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백몽
“너무 아름다우세요, 마마!”
“정말로 잘 어울리세요!”
책봉식 날. 한 시진에 걸쳐 예복을 입고 머리를 장식하는 동안, 원웅과 부성은 수시로 내게 칭찬을 퍼부어주었다.
내가 지루해서 몸을 움직일까 봐 걱정된 모양이다.
“머리가 너무 무거운데. 이러다 나중에 휘청거리면 더 이상할걸.”
머리에 뭘 치렁치렁 이렇게 많이 얹는지. 갑갑해서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죄송해요, 마마. 하지만 정해진 모양이 있으니까요. 나중에 폐하께서 전부 다 빼주실 테니 걱정 마세요.”
떡돌이가 이 장식 떼 주는 데만도 반 시진은 걸리겠네.
어쨌든 그 고생을 한 효과는 확실하게 나왔다. 거울을 보자 비친 모습이 정말 책에 나올 것처럼 화사했기 때문이었다.
“와.”
내가 감탄하자, 부성은 흐뭇하게 웃었다.
“어때요? 멋지죠?”
“응. 폐하가 보면 만세를 부르겠는데?”
신이 나서 앞면 뒷면을 다 거울에 비춰보고 있자니, 부성이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왜 그래?”
의아해서 쳐다보자, 부성은 고개를 젓더니 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늘이 마마께 최고로 행복한 날이 되셨으면 해서요.”
원웅은 옆에서 까르르 웃고서 외쳤다.
“무슨 소리야. 마마는 앞으로 귀비, 황귀비 마마도 되실 텐데. 더 더 행복한 날들뿐일 거라고!”
부성도 그 말에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럴 거예요.”
그러고 있자니, 문밖에서 오 공공이 “마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가 다 되셨습니까?”
“다 되었네!”
대답을 하자마자 오 공공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가셔야지요. 폐하께서 기다리느라 갑갑해하실 겁니다.”
안으로 들어온 오 공공은 잘 꾸민 내 모습을 보더니 “어이쿠!” 하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나? 너무 잘 꾸몄나?”
“예. 지나가다 뵈었으면 못 알아봤겠습니다.”
오 공공은 히죽 웃으며 농담을 하더니, 얼른 나오시라며 밖으로 나갔고, 나도 원웅과 부성의 부축을 받으며 따라 나갔다.
“나만 가서 미안해, 부성.”
원웅은 내가 가마에 앉는 걸 도우며 부성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어차피 한 사람 밖에 못 따라가잖아.”
“내가 대신 이것저것 다 보고 와서 얘기해줄게!”
“응. 다녀오세요, 마마.”
나는 부성과 다른 궁인들에게 손을 흔든 다음, 가마 손잡이를 잡았다.
“가자.”
곧 태감들이 가마를 들어 올렸고 천천히 가마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을 공기는 너무나도 맑았고, 어제 조금 쌀쌀해졌던 날씨는 다시 화창해졌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가을꽃 냄새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배 위에 손을 얹자, 계란이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계란아.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컸지만. 너는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나게 될 거야.
내가 가지지 못했던 걸 너는 전부 누리게 해줄게. 대신 너는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도착했어요.”
얼마 가지도 않은 듯한데, 옆에서 원웅이 속삭였다. 나는 배에서 손을 내리고서 앞을 보았다.
황후궁 마당에 호화로운 장식과 붉은 길이 깔려 있었고, 그 주위로 황후궁 궁인들이 예복을 차려입고 서 있었다.
원웅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내리자, 황후의 상궁이 앞에 나와 있다가 인사를 올렸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마.”
원웅의 손을 잡고 천천히 붉은 길을 따라 걸어가자, 앞면이 뚫린 건물 안에 떡돌이가 황후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게 보인다.
면사를 쓰지 않은 떡돌이는 날 보며 감추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황후는 이전처럼 무표정하게 있지만, 이제는 그녀가 날 미워해서 저 표정이 아닌 걸 안다.
황후는 연금이랑 있을 때도 저 표정인 걸 봐버렸거든.
“그렇게 좋으냐 천비?”
길을 걸어가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자니, 황후가 무표정을 하고서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던졌다.
