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냥빈
월요는 다급히 청적을 향해 뛰었고, 오원요와 승언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 뛰었다.
사람들은 늘 여유롭게 다니는 황제가 앞만 보고 뛰어가자, 영문도 모르고 서 있다가 황급히 허리를 숙여댔다.
그러나 월요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줄 틈이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고양이를 집어가거나, 해코지하려 들면 어쩐단 말인가.
월요는 조금도 쉬지 않고 청적까지 달려갔다.
“반숙아. 반숙아.”
청적에 도착한 그는 중얼거리면서, 그와 천년비가 나란히 앉아 떡을 나누어 먹던 바위를 보고 섰다.
햇볕을 받아 평소보다 노랗게 빛나는 눈부신 들판의 바위에, 환상처럼 아련하게 천 귀인의 모습이 일렁였다.
그녀가 이쪽을 돌아보면서 활짝 웃으며 “떡돌아!” 외치는 기분에 월요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바위 위에는 보송보송한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노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털 위로 햇볕이 내려앉아, 유난히 솜방울처럼 보이는 새끼 고양이는 추운 듯 몸을 움츠리고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귀가 그를 향해 삐죽 움직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월요는 멍하니 그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미친 걸까, 생각을 하면서도 ‘고양이가 청적 바위 위에서 홀로 계란을 품고 있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천년비가 떠올랐다.
그 순간. 그를 본 고양이의 커다란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눈 깜짝할 새 고양이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니앙 니앙 니앙’ 울면서 달려와 단숨에 그의 얼굴로 뛰어올랐다.
“헉! 폐하!”
그 어마어마한 뛰기 실력에 승언과 오원요가 놀라서 고양이를 잡으려 했으나, 고양이는 이미 월요의 얼굴에 배를 대고 네 다리로 그의 얼굴을 꽉 잡고 있었다.
그 상태로 고양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계속해서 ‘니앙 니앙’ 흐느꼈다.
월요는 고양이의 털에 입과 눈이 눌려서 말을 할 수도 뭘 볼 수도 없자 비틀비틀거렸다.
하지만 고양이는 흥분해서 월요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잠시만. 잠시만.”
가까스로 힘으로 고양이를 좀 떨어뜨려 들고 보자, 고양이가 다시 ‘니앙 니앙 니앙’ 울면서 꼬리로 월요의 얼굴을 연거푸 때려댔다.
월요는 털이 눈에 들어가서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고양이는 월요가 자신을 내려주자마자 다시 바위로 가더니, 보라는 듯 손으로 덩그러니 놓인 계란 하나를 가리켰다.
“하악!”
그러더니 갑자기 하악질을 하고서, 바위 위의 계란을 품었다 일어섰다 품었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런 후에는, 바위 옆으로 내려오더니 볼록한 배에 비해 빈약한 두 발로 벌떡 일어섰다.
그래도 용케도 균형을 잡고 선 새끼 고양이는, 곧 흐느끼며 왜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월요는 눈물을 흘렸다.
“반숙아…… 내 반숙이가 맞구나.”
월요는 역시 이 고양이가 천년비란 확신이 생겼다.
세상에 어느 새끼 고양이가 둘의 별명을 알고, 천년비가 연습하던 춤을 춘단 말인가.
심지어 둘이 애정을 쌓아가던 그 청적 바위에서.
월요는 황급히 고양이에게로 달려가 품에 꼭 끌어안고 흐느꼈다.
“반숙아. 천빈. 내 천빈.”
고양이도 기행을 멈추고 다시 월요의 얼굴에 달라붙더니, 그의 머리에 얼굴을 비벼대면서 ‘니앙 니앙’ 울기 시작했다.
승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무나 감동적인 상황이었다.
고양이가 자꾸 황제의 얼굴에 배를 가져다 대는 통에, 월요가 ‘반숙아’ 한 번 부를 때마다 털이 입에 들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걸 뺀다면.
