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말실수는 누가
내시라고 실토까지 했는데. 떡돌이가 반응이 없다.
뒷짐을 지고서 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아주 건조하기 짝이 없다.
내가 너무 자세가 반듯한가? 하지만 오 공공도 자세는 반듯한데. 물론 떡돌이 앞에선 조금 허리를 숙이던 것 같기도…….
아, 허리. 허리의 문제인가. 나는 떡돌이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허리를 휘어진 지팡이처럼 굽혔다.
그러고서 쳐다보자, 떡돌이가 제 손으로 턱을 감싸고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있었다.
이것도 아니란 건가? 믿겨서 저러는 거야 안 믿겨서 저러는 거야? 나는 떡돌이와 애까지 가진 사인데, 왜 떡돌이 눈빛이 해석이 안 될까?
‘그럼…… 이렇게?’
조금 더 허리를 많이 휘게 하고서 옆을 보니, 그제야 떡돌이가 물었다.
“왜 허리를 일부러 구부정하게 하는 거지?”
“내시라 그럽니다요.”
혹시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싶어 설명해주자, 떡돌이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말했다.
“짐이 아는 태관들은 멀쩡히 잘 걸어 다니던데.”
“폐하 앞이라 굽은 겁니다. 폐하 앞에선 허리를 수그려야 하니까요.”
“짐 앞에서도 그리 과하게 숙일 필요는 없다.”
“저는 시종이 된 지 얼마 안 됩니다, 폐하. 그래서 아직 이런 거 저런 걸 잘 모릅니다.”
나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서 야무진 논리를 펼쳐 보였다.
“소인이 혹시 실수했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주십시요.”
이렇게 말해두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든, 떡돌이는 그러려니 넘어가게 되겠지.
거봐. 지금도 팔짱을 끼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고개를 좌로 했다 우로 했다 하는 게 혼란스러운 눈치잖아.
아니, 근데 이게 떡돌이가 혼란스러워해야 할 상황이 맞긴 한가?
어쨌든 떡돌이가 허리를 펴라기에 펴고서 멀뚱히 있자니, 그가 돌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천년비라고는 절대 대답 못 해. 하지만 천씨 성도 사용하지 못하겠어. 조금이라도 티를 내고 싶지 않아.
그러면 뭐라 하지? 무슨 이름을 쓰지?
“백몽. 이요.”
순간 퍼뜩 떠오른 이름이 마침 나를 추측할 수 없는 단어라 얼른 둘러댔다.
말하고 나니 ‘근데 이거 연비 고양이 이름이잖아?’ 싶어 당황했지만…… 괜찮을 거야.
떡돌이가 연비 고양이 이름을 어떻게 알겠어? 냥빈이라고만 불렀는데. 그조차도 오래 같이 있지 못했지.
연비가 떡돌이에게 자기 고양이 얘기를 하더라도 ‘우리 백몽이가’라고 하진 않을 거야.
‘폐하께서 뺏어가신 제 고양이가’라고 하겠지. 암! 내 말이 맞아.
“그렇군.”
다행히 떡돌이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어휴 내 기지란!
아니, 내 기지를 감탄할 때가 아니잖아. 내가 여기 온 건 사자 친왕을 찾아서인데.
“맞다, 폐하. 혹시 우리 전하를 못 보셨습니까? 오 공공에게 들으니 우리 전하가 이쪽으로 가셨다 하던데요.”
“우리 전하?”
“네.”
“사자 친왕과 퍽 가까운 사이인가 보군.”
“암요. 전하께선 참 좋으신 분입니다요.”
“새로 들인 시종이라면서. 빨리 가까워졌어?”
“원체 전하 성정이 좋으시니까요.”
그보다 뭐랄까. 생판 남으로 만난 떡돌이는 꽤 온갖 곳에 시비를 걸어대는 편이구나.
사자 친왕 시종이 사자 친왕이랑 친한 게 뭐가 어때서. 원웅이도 나한테 ‘우리 마마’라고 수시로 불렀다고.
“그래.”
고개를 끄덕인 떡돌이 손을 젓는다.
“네 전하는 이쪽으로 오지 않았으니 가보거라.”
“예이.”
나는 가늘게 대답하고서 얼른 돌아섰다.
떡돌이를 보자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지만, 정체를 감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 반가움을 드러낼 수 없어 힘들었다.
나중에 내 방에 가면 떡돌이가 다시 그리워지겠지만.
