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해운잠
“폐하, 고양이 좀, 고양이 좀.”
내가 천비 몸에 해가 될까 염려되는지 원웅이 떨면서도 애타게 청했다.
떡돌이가 나를 얼른 안아 들었다.
나는 떡돌이의 어깨에 대고서 다급히 내가 생각한 방법을 말했다.
“니냐냐냐냐냐냐냐냐냥냐냐냥냐냥!”
하지만 숨도 쉬지 않고 말해도 떡돌이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말없이 쓰러진 천소여의 목 옆에 손을 대고 맥을 살피더니, 다급히 밖으로 나가며 내게 말했다.
“반숙아.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책자로 골라 두어라. 승언아. 네가 그 말을 이어서 짐에게 보고해라.”
너는? 너는?
“짐은 우 답응에게 가보겠다. 우 답응이 전에 뭔가를 해서 널 쓰러지게 했지. 어쩌면 무언가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 답응이 알지도 몰라.
혼령술을 쓰자고 말하려 했지만, 사실 나는 정확한 혼령술 방법을 모른다.
전에 천소여 몸을 떠나기로 했을 때, 스스로 혼령술을 써보려 했지만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우 답응은 직접 비원에게 뭔가 들었으니 알 거야!
떡돌이는 나를 승언에게 건네주고서 우 답응이 지내는 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그를 붙잡는 대신 승언이를 얌전히 붙들고서,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았다.
‘말이 통하면 비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은데!’
* * *
그 시각. 비원은 이미 타천천과 만나고 있었다. 이번 일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천비가 갑자기 말을 못 하게 되었단 소식을 듣고서 내내 이 일을 의아하게 여기다가, 혹시나 싶어 천년비를 찾아가 보았다.
그녀에게도 장공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혼령술은 불안정해서 아직 타천천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실험작이니까.
하지만 ‘그건’ 천년비가 아니었다.
이에 비원은 이 일을 타천천에게 알리고, 타천천이 수도로 다시 올라와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한 것이다.
비원에게 그간의 경위를 들은 타천천이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비원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그 몸에 들어온 사람. 천소여 본인 같군요.”
“천소여…… 본인?”
“이미 그 몸에 자리 잡고 잘 살아가던 녕녕을 밀어낼 수 있는 건 몸의 본 주인뿐이지요.”
눈을 휘둥그렇게 뜬 비원에게 타천천이 물었다.
“누군가에게 혼령술 방법을 알려줬나요?”
비원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최근에 절 찾아온 사람은 영빈의 친모라는 여자뿐이었습니다.”
“확실한가요?”
타천천이 다시 날카롭게 묻자, 비원은 좀 더 신중하게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역시 영빈의 친모 외 다른 사람이 그에게 찾아오고, 그가 혼령술에 대해 알려준 적은 없었다.
“네. 영빈의 친모에게도 ‘잠시 기다리라’는 말만 했지 혼령술을 가르쳐주진 않았습니다.”
“그럼 천소여 본인이 지난번 혼령술로 다른 사람의 몸 안에서 지내다가 이번에 제대로 혼령술을 펼쳐 그 몸에 들어갔단 거로군요.”
거기까지 들은 비원이 그제야 놀라 탄식했다.
“그럼 우 답응이 가르쳐주었나 봅니다!”
“우 답응?”
“네. 우 답응은 제게 혼령술에 대해 들었고, 천년비가 개입하면서 혼령술을 쓰기도 전에 방해받아 목숨도 부지했으니까요.”
“기회를 봐서 처리해요.”
날카롭게 지시한 타천천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쨌든 곤란하게 됐군요. 몸 주인이 제 몸에 돌아온 거라면 혼령술로 천년비를 다시 그 몸에 넣을 순 없습니다. 몸 주인이 죽어서 비켜주지 않는 이상.”
“그러면 천소여를 죽이면…….”
“회임 중이라 안 했습니까?”
“맞습니다.”
“잘못하면 아기까지 죽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죽었다간 천년비가 그날부터 우리를 죄다 죽이려 들겠죠.”
