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거기 있나!
“이 말썽꾸러기.”
연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꾸중하며 나를 들어 올리더니, 탁자 위에 올려두고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뒤, 연비의 궁녀가 물그릇과 구운 생선을 들고 나타났다.
날생선이라면 절대로 안 먹었겠지만…… 뭐, 좋아. 구운 생선 정도라면.
이후 연비가 내 목덜미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갖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사태를 열심히 파악해 보았다.
누군가 또 ‘천년비진쾌도래’를 한 걸까? 아냐. 아닐 거야.
그러면 내 몸이 뜬금없이 고양이에게 들어올 리가 있어? 내 원래 몸에 들어갔겠지.
그러면 대체 뭘까?
‘일단 상황을 보자.’
천소여 몸이 어떻게 됐는지, 누군가 죽은 사람이 없는지 살피면 일의 경위를 알 수 있겠지.
그 혼 바꾸는 술법을 쓰면 시전자가 죽는다 했으니.
‘하지만 비 자리에 오르자마자 일이 이렇게 되다니. 혹시라도 천소여 몸이 죽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우리 계란이는?’
떡돌이는 날 알아볼 수 있을까? 있을 거야. 연습을 많이 했잖아.
예상과 달리 거북빈이 아니라 냥빈이 되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 * *
“마마, 천빈, 아니, 천비 마마께서 깨어나셨대요!”
다음날. 나는 충격적이라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를 소식을 듣고 놀라서 침상에서 떨어질 뻔했다.
나는 여기 있는데. 천비가 깨어났다고? 그러면 내 몸, 아니, 천소여 몸에 누군가 들어온 건가? 누가?
의아해하자마자 답은 빨리 나았다. 천소여야. 분명해.
전에 내가 잠시 내 몸에서 깨어났을 때.
그때도 아유정이 내 몸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유정을 밀어내고 내 몸에 돌아갔었다.
같은 맥락으로, 누군가 천소여 몸에 자리 잡은 나를 밀어냈다면, 당연히 그 ‘누군가’는 원래 몸의 주인인 천소여가 아닐까?
하지만 연비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모르기에, 그저 안심해서 말했다.
“다행이구나.”
“예. 하지만 말을 못 하게 됐답니다, 마마.”
“말을? 또 기억을 잃었느냐?”
“아니요. 그건 아닌 것 같았답니다. 폐하 얼굴도 알아보고 궁인들 얼굴도 잘 알아본대요.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던대요?”
“가보아야겠다.”
연비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서 궁녀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졸린 척 침상에 드러누워 하품을 하다가, 연비가 나가자마자 얼른 밖으로 나갔다.
떡돌이에게 갈 생각이었다. 떡돌이한테 내가 나라는 걸 알려야 해! 방법은 다 생각해 두었지!
“백몽아.”
다행히 연비의 부엌으로 들어가자, 궁녀들이 웃으면서 귀여워해 준다. 연비의 고양이란 걸 다 안단 거지.
나는 모른 척 계란을 툭툭 친 다음, 그걸 하나 조심조심 껴안고 내려왔다.
“계란 가지고 뭐 하려고?”
“가지고 놀 거야?”
연비의 곳간은 풍족하기에, 연비가 아끼는 고양이가 계란 하나 챙겨 간다고 해서 혼낼 리도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꼬리를 흔들어 준 다음, 계란을 가지고 얼른 밖으로 나가 떡돌이가 지내는 궁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심궁에 있는 어실이나 떡돌이 침궁으로 가자.’
하지만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 하나는-.
“하악!”
계란이 동그랗고 지금 내 손은 너무 뭉툭하단 점이었다.
속도를 내서 뛰었더니, 계란이 품에서 떨어지며 깨지고 말았다. 털은 금세 끈끈하고 끈적해졌다.
모양새가 영 볼품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심궁을 향해 계속 뛰어갔다.
두 번째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거기 더러운 고양이는 뭐야? 쫓아내!”
“연비 마마의 고양이 같습니다, 공공.”
“그럼 얼른 가져다주고 와.”
“예.”
어실에 들어가기는커녕 어실 근처에 가기도 전에 잡혀서 돌려보내졌단 점이었다.
반항하기 위해 내공을 쓰려 해보았으나 내공은 쥐뿔도 없었고, 내공 없이 쓰는 내 독문 무공을 쓰려 했으나 혈도와 단전 위치가 이전과 다르다 보니 역시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목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들려 연비의 궁전으로 다시 쫓겨났다.
