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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23화 (223/283)

##  223화. 저 여자?!

-사하비단에서 혼령술 비법을 훔쳐내려 할 때, 거기서 선황제의 서신을 보았습니다.

-그게 진짜 선황제 서신인진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쓴 편지가 각기 다른 필체로 여러 개 있었습니다.

-그걸 뭐에 쓰려는 진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이 그런 걸 가지고 있진 않지요. 게다가 내용이 황태자를 바꾸란 내용이라면 더더욱.

* * *

타천천은 흐뭇하게 웃고서 금색으로 된 상자에 머리카락 몇 가닥을 넣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유정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타천천은 아유정을 보며 입꼬리를 짓궂게 올렸다.

“황제의 머리카락입니다.”

“황제라면…….”

아유정은 얼결에 따라 중얼거리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황제?

“그거 때문에 궁궐에 잡혀가셨던 겁니까?”

난데없이 타천천이 황궁에 끌려가서,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타천천이 비원을 통해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따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다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을 것이다.

그런데 타천천이 그 이상한 행보를 보인 게 황제의 머리카락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고?

타천천은 만족스레 웃으며 상자 뚜껑을 덮었다.

“간 김에 녕녕도 보고, 돕고도 오고.”

* * *

“오 공공. 폐하 계시나?”

심궁에 있는 어실 앞으로 가며 묻자, 오 공공이 마침 차를 타서 안으로 들고 들어가다가 깜짝 놀라 뛰었다.

얼마나 놀라던지 내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들고 있던 찻잔을 옆으로 엎었을 것이다.

“왜 그러나?”

덩달아 의아해 묻자, 오 공공이 소리 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폐하를 뵈시려는 겁니까, 마마?”

“응. 급히 드릴 말씀도 있고. 급히 보고도 싶고. 걱정도 되고.”

“엿새나 못 보셨으니 그러시겠지요.”

오 공공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빠르게 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가시는 게 좋습니다, 마마.”

“어? 왜 그러나?”

“제가 마마를 무척 응원하는 건 아시지요?”

“그럼!”

“예, 절대로 마마를 방해하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마마를 위해 드리는 말씀이지요. 지금 폐하께서 그리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요. 삐죽삐죽 예민해 계셔서, 지금 뵈면…….”

“알아. 공주 전하 때문이지?”

오 공공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마마께서 그걸 어찌……?”

그가 입을 뻐끔거리더니 내 뒤에 선 귀자를 보았다. ‘혹시 네가 말씀드렸냐’고 하는 눈빛.

“왜요.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공공. 공주 전하께서 어찌 되셨는데요?”

하지만 귀자는 모르는 일이었다.

귀자가 뚱하게 되묻자, 오 공공은 나를 희한하게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차마 내게 ‘몰래 보고 가셨습니까?’라고 묻진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침울하게 서 있다가 허락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알고 오셨다니…… 부디 폐하께서 평소처럼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셔도 너무 언짢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마마.”

“난 대인의 풍모가 있네. 걱정 말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 공공은 꾸벅 인사를 하고서 찻잔 담은 쟁반을 들고 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잠시 뒤, 오 공공이 쟁반 없이 나와서 내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마마.”

걱정되는 마음을 누르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평소보다 안색이 퀭해진 떡돌이가 보인다.

맑은 눈빛은 탁해져 있고, 깨끗한 눈 밑 역시 며칠을 못 잔 사람처럼 퀭하다.

입술도 까칠했고, 붓을 쥔 손에도 미약한 경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책상 앞에서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왔다.

“떡돌아.”

그 모습에 덩달아 울컥해 중얼거리자, 떡돌이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곁으로 다가가자 그가 내 손을 잡고서 내 팔에 이마를 대며 속삭였다.

“반숙아. 누이가…… 누이가 죽었다.”

“…….”

“누이가 두 번째로 죽었다. 두 번이나 죽었어. 난 누이가 죽는 걸 두 번이나 보게 되었구나.”

“폐하…….”

“괴롭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손을 뻗어 떡돌이의 팔과 목덜미만 문지르는 수밖엔.

점점 팔 부근이 축축해졌다.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한 번씩 몸이 들썩이고 있었다.

* * *

얼마나 이러고 있었을까.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붉게 변해갈 즈음에서야 떡돌이는 천천히 내 팔에서 머리를 들었다.

내내 그 상태로 있던 탓에 이마에 옷 자국이 깊게 나 있었다.

