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암살자라 여겼는데
“음. 우선 남장을 해야 하는데. 곤란하군요. 잘못하면 누가 봐도 남장한 여자처럼 보일 거라. 사람들이 나를 미인을 이용해 폐하께 접근하려는 파렴치한으로 볼 겁니다.”
“전하는 절대 파렴치한이 아닌데. 그렇죠?”
“그럼요.”
“전하는 뒤에서 수를 써도 앞에선 안 쓰는걸요.”
“폐하를 뵙기 싫은가 보군요, 천빈 마마?”
“내가 왜 아직 천빈이에요?”
“책봉식을 못 치르고 그 몸에서 떠났으니까요. 하지만 누가 듣고 오해하면 안 되니 앞으론 천 소저라 부르지요.”
다음에 사자 친왕이 입궐할 때 시종으로 변장해 따라 들어가기로 한 후.
사자 친왕은 나를 평범한 시종으로 보이게 할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시종으로 변장했는데 너무 눈에 띄면 소용없으니까.
“고민이네요. 전 얼굴이 눈에 띄는 편이라서요. 시종 옷을 입는다고 눈에 안 띌까요?”
“부정하고 싶은데 하필 사실이군요. 원래 얼굴은 꽤 화려하십니다?”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사자 친왕과 기타 몇 명의 의상 전문가들이 달려든 덕에 마침내 제대로 남장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은 여전히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앞머리를 내어서 가릴 만큼 가렸고, 이 앞머리도 바람이 불 때 날아가지 않도록 꼼꼼하게 고정했다.
이 상태로 다 같은 차림의 시종 사이에 묻혀서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서도 이틀이 지나서야 나는 사자 친왕을 따라 입궁하게 되었다.
‘궐 밖에서 들어오면 이런 느낌이구나.’
안에서 살며 밖을 볼 때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검문. 사자 친왕이 들어가는 건데도 최소한의 검문을 받는다.
사자 친왕을 따라 들어온 시종과 호위 역시 검문을 받고 무기를 맡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사자 친왕이 내가 남장할 때 그렇게 신경 썼구나. 온몸을 두드려대네.
그렇게 입구 몇 개를 통과하고 나서는 그나마 자유로워졌는데, 그조차도 사자 친왕이 데려온 시종 대다수와 호위 대다수를 어느 방에 두고 가야 했다.
사자 친왕의 곁에 남은 시종은 날 포함해 셋뿐이었다.
“저 사람들은 계속 저기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렇지요.”
“무기를 뺏겼는데도 호위까지 두고 가요?”
“주먹이 무기인 호위도 있으니까요.”
이러니까 밖에서 볼 수 있던 그 많은 무림인들이 궁전 내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
“이것도 평소보단 많은 겁니다. 평소엔 시종을 아예 안 데리고 다니기도 하니까요.”
하긴. 내가 사자 친왕을 만났을 때 그는 늘 혼자 있거나 시종 하나만 데리고 있었다.
오늘은 나를 묻어가야 해서 그나마 여럿을 데리고 온 모양이고.
“그럼 이제 어디 갈 건가요?”
떡돌이한테 가자. 떡돌이. 방금은 사자 친왕 시종 눈치를 보느라 질문하는 척한 거다. 알지?
“폐하부터…….”
“네.”
“뵙기 전에 궁궐 구경이나 시켜드리지요.”
“…….”
장난하나. 눈을 멍하게 뜨고 쳐다보자, 사자 친왕은 한 번 웃더니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폐하를 뵙지요. 여기로 갑시다.”
* * *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마침내 어실에 도착했다.
내겐 너무나 익숙한 곳. 하지만 몇 주간 오지 못한 곳이다.
내가 여기에 팔랑팔랑한 후궁 옷을 입고 나타나면 대신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오늘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신기한 기분을 누르며, 나는 사자 친왕이 오원요에게 말 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폐하는 안에 계시는가?”
“그럼요. 요즘 자주 오십니다, 전하.”
“폐하께서 힘들어한단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신경이 쓰여서 말이네.”
“감사합니다. 천비 마마께서 기억을 잃으신 데 많이 충격받으셨지요.”
당장 오원요에게 ‘오 공공! 폐하 많이 아파요?’라고 묻고 싶다. 떡돌이가 많이 충격받았다고?
