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화. 이상하게 항상 먼저 보게 된다
월요는 우 답응을 찾아가자마자 말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예전에 이상한 방법을 써서 천 귀인을 해치려 했을 때. 정확히 어떤 방법을 사용했지?”
우 답응은 이미 끝난 일을 황제가 찾아와 직접 다그쳐 묻자 당황스럽기도 하고 겁도 나서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널 벌하려는 게 아니니 솔직하게 말해라. 넌 누군가와 거래를 했을 거다. 정확히 어떤 거래를 한 거였지?”
“신첩은 아무것도…….”
“우 답응.”
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한층 낮아지자, 우 답응은 얼굴도 해쓱해졌다.
며칠 전에는 천비의 궁녀가 찾아와 저런 질문을 하고 가더니. 이번에는 황제가 찾아오고. 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폐하! 폐하!”
뒤에서 다른 그림자가 그를 급히 불렀다. 월요가 돌아보자,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월요의 눈이 커다래졌다.
“천비가 깨어났다고?”
“네.”
그렇다면 우 답응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다. 황제는 다급히 그를 따라갔다.
과연, 비연궁으로 가 보니 천비가 멀뚱히 침상에 앉아 있고, 곁에서 탕 궁의가 그녀를 진맥하고 있었다.
‘천년비는 아닐 거다.’
일단 계란이가 죽을 위험에선 빠져나왔지만, 저 사람은 천년비는 확실하게 아닐 거다.
이를 알기에 월요는 천비가 무사히 깨어난 걸 보면서도 완벽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우선 계란이는 구했는데. 이제 천년비는 어떻게 해야 사람의 몸이 되나.
“폐하.”
그런데 갑자기 오원요가 그를 작게 부르더니, 눈으로 밖을 가리켰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따라 나가 보니, 비연궁 밖에 승언이 냥빈을 안고 있었다.
“왜 그러지?”
월요가 놀라 다가가자, 승언이 축 늘어진 냥빈을 보이며 새파란 얼굴로 말했다.
“폐하. 냥빈 마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
“어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글자를 열심히 고르고 계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셨고…… 그땐 이미 맥이 뛰지 않았습니다.”
* * *
열심히 글자를 고르면서 승언이 눈치 좋게 내 말을 잘 이해하길 바랐는데.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는 듯하더니, 정신이 들었을 땐 타천천이 코앞에 있었다.
“왜 변태가 여기 있어?”
놀라서 중얼거리자, 타천천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멋대로 내 손을 잡고 웃었다.
“드디어 원래 자리로 돌아왔구나, 녕녕.”
잠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멀뚱히 그를 쳐다보았다. 곧 느리지만 천천히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염 귀인과 우 답응이 시도했던 그거. 나를 내 몸에 돌아오게 하는 그거. 그게 이제 성공한 거네?
아니, 물론 고양이 몸에 있는 것보다 낫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상황이, 상황이 대체?
황당해서 타천천을 쳐다보고 있자니, 타천천이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웃으며 알려주었다.
“아기씨 걱정이라면 안 해도 괜찮아, 녕녕. 천소여는 다시 깨어났거든.”
“천소여가 깨어났다고? 어떻게?”
“어떻게 했지.”
타천천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내가 일어나도록 손을 슬쩍 잡아당겼다.
상체를 일으키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부가 조금 낯이 익었다.
하지만 어디인지 바로 생각나지 않아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드디어 생각났다.
전에 이 강시 몸에 처음 돌아왔을 때. 그때 본 방이다. 아마도.
“마음에 들어?”
방 안을 둘러보고 있자니, 타천천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를 쳐다보자, 타천천이 내 손등을 들어 그 위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네 방이야. 앞으론 여기서 지내. 동굴에서 지낼 필요 없어, 녕녕.”
“…….”
“기쁘지 않아? 네 몸을 되찾았는데?”
“모르겠어.”
여기는 내 계란이도 떡돌이도 없잖아. 그 말을 삼키고서 배에 손을 올려 보았다.