그런데 돌아서서 걸어가는 나를, 헤어질 것처럼 말한 떡돌이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보란 듯 허리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가다가 멈춰서서 돌아보니, 떡돌이가 뒷짐을 지고서 우아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좀 기분이 상해서 빤히 쳐다보자, 떡돌이가 웃으면서 물었다.
“가던 길 가거라.”
“소인을 따라오시는 거 아닌가요?”
“그럴 리가. 같은 방향일 뿐이다.”
“……예이.”
떨떠름하지만 대답하고서 앞서가다 보니, 좀 이상하다 싶다.
길을 안내하거나 호위하려는 게 아닌 이상 보통은 윗전이 앞서가잖아?
그 생각을 하고서 멈춰선 다음 다시 돌아보니, 떡돌이가 나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
“왜 그러지? 짐에게 볼일이라도 있나?”
“폐하께서 먼저 가시는 게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요.”
“아니니 앞서가거라.”
“그래도…….”
내가 앞서가면 계속 허리를 옹송그리고 가야 하잖아?
생각해보니 다른 볼일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온 길을 되돌아갈까? 그러면 너무 이상하려나?
생각하면서 떡돌이를 보니, 떡돌이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더욱 비딱해 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묘한 투로 물었다.
“왜? 짐을 앞서 세워야 할 이유라도 있나?”
* * *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에, 다시 떡돌이가 뒤에 있고 내가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못할 뿐 머리가 나쁘지 않기에, 이런 상황에도 돌파구를 바로 찾아냈지!
바로 엉뚱한 곳으로 아무렇게나 가버려서, 길이 겹치지 않게 하는 법이다.
지금은 노선이 같은 바람에 내 뒤에서 따라오는 떡돌이지만, 노선이 틀어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방향으로 가겠지.
그러면 나는 아까 오 공공이 오는 바람에 두고 온 편지를 다시 가지러 가서 마저 적어야겠어. 아니면 버리던가.
‘……라고 생각했는데.’
왜 떡돌이랑 노선이 틀어지지 않는 거지?
거의 두 식경은 지난 것 같다. 두 식경 동안 나는 아무 곳으로 내키는 대로 갔는데, 떡돌이는 그 뒤를 계속 따라왔다.
누가 봐도 이 정도면 고의였다.
고의지? 고의일 수밖에 없어. 나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떡돌이 저놈이 나랑 길이 겹칠 리가 없잖아?
결국 삐죽삐죽 걸어가기를 한참. 나는 멈추어 서서 그를 슬그머니 보았다.
떡돌이는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따라오다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지?”
“송구하옵니다 폐하. 왜 자꾸 절 쫓아오시는지 모르겠어요.”
“짐이 시종 하나를 쫓아다닐 리가 있겠느냐.”
“하지만 자꾸 제 뒤에서 오시는걸요.”
“길이 겹치는 거지.”
이 거짓말쟁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지금 사자 친왕에게 가는 게 아닌가?”
“……맞아요.”
“짐도 그래.”
빙그레 웃은 떡돌이가 앞서가라며 다시 한 손을 휘젓는다.
그걸 보는데 분기가 치솟아서 콧김이 나왔다. 역시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야.
하지만 예전에는 떡돌이가 황제인 걸 몰랐기에 다리를 찰싹찰싹 두드리며 호통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게다가 그때는 어쨌든 후궁 신분이었고, 지금은 시종이 아닌가.
후궁은 총애를 받든 못 받든 황제와 부부지간이니 화가 나면 허벅지를 두드려도 되지만, 시종은 아니다.
시종 신분은 참으로 답답하구나! 그를 찰싹 때리지도 못하고 꺼지라 하지도 못하고.
차라리 떡돌이가 면사를 쓰고 황제가 아닌 척 굴고 있다면, 그가 황제인 걸 모르는 것처럼 꺼지라 할 수 있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돌아섰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어디까지 따라오나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어. 좀 속력을 내서 뛰어버리자.
이 몸은 강시 몸이니, 체력으로 승부하든 속력으로 승부하든 떡돌이는 내게 당해내지 못한다.
나는 마음을 무섭게 먹고서 천천히 걷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챘나. 내내 조용히 뒤따르던 떡돌이가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폐하. 말씀하시지요.”
“사자 친왕과 무슨 사이지?”
* * *
‘아아. 이를 어쩐다.’
사자 친왕은 이상한 상황을 바라보며 난처해졌다.
그가 바둑을 두다가 밖으로 나온 건 정말로 별 뜻 없었다.