한참을 그런 후에야 월요는 바위에 걸터앉더니, 자신의 무릎에 고양이를 앉히고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왜 이런…… 이런 모습이 되었느냐?”
고양이는 그 질문을 기다렸단 듯 얼른 대답했다.
“냐냐냐냥 냐냐냐냥 냥냐냐냥 냥냥냥냥.”
아까 서글피 울 때보다 목소리가 빨라진 게, 할 말이 아주 많은 듯했다.
게다가 점점 더 귀가 위로 솟구치는 게, 몹시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월요도 승언도 오원요도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월요는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절충안을 냈다.
“알았다. 그러면 글로 쓰거라. 그건 가능하지?”
“냥!”
월요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고양이를 안아 들고 청적 밖으로 나갔다.
그가 어실로 고양이를 든 채 걸어가자, 어실 근처 궁인들은 당황해서 서로를 힐긋거렸다.
황급히 달려 나갔던 황제가 웬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나타나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월요는 어실 안 책상에 고양이를 내려놓고서 오원요에게 지시했다.
“어린아이용으로 제작된 세필을 찾아오거라.”
* * *
떡돌이가 대번에 날 알아보고,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찡해졌다.
떡돌이는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알아보는구나. 우리는 이제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는 사이가 된 거야.
솔직히 난 떡돌이가 고양이가 되면 알아볼 자신이 없는데. 떡돌이는 알아봐 줬어. 기쁘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저절로 목 안쪽에서 골골골골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마침내 오 공공이 아주 가느다란 붓을 가져다주었다.
떡돌이는 미리 먹을 갈아 두었다가, 그 붓에 먹물을 살짝 묻혀 내게 주고 흰 종이도 펼쳐주었다.
나는 붓을 안고서 거기에 최대한 내가 알아낸 것들을 다 털어놓으려 애썼다.
문제는…….
“오원요.”
“네, 폐하.”
“이게 뭐라고 쓴 거 같으냐.”
“소신도 잘…….”
“승언아.”
“송구합니다, 폐하.”
아무도 내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글을 쓴 나조차, 내 글씨를 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뭉툭한 발로 글씨를 쓰려니 붓을 고정하는 것조차 잘 안 되는 탓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 내가 입을 벌리고 당황해 쳐다보자, 월요는 덩달아 난처해했다.
결국 한참 고민한 끝에, 그는 서책 하나를 가져다 꺼내더니, 글자를 내게 보이며 말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글자를 짚거라.”
‘알았어!’
하지만 이 서책이 내 몸통만 하다 보니, 많은 글자를 다 살피는 것조차 잘 되지 않았다.
어떤 건 헷갈렸고, 어떤 건 아예 무슨 글자인지 알기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떡돌이는 오원요에게 지시했다.
“궁인들에게 앞으로 이 고양이는 짐이 기르는 고양이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 일러라.”
오원요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괜찮을까요? 폐하, 제가 알기로 이 고양이는…… 고양이는…… 그러니까 냥빈 마마의 현재 이 몸은 연비 마마의 고양이입니다.”
“안다.”
나는 글자 보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떡돌이는 내가 자기를 보자마자 들어올려 품에 안으며 말했다.
“연비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지만…….”
“연비에겐 미안하다고, 짐이 고양이의 주인이 되겠다고 전하도록 해라.”
진심이십니까? 오원요가 그렇게 묻는 것 같다. 하지만 떡돌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반숙이를 다시 연비에게 보낼 순 없지 않으냐.”
맞아. 나는 떡돌이의 품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했다.
어쨌든 이걸로 떡돌이에게 누가 그의 진짜 연인인지 알려주었으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지 그 방법을 찾는 게 문제겠지.’
계란이도 걱정이야. 천소여가 계란이를 잘 데리고 있어야 할 텐데…….
* * *
“그게 무슨 소리냐?”
백몽이 사라져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던 연비는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 물었다.
“폐하께서 내 고양이를 가지고 계시다니?”