그러리란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듣고 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들어가시지요.”
사자 친왕을 두고 안으로 들어갔던 오 공공이 이렇게 말하자, 사자 친왕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 너는 여기 있어라.”
나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오 공공이 붙잡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세상에. 어실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사자 친왕뿐이었던 것이다.
“폐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마.”
그나마 다행인 건 사자 친왕은 내가 당황한 걸 알고, 작게 속삭이고서 안으로 들어간 거.
이후 나는 건물 앞을 서성이며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약속대로 사자 친왕이 떡돌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떡돌아!’
나는 그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이런. 듣긴 했지만 정말 수척해졌잖아. 얼굴이 반쪽이 됐네.
딱 보기 좋게 살이 있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 퀭해졌나 모르겠다.
그 탓에 수묵화에 나오는 그림 같던 떡돌이는 날카롭고 서늘한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를 애타는 눈길로 바라보며 연신 주먹을 움찔거렸다.
역시 떡돌이한테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게 나을까?
난 무사히 강시 몸에 돌아왔으니 그도 먹을 걸 잘 챙겨 먹으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떡돌이 상태가 좀 괜찮아질까?
그러다 힐긋 떡돌이의 시선이 나와 시종들 사이를 지나갔다.
하지만 그뿐. 떡돌이의 눈길은 다시 이쪽을 향하지 않았다.
“폐하. 나날이 안색이 나빠지시는데. 약이라도 좀 드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먹는 건 잘 챙겨 먹고 있다. 곧 아이가 태어날 텐데. 건강해야 아이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보기엔 굶고 지내시는 듯합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 * *
사자 친왕과 떡돌이는 이후 산책을 하다가 같이 식사하자며 후원에 상을 차리게 했다.
식사한 후에는 바둑을 두러 또 들어갔는데, 방 안에서 바둑을 두었기에 둘이 바둑 두는 모습은 또다시 볼 수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그들이 바둑 두는 사이 우리에게도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너무 먼 데 가지만 않으면 이 근처에서 쉬거나 돌아다녀도 괜찮다. 두 분이 바둑을 두면 실력이 비슷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오 공공이 허락하자 사자 친왕의 시종 하나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슬쩍 물었다.
“이 근방 구경을 시켜드릴까요, 소저?”
사자 친왕의 시종들은 내가 사자 친왕과 친한 여자인데, 궁궐 구경을 하고 싶어서 따라온 거라 알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나를 신경 써주려는 듯했다.
“다리가 아프시면 쉴 만한 곳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젓고서 주위를 살피고 다니다가 인적이 없는 곳을 일부러 찾아갔다.
떡돌이에게 내가 나라고 말은 못 하더라도, 난 무사하니 좀 잘 먹고 잘 쉬란 쪽지는 남겨야겠어.
혹시나 싶어 쓸만한 종이와 세필을 가져오길 잘했지.
* * *
“폐하.”
사자 친왕이 알 위치를 거의 외워뒀으니 바꾸지 말라 신신당부하고 나간 후.
월요가 혼자 앉아 창가를 보고 있으려니, 승언이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월요가 바라보자, 승언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어 알렸다.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습니다.”
“신경 쓰이는 거라니?”
“친왕 전하께서 이번에 새로 데려온 시종 이야깁니다.”
“시종? 새로 데려왔던가?”
천년비가 생각한 대로, 월요는 사자 친왕의 시종들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무심하게 물었다.
말하고 보니 늘 오던 사람 외에 얼굴을 갑갑하리만큼 다 가린 사람이 하나 있긴 했지만.
“아아. 그 앞머리가 긴.”
“네.”
“그자가 왜?”
“친왕 전하도 그렇고, 다른 시종들도 그렇고. 유독 그 시종을 유난히 챙기는 분위기입니다.”
“챙기다니? 평범하게 섞여 다니지 않았던가?”
“예. 하지만 시시때때로 친왕 전하건 시종들이건 그 시종에게 말을 거는데, 태도가 조심스럽습니다.”
승언은 말을 하고는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소신의 괜한 우려일지도 모릅니다.”
