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떡돌이를 볼 수 있어!
사자 친왕은 인기가 많은데. 그 인기가 깊게 이어지진 않았나 보다.
“전하?”
“전하?”
“전하?”
내가 사자 친왕을 따라 친왕부 안으로 들어가자,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응이 똑같았다. 의문 어린 탄사.
그러고는 사자 친왕에게 ‘이분은 누굽니까?’라는 시선으로 빤히 올려다보는 것이다.
그때마다 사자 친왕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말했다.
“다들 너무 기대하지 마라. 친구일 뿐이니.”
그래도 친왕부 안의 사람들이 좀 기대하는 표정들이어서 ‘왜 저러나?’ 생각해보았더니, 곧 답이 나왔다.
사자 친왕은 왕족 치고 혼인이 늦은 편이구나. 왕족들은 빨리빨리 혼인하지 않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 맞아요?”
“맞습니다. 왜 그럽니까?”
“여기 있다가 괜히 오해라도 사면 어쩌죠?”
“무슨 오해요?”
“우리가 곧 결혼을 준비한단 오해요.”
“하하 설마요.”
“혼전임신을 한 지 사 개월쯤 되어서, 전하가 제 신분을 개의치 않고 일단 집에 데려온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음…… 오해를 해도 그렇게 구체적으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내가 조심스러워하자, 사자 친왕은 씩 웃으면서 놀렸다.
“쑥스러운가 봅니다? 나 같은 사람과 오해받는 게?”
“아뇨. 혹시라도 폐하한테 오해를 살까 봐 그래요.”
“폐하를 안 만날 거라면서요?”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니까요.”
사자 친왕은 잠시 ‘그런가?’ 하고 고개를 기웃했으나, 곧 웃으면서 소탈하게 말했다.
“아니, 그래도 역시 괜찮을 겁니다. 폐하께서 여기 올 일은 없거든요.”
* * *
사자 친왕의 말이 맞았다. 떡돌이가 여기 올 일은 없었다.
하긴. 궁전에 있을 때도 떡돌이가 사자 친왕한테 놀러 갔단 소린 못 들었어. 사자 친왕이 떡돌이를 보러 자주 놀러 오면 왔지.
어쨌든 타천천도 굳이 내게 돌아오란 말이 없어서, 나는 며칠 동안 친왕부에 머무르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떡돌이한테 내가 원래 몸에 돌아왔다고 말을 하는 게 좋을까 말까.
그러다 떡돌이가 이 몸으로라도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하면, 그러면 나는…….
그렇게 한참 고민하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져서, 결국 며칠 뒤. 나는 홀로 마음을 쐬러 친왕부 밖으로 나갔다.
사자 친왕이 내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도록 부하들에게 말을 해 둔 덕에 아무도 문밖으로 나가도 말리지 않았다
괜한 소동에 휩쓸리지 않도록 면사를 길게 붙인 삿갓을 써 얼굴을 가리고서, 나는 하염없이 수도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개씨 집안일이 생각나서 그 집 근처에 가보았다.
‘개원이든 개운호든 날 죽인 자식한테 복수하려고 아등바등했는데.’
내 몸이 이 상태가 되고 나니 복수고 뭐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구나.
‘그러고 보니 내 일기장. 괜찮겠지? 천소여가 읽진 않겠지? 대들보 위에 감춰 두었으니…… 괜찮을 거야. 거긴 손이 안 닿잖아.’
그런데 멍하게 그 근처 길거리에서 당과를 사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시비를 거는 게 아닌가.
“흉내 정도는 제대로 내지 그래?”
들어보니 나와 관련 없는 얘기 같아서, 나는 계속 당과를 주문했다.
“아홉 개 주세요, 아홉 개.”
“소저,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닌가요? 이거 다 먹으면 이가 썩을 텐데.”
“난 이가 썩지 않아요.”
“이는 누구나 다 썩어요, 소저.”
“죽은 사람은 안 썩어요.”
“소저 죽었소?”