연비의 상궁은 역시나 당황스러운 얼굴로 설명했다.
“마마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폐하의 총태감인 오 공공이 다녀갔어요, 마마. 무슨 일인가 했는데, 오 공공이 그랬어요. 폐하께서 고양이를 주우셨는데, 폐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아서 키우기로 하셨대요. 한데 알고 보니 그 고양이가 백몽이라지 뭐예요.”
연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태감에게 지시했다.
“폐하께 내가 잠시 그쪽으로 간다고 일러라.”
태감을 먼저 보낸 후, 연비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 자신도 길을 나섰다.
아무리 황제라지만, 그래도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를 가져가다니. 그건 좀 아니라 여겨져서였다.
그런데 황제의 어실 근처로 가고 있으려니, 뜻밖에도 다른 길 방향에서 천비가 탄 가마가 오고 있었다.
천비는 가마에 타고 있다가 연비를 보자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어디 가지?”
연비는 천비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걸 알기에, 궁녀인 원웅에게 물었다.
원웅은 천비의 눈치를 보고서 얼른 대답했다.
“폐하를 뵈러 갑니다, 마마.”
연비는 천비를 보았다. 천비는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힘없이 앉아 있었다.
기운은 없어 보였으나, 말을 듣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여서 연비가 제안했다.
“나와 함께 가지. 나도 폐하를 뵈러 가는 중이었거든.”
* * *
떡돌이가 조기를 구워오게 한 다음, 그걸 하나하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무릎에 앉아 조기를 받아먹으면서, 힘을 내어 떡돌이가 준 ‘글자가 많은’ 책을 살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슬슬 해가 지는구나. 오늘은 짐의 침실에서 같이 가자.”
“냥.”
“짐이 빨리 몸을 찾아주마.”
“냥…….”
떡돌이의 희망에 찬 약속을 들으면서, 나는 기분이 좀 착잡해졌다.
나도 이 상태로 계속 지낼 수 없긴 하지만, 내가 천소여 몸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건가.
천소여는 자기 몸에 돌아간 거잖아. 나도 내 몸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몸으로 새로 입궁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막 떡돌이가 나를 옆에 내려두고 서책을 챙기는데, 오원요가 들어와 알렸다.
“폐하. 연비 마마와 천비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천비 마마’ 소리에 나와 승언은 반사적으로 떡돌이를 쳐다보았다.
떡돌이는 무표정했다. 아까 전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는데.
오원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돌아가시라 할까요?”
잠시 생각하던 떡돌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어오라 해라.”
“예.”
요원요가 나가자 잠시 뒤, 연비와 ‘천비’가 들어왔다.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두 사람이 인사하는 사이. 나는 떡돌이의 무릎에 앉은 채 ‘천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원래 내 몸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꽤 익숙해져서일까.
거울을 통하지 않고 그 얼굴을 보자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 기분. 힐긋 떡돌이를 보니, 아까보다 표정이 더 굳어 있다.
떡돌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연비가 나를 쳐다보는 걸 보자 웃음을 터트리더니 먼저 사과했다.
“소식을 듣고 놀라 왔구나.”
“저 아이를 찾아 자리를 비운지라, 뒤늦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비는 보기 드물게 당혹스러운 빛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듣기로 폐하께서 제 고양이를 가지시려 한다고……. 정말이십니까?”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 아이가 짐을 이렇게 잘 따르니, 곁에서 떼어 놓기가 아쉽다. 이 고양이는 짐에게 양보하여 주지 않겠느냐?”
연비의 표정에 ‘싫은데’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황제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번에는 천비 쪽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너무 노골적으로 냉담해져서, 바로 앞에 앉은 나는 물론 천비도 당황해 얼어붙었다.
천비가 입을 뻐끔거리자, 떡돌이가 처음 들어보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을 텐데. 누워서 쉬지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연비가 의아한 눈으로 천비와 떡돌이를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