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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35화 (235/283)

##  235화. 내 고민 좀 들어줘

떡돌이 너는 왜 쫓아와?!

귀자를 잡으러 가며 떡돌이에게 저리로 가라 손짓해보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 나를 쫓아왔다.

결국 귀자와 나, 떡돌이 이렇게 셋이서 쫓고 쫓기며 뛰어다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셋 다 비연궁 내에서만 뛰었단 거지.

그러기를 반각여 분. 결국 귀자가 멈춰서서 내게 다가와 외쳤다.

“소인이 잘못했으니 제발 그만 뛰십시오, 마마. 무리하시다 큰일 날까 염려됩니다!”

떡돌이는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왜 둘이 이 오밤중에 술래잡기하는 거냐.”

나는 귀자를 노려보았으나, 차마 ‘쟤가 그랬어. 네가 나 황후 시켜 준다고.

그런데 아니잖아!’란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입을 뻥긋거렸다.

여기서 내가 황후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민망해지니까.

나는 내 체면을 지켜야 한다. 절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너도! 하지 마!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서 귀자를 노려보자, 귀자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더니, 넙죽 떡돌이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소인이 마마께 낮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 드렸습니다. 그래서 마마께서 이상한 꿈을 꾸셨나 봅니다.”

떡돌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작 그런 이유로 천빈이 널 잡으러 뛰쳐나왔다고?”

“폐하께 잠꼬대 들킨 게 민망하셨겠지요. 소인이 그런 희한한 노래를 부른 탓입니다.”

떡돌이는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사실 내가 들어도 믿기지 않았다.

귀자도 나만큼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구나!

“그게 무슨 노래였지? 짐도 한번 보고 싶군.”

떡돌이 얘도 너무해. 그냥 그렇다면 그러려니 넘어가 주면 안 되는 거야?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귀자를 보았다.

귀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가, 눈을 꼭 감더니 일어나 춤을 췄다.

* * *

아유정은 타천천의 명령으로 개원을 만나러 가긴 했으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뭘 하라는 명령도 없이 그저 개원을 만나는 게 명령이라니. 대체 이게 뭘까.

하지만 그녀는 명령을 따랐고, 결국 개원과 마주쳤다.

개원은 사람들에게 탐문하고, 정보를 다루는 문파에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니다가 아유정을 보자 흠칫하더니 재빨리 다가왔다.

그는 ‘천년비’의 얼굴이 워낙 알려진 탓인지, 인적 드문 곳으로 그녀를 데려가 물었다.

“물어볼 게 있소.”

아유정이 자신을 일부러 찾아왔단 생각은 하지 않는 듯했다.

아유정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곤란해져서 고개만 끄덕였다.

아유정과 달리, 개원은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에 지체 없이 물었다.

“사하비단 위치가 어디요?”

개원이 사하비단 위치를 찾아다니고 있단 건 그녀도 아는 바였다. 아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고?”

모를 리가 없었다. 알려주지 않을 뿐이지.

“압니다.”

“어디요?”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개원은 아유정의 대답에 답답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전에는 내게 한배를 타자, 손을 잡자, 그러지 않았소? 그쪽 단주가. 그런데 왜 이젠 위치도 알려주지 않소?”

“한배를 타지도 않았고 손을 잡지도 않았으니까요. 그쪽이요.”

“지금이라도 잡으면 어떻소?”

“잡지 않으실 걸 압니다.”

“왜 그리 생각하시오?”

“찾던 이를 찾으셨으니까요.”

“!”

아유정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타천천이 왜 개원을 보러 가라 한 건진 모르겠으나, 개원과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싫었다.

그가 자신을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아렸다.

이건 천년비의 몸이 기억하는 마음일까?

아유정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돌아섰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럼 왜 온 거요!”

“저도 모릅니다!”

버럭 외친 아유정은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원이 쫓아왔다.

“왜 따라오십니까!”

