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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51화 (251/283)

##  251화. 우리 계란이 좀

아유정은 몇 주 째 계속 개원과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녀는 순서와 과정을 몸소 겪으며 알았지만 갑갑했다.

개원은 사하비단의 위치를 찾고 있으니 아유정을 따라다녀야만 하는 거고, 아유정은 타천천의 명령으로 개원의 곁에서 완전히 달아날 수가 없다.

그 애매한 태도가 둘을 계속 붙여놓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늦은 밤. 아유정은 동굴 안에 누운 개원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하자, 홀로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달빛이 유달리 잘 드는 곳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아 필첩을 꺼냈다.

거기에 얇은 붓으로 타천천의 심부름을 시작했다.

자신과 개원의 상태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개원이 자신의 말에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 자신은 개원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드는지 등.

아유정은 적다 말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타천천이 왜 이런 걸 적어오라 한 건지,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타천천은 천년비를 숭배하기에 기꺼이 제 몸을 희생해 천년비의 몸에 들어오기까지 한 아유정이, 막상 천년비의 몸에 들어오자 개원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현상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타천천에겐 지금 아유정의 마음은 모두 연구 결과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 사람을 볼 때 심장이 뛰는 것,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의미 있다 착각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몸으로 인한 일일까?’

이 안에 그녀의 마음은 없는 건가? 마음이 몸을 따라가는 건가?

아유정은 고민하며 다시 붓을 들다가, 자신의 옆에 드리워진 까만 그림자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개원이 서 있었다.

그가 인기척도 없이 곁으로 와서 아유정이 적는 걸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개원이 차갑게 물었다.

“뭘 하고 있습니까?”

아유정은 다급히 필첩을 뒤로 숨겼으나, 개원은 눈 깜짝할 사이 그걸 도로 낚아챘다.

필첩에 쓰인 글들을 빠르게 훑은 개원의 표정에 경멸이 어리는가 싶더니, 그가 차가운 눈으로 아유정을 보며 물었다.

“소저는 천년비 몸을 살리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갔다고 안 했던가요? 하지만 지금 보니……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개원이 펼친 곳에는, 그를 볼 때 아유정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아유정은 다급히 필첩을 뺏어서 품에 안았다. 그녀의 눈가가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에 빨개졌다.

“오, 오해인데.”

아유정은 다급히 변명을 시도했으나, 조급한 마음에 목이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변명을 한다고 해서 개원이 그걸 받아들여 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천년비의 몸을 이용해 연구 중이란 건데. 개원 저자가 그걸 받아들일까?

“오해요?”

개원이 차갑게 되물었다.

아유정은 필첩을 끌어안고서 서성이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달아났다.

“미안!”

개원이 뒤를 쫓았으나, 이번에는 타천천의 말처럼 ‘함께 있을’ 의도가 없었기에 봐주며 뛰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 자리를 벗어난 아유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타천천은 개원과 함께 있으라 했지만 지금 그 곁에 머물다간 수치심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아니, 앞으로도 개원의 곁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완전히 오해를 해버렸으니까.

아유정은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외쳤다. 이제 그만! 이 몸 밖으로 나가고 싶어!

이 안에 들어온 후 미움과 경계의 시선 외엔 받아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아닌 남자는, 이제부턴 그녀를 누구보다도 혐오하듯 바라볼 것이다.

아유정은 여기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면 이 모든 아픔, 개원을 향해 끌리는 이 마음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 * *

내가 천소여 몸에 다시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서, 나는 다시 글자를 찾아서 ‘찾아도 꺼내지 마’라고 당부했다.

“찾아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라고? 우리 냥적. 참으로 거칠구나.”

떡돌이가 웃는 얼굴로 내 말을 왜곡하려 시도했으나, 나는 그의 입에 손을 물려주고서 재차 당부했다.

“냥. 냥. 냥.”

“응, 그래. 우리 냥빈. 귀비로 올릴 때 아예 봉호를 냥으로 할까. 부를 때 어감이 좋구나.”

하지만 떡돌이가 그래도 내 말을 듣기 싫은지 또 멋대로 화제를 돌려대어서, 계란이 패도 꺼내야 했다.