“으악 백몽아! 꼴이 이게 뭐야?”
“이젠 계란 가지고 못 놀게 해야겠네. 어휴 더러워. 털이 다 뭉쳤잖아.”
“목욕하자.”
문제 세 번째 추가. 앞으로는 계란도 가져가기 힘들게 생겼다.
* * *
다음날은 계란 사건을 들은 연비의 집중 감시 탓에 하루종일 연비의 침실에만 머물러야 했다.
물론 헛되이 쓰진 않았다. 몸 안의 혈도며 구조 등을 열심히 살폈으니까.
“몽이는 털 관리도 열심히 하네.”
그리고 다음 날.
연비가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다시 부엌에 들어가 계란 하나를 들고 도주했다.
이번에는 몸 구조를 좀 잘 살펴 두었기에, 이틀 전보다는 도주하기 쉬웠다.
“어? 몽아! 아! 쟤 또 계란 들고 튄다!”
뒤에서 궁녀 하나가 소리를 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서 그 길로 곧장 청적으로 갔다.
궁전 안에 들어가는 건 비연궁을 제외하곤 힘들다. 태감이나 궁녀들이 죄다 막으려 들어서.
하지만 청적은 외부라서 안 그렇지! 여기서 떡돌이를 기다리자. 떡돌이라면 날 알아봐 줄 거야.
* * *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청적을 찾아가 아침부터 밤까지 떡돌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떡돌이는 오지 않고, 대신 쓸모없는 사자 친왕이 나타났다.
“하하, 이게 뭐야.”
심지어 사자 친왕은 바위에 앉아 있는 날 보고 다가왔다가, 내 배에 계란이 깔려 있는 걸 보더니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멍청한 고양이를 보았나.”
“…….”
“하하, 이걸 왜 품고 있는 거야?”
할 말이 없어서 사자 친왕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턱을 바닥에 붙이고 도로 엎드렸다.
누구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나. 이러고 있으면 나도 얼마나 배기는데. 하지만 떡돌이한테 이걸 보여주어야 한단 말이야.
* * *
“아직도 말이 나오지 않느냐?”
무거운 마음으로 비연궁에 찾아가 묻자, 천비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널 탓하는 게 아니다. 걱정되어 그러지.”
월요가 재차 말하자, 천비는 활짝 웃으면서 배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아이는 무사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좀 누워서 쉬거라. 푹 쉬어야 빨리 낫지.”
월요는 천비를 눕게 하고서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말을 하지 못하다니. 어의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자 더욱 신경 쓰였다.
누이가 몸이 조금씩 고장 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미쳐버린 일이 떠올랐다. 혹시 천비도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는 걸까?
천소여는 그런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이불을 끌어다 배에 잘 올려놓고 힘없이 웃었다.
그녀는 일부러 황제 앞에서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천비의 행동에 관해서라면 옆에서 지켜봐 대충 흉내 낼 수 있었으나, 무슨 상식으로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는 그 화법은 도무지 흉내 낼 수가 없던 탓이다.
한 번씩 정신을 놓고 ‘그 여자’처럼 말해볼까, 싶기도 했으나, 도무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이상하게 볼 게 뻔하다.
이걸 잘 아는 천소여는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설령 잘 흉내를 낸다고 해도 말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때.
“원웅아.”
갑자기 황제가 원웅을 불렀다. 원웅은 아직 김이 올라오는 죽그릇을 들고 들어오다가 “네?” 하고 황제를 보았다.
“너랑 늘 같이 있던 그 궁녀는 어디 있느냐?”
그러다 황제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천소여는 본능적으로 손을 떨었다.
그녀는 얼른 이불 아래로 손을 감추었다.
원웅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폐하. 책봉식 날 이후로 보이지 않아서요…….”
천소여는 잠시 불안해졌으나, 곧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영혼이 사람의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건 장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부성의 시체가 발견된다고 해도 황제는, 부성 안에 있던 천소여가 천비의 몸에 들어온 걸 모를 것이다.
생판 남이 천 귀인의 몸에 들어왔을 때, 최측근이던 원웅조차 몰랐듯이.
* * *
“승언아.”
“예, 폐하.”
“부성이라 했던가. 그 궁녀를 찾아보아라. 아직 반숙이가 말을 못 하는 걸 보니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어쩌면 최측근인 궁녀가 사라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네, 폐하.”