“사하비단에 돌아가려는 거 아니오?”

“오지 마십시오!”

아유정은 최대한으로 속도를 내어 경공을 펼쳤으나, 상대 역시도 뛰어난 경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깨물었다.

* * *

그 시각. 개운호는 다른 방향에서 사하비단의 흔적을 찾고 있었으나, 역시나 여의치 않았다.

민신은 그런 개운호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산적 무리와 만나 한바탕 결전을 치르고 나자 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질책했다.

“꼭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해야겠어?”

“황명이야.”

개운호는 바위에 걸터앉아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어.”

“누가 거절하래? 적당히 따르는 척하면서 시간을 보내란 거지. 이렇게 열정적으로 따르진 않아도 되잖아.”

“어차피 그자들은 정파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었잖아. 이참에 없애는 것도 좋지.”

“무림인들 싸움에 관부는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야.”

“그런 법은 없어.”

“하지만 다들 따르는 관례라고.”

민신은 갑갑해서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열심히 황명을 따르는 게 발각되면 개씨 가문은 무림인들 사이에서 따돌림받아. 아무리 너나 개원이 강해도 다른 모든 무림인들이 적대하면 별수 없다고.”

아무리 강해도 다른 모든 무림인들이 적대하면 별수 없다.

민신이 천년비를 가리키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개운호는 그 말에 천년비를 떠올렸다.

이윽고 그는 황궁에서 본, 천년비일지도 모를 후궁을 떠올렸다.

물론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두고 동일인이라 여기는 건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세간에서는 천년비가 살아 있어서 사하비단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던가. 실제로 돌아다니고 있고.

하지만 개운호는 그 천년비는 가짜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천년비 같은 건 그 ‘천반숙’이란 이름으로 잠시 다녀간 후궁 천빈 쪽.

“미친 생각이겠지.”

“무슨 소리야?”

개운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쨌든. 한 번이라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러니 하는 거야. 날 위해서.”

“누굴 도와? 마음이 편해지다니?”

민신은 어리둥절해 물었으나 개운호는 대답 대신 바위에서 일어섰다.

“걱정되면 따라오지 마.”

* * *

뛰어난 무림인들이 찾아 나서도 찾기 힘든 사하비단의 위치를, 무림과 연도 없는 온원이 찾는다고 찾아질 리가 없었다.

온원은 황제를 죽일지 말지 결정을 못 한 채로 우선 사하비단이라도 찾아보기로 했으나, 시일이 지나도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자 점점 더 성이 났다.

“젠장! 조그만 문파라더니 대체 어디 처박혀 보이질 않아!”

“조그만 문파라 안 보이는 게 아닐까요?”

“누가 그게 궁금하다더냐!”

온원은 괜히 부하에게 버럭 화를 내며 서탁을 내려쳤다.

사하비단을 찾기만 하면 그자들이 그의 지시대로 할 것만 같은데.

그 위치를 찾지 못하자 너무 화가 났다.

가장 권세 높은 귀족가 사람답게 무림인들을 무시하는 그는, 사하비단에서 그를 피한단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하비단에서는 이미 온원이 자기들을 찾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온원 쪽에서도 나름대로 수면 아래에서 찾아다니긴 했으나, 익숙하지 않은 대상을 찾으려다 보니 탐문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에게 물으며 다니다 보니 그 정보가 사하비단에 흘러 들어가지 않을 수 없던 탓이었다.

사하비단의 총관 상락은 그 일을 두고 타천천에게 물었다.

“단주님, 어찌하실 겁니까? 좌칙승상이 은밀히 단주님을 찾는다던데. 좌칙승상 정도면 단주님 하시는 일에 힘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타천천은 온원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을 정해둔 바가 있었다.

“온원과는 손을 잡지 않아.”

“그러십니까?”

“그래. 그자는 내가 선호하는 취향이 아니야.”

취향이 중요한가. 상락은 고개를 기웃했으나, 타천천은 나름 진지했다.