-이보시오. 떡. 또. 영혼. 바뀐다. 혼절. 반복. 계란이. 위태. 염려.

-먼저. 괜찮은가. 알아봅시다.

단어를 골라 짚고서 조목조목 알려주자, 떡돌이는 그제야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다. 알았으니 그만 냥냥거리거라.”

“하악!”

* * *

하지만 월요가 천소여와 한 약속은 일각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폐하. 부적을 찾아서 파냈습니다.”

월요가 명령을 채 전달하기도 전, 이미 승언이 빠르게 부적을 찾아내 파낸 탓이었다.

승언이 부적을 들고 들어오며 한 말에, 월요와 오원요 모두 입을 쩍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승언은 위풍당당하게 부적을 들어올렸다가, 두 사람의 눈빛에 주춤거리며 팔을 내렸다.

“왜,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뭐 잘못이라도……?”

* * *

고양이가 된 후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떡돌이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단 것이다.

요즘 떡돌이는 나를 안고 일을 나가고, 회의할 때도 나를 안고 가준다.

혹시 누가 황제 고양이란 걸 몰라볼까 봐 목에는 아주 값비싼 장신구도 목걸이로 달았다.

곁에는 내 담당 궁녀도 둘이나 있는데,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둘 다 내가 사람이란 걸 모르면서도 오 공공을 따라 나를 ‘냥빈 마마’라고 불렀다.

덕택에 요즘 나는…….

“오늘도 냥빈 마마를 모시고 오셨군요.”

궁인들은 물론 후궁들 사이에서도 냥빈 마마라고 불린다.

진심으로 마마라 높여주기보다는, 그냥 다들 그게 떡돌이가 내게 지어준 이름이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 때문일까. 문안 인사 때 떡돌이가 나를 데리고 들어가자, 후궁들은 다들 ‘냥빈 마마’ ‘냥빈 마마’라고 부르면서 자기들끼리 재밌어 웃어댔다.

“백몽인데…….”

졸지에 고양이를 뺏긴 연비를 제외하고.

미안해 연비 씨. 나도 이 몸으로 들어오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정말로 거북이라거나, 연못의 잉어라거나, 궁궐 밖을 돌아다니는 두더지 같은 데 들어갔다면 더 최악이었겠지.

그래. 연비 고양이 몸에 들어온 거라도 감지덕지로 생각하자. 잉어가 됐으면 떡돌이에게 내 존재를 알리지도 못했을 거야.

그런데 황후의 무릎에 앉아 하품하면서 문안 인사를 구경하고 있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연비의 갈구하는 시선이 아니라, 아주 묘한 시선. 뭔가 싶어 쳐다보니, 천비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휙 돌리는데, 뭔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 같지 않았다.

보통 고양이랑 눈 마주친다고 저렇게 눈길을 급히 피하나?

* * *

천비가 나를 빤히 바라보던 시선. 대체 뭐였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떡돌이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더니 “반숙아.” 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침상 위에서 무공 연습을 하길 멈추고 바라보자, 떡돌이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반숙아.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하겠느냐?”

그럼 화낼 짓을 했단 거로군!

나는 꼬리로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하지만 떡돌이는 그걸 ‘응’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안심해서 웃었다.

“그래, 우리 반숙이는 착하지.”

‘무슨 말을 하려고?’

“음. 실은, 천소여 이름이 쓰인 부적 말이다.”

‘그게 왜?’

“안 파내기로 약조하지 않았느냐.”

‘파냈구나!’

대번에 알아듣고서 다시 손등을 찰싹 꼬리로 때리자, 떡돌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약조했지. 그런데 그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발견해서 파내고 말았단다.”

내가 놀라서 옆으로 벌러덩 넘어가자, 떡돌이는 나를 들어올려 얼굴을 마주하더니 잘생긴 얼굴을 방패로 내밀며 물었다.

“화내지 않을 거지?”

나는 꼬리로 그의 얼굴을 친 다음, 내 전용 글자책을 가져와 그에게 물었다.

-파내도 효과. 없어?

