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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42화 (242/283)

##  242화. 내가 행복할지 평생 지켜봐

연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가, 천천히 한쪽 뺨이 손바닥 모양으로 붉게 물들었다. 황후는 다시 그의 다른 쪽 뺨을 때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황후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노려보다 말했다.

“죽었다. 우리 아이가. 죽었다.”

연금은 영문도 모른 채 맞았다가 뒤늦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후의 상태를 보고 무언가 일이 있었단 건 짐작했지만, 설마 아이를 유산했을 줄은 몰랐다.

“마마.”

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황후를 재차 불렀다.

황후는 주먹을 쥐고 눈물을 계속 쏟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그녀는 몹시도 애통해 보였다.

연금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 제 탓입니다.”

황후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보기만 했으나, 그 시선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연금은 그녀를 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황제가 그를 불러 황후를 설득하라 했을 때.

황명이라는 포장 아래, 마지못한 척 황후와 함께할 수 있음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기 때문일까.

황후를 위해서란 변명 아래 그녀를 밀어내고 후회하던 걸, 황명으로 멈출 수 있음에 기뻐하고 말았기 때문일까.

감히 이 사랑으로 황후를 모실 수 있음에, 행복해하고 말았기 때문일까. 이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아 심장이 미어지듯 아팠다.

“제 탓입니다. 제 탓입니다, 마마.”

황후는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게 네 탓이냐.”

“…….”

“말해라.”

“용기 내지 말아야 할 때 용기를 냈고, 용기 내야 할 때 용기 내지 못한 탓입니다. 제 탓입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절 원망하십시오. 자책하지 마십시오.”

황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말은 잘하는구나. 내가 널 필요로 할 땐 날 밀어냈으면서. 그 입은 필요 없을 때만 잘 지껄여지나 보다.”

“마마.”

“넌 본궁을 연모한 게 아니야. 네가 본궁을 연모했다면, 본궁을 그렇게 버려두지 않았을 테니.”

“아닙니다, 마마. 절대로 아닙니다.”

“하. 이 와중에 넌. 네 사랑이 고결하고 순수했다고 주장이라도 하고 싶으냐?”

“그런 게 아닙니다, 마마.”

“네 마음을 믿을 수 없다.”

황후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떨리고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독한 말을 내뱉어도 슬프게 들렸다.

연금은 마음이 미어졌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황후 마마께선 이곳에서 지내는 게 장기적으론 더 행복하실 거라고. 소신의 곁에 계셔도 머지않아 이곳을 그리워하실 거라고. 멋대로 짐작하고 멋대로 굴었습니다. 소신의 짧은 생각이 마마께 상처가 되었습니다.”

연금의 눈가 역시 맞은 뺨보다 점점 더 붉어지기 시작했다.

황후는 그 모습을 증오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다 피식 웃고서 지시했다.

“그래, 좋다. 네 말대로 본궁이 여기에 남아야 행복하다고 하자. 장기적으로는.”

“…….”

“하지만 본궁 생각에, 본궁은 네가 곁에 있어야 행복해진다. 단기적으로는.”

“마마…….”

“이제 그 머리를 잘 굴려 보아라. 본궁이 가장 행복해지려면, 그럼 널 무엇을 해야 할까?”

연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황후를 올려다보았다.

황후는 잔인한 척 웃고 있었지만, 코끝이며 눈가가 죄다 빨간 데다 계속해 눈물이 흘러나와 어느 때보다도 약해 보였다.

연금은 천천히 일어나 그녀에게 절을 올린 뒤,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마마. 답을 가지고서.”

황후는 대답 대신 침상 안으로 들어가 돌아누웠다.

* * *

황후가 태후궁에 문안 가 있던 중 유산했단 이야기를 들은 월요 이 일을 아는 측근들과 긴급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월요는 계속해서 문을 힐긋거렸다.

이 일이 터지기 전. 황후궁에 보낸 연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잠시 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연금이 돌아왔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월요는 방 안에 들어온 연금의 양 볼이 벌겋게 퉁퉁 부어 있는 걸 보고서 혀를 찼다.