그 말에 표정을 관리하자, 떡돌이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황후에게 무어라고 속삭였다.
황후는 어깨를 으쓱할 뿐 반응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가 황제와 황후의 사이에 섰다.
그러자 황후가 내게 들고 있던 밀을 한 줄기 건넸다.
밀을 들고 서자, 오 공공이 옆으로 와 서서 ‘비’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긴 두루마리를 읽기 시작했다.
오 공공이 고요한 목소리로 두루마리를 읽는 동안, 나는 떡돌이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얽혔고, 그 안에서 나는 뿌듯한 애정을 보았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이렇게 되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그와 싸우고 가출했을 때도 역시.
그런데 이렇게 돌고 돌아 점점 더 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니. 사랑은 대체 얼마나 신비로운 걸까.
생각에 멍하게 잠긴 사이, 오 공공이 헛기침하는 소리가 난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보자, 오 공공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마마. 삼배. 삼배.”
아. 오 공공이 두루마리를 다 읽고 나면 절하라 했지.
하지만 나는 회임을 해서 배가 무거우니, 그냥 손만 절하는 것처럼 하고 허리를 숙이라 했다.
그렇게 세 번씩 떡돌이와 황후에게 절을 하고 나자, 이번에는 황제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붉은 열매가 달린 가지를 주었다.
밀과 가지를 들고 서 있자, 옆으로 난 문이 열리며 황후의 궁녀들이 음식 수레를 끌고 왔다.
수레 위에는 좋은 뜻이 있다는 음식이 조금씩 담겨 있었는데, 그 뜻이 뭔지는 까먹었다.
어쨌든 한 입씩 먹으라 했기에, 나는 얼른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 * *
“마마.”
아무도 없는 폐가로 온 부성은 지금쯤 책봉식이 있을 방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고 절을 세 번 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을 차지한 사람이 미웠지만…… 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써준 후. 그녀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몸을 되찾고자 하는 건 그녀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몸이기에 되찾고 싶을 뿐.
“부성으로 있는 동안 마마를 모신 마음엔 거짓이 없었습니다.”
부성, 천소여는 자신이 쥔 종이를 움켜잡고서 눈물을 흘렸다.
혜비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이번에는 비원을 만나진 않았다.
비원에게 속아 용고를 먹은 적이 있으니, 두 번 다시 그는 믿을 수 없었다.
혜비는 비원을 만나고 싶진 않다는 말에, 우 답응을 주선해 주었다. 우 답응이라면 뭔가를 알 수도 있다고.
우 답응은 천빈이 쓰러지기 전, 그녀가 한 일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자 방법을 알려주었다.
받은 머리카락을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천년비진쾌도래’라 쓰인 종이와 함께 묻고 절을 세 번 하라 했다.
천소여는 ‘천소여진쾌도래’라고 쓰인 종이를 만든 다음, 천빈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준 뒤 빗에 얽힌 머리카락을 모아 종이에 쌌다.
이제 모든 도구는 준비되었다. 설령 이게 실패한다고 해도…… 그녀는 미련이 없었다.
“내 몸을 되찾게 된다면 마마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부성은 중얼거리고서, 햇볕이 들지 않는 땅에 종이와 머리카락을 묻은 다음 흙으로 덮고, 천천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절을 마친 그녀는 뒤로 물러나, 폐가의 허름한 벽에 기대어 앉았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 * *
“아이가 태어나면 연비를 황귀비로 삼고, 너를 귀비로 올리겠다. 천비.”
음식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천비를 보며 황제가 하는 말에, 황후는 피식 웃었다.
아예 기대를 끊어내고 남이 될 거라 여기고 보니, 황제가 얼마나 천비를 연모하는지 눈에 보였고, 그게 조금 우스운 탓이었다.
늘 황제라고만 여겼던 이가 사실은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 청년이라는 게,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어쨌든 황제의 말을 들어보니, 천비가 한 말처럼 황제는 천비를 황후로 올릴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연비를 황귀비로 삼겠다는 건, 나중에 황후가 출궁하게 된다면 연비를 황후로 자연스럽게 올리기 위한 걸 테니까.
그때였다.