떡돌이는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문제다. 너는 종이를 파내고 얼마 안 있어서 제정신을 찾았는데. 지금 천비는 아무 문제가 없어.”

-시간이. 오래. 지나서?

“짐도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긴 한데.”

떡돌이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네게 약조를 어겼다고 혼이 나더라도 몸이 다시 바뀌는 편이 나았다. 그나마 하나 찾은 방법이 무의미해졌어.”

역시 꺼림칙해도 타천천한테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없나.

타천천을 생각하자마자, 놀랍게도 떡돌이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타천천을 찾아보려 하는데.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 수가 없구나.”

비원이 생각난다. 그를 찾아가서 알리면 어떨까?

하지만 떡돌이와 나 사이에는 이것저것 둘을 특정한 신호가 많았다지만, 비원에게는 어떻게 고양이가 나란 걸 알릴 수 있나 모르겠어.

편지를 써서 주면 될 것 같은데. 그 편지를 쓸 수가 없으니. 그렇다고 누구에게 편지를 대신 써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한참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폐하, 폐하.”

급히 오 공공이 들어오더니, 다급히 말했다.

“천비 마마께서 쓰러지셨답니다!”

떡돌이도 나도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천소여가 쓰러지다니?”

“모르겠습니다. 겁먹은 얼굴로 방에 계속 틀어박혀 계셨다는데.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떡돌이는 나를 쳐다보더니 다급히 품에 안고서 밖으로 나갔다.

* * *

과연. 비연궁에 도착해보니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천소여는 쓰러져 의식이 없고, 곁에는 탕 궁의가 맥을 짚으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일이냐.”

떡돌이가 매섭게 묻자, 원웅이 흐느끼면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폐하. 마마께선 목소리를 잃은 후로 내내 기운 없이 지내셨어요. 조금씩 얼굴도 창백해지시고 잠도 잘 못 주무시고요. 그런데 오늘은 유독 더 몸을 떠시더니, 뭔가가 두려운 것처럼 구셨습니다.”

“두려워?”

“예. 그러다가 갑자기 피로하다며 침상에 누우셨는데…….”

원웅은 울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전에 염 귀인이 죽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와 증세가 흡사하게 들렸다.

염 귀인도 조금씩 조금씩 힘이 빠지듯 죽었지.

천소여도 몇 주에 걸려서 조금씩 기운이 사라졌다고 했어. 그건 혼령술을 시전한 부작용이지.

나는 부성이 그 부작용으로 죽은 줄 알았는데. 설마. 아니었나? 그 부작용으로 죽은 게…… 천소여?

그럼 그 혼령술을 천소여가 직접 했어야 하는데? 그럼 부성은…….

‘아!’

설마. 부성 안에 천소여가 들어 있던 건가? 부성 안에 있던 영혼이 사라져서 부성은 즉사한 거고, 천소여는 부작용으로 시일에 걸쳐 죽는 거고?

이럴 수가. 부성과 천소여는 용고를 두고서 얽혀 있었지. 혹시 그때 자기들끼리 뭐 일이 꼬인 걸까?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순서를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순서보다도 더 중요한 건, 부성이 천소여였던가, 천소여가 술법을 직접 썼다가 죽었다던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왜 안 바뀌지?’

천소여 몸이 껍데기가 되었는데, 내 몸은 여전히 고양이로 남은 것. 이게 진짜 문제였다.

그리고 우리 계란이. 천소여가 몸 안에 있을 땐 괜찮았는데. 지금 저 안에 있는 계란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겁이 나서 팔다리가 다 떨렸다. 다급히 떡돌이의 품에서 뛰쳐 내려와 우리 계란이에게 다가갔다.

“니앙!”

온몸으로 계란이를 감쌌지만, 이 몸으로는 계란이의 생명을 유지해 줄 수가 없었다.

“니앙! 니앙!”

울면서 머리를 비비고 있자니, 배 안에서 계란이가 느껴진다. 내 아이가.

떡돌이를 쳐다보았다. 떡돌이를 본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들어오든 상관없어. 내가 아니어도 돼. 다시 천소여를 불러와도 괜찮아. 우리 계란이만 좀 살려줘!

혼령술! 혼령술을 다시 사용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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