황후의 유산 소식을 듣고서 연금과 황후의 대화가 곱지는 않으리란 예상을 했지만, 완전히 양 볼이 저렇게 되어 있을 줄이야.

“황후가 많이 화가 났느냐.”

“많이 슬퍼하십니다.”

월요는 한숨을 내쉬고서, 오원요에게 연금에게 의자를 가져다주라 손짓했다.

월요가 연금을 불러온 건, 그가 황후를 설득해 함께 밖으로 나가 살게 하려던 거였다.

그러나 문제가 되던 아기는 유산되고 말았다. 그것도 태후궁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껏 황후가 의술을 아는 궁녀를 데려온 게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황후는. 어쩌고 싶어 하더냐.”

연금이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자 월요가 다시 물었다.

“폐하.”

그런데 갑자기 연금이, 의자에 앉는 대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월요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서 동작을 멈추고 연금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연금은 그 상태로 덜덜 떨며 말했다.

“폐하. 소신을…… 황후 마마의 태감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평생의 소원입니다.”

뜻밖의 청에 승언의 턱이 툭 떨어졌다. 오원요도 놀라서 연금을 쳐다보았다.

월요는 연금의 뒤통수를 빤히 내려다보다 물었다.

“거세하겠단 거냐.”

“……예.”

“황후가 그리하라더냐.”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는데.”

“아닙니다. 소신의 생각이고, 소신의 결심입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심이 섰는데.”

연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월요를 올려다보았다. 월요는 자신을 닮은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걸 보고 눈살을 찡그렸다.

“홀로 남으신 황후 마마께서 자책하실까 무섭습니다.”

“…….”

“소신이 곁에 있으면 소신을 원망하실 것입니다.”

월요는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를 위해서 네 삶을 포기하겠다고?”

“어차피 다른 여인과 가정을 이룰 마음이 없었으니 괜찮습니다.”

“그러다 황후가 네 꼴도 보기 싫다 하면.”

“마마께서 자책하지 않게 되셨을 때, 그때 절 보는 게 더 괴롭다 하실 때. 그때 떠나겠습니다.”

월요는 들고 있던 찻잔을 탕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보다 네 마음이 먼저 변하면? 이미 뗀 걸 다시 붙일 순 없을 텐데.”

“폐하께서는…… 천빈 마마나 폐하의 마음이 변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짐은,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폐하께서도 마마를 멀리하지 않으시잖습니까.”

“천빈의 마음이 변하더라도 짐은 여전히 황제일 거다. 짐의 마음이 변하더라도 천빈은 여전히 황귀비이겠지. 짐은 너처럼 극단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폐하께서는 모든 걸 가지고 계시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신은 황후 마마보다 훨씬 못한 처지입니다. 저 아득히 높은 곳에 계신 분께 마음을 바치기 위해선 그런 걸 계산할 수 없습니다. 계산하기 시작하면, 시작해선 안 된단 결론밖에 나지 않으니까요.”

월요는 재차 한숨을 내쉬고서 일어나라 손짓했다.

연금이 후들후들 떨며 일어나자, 오원요가 곁에서 그를 붙잡아주었다.

연금은 간절한 눈으로 월요를 바라보았다.

진지해 보였으나, 월요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다.

“안 된다.”

“폐하……!”

“넌 짐을 위해 평생 그림자로 살아왔다. 짐은 널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저는 평생 폐하의 그림자로 살아왔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지금도 폐하의 그림자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소신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황후 마마의 그림자로 살고 싶습니다.”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월요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연금의 청처럼, 그가 거세해 황후의 곁에 남는다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황후와 연금을 그의 손바닥 아래에 두니 관리하기도 더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가 연금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그림자로 얼굴을 감추고 살아온 연금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게 옳을까?

“폐하. 소신은 황후 마마를 밀어내는 게 황후 마마를 위한 일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황후 마마께 상처만 주고 말았습니다.”

속내를 읽은 듯 연금이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을 위해 청을 거절하지 말란 뜻이었다.

월요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손을 저었다.

“충동적인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닷새를 주마. 그동안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래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다시 찾아와라.”

* * *

연금을 보낸 후. 월요는 이번에는 황후궁을 찾아갔다.