배는 평평하고 단단했다. 내가 열심히 길러둔 복근도 있다. 하지만 계란이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계란이가 배 안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점점 생동감 있게 느껴졌는데. 그 아이는 흔적도 없었다.
멍하니 그러고 있자니, 타천천이 내 손을 놓으며 물었다.
“아기를 키우고 싶어, 녕녕? 몇 개 구해다 줄까?”
“필요 없어. 난 아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계란이를 좋아한 거지.
단호하게 말하고서 이불을 덮어 쓰고 침상에 도로 눕자, 타천천이 이불을 위로 올리며 재차 물었다.
“화났어, 녕녕? 난 네 아기를 구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화나지만 맞는 말이다. 천소여가 죽기라도 했으면 계란이도 잘못되었을 텐데. 그가 빠르게 손을 써서 계란이가 살았으니까.
맞는 말이지만…… 그래. 맞는 말이네.
“화 안 났어.”
“그런데 왜 이렇게 차가워?”
“난 늘 네게 차가워, 이 변태야.”
“아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타천천을 째려보자, 그가 무서워하는 척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애도 천소여 애지 네 애가 아니잖아, 녕녕.”
“만드는 과정 내내 내가 참가했으면 내 애야!”
타천천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더 말을 거는 대신, 이불을 도로 내려주었다.
나는 이불 아래로 꿈틀꿈틀 기어 내려가 몸을 웅크렸다.
연비의 고양이 안에 있을 땐 그래도 궁궐 안이었고, 떡돌이가 계속 옆에 있어 줬으니 괜찮았는데.
이렇게 혼자 계란이랑 떡돌이에게서 먼 곳에 오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콱 막히는 기분이 든다.
이제 어쩌지? 이 몸으론 떡돌이 곁에 갈 수 없어. 타천천 저 개새끼가 내 얼굴을 드러내고서 여기저기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고.
“맞다, 타변태.”
“녕녕. 난 귀여운 별칭으로 불러주는데. 꼭 그렇게 불러야겠어?”
“아유정은 어떻게 됐어?”
“아유정?”
“네가 내 몸에 넣어 놨던 사람. 내 몸에 들어가서 얼굴 까고 사고 치고 다닌 그 사람.”
날 숭배하는 사람이니 어쩌니 하지만 행실만 봐서는 나한테 불만 많은 거 같던 걔.
물론 그쪽은 타천천 명령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니, 뭐 그런 걸 고려하긴 해야겠지만.
타천천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말했다.
“네 몸에 있기 싫다고 갔어, 녕녕. 아유정이 널 이 몸으로 부르는 주술을 쓰고 간 거야.”
“왜?”
“그 애가 개원 그자를 연모하게 돼 버렸거든.”
“!”
* * *
며칠이 지났고, 슬슬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을 하고는 있다. 노력만 할 뿐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천소여는 천소여 몸을 찾아갔고, 나는 내 몸을 찾아왔고, 계란이는 이제 무사할 거다.
떡돌이는…… 떡돌이가 보고 싶어. 떡돌이도 내가 보고 싶겠지. 떡돌이는 천소여가 내가 아닌 걸 아니까.
냥빈마저 죽은 걸 보고 떡돌이가 얼마나 충격에 빠졌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연거푸 한숨이 나온다.
타천천 이놈이 아유정을 이용해 내 얼굴만 좀 덜 팔았어도, 어찌어찌 가보려 시도는 해볼 텐데.
그래도 한번 가볼까? 하지만 가봐서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가볼까?‘
멍하게 되풀이되는 생각을 하면서 연못가에 있을 때였다.
“녕녕.”
뒤에서 타천천이 나를 불렀다. 돌아보자, 그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너무 우울해하는 거 같은데. 일 하나 할래?”
뭐야? 우울하면 쉬어야지 일을 해?
“나 놀고 먹는 것도 바빠.”
황당해서 딱 잘라 말하자, 타천천은 슬그머니 내 옆에 와서 말했다.
“힘든 일은 아니야, 녕녕. 그냥 손님 하나만 이쪽으로 안내해 주면 돼.”
