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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50화 (250/283)

##  250화. 떡…… 돌…… 연모해

난데없는 떡돌이의 냉랭한 말투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나는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면서 대화를 듣다가, 놀란 마음이 가시자 다급해져서 떡돌이의 배에 이마를 박았다. 떡돌이 이 바보!

‘계란이를 생각해!’

떡돌이는 내가 이 모습이 되어서 화가 난 모양인데. 어쨌든 지금 천소여는 우리 계란이를 품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몸이 바뀌면서 중간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거기에 더해 떡돌이까지 차갑게 쏘아붙였다가, 그 충격을 우리 계란이가 받으면 어떡해?

판단을 내리자마자 나는 두 앞발로 다급히 떡돌이의 허벅지를 번갈아가며 열심히 눌렀다.

힐긋 떡돌이가 날 내려다보았다. ‘왜?’ 하고 묻는 눈길.

마침 아까 떡돌이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려 찾았던 책이 그대로 펼쳐져 있어서, 나는 얼른 책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 책에서 ‘조심’이란 글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까 찾아둔 글자이기도 하고.

나는 앞발로 그 부분을 가리켰다. 내가 왜 이러냐고? 자! 이걸 봐라! 왜 이러는지!

떡돌이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내 의도를 파악했니 보다.

그가 나를 쳐다보기에,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고서 그의 손등에 내 앞발을 얹었다.

떡돌이. 우리 계란이를 생각해!

“폐하?”

그 사이. 연비가 조심스럽게 황제를 불렀다.

그러자 떡돌이는 내 손을 자기 손으로 쥐면서, 아까의 냉담한 표정은 지은 적도 없는 것처럼 말투를 바꾸었다.

“천비. 몸도 안 좋으면서, 네가 여기저기 자꾸 돌아다니니 걱정이 되다 못해 화가 난다.”

그는 자연스럽게 둘러대고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짐의 말에 너무 서운해하진 말거라. 하지만 네가 갑자기 의식을 잃어 짐이 얼마나 놀랐는지, 조금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다오.”

오해를 푼 건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천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있자니, 다시 연비가 끼어들었다.

“폐하, 고양이는-.”

“미안하다 연비.”

“……그 아이와 한 어미 배에서 태어난 아이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 고양이는 신첩에게 돌려주시는 게 어떨까요?”

연비가 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떡돌이의 팔에 대고서 마구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떡돌이가 마치 내 밥그릇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안해 연비. 하지만 난 모든 상황을 다 아는 떡돌이 옆에 있어야 해. 지금 날 도울 건 떡돌이 뿐이라고.

떡돌이도 그런 나를 가리키며 재차 말했다.

“보아라. 이렇게 짐을 잘 따르는 아이가 또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네겐 미안하구나, 연비.”

연비 화났다.

“그 아이는 얼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폐하. 아직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고, 이래저래 살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번거로우실 겁니다.”

“그래, 세심하게 보살피고 이래저래 잘 보살피겠다.”

연비 더 화났어. 지금까지 본 연비의 표정 중 가장 확실하게 표정이 드러나 있어.

하지만 여기서 그녀가 뭘 더 어떻게 하긴 어려웠다.

떡돌이는 일단 황제였고, 나는 노골적으로 황제에게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한숨을 내쉰 연비는 결국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시면 바로 제게 말씀해주세요.”

* * *

연비와 천비가 돌아가는 내내 분위기는 어색하고 무거웠다.

마지못해 돌아서긴 했으나 고양이를 뺏긴 게 화가 난 연비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고, 윗전이 그러고 있으니 연비의 궁녀들도 조용했다.

천소여가 아직 말을 못 하는 척하고 있기에, 천비의 궁녀들도 무어라 말하기 힘들었다.

원웅은 가마 옆에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한때 즐겁고 쾌활하게 떠들며 놀던 일이 까마득한 옛일로 여겨져 괜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천빈이 엉뚱한 말을 뱉으면 부성과 둘이 질색하면서 말리고 대답하고, 웃고 떠들고, 같이 만세를 부르고 춤도 추고 그랬는데.

