 사자 친왕에게 변명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폐하께서 갑자기 마차 앞에 나타나셔서…….”
아아. 그러고 보니 얘기하는 중에 마차가 갑자기 덜커덩거렸지. 그때 떡돌이가 나타나면서 마차가 급하게 멈추었나 보다.
대놓고 혀를 차고 있자니, 떡돌이가 내 쪽을 쳐다본다. 나는 혀 차던 걸 멈추고서 다시 허리를 휘어 보였다.
승언은 급히 뛰어와서 지쳤는지 작게 기침을 했다.
떡돌이는 힐긋 승언 쪽을 한 번 보더니, 다시 나를 한 번, 그리고 사자 친왕 쪽을 보며 말했다.
“사자. 네 이상형이 언제부터 환관이었지? 네 시종을 가지고 너무 놀려대는 게 아니냐.”
사자 친왕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하다가 물었다.
“그걸 물어보러 오셨습니까, 폐하?”
“물론 아니지. 그럴 리가. 하지만 우연히 네 거짓말을 들으니 기가 막혀서 짚어준 거다.”
단호하게 말한 떡돌이는 이번엔 나를 보더니, 사자 친왕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자 친왕의 이상형은 저 휘황찬란한 의복이며 장식을 가지고 같이 놀아줄 정도로 세련되고 손재주 좋은 사람이다.”
그렇군. 나랑은 확실히 거리가 멀구먼. 사자 친왕이 거짓말을 한 게 맞아.
하지만 굳이 그걸 내 입으로 확인하고 싶진 않기에, 나도 같이 거짓말했다.
“딱 저로군요.”
떡돌이와 사자 친왕이 동시에 썩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사자 친왕 이 인간, 자기가 먼저 내가 이상형이라 그랬잖아?
떡돌이 너는 ‘백몽’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표정인데? ‘백몽’이 손재주가 좋을 수도 있지!
나는 떡돌이에게 보란 듯 손바닥을 쭉 펼쳐 보이고서, 두 손을 모으고 휙휙 이리저리 돌리는 묘기를 보였다.
“?”
눈이 부시도록 손을 움직여대자, 떡돌이는 그게 꽤 좋아 보였나. 갑자기 반색하더니 내게 물었다.
“다른 춤도 춰보아라.”
그 말에 사자 친왕은 이번엔 떡돌이 쪽을 썩은 표정으로 보았고, 승언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떡돌이를 비슷하게 쳐다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떡돌이 얘는 낯선 시종한테 왜 춤춰보라 하고 그래?
사자 친왕에게 제시했던 의구심이 다시 피어오른다.
떡돌이 얘…… 혹시 진짜로 ‘백몽’한테 반했나? 그래서 춤추는 자태를 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떡돌이는 원래 춤 잘 추는 사람을 좋아하나? 그래서 ‘천 귀인’한테도 반했고, 이제는 ‘백몽’한테도 반하는 건가?
첫 번째 후보는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떡돌이는 나한테 반한단 거니까.
하지만 두 번째 후보는 그리 기쁘지 않다. 아니 싫다. 춤 잘 추는 사람한테는 무조건 반한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춤에 어설픈 모습을 보여서, 떡돌이가 나 외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결국 나는 마차에서 내린 뒤, 떡돌이 앞에서 거북이가 백조로 변신하는 춤을 추어 보였다.
처음에는 바다를 헤엄치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뭍으로 나온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허공을 기었다.
그러고서 목을 까딱거리다가, 달을 본 거북이가 달빛의 힘을 받아 차르르르 돌면서 백조로 변신하는 게 최고점인 춤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춤을 추어도 슬픈 마음이 들어서, 아무리 손을 힘차게 위로 올려도, 아무리 빠르게 발을 움직여도 자꾸만 표정이 애달파졌다.
나는 한 마리의 슬픈 백조가 되어서 열심히 팔을 허우적거렸다.
내가 양파 깔 때만 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쯤 눈물을 세 방울을 흘렸을 것이다.
그렇게 춤을 마친 뒤 ‘짠!’ 하고 마무리까지 백조처럼 마치자, 떡돌이는 감동 받아 눈물을 흘렸고, 사자 친왕도 입술을 깨물며 위로했다.
“백몽…… 추기 싫으면 추지 말거라. 울면서 안 추어도 된다.”
승언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폐하의 취향은 참으로 일관되십니다.”
그게 떡돌이가 또 내게 반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폐하는 춤 잘 추면 다 좋으시죠?’라는 뜻인지 알 수 없어서 원통하다.
나는 팔을 내리고서 떡돌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떡돌이는 계속해서 나를 보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자, 눈동자가 그렁그렁해지더니 잠시 생각할 게 있다며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가 뒤돌아서서 어깨를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승언이 한숨을 쉬고서 그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내 손을 달을 향해 뻗어 보았다.
이렇게 하면 나도 백조가 된 거북이처럼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오류가 있잖아?
“전하.”
“응?”
“백조보다 거북이가 장수하지 않나요?”
“…….”
사자 친왕은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
무슨 소리야?
* * *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떡돌이는 그 길로 우리에게 합류해서 사자 친왕의 저택까지 함께 이동했다.
나는 사자 친왕이 몰래 사하비단과 만나는 걸 알기에, ‘그래도 되나?’ 싶어서 사자 친왕을 연신 힐긋거렸지만 사자 친왕은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정말로 그 집 내부에 달리 흔적이라고 할만한 건 없나 보다.
