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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37화 (237/283)

##  237화. 이상한 조언을 할 거 같은데

“황후가? 짐을 찾아?”

황제는 뜻밖의 요청에 의아해졌다. 황후가 자신을 찾는다니. 평소 몹시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황후가 연금의 아이를 회임해버린 상황. 모든 일을 비밀에 부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황후는 병사로 제대로 위장하기 위해 당분간 두문불출하며 여기저기 아프다고 해야 했다.

그녀가 갑자기 병사로 죽었다고 처리될 때 의심하는 사람이 없도록.

그런데 황후가 황제를 부른다?

“가보지.”

월요는 호기심을 느끼고 일어났다.

* * *

황후는 생명이 사라진 나무 그루터기처럼 멍하게 앉아 있다가, “황제 폐하 납시오!” 하는 소리를 듣고 턱을 괴었던 손을 내렸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월요가 들어왔다.

황후는 영영에게 다른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란 신호를 보냈다.

궁인들이 물러나자, 황후는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또다시 청해 송구하옵니다, 폐하.”

월요는 상석에 앉으며 괜찮다고 손을 저었다.

“황후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러진 않겠지.”

황후는 한숨을 내쉬고서 잠시 말을 고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병사로 위장해 신첩을 내보내주겠다 하셨지요.”

“그럴 거요. 약조는 지키겠소.”

“좀 더 빨리 나가고 싶습니다.”

“빨리 나가고 싶다니?”

“배가 부르기 전에 나가고 싶습니다, 폐하. 시일이 지나면 티가 나니까요.”

월요는 고개를 기웃했다. 난데없이 급히 부르더니 빨리 나가고 싶다고?

“두 달 정도 시일을 두고 나가기로 하지 않았나?”

너무 조급하게 나가면 이상한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이에 황후와 월요는, 시간을 천천히 두고서 아픈 증세를 보이다가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빨리 나가겠다니?

“배가…….”

“치마가 넓게 퍼지지 않소. 게다가 곧 겨울이니 옷을 더 두껍게 입지. 천빈을 보니 그 시기엔 배가 많이 나오지 않던데.”

“배가 얼마나 나오는진 사람마다 다르다 알고 있습니다. 천빈과 신첩이 꼭 같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월요가 의아해 바라보자, 황후는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거짓말했다.

“곧 천빈의 책봉식이고, 책봉식의 열기가 가라앉을 즈음이면 천빈의 산달이겠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폐하.”

얼핏 솔직해 보이는 말에 월요는 얼떨떨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가 그렇다면…… 그러지.”

“황송하옵니다.”

* * *

황후궁 밖으로 나온 월요는 오원요가 가져오는 가마를 무르고서 생각에 잠긴 채 뒷짐을 지고 걸어갔다.

가을이라지만 아직 날씨는 춥지 않았다.

월요는 미간을 찡그린 채 느리게 걸어가며, 황후가 왜 갑자기 말을 바꾸었을지 생각했다.

황후는 천빈이 잘 나가는 꼴을 보기 싫어 그렇다지만, 월요는 그런 이유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물론 사람이니 보기 싫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궁을 떠날 기회를 무르고 일을 조급하게 다그칠 정도라고?

황후는 서두르다가 일을 망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유가 뭘까.”

“이왕 나가기로 한 거 그냥 빨리 나가는 게 마음 편할 거라 여기시는 게 아닐까요?”

“신중한 사람이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승언이 작게 투덜거렸다.

“신중한 사람이 이렇게 회임을 합니까.”

오원요는 승언에게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왜요, 오 공공.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월요가 웃음기를 섞어 대신 대답했다.

“황후는 연금이 불임이라 알고 있었다. 짐 역시도. 이 일은 황후가 신중한 것과 관련이 없지.”

“…….”

그러다 월요는 퍼뜩 무언가 떠올라 오원요에게 물었다.

“오원요. 며칠 전에 온원이 황후에게 다녀갔다 했지?”