셋이서 아기씨가 입을 옷과 신발을 준비할 거라면서 내내 수다를 떠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성은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책봉식 도중 쓰러진 천비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말을 못 하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는지, 그 밝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하고 어두워지기까지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처음엔 많았으나, 무어라 말을 걸어도 천비가 대답을 못 하고 그리 반가워하는 기색도 아니자 더는 오지 않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차라리 황제가 쓰러져 있고 비연궁 안에 황후의 명령으로 다 같이 감금되어 있을 때가 더욱 밝은 분위기였다.

생각하니 갑갑해져서 원웅은 푹 한숨을 쉬고 귀자를 보았다.

귀자 역시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때. 내내 가마에 조용히 앉아 있던 천비가, 갑자기 품에서 작은 필첩과 세필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여기에 적으라’고 원웅이 챙겨주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더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원웅은 천비를 힐긋거렸으나, 천비가 적는 내용은 가마 옆에선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글을 다 적은 천비가 그 필첩 윗부분을 뜯어 옆 가마에 있는 연비에게 내밀었다.

연비는 힐긋 그걸 보고서 따라 읽었다.

“고양이가 죽을 고비를 넘겼단 말이 무슨 소리냐고?”

천소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연비는 고양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애가 분위기가 갑갑하니 아무 말이나 하려나 보다’ 싶어서 대답해주었다.

“네 책봉식 날. 네가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 비연궁에 갔지. 거기서 오래 머물다가 돌아와보니, 고양이가 뭘 먹다가 목에 걸려 죽어 있었단다.”

“!”

“죽은 게 아니었지만 그땐 죽은 줄 알았어. 그래서 잘 묻어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깨어났단다.”

말하고 나니 더욱 속이 쓰려서 연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 기른 고양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참 잘 따랐는데. 깨어나자마자 폐하만 따르니 섭섭하구나. 자기가 위급할 때 곁에 없는 모습에 실망한 걸까.”

천소여는 연비 쪽으로 뻗었던 필첩을 도로 가져가 품에 천천히 넣었다.

그 동작은 태연했으나, 천소여의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설마. 아닐 거다. 그럴 리가…….’

* * *

떡돌이가 빗을 구해다가 털을 빗질해주는 동안, 나는 신중하게 글자를 고르고 골라 그에게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글자를 다 골랐다고 책을 때리자, 떡돌이가 오 공공에게 지시했다.

“읽거라. 빨리.”

초조한 목소리였다.

“예.”

오 공공은 얼른 대답하고서, 내가 가리키는 책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나는 그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기억해 둔 글자 위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이렇게…… 되었다…… 그래도…… 떡…… 돌…… 연모해.”

말을 마친 오 공공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눈을 끔뻑거리더니, 힐긋 떡돌이를 보았다.

떡돌이는 빗을 옆에 내려놓고서 내 등에 입을 맞춰준 뒤, 엉덩이를 팡 때렸다.

“냥!”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손을 깨물어 버리자, 떡돌이는 내 배를 마구 간지럽히면서 짜증을 냈다.

“몇 시진 동안 찾은 게 그 말이냐?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를 설명해 달라 하지 않았느냐.”

“하악!”

몸을 비틀다가 떡돌이의 손가락을 잡고 다시 깨물어대자, 오 공공이 쩔쩔매며 나를 말렸다.

“냥빈 마마, 폐하를 그리 깨무시면 안 됩니다.”

떡돌이는 한숨을 내쉬고서 나를 손에서 떼어놓은 다음, 목덜미를 쓸고서 말했다.

”일단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그만 자자. 글자는 내일 찾고.“

* * *

오랜만에 떡돌이 옆에서 자니 심장이 술렁거린다.

나는 떡돌이의 팔을 베고 누워 있다가, 그가 잠들자마자 배 위로 올라가 팔을 괴고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그저 반가워하고 있지만…… 떡돌이도 이런 시간이 오래되면 많이 불안하겠지.