손을 들어 그 부분을 쓸자, 떡돌이는 민망한지 희미하게 웃고서 덩달아 이마에 자기 손을 올렸다.

“별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아픈데 그런 걸 왜 신경 써.”

“쓰게 된다.”

“안 썼으면 좋겠어.”

“…….”

“나도 폐하 앞에서 그러는걸.”

떡돌이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넌 다른 사람 앞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놀리는 목소리지만, 그 태도조차도 일부러 평소처럼 굴려 애쓰는 듯해, 나는 떡돌이의 손을 내 손 안에 넣고 문질렀다.

떡돌이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원요가, 네가 누이 죽은 걸 이미 알고 있었다던데.”

“맞아. 듣고서 달려온 거야.”

“듣다니?”

“용, 아, 고궐이 내게 다녀가서.”

고궐 이야기에 기운 없던 눈동자가 매서워졌다.

“그자가 네게 왜?”

당장이라도 고궐을 찾아서 그의 머리를 펑펑펑 두드리고 싶단 얼굴이었다.

“너한테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할 수가 없대.”

떡돌이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그자의 사과 따위. 원하지 않는다. 결국 누이는 그자 때문에 두 번이나 죽었어.”

“본인도 아나 봐. 그래서 사과하러 못 오겠대. 대신에 전해달란 이야기가 있어.”

“필요 없다.”

떡돌이는 고궐에 관련된 내용은 다 싫은 듯 딱 잘라 말하고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자 이야기는 내게 전하지 않아도 돼.”

“나도 웬만하면 안 전하겠는데. 꼭 전해야 할 이야기여서.”

떡돌이는 손수건을 움켜쥐고서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

“그 꼭 전해야 할 이야기가 뭐지?”

“고궐이 사하비단에 들어가서 혼령술 비법을 훔치려 할 때, 선황제 폐하의 서신을 보았대.”

떡돌이는 나 때문에 억지로 듣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선황제 폐하의 서신 이야기에 눈빛이 달라졌다.

“아바마마의 서신?”

“어.”

이미 선황제 폐하의 서신을 두고서 떡돌이는 한 차례 고생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도 그 일로 촉비와 나쁘게 얽힌 적이 있지.

떡돌이는 당혹스러운 듯 입을 뻐끔거렸다.

“아바마마의 서신을 그자가 왜?”

“촉비가 가지고 있던 건 지금도 촉비가 가지고 있어?”

“아니. 다른 데 두었다. 하지만 그자에게 주진 않았는데.”

떡돌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자가 일부러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거야. 본인도 그게 가짜인지 진짜인진 모른다 했거든. 하지만 같은 내용을 여러 개의 필체로 적은 서신이 있었대. 전부 다 같은 내용이고.”

“그건 확실히. 이상하군.”

떡돌이가 중얼거린다. 그렇지. 이상하지.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하나 더 있지.

“그 내용이 뭔지 알아?”

“좋은 내용은 아닌가 보군.”

이 말은 직접 말하기도 엄청나서, 나는 떡돌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태자를 바꾸란 내용이었대.”

* * *

때로는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게 사람을 앞으로 밀어내기도 하나 보다.

장공주의 두 번째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 떡돌이는, 사하비단과 타천천에 관한 일을 처리하느라 다시 열심히 일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역시도 장공주가 또 죽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정확하고 구체적인 죽음을 아는 건 아니고.

사람들에겐 장공주가 갑자기 죽음에서 돌아온 것처럼, 갑자기 모래처럼 변해 사라졌다고만 알려졌다.

떡돌이가 말을 이렇게 한 건 사실 거의 태후 마마 때문이었다.

아무리 장공주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지만, 자식이 6일에 걸쳐 몸이 무너져내렸단 말을 듣고 제정신일 부모는 없다.

시체를 보아도 충격에 젖어 제정신을 차릴 수 없긴 마찬가지.

이에 그냥 모래처럼 변해 죽었다고 알린 것이다.

태후 마마는 그 소식만 전해 듣고도 사흘을 앓아누우셨지만, 어쨌든 태후 마마의 병세가 나아진 후, 떡돌이는 소박하게 가족들만 참석하는 장공주 장례식도 열었다.

말이 좋아 소박하다지, 참여하는 인물들을 보면 절대로 소박하지 않지만, 규모만 보면 소박하긴 했다.

장공주의 무덤이 있던 곳에는 다시 무덤이 생겨났고, 나는 무덤 앞에서 멍하니 시선을 던졌다.