저녁 늦게까지 천비를 간호한 월요는 무거운 걸음으로 침실에 돌아왔다.
그래도 무사히 깨어났고 몸도 건강하니 다행이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그 수다쟁이가 말을 못 하고 갑갑해하는 걸 보자 마음이 아팠다.
그 탓에 평소보다 행동 역시 가라앉은 것 같고.
“빨리 나아야 할 텐데.”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월요가 일어나 세안을 하고 오원요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는데, 승언이 들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폐하. 사용하지 않는 건물에 그 궁녀가 죽어 있었답니다.”
오원요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승언을 쳐다보았다. 월요도 미간을 찌푸렸다.
“죽다니? 살해당한 건가?”
“아닙니다. 몸에 부상은 없습니다. 황보 궁의에게 은밀히 알아보니, 독을 먹거나 한 것도 아니랍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죽은 거냐.”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말하라.”
“쓰임이 없어 방치된 폐궁에 왜 그 궁녀가 홀로 가 있던 건지도 이상합니다. 천비 마마의 책봉식 날이었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상하군.”
월요가 굳은 얼굴로 있자, 오원요가 조심스레 물었다.
“천비 마마께 이 일을 전해드릴까요?”
월요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지시했다.
“왜 죽은 건지 좀 더 조사하라 하고. 아직 천비에겐 알리지 마라. 안 그래도 말을 못 하고 있는데. 이걸 알면 더욱 충격받을 거다.”
“예, 폐하.”
* * *
왜 부성이 거기서 죽은 걸까. 뭐 때문에?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반숙이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자기 궁녀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데, 왜 그에게 찾아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혼자서 해결하려고? 그렇다고 하기엔 귀자도 별말이 없었다.
이 생각을 하느라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자, 월요는 상소문들을 옆으로 치워 놓고서 잠시 명상에 잠겼다.
그때, 오원요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빠르게 고했다.
“폐하. 사자 친왕께서 왔습니다.”
월요는 전에 사자 친왕이 나쁜 생각을 고려 중인 것 같다고, 오원요와 승언에게 씁쓸히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오원요는 말을 전하면서도 월요의 눈치를 보았다.
그때 월요는 가장 친한 사자 친왕의 행동에 꽤 충격받은 듯했으니까.
“돌아가시라 전할까요?”
오원요가 조심스레 묻자, 월요는 생각하다 대답했다.
“아니다. 들어오라 해라.”
어쨌든 사자 친왕이 무언가 행동으로 보이기 전에는 이전처럼 대할 요량인 듯했다.
“예.”
잠시 뒤, 오원요가 나가자 사자 친왕이 안으로 들어왔다.
월요는 어색한 표정을 지우고서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물었다.
“어서 와라, 사자. 오랜만이군.”
“천비 마마께서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서요. 제가 직접 하긴 좀 그렇고. 대신 약이라도 전해드리려 왔습니다.”
사자 친왕은 들고 온 보따리를 월요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천비가 고마워하겠군. 아니면 함께 가서 봐도 되는데.”
“지금은 말을 못 한다면서요. 제가 가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못 하니까 갑갑해서 힘드실 겁니다.”
사자 친왕의 말에 월요가 웃음을 터트렸다.
“몸 상태는 계속 그대로인 겁니까?”
“그래. 큰 이상은 없는데 말을 못 하고 있어.”
한숨을 섞어 중얼거린 월요가 재차 물었다.
“정말로 가서 안 봐도 되겠나?”
사자 친왕과 천비가 그래도 말이 제법 잘 통한 걸 떠올리자, 혹시 천비가 말을 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여겨 재차 물어보는 거였다.
사자 친왕은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전 됐습니다. 게다가 요즘 청적에서 새 친구를 계속 만나고 있어서요.”
“새 친구?”
“하하, 자기가 닭인 줄 아는 고양입니다. 매일 폐하랑 천비가 어울리던 바위 위에서 계란을 품고 있는데 얼마나 귀엽던지요.”
그 순간, 갑자기 월요가 하얘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사자 친왕은 덩달아 놀랐다.
“폐하?”
월요는 대답할 새도 없이 어딘가로 뛰쳐나가 버렸다. 사자 친왕은 순식간에 방에 혼자 남자 당황해서 입을 벌렸다.
“아니, 내가 뭐 못 할 말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