“네, 폐하.”

황후가 사람들을 다 물려두는 바람에, 그림자도 숨어서 대화를 엿듣지 못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황후궁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아무리 그림자가 대단하다 한들 숨어들긴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이후 좌칙승상이 돌아갔을 때, 방 안은 엉망이었다고 했다.

월요는 황후가 혹시 아버지에게 떠나리란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황후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려 한다면…….

“승언아. 오원요.”

“네, 폐하.”

“예.”

“온원이 황후의 회임 소식을 알고 이용하려는 건 아닐까.”

“예?”

“이용하다니요?”

“좋은 방식은 아니겠지. 하지만 황후는 신중하니, 모험을 하기보다는 안전하게 나가고 싶은 걸 거야. 그러니 승상에게 이용당하기 전에 떠나고 싶어할테고.”

“!”

* * *

요즘 들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온통 무서운 일들뿐이다.

영영은 한숨을 내쉬고서 궁녀들에게 이것저것 일을 지시하다가, 좌칙승상이 심부름꾼으로 자주 사용하는 태감이 먼발치에 보이자 얼른 황후궁을 나가 그쪽으로 갔다.

“너무 자주 오네.”

영영은 태감에게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괜히 걸리기라도 하면 황후 마마께 폐하 돼.”

“넌 예전부터 후안에게 충성심이 높았지.”

영영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승상의 목소리에, 태감에게 짜증 내다 말고서 다급히 돌아섰다.

좌칙승상이 수풀 사이에 서서 몸을 감추고 있다가 이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영영은 황급히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나리.”

평소 황후를 직접 찾지 않을 때, 승상은 태감을 통해 서신을 보내곤 했다.

아니면 영영을 직접 불러 말을 전하게 하거나 서신을 전달하게 시켰다.

그런데 승상이 황후가 아니라 그녀를 보러 직접 나서다니.

평소와 다른 일에 영영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슨 일이지?

승상이 눈짓하자, 태감이 망을 보러 물러났다.

태감이 거리를 벌리자 승상은 뒷짐을 지고서 영영에게 인자하게 말을 꺼냈다.

“너는 어릴 때부터 후안을 잘 따랐어. 지금도.”

“저는 황후 마마의 사람이니까요.”

영영이 떨면서 말하자, 승상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세다.”

“감사합니다, 나리.”

“하지만 영영아. 좋은 충복은, 주인이 어긋난 결단을 내릴 때 이를 바로잡을 수도 있어야 한단다.”

“!”

영영은 흠칫하고서 승상을 보았다. 승상이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후안이 이대로 달아날 계획을 세운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수도나 큰 도시에는 그 애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아마 작은 마을로 가서 살게 될 거다.”

“예. 예에.”

영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시지……?

“후안은 어린 시절부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컸다. 종이라곤 하지만 너 역시 마찬가지이지. 넌 후안의 말벗처럼 컸으니까. 그뿐이냐. 후안이 황후가 된 후엔 측근 궁녀로 있다가 상궁이 되었으니, 역시 고생하진 않았을 거다.”

“늘 나리와 마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안이 밖으로 나가면 어찌 될지 생각해보아라. 온씨 가문의 비호와 황실의 비호 없이 너와 황후, 그리고 누군지 모를 놈팡이 셋이서 사는 모습을 생각해 보란 말이다.”

“…….”

“종이라지만 큰 고생 없이 큰 네가 과연 그 궂은일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후안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까지 총 셋을 네가 수발해야 하는 건데?”

“!”

“돈이 없진 않을 거다. 그러나 사람을 더 쓰진 않을 거야. 숨어 지내는 처지 아니냐. 한 십 년, 십오 년쯤 지나 안심하면 사람을 더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까진 네가 고생이 많겠구나.”

“저는…… 나리, 저는 마마를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네가 혼자 그렇게 애써봐야 후안이 편안하긴 할까? 마음만 불편하진 않을까?”