가짜라 여겼던 장공주가 진짜인 것도 놀랍고, 그녀가 결국 고궐에게 복수를 하고 갔단 것도 놀랍고, 고궐이 자기가 먹는 게 독이란 걸 알면서도 다 받아먹은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흐흐흐흑.”

“황후. 진정하거라. 이러다 네가 쓰러지겠다.”

“하지만 태후 마마…….”

장례식 날, 태후 마마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운 사람이 황후란 것도 놀라웠다.

내내 울던 황후가 아예 쓰러질 지경에 처하자, 태후 마마는 그래도 황후가 딸 가는 길을 슬퍼해 주는 게 고마운 듯 계속 황후를 챙겨주었다.

반면 밝히지 못한 사정을 아는 떡돌이는, 황후가 힘들어할 때마다 멀리서 그녀를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 * *

“모후는?”

“약을 드시고 주무십니다.”

장례식 후. 월요는 상소문을 읽다가 오원요에게 태후의 상태가 어떤지 묻더니, 갑자기 차갑게 빈정거렸다.

“황후는 연기도 잘해. 못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궁금하군.”

오원요는 월요 황제의 속내를 읽고서 민망하게 웃었다.

월요로서는 장공주가 미치는 데 일조한 황후가 그렇게 슬퍼하는 게 기가 막히겠지만, 오원요가 그렇기에 황후가 더욱 슬퍼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이런 자신의 의견을 굳이 황제에게 알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일을 물었다.

“개씨 집안 운호를 데려오는 일은 어찌할까요? 폐하께서 쓰러져 계실 적에 왔다가 돌아간 일이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기몽 장군에게 물어왔답니다.”

월요는 시간을 확인하고서 대답했다.

“먼 곳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오늘 데려오라.”

* * *

드디어 입궐한 운호는, 황제가 깨어났는데도 궁 안이 우중충한 분위기이자 이상하게 여겼다.

전에야 황제가 쓰러져서 그랬다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운 걸까?

“소인을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나중에 개시시에게 물어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운호는 황제 앞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서 운호는 황제가 면사를 써 얼굴의 반을 가리긴 했으나, 그가 생각한 그대로의 인상이라 생각했다.

위엄있고 잘생겼다고.

반면 황제는 운호를 내려다보면서 ‘혹시 저거 개원 아닌가?’ 몹시 미심쩍게 여겼다.

쌍둥이란 보고를 받았지만, 쌍둥이치고도 너무 똑같은 얼굴 아닌가.

하지만 운호의 말투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점차 그가 개원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사하비단을 공격해 체포하고 싶은데. 무림은 황실이 손을 대길 원치 않는 듯하더군.”

“설마 그러겠습니까.”

“알고 부른 거니 굳이 돌려 겸양할 필요 없다. 그대도 무림인이지.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짐은 무림을 통제하려 드는 게 아니라, 사하비단을 체포하고 싶은 거고, 이건 사하비단이 황실 종친들을 건드린 데 대한 일이니.”

“!”

“무림과 관부는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다. 이 법전에 없는 풍습이 그대로 지켜지길 원하겠지? 그러면 개씨 가문이 나서서 짐의 고민을 해결하라.”

운호는 황제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일지 오는 길에 여러 개 짚어 보았으나, 그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황제의 명령에 대고 누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하겠는가.

운호는 알겠다고 순순히 대답한 다음 물러 나왔지만,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하비단이 무림 내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단 건 알았지만 거기에 황실까지 얽혀 있었다고? 황실 종친들을 건드려?

‘가문에 불똥이 튀진 않아야 할 텐데. 아니. 이미 튄 건가.’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운호는 우선 동생에게 들러 이 일을 얘기하고 최대한 몸을 사리라 당부하기로 했다.

“개 답응을 만나러 가시겠다고요? 예.”

다행히 일을 맡기기 때문인지 통행등을 쉽게 주어서, 운호는 그걸 들고 후궁들이 머무는 서쪽 구역으로 태감의 안내를 받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길을 걸어가다 보니, 가마를 든 행렬이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게 뭔가.”

“천빈 마마시군요. 옆으로 물러서시지요. 지나가길 기다렸다 가야 합니다.”

태감이 알려주는 대로 운호는 순순히 벽으로 붙어 섰다.

그러고서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그리 높게 들지 않은 가마 위로 붉고 화려한 의상이 스치듯 시야의 위쪽을 지나갔다.

운호는 태감이 시키는 대로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앞에서 구름처럼 떠가는 그 붉은 치맛자락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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