“아, 그럼요. 여러 번 죽어 봤죠.”
“하하, 이 소저 참 웃기네. 당과 먹으려고 거짓말이 너무 센 거 아닌가? 그런 거짓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요.”
그런데 당과를 사고 있자니, 재차 뒤에서 시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흉내 정도는 제대로 내지 그래?”
역시 내 이야기는 아니어서 모른 척하고 있자니, 시비 걸던 사람이 작게 툴툴거렸다.
“사장님, 누가 사장님한테 뭐라 하는데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당과 파는 상인에게 알려주자, 상인이 멀뚱히 내 뒤에 선 사람에게 물었다.
“뉘시오?”
시비 걸던 사람은 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쪽한테 말 건 거 아닙니다.”
그러더니 내 뒤를 콕콕 찌르는 게 아닌가.
돌아보면서 손가락을 꺾고 보니, 뜻밖에도 아는 얼굴이었다.
“개……운호?”
“아아! 아아아!”
“개원……은 아닌 거 같고. 개운호. 맞지?”
“아아아아!”
“왜 대답을 안 해?”
당과 상인은 당과 아홉 개를 챙겨주며 대신 대답해주었다.
“소저가 손가락을 놓아주면 대답할 거 같은데.”
손가락을 놓아주자, 개운호는 자기 손을 잡고 씩씩거리다가 갑자기 멍하게 물었다.
“이 폭력적이고 뻔뻔한 태도……. 너…… 진짜냐?”
이게 미쳤나?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 * *
당과를 사서 걸어가고 있자니, 개운호는 내 뒤를 따라오며 계속 귀찮게 말을 건다.
“난 네가 가짜인 줄 알았는데.”
“…….”
“아니, 전에 보았을 땐 분명 가짜 같았는데. 천년비를 사칭하는 가짜. 내가 잘못 본 건가?”
“…….”
“대답 좀 하지 그래?”
개운호는 개원이든, 둘 중 누구라 해도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다.
계란이가 나올 날짜도 다 되어 가고 그 외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복수를 놓고 살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형제에게 가진 화가 풀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개운호는 집요하게 따라다녔고, 결국 나는 그의 입에 당과 하나를 쑤셔 넣으며 대답했다.
“무슨 상관이야?”
개운호는 당과를 입 옆으로 굴리고서 대답했다.
“네가 천빈이란 후궁이 된 줄 알았다.”
예리한 놈. 어떻게 안 거야?
“그 후궁도 너처럼 괴상했거든. 너 같은 성격이 두 사람이나 있을 거 같지 않았으니까.”
이 자식, 대놓고 내 욕을 하는 거 같은데?
좀 기분이 나빠서 쳐다보자 개운호가 이상한 각도로 꺾인 자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욕 좀 하게 두자. 다시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자니, 개운호가 계속 날 따라오며 말했다.
“천년비. 네가 가짜가 아니라면,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봤잖아. 당과 사 먹으러.”
하도 귀찮게 굴기에 결국 대답을 해주고 말았다. 하지만 개운호는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당과를 사 먹으러 왔다고?”
“그래.”
나는 새 당과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고서 앞으로 걸어가다가, 돌연 불쾌해져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단 걸 좋아하는 것쯤은 너도 알지 않아? 뭘 못 믿겠단 것처럼 말해?”
날 속이고서 개원 흉내를 낼 정도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거 같은데? 속뜻을 읽기라도 한 건지, 개운호의 삐딱한 표정이 굳었다.
그를 흘겨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걷고 있자니, 개운호가 뒤를 따라오며 말했다.
“황제가 사하비단을 처리하란 지시를 내렸어.”
“어쩌라고.”
“어쩌라고라니?”
“황제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나한테 묻지 말고.”
“황제가 꼭 시키는 대로 해야 해?”
“그럼 네가 생각해서 하지 마. 나한테 묻지 말고.”