오물오물 음식을 한 입씩 잘 먹던 천비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왜 저러지? 황후는 갑자기 모든 동작을 멈추고 고장 난 것처럼 선 천비를 바라보았다.
“천비?”
처음엔 먹다가 혀를 씹었나 했는데. 그렇다기엔 너무 미동이 없었다.
그 모습이 기괴하게 보여 황후가 부르는 순간. 갑자기 천비가 털썩 쓰러졌다.
“천비!”
황제가 벌떡 일어나며 순식간에 황후궁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 * *
“천비는?”
“그게……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책봉식 도중 천비가 쓰러졌다. 심지어 황후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서.
황제는 황후가 한 짓이 아니란 걸 알았으나, 사람들의 시선은 대번에 황후 쪽으로 쏠렸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폐하.”
“당연히 아오.”
황후는 그 자리에서, 궁녀들이 말리는데도 개의치 않고 천비가 먹다가 쓰러진 음식을 한입씩 다 자신이 먹어 보였다.
황후는 멀쩡했다.
황후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온씨 가문의 적들은 이 일이 황후의 짓이라고 몰아갔겠지만, 그 행동 덕에 황후는 일단 혐의는 벗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건지.”
황제는 쓰러진 천비의 곁으로 가 휘장을 걷고 손을 잡아 보았다.
혹시 또 맥이 사라졌으면 어쩌나, 염려했으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복중 아기씨도 무사하십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폐하. 천비 마마의 맥이 너무 약하십니다.”
어의는 천비를 진맥하고서 어두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왜 쓰러졌는지는 아느냐?”
“독은 아닙니다. 하지만 왜 쓰러졌는지는 소신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월요는 천비의 손을 잡고서 그 자리를 떠나질 못했다. 떠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해가 어두워지고 점차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하늘이 용암처럼 변했을 때, 천천히 천비가 다시 눈을 떴다.
“천비. 반숙아. 괜찮으냐?”
월요는 다급히 외치고서 천비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평소라면 웃으면서 “떡돌아.”라고 말할 천비가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웃으면서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하더니, 갑자기 자신의 목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느냐? 말이 나오지 않는 게냐?”
바로 알아듣고 월요가 묻자, 천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월요는 다시 어의를 불렀다.
“천비가 깨어났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어서 와 살펴라!”
* *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너무 익숙한 흙바닥이라 이상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내가 길고 행복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떡돌이란 별명을 가진 아름다운 황제와 사랑에 빠져 행복해지는 꿈을.
‘어디서부터 꿈이었을까. 개원이의 배신? 아니면 개원이와 연애한 것부터? 후궁이 된 것부터?’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그제야 나는 내가 꿈을 꾼 게 아니라 아주 이상한 상황에 빠졌단 걸 깨달았다.
‘이게 뭐야? 내 손이 왜 이런 솜뭉치로?’
나는 놀라서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섯 개 손가락이 달려 있고, 무공 훈련을 하느라 점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한 천소여의 손도, 이미 상처투성이인 천년비의 손도 아니었다.
내 손이 내 손이 아니었다. 내 손이 웬 솜방망이로 바뀌어 있었다.
‘이게…… 이게 뭐야?’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가, 주위를 살피고서 더욱 당황했다.
‘여긴 오월궁이잖아?’
오월궁. 연비가 지내는 궁이다.
이게 뭔가 싶어서 멍하게 있자니, 어딘가에서 연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몽이는? 잘 묻어 주었느냐?”
멍하게 있자니, 곧 연비가, 어마어마한 거인이 된 연비가 나타났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아 멍하게 있으려니, 연비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활짝 웃으면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몽아! 살아 있었구나!”
연비는 나를 자기 머리보다 높게 들어 올렸는데도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곧 그녀는 나를 끌어안더니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몽이가 먹을 걸 좀 가져오너라. 세상에. 네가 죽은 줄 알았다. 멀쩡한 애를 묻을 뻔했구나.”
그녀가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온몸을 뒤틀어 그녀에게서 벗어난 다음 화장대로 달려가 거울을 보았다.
거울을 보자 내 손이 왜 솜방망이가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새끼 고양이잖아!’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 책봉식을 치르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