그가 고양이 몸인 나를 연인으로 계속 사랑하긴 힘들 테니, 빨리 사람 몸을 찾아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

타천천한테 물어보면…… 안 될 거야. 타천천은 내가 천년비인지 못 알아볼 테니까.

‘아니, 혹시 타천천이 개입되어 있나?’

아냐. 타천천이 개입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가 내 영혼을 옮긴다면 내 원래 몸으로 옮기겠지. 고양이가 아니라.

이 고민에 대한 답은 뜻밖에도 다음 날 아침. 떡돌이에게 들었다.

“맞아, 반숙아. 짐이 말했던가? 네 궁녀 하나가 죽은 채 발견됐다.”

나는 떡돌이가 건네주는 구운 생선을 입 벌려 받아먹다가, 놀라서 떡돌이를 쳐다보았다.

‘궁녀 누구? 그걸 말해줘야지!’

내 눈빛을 읽었는지 떡돌이는 바로 추가 정보를 주었다.

“부성이다.”

‘부성이가 왜? 어디서? 어쩌다가?’

전혀 예상 못 한 이야기에, 나는 다급히 떡돌이의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떡돌이는 입에서 내 손을 빼내고는, 손수건을 꺼내 목에 묶어 주면서 말했다.

“잘 사용하지 않는 폐가에 죽어 있었다더라. 왜 거기에 있던 건진 아직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쓰러진 날에 그 애도 쓰러져서. 혹시 관련이 있진 않나 살피고 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어제 내내 고민했던 답을 찾았다. 부성이 혼령술을 썼나 봐! 혼령술을 쓰면 죽게 되니까!

우 귀인은 좀 시일을 두고 죽긴 했지만, 어쨌든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부성이 왜? 부성은 내가 가짜 천소여란 걸 알았나? 그래서 진짜 천소여를 불러오고 싶었던 걸까?’

여하간 실마리를 찾았으니 다행이지.

“냐냥. 냐냐냐냥. 냥냥냐냥. 냐냐냥.”

하지만 다급히 말해도 떡돌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리다가, 나는 얼른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나니, 책 글자가 소리 나는 순서대로 배열이 되어 있었다.

놀라서 쳐다보자, 떡돌이가 손가락으로 승언이를 가리켰다.

“밤새 승언이가 만들어 왔더라. 네가 글자를 잘 못 찾는 거 같다고.”

승언아……! 내가 쳐다보자, 승언이는 머쓱한지 오 공공의 뒤에 숨어버렸다.

우리 승언이. 앞으론 놀리지 말아야겠어.

“냥!”

고맙다고 인사하자, 승언이 괜히 툴툴거렸다.

“폐하랑 오 공공은 고양이 얼굴 보고 말이 잘 나오는 게 신기합니다.”

꼭 한마디씩 덧붙이긴 하지만 봐주자. 승언이는 오늘부턴 좋은 사람이니까.

나는 승언이가 만들어 준 책을 보고서 얼른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열심히 발로 짚었다.

떡돌이는 느리지만 또박또박 내가 짚는 글자를 따라 읽었다.

“사망…… 장소…… 근처…… 머리카락…… 종이…… 파?”

대번에 알아들은 떡돌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천년비진쾌도래. 그런 종이를 말하는 거냐?”

“냥!”

맞다고 대답하자, 떡돌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승언이 대답했다.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승언은 말을 마치자마자 나갔다. 떡돌이는 떨리는 손으로 내게 구운 생선을 다시 발라주기 시작했다.

생선은 맛있었지만, 심장이 떨려서 맛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었다.

나 때는 부적을 파로 파냈지. 하지만 지금은 시일이 꽤 지났는데.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하나 더. 천소여는 자기 원래 몸을 찾은 것뿐이잖아. 원래도 내가 이방인이지. 그런데 다시 몸을 바꿔도 되는 건가?

나도 내 몸으로 가던가, 다른 몸을 구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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