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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41화 (241/283)

##  241화. 분노한 황후

일이 참 복잡하게도 얽히는구나. 월요는 한숨을 내쉬었다.

온원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황후는 좋아하는 연금과 살게 되어 좋고, 자신도 여기서 일을 끝내서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미 서로의 마음속에 불신이 싹텄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긴 힘들었다.

월요는 드러나는 표정 없이, 건조한 눈으로 황후를 마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황후. 수오부 군왕이 죽은 건, 누구의 탓 같소?”

황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와중에 갑자기 수오부 군왕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지?

“그것도 짐의 탓 같소?”

월요가 재차 물었다.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알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황후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황후의 눈동자가 떨렸다. 황후가 월요가 말하고자 하는 걸 알아들은 것이다.

“설마…….”

“황후.”

월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황후의 곁으로 다가가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짐이 황후와 거래하려는 건 온씨 가문이 무서워서가 아니오. 우리가 연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황후가 짐의 부인이기 때문이오.”

“!”

말을 마친 월요는 다시 허리를 펴 황후를 내려다보았다. 황후의 눈꺼풀이 경련하고 있었다.

“황후로 남을 거면 아이를 포기하시오. 아이를 살릴 거면 그 자리를 포기하시오.”

황후는 입술을 깨물고서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승상을 황후가 막아줄 수 있다고 했소? 황후는 이미 승상을 막지 못했소. 그 탓에 원래 계획이 이렇게 어그러졌지. 한데 짐이, 어떻게 황후의 그 장담을 믿으란 말이오?”

“폐하께선 신첩과 동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폐하는 이미 폐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겁니다. 폐하는 신첩에게 아무 말도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황후를 무사히 내보내고 싶단 거요.”

“!”

“짐이 황후를 연민하게 두시오. 적대하게 만들지 마시오.”

말을 마친 월요가 돌아서자, 등 뒤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월요는 나가려다 잠시 멈춰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영영은 초조하게 복도에 서 있다가, 황제가 나가자 꾸벅 인사하고 서둘러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마? 마마!”

방 안에 들어선 영영이 발견한 건 바닥에 쓰러진 황후였다.

“마마!”

그 애통한 고함소리는 가마에 올라탄 월요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오원요는 가마를 돌려야 하나 싶어 월요의 눈치를 보았다.

월요는 눈을 감고 한쪽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월요가 가던 길을 가자는 듯 손을 저었다.

오원요는 괜히 황후궁을 힐긋 돌아보며 지시했다.

“출발하자. 얼른!”

* * *

“오원요.”

가마에서 내내 조용히 이동하던 월요는, 어실로 돌아오자마자 사람들을 물리고 오원요를 불렀다.

오원요는 얼른 그의 앞으로 가 섰다.

“예, 폐하.”

“연금이 어디 있지?”

“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폐하.”

“연금을 다시 불러와서…… 황후를 설득하게 해라.”

“예?”

“황후는 연금을 오해하고 있으니, 제대로 속내를 말하고 함께 나가자 설득하게 하라. 그편이 가장 빠르겠다.”

“예.”

오원요가 얼른 나가자, 월요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고서 두 눈을 감았다. 보름 내내 받은 피로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 * *

“태후 마마는 문안을 빨리 끝내주시니까 일찍 오시겠네요?”

오늘은 태후 마마에게 문안 가는 날이다. 원웅은 내게 화사한 색상의 옷을 입혀주며 물었다.

나는 궁녀들이 시키는 대로 팔을 뻗었다가 접기를 반복하면서 대답했다.

“아마 아닐걸.”

“네? 왜요?”

“태후 마마랑 문안 끝나고 같이 뭐 먹기로 해서. 맛있는 거 먹을 거야.”

원웅은 내 말에 뿌듯하게 웃었다.

“하긴. 태후 마마는 우리 마마를 아주 예뻐하시니까요.”

“맞아.”