황후는 침상에 힘없이 앉은 채 넋이 나가 있었다.

월요는 궁인들을 모두 내보내고서 그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으시오?”

월요가 다가가 묻자, 황후는 희미하게 웃고서 자신의 배에 손을 얹었다.

“괜찮지 않습니다.”

“쾌차할 약재를 보내라 하겠소.”

“폐하께서 보내지 않으셔도…… 많이 있습니다.”

황후의 눈가도 연금만큼 벌겋게 부어 있어서, 그녀가 내내 울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월요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연금이 다녀갔소.”

“네. 제게도 다녀갔습니다.”

“황후가 연금에게 거세하고 오라 시켰소?”

“시킨 건 아닙니다. 하지만…….”

황후는 자신의 배를 감싸더니, 아까보다 짙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좋겠네요. 그렇게 해주시지요, 폐하.”

월요는 황후가 이 일을 완전히 연금의 탓으로 여기는 걸 알아차렸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많았을 텐데. 그중에서 딱 하나 연금을 골라 원망하는 것이다.

월요는, 어쩌면 자신이 짐작한 것보다 연금과 황후가 서로를 더 많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겠소? 아이가 떠난 건 슬픈 일이지만 연금의 탓이라 할 수는 없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온 귀인도 놀라 유산했고, 황후도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다 유산했다.

어쩌면 연금이 자연히 치유되어 불임은 나았지만, 건강한 아이를 만들 정도로는 회복되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월요가 그 말을 꺼내려는 차였다. 황후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서 말했다.

“신첩과 연금의 탓입니다. 연금이 권한 대로 아이를 없애는 약을 먹었으니까요.”

“!”

“우리 아이를 우리가 떠나게 했습니다. 평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요.”

예상치 못한 말에 월요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는 황후가 우는 걸 계속 바라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짐도…… 황후에게 황후 자리에 머물고 싶으면 아이를 지우라 했소.”

“아이를 데리고 나갈 기회도 주셨지요. 폐하는 선택을 하라 했지 하나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신첩은 폐하 말을 듣고 약을 먹은 게 아닙니다.”

“연금은…….”

“무어라 말씀하셔도, 신첩은 연금을 자유롭게 두지 않을 겁니다.”

황후는 굳게 결심한 눈으로 월요를 노려보았다.

“그는 죽더라도 신첩의 곁에서 죽어야 합니다. 제 죄책감을 평생 함께 지고 가게 할 겁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연금과 나가 살 생각은 없소?”

“없습니다. 그리고 연금은 평생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말한 신첩의 삶이, 행복할지 어떨지.”

* * *

황후가 유산한 소식을 들은 뒤로, 원웅과 부성은 겁이 나는지 수시로 내 배를 주시하고 있다.

나는 이미 유산되기 쉬운 초기를 지나서 괜찮은데, 원웅과 부성은 내가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두려운 듯 두 손을 뻗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결국, 둘의 불안함이 가실 동안은 좀 빨리 자기로 하고서,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침상에 누웠다.

그런데 떡돌이도 비슷한 마음인가.

평소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오더니, 착잡한 눈으로 내 배를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안 없어져. 그만들 좀 해.”

그 모습에 단호하고 믿음직스럽게 말해주자, 월요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럼?”

월요는 원웅과 부성을 내보내고서 내게 물었다.

“반숙아.”

“응.”

“우리 계란이가 없어지면-.”

“꽥!”

그럴 불길한 이야기를! 놀라서 떡돌이의 주둥이를 찰싹 치자, 그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내 손을 깍지껴 잡고서 말을 이었다.

“절대 안 될 일이지만, 만약 짐이 계란이에 관해 안 좋은 얘기를 했는데, 정말로 계란이가 정말로 없어져 버리면…… 너도 짐을 원망할 거냐?”

“뭐?”

이게 무슨 소리야?

떡돌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황후와 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면 너도 짐을 원망하면서 평생 곁에서 살라 할 거냐?”

“뭘 그렇게 어렵게 돌아가? 나는 그냥 목을 똑-.”

이번에는 떡돌이가 내 입을 찰싹 쳐서 뒷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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