월요 황제를 위로해줄 생각을 하긴 했는데.
막상 가까이에서 오래 있다 보니, 월요가 풍기는 부정적인 기운에 그까지 기운이 쪽쪽 말라가는 느낌에 괴로웠던 것이다.
결국 숨도 돌릴 겸 천빈이 제대로 있나 확인도 할 겸 밖으로 나와 산책하려 하는데…….
“송구합니다, 전하. 전하의 시종들이 너무 고생하는 듯해 좀 쉬라 하였습니다.”
바둑을 오래 둘 줄 알았던지 오원요가 시종들에게 자유 시간을 준 후였다.
그가 예전에 허락해 둔 일이라, 평소라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오늘은 그 시종들 틈에 천빈이 끼어 있단 것이고.
사자 친왕은 난처했지만, 천빈이 궁전에서 일 년 정도 살았던 걸 떠올리고서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역시 혼자 두긴 신경 쓰여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천빈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찾아낸 천비는 황제와 둘이서 산책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천빈이 앞에서 굽은 지팡이처럼 걸어가고, 황제가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이상한 구도였지만.
‘저 둘은 붙어 있기만 하면 이상해지는군.’
사자 친왕은 혀를 차면서도 일단 거리를 두고 그들을 따라가다가, 한참을 걸어 다니던 둘이 이제야 멈추나 싶자 그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이 “사자 친왕과 무슨 사이지?”라니.
사자 친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폐하는 대체 무슨 뜻으로 저런 질문을 한 거지? 대놓고 시종이라고 데리고 온 건데. 무슨 사이냐니.
사자 친왕은 천빈이 ‘시종입니다’라고 대답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천빈은 ‘시종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흠칫하다 되물었다.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 거예요?”
사자 친왕은 인자하게 웃는 얼굴로 풍화될 뻔했다. 그냥 ‘시종입니다’ 대답하면 되잖아. 왜 굳이 되묻는 건데?
질문도 좀 의뭉스러웠지만, 거기에 대고 저렇게 대답하니 더욱 이상해져 버리지 않는가.
사자 친왕이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황제가 물었다.
“무슨 대답을 하고 싶지?”
천생연분이로구나. 천생연분이야. 사자 친왕은 들고 있던 부채를 두 사람 사이로 던져 넣고 싶어졌다.
누구세요? 시종입니다. 그렇군요. 이 대화가 그리 어려운 건가. 왜 둘이서 대화를 꼬고 있지?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친왕 전하의 내시예요.”
‘내 시종 중에 내시는 없습니다, 천빈 마마.’
“그뿐인가?”
“혹시…… 폐하. 제가 대단한 미인이란 이유만으로 사자 친왕 전하와 그렇고 그런 관계일 거라고 의심하시는 거예요?”
‘아니, 천빈 마마. 폐하는 그렇게까지 얘기한 적 없습니다…….’
사자 친왕은 팔짱을 끼고 대화를 듣다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까 바둑 두던 데로 먼저 돌아갈까. 가서 그냥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동시에 저 둘의 대화가 어디로 달려갈지 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짐은 그렇게까지 의심하진 않았는데. 갑자기 발뺌하는 걸 보니 수상하긴 하군.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지.”
“소인이 뭘 발뺌한다는 말씀인 거예요? 갑자기 막 따라다니시다가 캐묻기 시작한 건 폐하시잖아요.”
“엉뚱한 방향으로 짐을 끌고 가는 건 너일 텐데.”
“제가 가는 방향으로 막 따라오신 건 폐하십니다요.”
“거기 내시. 이제 보니 곤란할 때마다 말투를 바꾸는군. 짐이 정곡을 찌른 건가.”
‘아니, 둘 다 헛곳을 찌르고 있습니다.’
도대체 둘이 뭔 대화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사자 친왕은 보다 못해 앞으로 나섰다.
“이런, 폐하. 제 시종을 데리고 뭘 하고 계십니까?”
그가 나서자 천빈이 얼른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였고, 월요는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며 불만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사자. 네 시종이 널 찾아간다기에 따라가고 있었더니, 짐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끄는구나.”
사자 친왕은 웃으면서 상황을 좋게좋게 넘어갔다.
“하하, 청청이 시종이 된 지 얼만 안 돼서요. 좀 실수를 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가 잘 둘러댄다고 둘러댔는데, 오히려 월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청청?”
곧 월요가 다시 천빈을 쳐다보며 가소롭단 듯이 물었다.
“아깐 이름이 백몽이라 안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