짜증스럽게 말하면서 다른 당과를 꺼내 개운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서 돌아서자, 개운호가 그 당과를 입 밖으로 꺼내며 차갑게 비웃었다.
“어떻게 그래. 네가 사하비단의 얼굴인데.”
그 말을 듣는데, 개운호가 아니라 타천천한테 욕이 나왔다.
“아니야.”
단호하게 부정했지만, 개운호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사하비단 얼굴인 거 모르는 사람 없어. 그래서 놀란 거다. 그 행패를 다 부리고서, 수도 안을 당당하게 한낮에 활보하고 있어서.”
결국 정처없이 앞으로 걸어가다가, 화가 나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다른 손가락도 마저 꺾어달란 거야?”
개운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뭐 어쩌고 싶단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그렇게 가만히 있는데,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쳐다보기를 한참.
왜 얘랑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어져서 돌아서는데, 개운호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내가 널 지키게 해줘.”
그가 던진 어이없는 말에 입이 벌어졌다.
바람이 불어와 삿갓에 달아 둔 면사가 흔들리면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똑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개운호가 보였다.
“너 양심 없구나.”
그를 쳐다보다가, 나는 몸을 돌리며 쏘아붙였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너야 개운호.”
* * *
입궁해서 월요의 상태를 살피고 나온 사자 친왕은 가마를 타고 이동하던 중 천년비와 한 청년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월요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일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허공을 쳐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고 한다.
갑자기 연못가로 가서 잉어를 살핀다거나, 거북이를 살핀다거나, 고양이들을 살핀다거나, 심지어는 새나 말들까지 살핀단 말도 있었다.
사람들은 총애하던 천비가 기억을 연거푸 잃자. 황제가 장공주 건까지 겹치면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지만…….’
다행히 사자 친왕이 말을 섞어 보니,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닌 듯했다.
왜 동물들에 말을 걸며 다니는진 모르겠지만.
사자 친왕은 월요에게 천년비 위치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얼마나 간지러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칫 잘못 알려주었다가는 천년비가 화가 나서 그가 사하비단에 다닌 걸 말할 수도 있기에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황제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의외로 천년비는…….
‘잘 노는군.’
물론 논다고 하기엔 천년비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상대가 풀어주려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상대의 얼굴이 수려한 청년이어서일까. 사자 친왕은 저절로 고개라 설레설레 저어졌다.
그러다 사자 친왕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그렇게 하면……?’
* * *
“전하 시종인 척 궁전에 갔다 오자고요?”
집에 돌아와서 개운호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씩씩대다가 ‘개운호가 왜 그런 제안을 한 건가?’ 고민해보기를 한참.
갑자기 사자 친왕이 오더니 내게 또 다른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안 돼요, 전하. 절 보면 떡, 폐하는 너무 기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날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절 보고 폐하를 눈짓만으로 유혹한 절세의 미녀라고 할 거잖아요. 그러면 다들 제 얼굴을 보고 싶어 몰릴 거고, 그러면 누군가는 절 알아볼 거라고요.”
내가 당황해서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말하자, 사자 친왕은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폐하는 마마 얼굴을 모르잖아요?”
“그게…….”
어?
“그러네요.”
맞다. 생각해보니 떡돌이는 내가 천년비였단 건 알지만 천년비 얼굴은 몰라. 내가 나타난다고 해서 떡돌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날 일은 없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사자 친왕을 보자, 사자 친왕이 뿌듯하게 웃으며 물었다.
“폐하를 뵙고 싶지 않습니까? 계란 아기씨가 어떤가 보고 싶지 않아요?”
“보고 싶어요.”
“그러면 함께 다녀오지요. 폐하께 정체를 밝힐지 말지는 나중에 고민해도, 얼굴 정도는 봐도 괜찮을 겁니다.”
생각해보겠다 말하려는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두근거려서 나는 괜히 손을 깍지껴 잡았다.
개운호의 말은 이미 저 멀리고 날아가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떡돌이는 내 얼굴을 몰라. 떡돌이를 보고 올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