“!”

“하지만 궁에 남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당장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미래에 그 애는 태후가 된다. 적자가 있건 없건 그 애는 여기 있기만 해도 태후가 돼. 친모이건 아니건, 결국 후안은 여기 있으면 황제의 적모가 된다 말이다. 너는 태후의 상궁이 될 테지. 지금 태후 마마의 상궁이 궁에서 어떤 위치인지, 너도 알지?”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근사근 영영에게, 네가 하려는 일은 주인을 위한 게 아니라 아주 멍청한 짓임을 설득했다.

영영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넌 후안이 태후 마마가 되어 안락하게 살길 원하느냐, 아니면 쥐새끼처럼 숨어 지내며 새끼쥐 하나 얻길 바라느냐.”

* * *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조심조심 방 안에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호흡을 정리하고 눈을 뜨자, 떡돌이가 쪼그리고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잘생겼어.’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미소가 나오려는 걸 막고서, 나는 새침하게 말했다.

“매일 보는데 매일 이뻐? 맨날 그리 보네.”

떡돌이는 멍하게 있다가 흠칫하더니, 웃으면서 내 뺨을 문질렀다.

“그래. 너무 예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순간적으로 떡돌이 눈동자가 움직이는 걸 본 후였다.

참으로 화나게도, 떡돌이는 나를 멍하니 보던 게 아니라 그냥 멍을 때리고 있던 것이다.

그가 나를 멍하게 바라본다고 착각한 걸 떠올리자 너무 화가 나서, 나는 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떡돌이는 자기 허벅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들어 나를 보며 물었다.

“짐이 방금 왜 맞은 거지?”

“넌 나를 모욕했어.”

“……어떤 점에서?”

“그런 게 있어.”

사실은 없다. 내가 오해한 게 부끄러워서 그냥 떡돌이를 친 거다. 나를 칠 수는 없으니까.

떡돌이는 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곤란한 대답을 피하기 위해 화난 표정을 고수하고서 돌아섰다.

“내가 화가 풀릴 때까진 등만 보고 있어. 난 등도 이쁘니까 괜찮지?”

“내 반숙이는 도무지 머릿속을 읽을 수가 없구나.”

“읽을 필요 없어.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은 딱 세 개니까.”

“그것뿐……?”

왜 동정하는 표정이야 자식아! 세 개면 충분하지!

내가 도끼눈을 뜨자 떡돌이가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세 개가 무엇인데? 하나는 짐, 하나는 계란이, 하나는……?”

이 자식. 세 개 중 두 개를 맞히다니. 괘씸하다.

내가 충격에 젖어 쳐다보자, 떡돌이는 갑자기 나를 끌어안더니 뺨이며 이마, 관자놀이에 마구잡이로 입술을 가져다 대며 좋아했다.

떡돌이는 내 머릿속을 읽기 힘들다지만 나는 대체 얘 머릿속을 읽기가 힘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인상을 찡그리고서 뽀뽀 귀신이 된 떡돌이를 감당하고 있자니, 그는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혀 놓고서 목덜미에 이마를 비비며 말했다.

“짐은 좀 고민 중이었다.”

“무슨 고민?”

“음.”

“왜. 말해봐 폐하. 나는 고민 상담을 아주 잘하는 듯해.”

얼마 전에 사자 친왕의 고민도 들어주었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듯해……이냐.”

“경험이 쌓이면 늘 거야. 말해봐.”

떡돌이는 픽 웃더니 내 목덜미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귀자가 듣고 갔으니 네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황후가 연금의 아이를 회임해서. 병사로 위장해 내보내주기로 하였단다.”

“응. 그런데?”

“온원이 황후의 회임을 이용하려는 것 같아서, 이대로 황후를 내보냈다가 괜히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좀 걱정이군.”

“뭐? 겨우 그런 일로 고민이야?”

“겨우?”

“쉽잖아.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할 방법.”

“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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