반면 떡돌이는 처음에는 무심한 듯 마차에 올라탔지만, 점차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마차가 멈추었을 즈음엔 좀 화난 얼굴이었다.
“괜찮으세요?”
왜 저리 화가 났나 싶어 묻자, 마차에서 내리면서 이상한 말까지 하고.
“거세하면서 순정도 뗐나 보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멀뚱히 쳐다보았으나, 떡돌이는 찬바람이 풀풀 날리는 태도로 마차에서 혼자 내려버렸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폐하.”
사자 친왕 역시 떡돌이가 이해 가지 않긴 마찬가지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집주인으로서 떡돌이를 잘 모셔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사자 친왕은 내게 ‘들어가 쉬라’는 눈인사를 건네고서 떡돌이를 데리고 손님들이 머무는 방으로 갔고, 나는 멀뚱히 마차 앞에 서 있다가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 돌아간 뒤에야, 나는 떡돌이가 불시에 찾아온 게 사자 친왕이 아니라 내게 더 곤혹스러운 일이란 걸 떠올렸다.
사자 친왕은 집 안에 숨겨둔 비밀이 없지만, 나는 숨겨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지금 남장 상태라는 거.
편하게 잠옷을 입고 쉬고 싶은데.
떡돌이가 정말로 내게 반한 거라서, 사람을 시켜 나를 불러오라거나 하면 어쩐단 말인가.
결국 나는 남장을 한 상태로 겉옷만 갈아입고서 불편하게 침상에 누워야 했다.
그런데 얼마나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을까.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사실 누워 있긴 했지만 잠들어 있진 않았기에, 나는 밖에서 내 방으로 다가오는 기척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굳이 먼저 문 열어줄 마음이 없어서 두고 보았을 뿐.
내 방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라도, 밖에 사람이 많이 다니면 그냥 내 방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쨌든 문을 두드리기에 다가가 열어주자, 뜻밖에도 나타난 이는 승언이었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승언은 조금 오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널 보자 하신다. 일어나 따라 나와라.”
승언의 목소리는 날 깔아뭉개는 듯했고 거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다 보니 그런 모습이 퍽 신기하게 여겨졌다.
이에 내가 감탄사를 뱉으며 헐레벌떡 신발을 바꿔 신자, 승언은 흠칫하며 차갑게 물었다.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지?”
“공공께선 이 늦은 밤에도 폐하를 열심히 모시는구나 싶어 감탄하였습니다요.”
“나는 태감이 아니니 공공이라 부를 필요 없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네가 날 부를 일은 없을 거다.”
그럴 리가. 떡돌이는 이번에도 내게 반했지. 떡돌이가 또 내 연인이 되고 싶어 하면, 난 또 널 승언이라 부르게 되겠지!
이 말은 우선은 생략하자.
나는 아무렴요, 아무렴요 말을 맞춰 주면서 얼른 승언을 따라 떡돌이를 만나러 갔다.
승언이 때문에 잠시 잊었던 생각. ‘떡돌이가 왜 날 부르지?’ 하는 생각은 호숫가에 선 그의 모습을 보고서야 다시 떠올랐지만, 그때는 이미 떡돌이도 내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승언은 이쯤 안내해 주었으면 된다 싶었던지 뒤로 물러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순식간에 사자 친왕의 저택 안에서 떡돌이와 둘만 남게 된 것이다.
나는 떡돌이 쪽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던 걸 멈추고서, 그를 잠시 멍하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덜컥 걱정이 되었다. 오라고 해서 갔는데. 떡돌이가 ‘천년비를 잃고 지친 마음을 네가 위로해다오 백몽아’라고 하면 어쩌지?
떡돌이가 정말로 춤 잘 추는 사람한텐 아무나 반하는 거라서, 또 내 춤을 보고 반한 거면?
……아니야. 떡돌이는 궁전 내에서도 이미 내게 관심을 보였어. 그러니 내 춤을 보고 반한 건 아닐 거야. 반했더라도 그 이전이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충격이다. 내가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사람에게 반한 거지?
물론 나도 개원이에게 배신당한 지 얼마 안 가 떡돌이에게 반했지만…… 나랑은 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왜 오지 않는 게냐.”
내가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자, 떡돌이가 뒷짐을 지더니 웃으며 물었다.
낮에 보았을 때는 퀭하더니. 그새 얼굴이 다시 수묵화처럼 변한 모습은 차가운 날씨와 어울려 그를 고아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떡돌이는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내 진짜 몸은 천소여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떡돌이와 마주 보고 서자 이전과 눈높이가 달라졌다.
조금 높아진 눈높이에서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더니, 떡돌이가 뒷짐을 지고서 내게 물었다.
“백몽.”
“네, 폐하.”
“짐에게 할 말이 없느냐.”
“제게 듣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짐은 네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입니까?”
떡돌이가 혹시라도 내게 반해서 부른 거면 어쩌나, 하는 불쾌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를 마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나는 떡돌이 얼굴에 너무 약하다. 아니, 떡돌이 눈에 너무 약하다.
사실 떡돌이 눈에만 약한 건 아니지만. 난 그의 입술에도 약하고 목소리에도 약하다.
떡돌이와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려니, 그를 꼭 끌어안고 싶은 충돌이 들었지만, 나는 꿋꿋이 참고서 무뚝뚝한 표정을 꾸며냈다.
떡돌이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가와서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며 말했다.
“짐은-.”
그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앞으로 움직여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