나는 흐뭇하게 웃고서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부성이 미리 따뜻하게 데워둔 신발을 신었다.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부성은 발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면서 내가 외출할 때마다 이러고 있었다.

“다녀오세요.”

“갔다 올게!”

나갈 때 다녀오라 말해주는 사람도 있고, 어디 다녀오면 어서 오라 말해주는 사람도 있고, 내 얼굴을 거의 매일 보면서도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다.

천소여는 천년비와는 다르게 늘 사랑을 받고 있어. 그래서일까. 문안을 가는 것조차 전혀 귀찮지 않다.

나는 태후궁으로 가는 내내 가마 위에서 춤을 추지 않기 위해 힘껏 의자 손잡이를 쥐어야 했다.

아니면 상체와 목이 막 움직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태후궁에 도착해 보니, 반 정도는 먼저 도착해 있었고, 반 정도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천빈, 왔어요?”

“오늘은 일찍 왔네요?”

나는 요즘 들어 친하게 지내는 후궁들과 인사를 나누고, 개시시와도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해 인사를 나눈 뒤 문안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황후도 도착했고, 태후 마마까지 도착했고, 내가 기다리던 태후궁의 특제 간식들도 도착했다.

“천빈은 먹을 거만 보면 눈이 예뻐지네요.”

“못 먹고 커서 그래요.”

“연비, 들었어요?”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얼마나 문안을 빙자한 수다를 나누었을 즈음일까.

태후 마마가 가을 제철 과일 이야기를 하다가, 황후를 보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황후. 괜찮으냐?”

나도 힐긋 황후 쪽을 보았다.

황후는 평소에도 대화에 잘 끼지 않아서 바로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정말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은 창백하고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고여 있다. 입술을 파란 데다 자세히 보니 몸도 미세하게 경련하는 듯했다.

괜찮은가? 떡을 입에 문 채 멍하게 보고 있으려니, 황후가 억지로 힘들게 웃으며 태후에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마마.”

하지만 황후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기우뚱하다 앞으로 쓰러졌다.

“마마!”

“황후 마마!”

후궁들은 놀라 일어났고 나도 눈치껏 같이 일어났다.

“황후!”

태후 마마 역시 황급히 황후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어진 황후를 돌려 뉘며 외쳤다.

“어의를 불러오라!”

그 말에 황후의 상궁이 다급히 나서 말렸다.

“괜찮습니다, 태후 마마. 황후 마마께선 잠시 어지러우신 것뿐입니다.”

아마 황후가 회임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를 모르는 태후 마마가 보기엔, 윗전이 쓰러졌는데 상궁이 괜찮다면서 의사 불러오는 걸 막는 모양새였다.

태후 마마는 황당하단 듯 상궁을 보았으나 곧 화가 나 호통쳤다.

“황후가 혼절했는데 괜찮다니!”

상궁은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상궁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말린 거겠지만, 옆에서 보기엔 정말 이상했다.

태후 마마는 다시 태감에게 외쳤다.

“어의를 데려오라!”

태감이 나가자, 영영이 초조하게 자기 옷을 쥐어뜯는 게 보인다.

황후의 상궁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괜찮나?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걱정되네. 이대로라면 황후가 회임한 게 들통날 텐데. 이게 누구에게 나쁜 일이지?

어느 쪽에게 나쁜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내가 어의 부르는 걸 막는 것도 좀 그렇다.

황후의 상궁이 만류해도 이상했는데. 내가 만류하면 더 이상해 보이잖아.

“황후를 침상에 눕히거라.”

태후 마마가 재차 명령하자, 태후 마마의 상궁이 나섰고 영영도 얼른 앞으로 나아가 황후 드는 걸 도왔다.

잠시 뒤. 황후는 태후 마마의 침상에 눕게 되었고, 후궁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에 모여 서서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곧 어의가 들어왔다.

“빨리 살펴라.”

어의는 쓰러진 황후를 보고 놀라더니, 태후 마마가 재촉하자 얼른 침상 가까이 다가가 의료 상자를 내려놓고 황후의 손목에 하얀 천을 대었다.