“!”
“이미 그대도 알겠지만, 비원. 천년비는 누구를 먼저 나서서 죽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죽이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못 죽인 적은 한 번도 없죠.”
“그러면 천소여를 죽여서 천년비 영혼을 다시 그쪽에 넣는 건 안 되겠군요.”
“그렇죠. 그리고 할 수도 없습니다.”
“네?”
“천년비 영혼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요. 영혼이 어디에 있든 원래 몸에 불러오는 건 쉽지만, 남의 몸에 집어넣는 건 어렵죠. 빈 몸이 있어야 하고, 천년비 영혼 위치도 알아야 합니다.”
타천천은 며칠 전 아유정이 찾아와서, 더이상 천년비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 하던 걸 떠올렸다.
“그러면 천년비는…….”
“원래 몸으로 데려올 겁니다. 그건 녕녕이 어디에 있건 가능하니까.”
“그렇군요.”
비원은 천빈으로 지내며 꽤 만족해하던 천년비를 떠올리자 씁쓸해졌다.
하지만 타천천의 말처럼, 천년비는 천소여를 죽여 다시 그 몸을 차지하는 건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젠 궁중에서 다시 못 뵌다니 아쉽네요.”
고개를 끄덕인 타천천이 나가려 할 때였다. 닫힌 창문을 새 한 마리가 부리로 두드렸다.
타천천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뭡니까?”
“모르겠습니다.”
비원이 창문을 열자, 작은 새 한 마리가 얼른 안으로 날아 들어와 탁자에 내려앉았다.
비원은 새의 다리에 묶인 작은 종이를 꺼내 펼쳤다. 곧 그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타천천은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채고 다시 물었다.
“뭡니까?”
“천비, 천소여가 죽어가고 있답니다.”
“죽어가다니?”
질문한 타천천은 곧 눈을 커다랗게 뜨고 혀를 찼다.
“스스로 혼령술을 써서 그런가.”
비원이 후궁들에게 알려주고 다닌 혼령술은 누가 시전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 강력한 주문이었지만, 그 때문에 시전자 역시도 자기 생명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후환이 컸다.
비원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천년비 영혼 위치를 안다면 좋겠지만…….”
천년비 영혼 위치는 모른다.
천년비 영혼을 부른 다음 그 영혼을 다시 천소여의 몸으로 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아직 죽진 않았지만 곧 죽을 거 같답니다.”
“어쩔 수 없군. 너무 모험하는 것 같지만 아무 영혼이나 일단 넣는 수밖에.”
“괜찮을까요? 그 몸에 들어간 사람이 자결하기라도 하면…….”
“방치하는 것보단 낫겠지요. 어쨌든 몸을 비워뒀다간 아기가 죽을 거고. 천소여 영혼을 도로 넣으면 나중에 천년비가 내 멱살을 잡고 협박해도 몸을 다시 바꿔주기 힘들…….”
그때. 말을 하던 타천천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미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영빈 친모란 사람. 불러와 봐요. 최대한 빨리.”
* * *
천년비는 천비가 되었고, 천대여는 곧 귀비가 될 거다. 황제가 직접 황후에게 그렇게 말했다니, 곧 책봉식이 있겠지.
해운잠은 그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부채질을 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비원’을 만났지만, 그자는 스산해 보이긴 했으나 그리 신통치 않았다.
‘나중에 부르겠다’고 약속만 잡고 여태 아무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다 해운잠은 깜짝 놀라 앞을 보았다. 화장대 위에 비원의 가면 조각과 흡사해 보이는 조각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각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걸 언제 두고 갔지?’
아니, 언제 두고 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비원이 그녀를 찾고 있다.
이제 그녀가 소원을 빌 차례가 된 것이다.
그자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지만, 그녀는 그 대가가 무엇이든 치를 자신이 있었다.
* * *
하지만 가면을 쓴 ‘비원’을 따라가 기묘한 사내를 만났을 때는 용감한 그녀도 조금 겁이 났다.