월요가 사자 친왕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전에 언질을 주지 않았더라면 승언도 이렇게까지 보고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입이 궁전에서 실수라도 할까 봐 챙기는 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사자 친왕의 전적이 있으니만큼, 승언은 이래저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냥빈이 사라진 이후 월요는 눈에 띄게 공허해했다. 이럴 때일수록 주위에서 그를 잘 지켜야 한다.
“……그래.”
월요는 잠시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네가 그리 말할 땐 뭔가 이상하게 보일 때겠지.”
“데려와서 살펴볼까요?”
“그래.”
월요의 지시에 승언이 나가려는데, 월요가 잠시 멈칫하더니 “아니.” 하고 말을 바꿨다.
“되었다. 짐이 직접 보겠다.”
“예?”
“그 시종이 형님에게 나쁜 명령을 받았다면, 짐과 둘이 있을 때 속내를 더 잘 보이겠지.”
승언은 당황해서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폐하.”
월요는 고개를 저었다.
“그자가 숙련된 암살자라 한들 짐이 통제할 수 있다.”
승언은 그래도 말려 보려다가, 월요의 지친 표정을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황제는 지금 여러모로 기분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어디에든 집중하고 싶은 모양이다.
만약 그자가 암살자라면…….
‘폐하의 진노를 세게 받겠지.’
생각을 마친 승언은 순순히 대답했다.
“예, 폐하.”
* * *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 바위에 종이를 펼쳐 놓고, 휴대용 세필을 꺼내 그 위에 떡돌이에게 남기는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적지 않되, 내가 쓴 거란 걸 알아볼 수 있게. 그래서 떡돌이가 보고서 용기를 얻어 다시 튼튼해질 수 있게.
‘이걸 보고서 더 화내진 않겠지? 살아 있는데도 안 왔다던가, 그런 식으로?’
걱정하면서도 열심히 서신을 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어휴 바쁜데! 나는 덜 적은 서신을 구긴 다음 일단 풀 안쪽으로 집어 던지고서 세필통만 품 안으로 감췄다.
그러고서 경치를 보는 척 뒷짐을 지고 있자니, 인기척이 더욱 가까워졌다.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도 오원요였다.
“오 공공?”
오원요가 마치 내 쪽으로 오듯 걸어오기에 희한해서 중얼거리자, 오원요가 친절한 얼굴로 물었다.
“친왕 전하께서 여기로 오지 않으셨나?”
“안 왔는데요.”
“그래?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군.”
“왜요?”
“어깨가 아프다 눈이 아프다며 잠시 나가시더니, 아직 들어오지 않으시네.”
“아. 제가 찾아볼까요?”
“그래 주겠나?”
“네.”
“그럼 저 나무 뒤쪽으로 가보겠나? 다른 쪽은 폐하의 태감들이 찾으러 갔으니 말이야.”
사자 친왕이 바둑 두다 말고서 대체 어디 갔단 거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의아했지만, 일단 찾아보겠다고 말하고서 오원요가 말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커다란 덤불 사이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전하? 거기 계세요?”
사자 친왕이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지만, 그래도 소리가 나니 일단 그쪽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덤불 뒤쪽에 있는 건 사자 친왕이 아니었다.
‘떡돌이잖아?’
덤불 뒤에 있는 건 월요이고, 바스락 소리는 그가 덤불을 발로 툭툭 차서 낸 소리였다.
반가운 마음과 의아한 마음이 동시에 치솟아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멍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다급히 그와 안 친한 척 인사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고 보니 그가 대답이 없었다. 뚫어져라 날 쳐다보기만 할 뿐.
어쩌지? 분장을 뚫고 예쁜 게 튀어나왔나? 역시 앞머리로는 나를 감추기 힘들었나?
난감한 기분에 그를 같이 바라보고 있자니, 월요가 미간을 찌푸리고서 물었다.
“너. 사내 아닌가.”
“암요.”
“한데 왜 궁녀 식으로 인사하지?”
아이고야! 후궁 식으로 인사하던 게 습관이 돼서!
후궁 식 인사와 궁녀 식 인사가 같은데.
천만다행인지 월요는 내가 시종 복장이라 궁녀식 인사로 해석한 모양이다.
당황해서 쩔쩔매고 있자니 월요의 표정이 좀 더 찌푸려져서, 나는 얼른 기지를 발휘했다.
“소인은 내시입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