“내가 원하는 그림에 꼭 맞는 건 사자 친왕이지.”

* * *

귀자의 희생으로 ‘왜 밤중에 술래잡기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덮고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은근히 열이 오른다.

아 황후. 꼭 될 필요 없다. 사실 비 자리로도 충분하다.

상황이 정리되면 책봉식을 해서 비 자리에 올리기로 한 건 확실하니까.

그래. 꼭 황후가 되진 않아도 돼. 하지만 될 필요 없는 거랑 ‘너랑은 안 맞는 자리’란 건 다르잖아?

안다. 알아. 난 황후가 되기엔 공부를 못해. 그래, 안다고. 알지만 기분 나쁜 얘기도 있는 법이다.

그 얘기를 하는 게 남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부가 뭔가. 늘 서로를 편들어야 부부 아닌가?

난 떡돌이가 ‘나는 노래를 못 불러?’라고 물어보면…… 떡돌이는 노래를 잘 부르지.

떡돌이가 ‘나는 무공을 못 해?’라고 물어보면…… 떡돌이는 무공 실력이 좋지.

떡돌이가 ‘나는 공부를 못 해?’라고 물어보면…… 떡돌이는 공부도 잘하는구나.

제기랄. 왜 이렇게 화가 나지?

결국 이 분노를 풀기 위해, 나는 떡을 싸 들고 청적으로 갔다.

연금이 떠났으니 청적에서 또 그자를 마주칠 일은 없겠지.

그런데 청적으로 가보니, 또 선객이 있지 뭔가. 이번에는 연금이 아니라 사자 친왕이었다.

“전하?”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며 사자 친왕을 불러보았다. 연금과 달리 그래도 사자 친왕과는 친분이 좀 있으니까.

사자 친왕은 멍하게 앞을 보고 있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반갑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비 마마가 아니십니까.”

“비 마마?”

“비가 될 거란 소문이 돌던데요. 이미 확정이 된 거라면서요.”

“그래도 아직 빈이에요.”

나는 사자 친왕의 맞은편에 앉고서 싸 온 떡을 하나 내밀었다.

“하나 줄까요?”

사자 친왕은 좋다면서 제일 작은 떡을 집어갔다. 나로서는 나쁠 게 없기에 바꾸라 권하진 않았다.

“되게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전하.”

“고민이 있어 여행을 좀 다녔지요.”

“여행? 어디로요?”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어디를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어서.”

“그렇구나.”

나는 제일 큰 떡을 씹으면서 사자 친왕을 보았다. 그는 못 보던 새에 좀 살이 빠진 거 같았다.

착각인진 모르겠지만 표정도 이전의 밝은 모습이 덜하다.

“무슨 고민인데요?”

그걸 보다가 묻자, 사자 친왕이 나지막하게 웃었다.

“고민을 해결해 주시려고요?”

“해결은 못 하더라도 도움은 될지도 모르잖아요.”

사자 친왕은 고민을 털어놓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제 마음의 문제이니, 누군가 해결해 줄 일은 아닙니다.”

“그럼 내 고민 상담 좀 해주세요.”

“…….”

“왜요?”

“아니. 참 오랜만에 뵈어도 여전하시구나 싶어서.”

“내가 뭘요?”

“보통 고민 있단 상대에게 고민 상담을 하던가요?”

“누가 내게 고민 상담한 적이 드물어서 모르겠어요.”

내 대답에 사자 친왕은 입을 벌렸다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부채를 꺼내 팔락팔락 부치며 흔쾌히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 사자가 마마의 고민 상담을 해 드리지요. 그래, 늘 즐거운 마마께서 무얼 그리 고민하십니까?”

“내가 황후가 되기에 뭐가 모자라요?”

“!”

내가 뭘 했다고 사자 친왕이 발라당 넘어졌다. 그는 당황해서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날 떠보는 겁니까?”

“황후 되고 싶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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