사내는 수려한 외모에 웃는 인상의 얼굴이었으나, 어딘가 사람의 속내를 하나하나 끌어내려는 듯 보여서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사내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사내는 그녀의 태도가 익숙한 듯 태연스레 웃으며 물었다.
“그쪽이 영빈 마마의 친모이신 해운잠 부인이시군요.”
여전히 긴장되었으나, 해운잠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빙그레 웃고서 물었다.
“그래, 폐하의 마음이 영빈 마마에게 가길 원한다고요. 방법이 어떤 것이든?”
해운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천소여가 살아 있어도 되고 죽어도 되고 다쳐도 되고, 방법이야 상관없어. 그저 천소여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내 딸에게 가길 바라네. 폐하의 총애, 높은 지위, 태후 마마의 신뢰, 그리고 아기씨까지. 전부다.”
해운잠은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다.
별 희한한 요구도 다 들어준다기에 오긴 했으나, 참 어려워 보였다.
사실 현실적으로, 천소여가 죽더라도 그 총애를 천우여가 가져올지, 다른 후궁이 가져갈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데 뜻밖에도 사내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건 쉽지요.”
“쉽다고?”
“하지만 영빈 마마가 돌아가실 겁니다. 그래도 됩니까?”
태연한 뒷말 다음에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왔다.
“영빈 마마를 위해 빈 소원인데 영빈 마마가 돌아가시다니! 그게 말이 되나!”
기가 막힌 해운잠이 외치자,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죠. 저는 영빈 마마의 영혼을 천소여의 몸에 넣을 생각입니다.”
“!”
해운잠은 입을 벌리고 사내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면 애초에 안 벌어질 일이니 상관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랬다. 너무 어이없는 방법이니, 실패한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 같긴 했다.
해운잠은 입을 다물고서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내는 신뢰할 수 없게 생겼으나,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믿음이 갔다.
“어떻습니까?”
사내가 다시 물었다.
해운잠은 생각해보았다. 영빈의 영혼을 천소여에게? 그렇다면…… 확실히. 자신이 원하는 건 다 이루어진다.
천소여가 가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영빈이 가지게 되니까.
하지만 그걸 자기 딸이라고 볼 수 있나? 그 ‘몸’은 여전히 빌어먹을 공오부인의 딸인데?
영빈이 그 몸으로 들어가 천소여의 삶을 누린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지?
영빈이 천소여 몸으로 낳은 아이들은 모두 다 공오부인의 손주들이지, 그녀와 피 한 방울 안 섞였을 텐데?
영빈이 어디 감옥에라도 갇혀 병에 걸렸다면 모를까. 영빈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사내의 질문에 해운잠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 딸이 천비 몸에 들어가봤자, 총애를 받는 건 여전히 ‘천소여’가 아닌가. 내 핏줄이 아니지.”
사내는 의외란 듯 눈썹을 치켜올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군. 이쪽은 영혼보다 몸을 중시하신단 건가.”
어쩐지 몹시 즐거워하는 태도에, 해운잠은 구경거리가 된 듯해 기분이 나빠졌다.
게다가 저 사내를 만난 게 영 쓸모없단 생각이 들었다.
고작 저런 식으로 할 거라면, 위험을 감수하고 비원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나를 천소여 몸에 넣어주게.”
사내, 타천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진심입니까?”
타천천은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면 그쪽 육신은 죽게 될 텐데요?”
“상관없네.”
그녀가 천소여의 몸 안에 들어가면, 황제의 총애가 영빈에게 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자신이 천소여의 몸을 빼앗으니, 그것만으로도 공오부인에게 복수할 수도 있다.
천소여의 몸으로 공오부인을 괄시해 불효한단 비판을 받는 것 역시 오히려 즐거운 일일 터였다.
천소여의 아이는 혹시 모르니 적당히 잘 기르는 척하다가, 영빈이 ‘진짜 자신의 손주’를 회임한다면 바보처럼 교육해버리자.
황제가 바보가 아니라면 멍청이 같은 첫째를 후계자로 삼진 않겠지.
영빈을 닮아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를 후계자로 삼으려 할 거다.
해운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실행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