“네가 해. 손님 안내. 안 힘들면 네가 하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네가 좋아할 사람 같아서.”
“그게 누군데?”
“뭐, 향수 정도는 자극이 되지 않을까?”
누구 얘기야? 의아해 쳐다보았지만, 타천천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대신 웃고서 내 등을 두드렸다.
“갔다 와봐. 계속 이렇게 기운 없이 지낼 순 없잖아.”
난 기운이 없는 게 아니다. 기운이야 넘친다.
내 원래 몸은 내가 열심히 훈련해 두었고, 그 상태로 강시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수시로 떡돌이랑 계란이 생각이 나고, 그럴 때면 둘이 걱정되어 견딜 길이 없다.
걱정을 하다 보면 저절로 행동을 멈추고 그 생각에 빠지게 되지.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좋아. 갈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좀 다른 데 신경을 돌리는 게 나을 수도.
* * *
‘괜찮은가.’
사자 친왕은 마차 안에서 창가에 턱을 괸 채 느리게 부채질하며 생각했다.
황제가 걱정되었다. 황제에게 반목하는 사하비단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이런 고민 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쨌든 아직 사하비단과 손을 잡을지 말지 정하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황제의 형제였으니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천비와 사이가 틀어졌나?‘
돌이켜보면 황제가 우울해진 첫 시작은 그 일 같다.
천빈은 책봉식 도중 쓰러졌고, 깨어나긴 했으나 목소리를 잃었다. 이후 좀 잘 지내는가 싶더니, 다시 또 쓰러졌다.
다음에 깨어났을 땐 목소리는 돌아왔지만 또 기억을 잃었다.
기억이 없는 천비가 낯설어서일까? 황제는 요즘 비연궁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천비가 회임을 했으니 아예 발길을 끊을 수는 없는 모양이지만, 상태를 확인하고서 반 시진도 있지 않고 나온다고 이미 말이 돌았다.
태후가 그런 황제를 불러다가 꾸짖었단 소문도 암암리에 돌 정도였다.
‘툭하면 고양이 무덤 앞에만 있는다던데.’
연비의 고양이었는데, 뺏어다 기르겠다고 하더니 며칠 만에 그 고양이도 죽었다고 했지.
사자 친왕은 한숨을 내쉬다가, 마차가 멈추어 서자 창틀에 괴었던 손을 내렸다.
“도착했나?”
“네, 전하.”
사자 친왕은 마차에서 내리고서 마부에게 손짓했다.
“그럼 가보거라. 나흘 뒤 다시 이 자리에, 이 시간에 오고.”
“네, 전하.”
마부는 꾸벅 인사를 올리고서, 사자 친왕이 타고 온 마차를 몰고 다시 온 길을 돌아갔다.
사자 친왕은 완전히 홀로 남은 채 뒷짐을 지고서 좀 더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커다란 나무 앞에 서서, 잠시 접었던 부채를 펼치고 다시 부채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왜 이리 안 오나, 갑갑해질 즈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곧 갈림길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자 친왕은 부채질을 멈추지 않으며 무심하게 그곳을 보았다.
삿갓을 써서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키가 아주 큰 여자가 서 있었다.
사자 친왕은 그녀를 향해 고개만 까딱해 인사하고 물었다.
“안내자인가.”
그런데 이상했다. 여자는 그렇다던가 아니라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인사도 하지 않았다.
삿갓을 쓰고 있었지만, 사자 친왕은 여자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사자 친왕은 한숨을 내쉬고서 피식 웃었다.
세상엔 그를 흠모하는 여인이 많았다. 안 흠모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역시 무림인 여자도 예외는 아니야.
사자 친왕은 자만심에 차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턱을 들고는 매력적으로 웃으며 물었다.
“낭자, 내 미모가 그리 놀랍소?”
“아이고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좀 이상했다. 사자 친왕은 흠칫하고서 부채를 내렸다.
뭐야. 지금 저 여자가 뭐라 한 거지? 아이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