“천빈. 괜찮겠어요?”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이, 촉비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천빈은 회임해서 오래 서 있기 힘들 텐데. 내가 태후 마마에게 말해줄까요?”

“괜찮아요. 지금 혼자 돌아가면 상황이 더 신경 쓰일 거 같아요.”

나는 촉비에게 말하지 말라 고개를 젓고서, 어의가 이마를 찌푸리다가 눈을 커다랗게 뜨는 광경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아이고. 어쩌나. 회임한 걸 알고 놀랐나 보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의가 황후의 손맥에서 손을 떼더니, 황망한 표정으로 태후 마마를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태후 마마는 다급히 물었다.

“황후가 왜 이러느냐. 중한 병이라도 걸린 거냐?”

어의는 쩔쩔매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고했다.

“태후 마마. 황후 마마께서는…… 유산하실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후궁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태후 마마는 멍한 표정으로 어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황후가 유산할 것 같다니? 황후가 언제 회임을 했다고?”

어의는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송구하옵니다.”

곧 태후 마마의 표정은 천천히 일그러졌다.

“넌 황후가 회임을 했는지 아닌지도 몰랐던 게냐!”

“송구하옵니다.”

어의가 재차 납작 엎드리며 외쳤으나, 태후 마마의 화난 표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촉비가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많이 놀란 목소리였다.

“흥.”

유일하게 안 놀란 게 있다면 안비 정도.

아. 연비도 안 놀랐구나. 하지만 연비는 늘 저 표정이니까. 속으론 놀랐겠지.

하지만…… 갑자기 유산이라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연금 때문인가? 연금은 황제가 불임이라 여길 정도였으니 그쪽이 건강하진 않을 거 아냐.

모르겠다. 이를 어쩐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 * *

황제의 명령으로 다시 궁전에 돌아온 연금은 황후궁 태감들 사이에 섞인 채 황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후에게 자신은 절대로 황후를 거부한 게 아니라고, 황후가 확고하게 마음을 정하지 않은 채 나갔다가 후회할까 드린 말씀이라고 알리고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황후가 생각보다 오래 돌아오지 않았다. 몇 시진이 지나도록.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밖이 몹시 소란스러웠다.

걱정된 연금이 창밖을 보니, 황후가 가마에 쓰러지듯 앉아 도착하고 있었다.

저게 뭔가? 연금은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태감들이 가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곁에 있던 궁녀들이 황후를 조심스럽게 부축하는 게 보였다.

황후가 상태가 좋지 않은 게 확실했다.

연금은 너무 놀라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여기에 오면서 그는 황제가 심부름 보낸 태감 흉내를 내고 있었다.

혼자 툭 튀게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연금은 궁녀들이 황후를 침상에 눕히는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았다.

황후는 정신이 있긴 했으나 넋이 없어 보였고, 궁녀들은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황후가 침상에 앉아 어깨를 떨기 시작하자, 궁녀들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소매로 눈가를 닦아댔다.

연금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게 있다가, 영영이 지나갈 때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렸다.

“폐하의 허락을 받아 잠시 입궁하였습니다. 황후 마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상황이 많이 어렵습니까?”

영영은 낯선 태감이 자신을 붙잡자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다가, 연금의 수려한 외모를 보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곧 영영의 표정은 빠르게 증오와 적의로 물들었다. 애초에 이자가 황후 마마에게 감히 접근하지만 않았더라면……!

하지만 황명으로 입궁한 이를 그녀가 내칠 수는 없었다.

“따라오시지요.”

영영은 차갑게 말하고서 방 안으로 들어가, 핑계를 대고 사람들을 내보낸 후 연금만 들어가게 해주었다.

황후는 침상에 앉아 허망하게 넋을 놓고 있다가, 사람들이 다 나가고 단 한 사람만 남자 멍하게 고개를 들었다.

“황후 마마.”

연금을 알아본 황후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곧 그녀가 벌떡 일어나 그의 뺨을 내리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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