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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21화 (221/283)

##  221화. 깨어난 개시시

“내 잘못이다.”

황후가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궁녀들이 다급히 반대했다.

“아닙니다, 황후 마마.”

“황후 마마께서 오해할 만한 상황이셨습니다.”

“고궐이 돌아와 있을 거란 걸 황후 마마께서 어떻게 아셨겠어요.”

황후는 눈을 감고 자책했다. 궁녀들이 뭐라 말하든,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황제가 부하들을 죽였으리라 여긴 건 자신이었다.

만약 고궐이 부하들을 죽였단 걸 알았다면, 그녀는 장공주에게 개시시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은 이미 터졌고, 장공주는 미쳐버렸다.

황제는 장공주를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리라 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마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거겠지.

게다가…….

‘이미 나는 개시시를 움직였다. 이 상황에 개시시가 깨어나 나에 대해 말하기라도 한다면……!’

* * *

“사람들은 진짜 다 너무해요!”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고 있어서, 다 같이 정자에 앉아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부성이 갑자기 툴툴대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싶어 쳐다보자, 부성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잖아요, 마마. 마마께서 품계가 올라가게 생겼는데 반대할 여지가 없으니까 이젠 엉뚱한 걸 가지고 따지다니요.”

“아아.”

어제 일 때문이구나.

어제 낮, 부성이 내무부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와서는 얼굴이 붉어진 채 이를 갈며 말했지.

거기 태감과 궁녀들이, 개시시가 쓰러지기 전에 습격자들이 내 이름을 외친 걸 두고 수군거리고 있었다고.

내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난 개시시가 쓰러진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자기들도 마마가 관련 없단 걸 알면서 일부러 꼬투리 잡는 거예요. 그 외엔 꼬투리 잡을 게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신경 끄고 있어야 해.”

“신경 껐다가 더 꼬투리를 잡으면?”

“마마께선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렇죠, 마마?”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지만 그 일은 내가 나설 것도 없었다.

* * *

‘떡돌이는? 장공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장공주는 감옥에 계속 갇혀 있고, 이후 떡돌이는 내 방에 올 때마다 그 화제를 최대한 피하려 든다.

“장공주 전하는 어떻게 됐어?”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얼굴을 딱 잡고 물었더니, 눈동자를 옆으로 피해 버렸지.

어떻게 해서든 대답하지 않겠단 의지를 가지고서!

그 때문에 나는 장공주에 대한 일이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도 뒷일을 알지 못하고 참고 지내야만 한다.

누가 장공주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어서 장공주가 미친 건지, 장공주가 제정신을 차릴 방법이 없는지 등등.

물론 장공주가 제정신을 차린 방법은 없겠지. 타천천이 없다고 그랬으니까.

없으니 절대로 진실을 알리지 말라 했는데…….

개시시가 깨어났단 이야기를 들은 건, 그렇게 의문과 기대, 걱정 속에서 지내는 어느 날이었다.

“천빈. 들었어요?”

촉비가 찾아와서 내게 알려주었다.

“개 답응이 깨어났다던데.”

나는 침상에 드러누운 채 속으로 의미 없이 숫자를 세다가, 놀라서 일어났다.

“정말이에요?”

“아, 그럴 리가요. 당연히 농담이죠.”

“네?”

“깨어났다고요. 내가 이런 일로 농담하겠어요?”

“방금 농담이라고 했잖아요.”

“황당해서 비꼰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촉비는 혀를 차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서 배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아가야. 너는 똑똑하게 나와야 한다. 엄마 머리는 닮지 말렴.”

뒤통수가 딱 치기 좋게 자리 잡고 있네. 꽁 하고 때리고 싶다.

어쨌든 개시시가 일어났다니…….

“보러 가도 되는 거예요?”

촉비는 숙였던 허리를 펴면서 물었다.

“보러 가려고요?”

“안 돼요?”

“가도 되긴 하겠죠. 근데 나라면 안 갈 텐데.”

“왜요?”

“개 답응이 쓰러지기 전에 천빈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면서요.”

“아니에요. 난 그때 아예 궁전에 없었는걸요.”

“나도 천빈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천빈은 영리하지 않지만, 천빈 아랫사람들까지 다 똑같진 않을 거잖아요?”

“촉비 마마, 머리통 예쁘네요.”

“?”

어쨌든 둘이서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나는 촉비와 함께 개시시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개시시는 연비가 머무는 오월궁에 있어서, 보러 가는 게 어렵지도 않고.

무엇보다 음. 개시시와 가면 사건으로 데면데면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전에는 좀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어쨌든 죽을 뻔하다 깨어난 거 아닌가.

습격받기 전에 날 찾아온 걸 보면 나름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오월궁으로 갔다.

그런데 웬걸.

“천빈?”

그곳에는 떡돌이는 물론 황후와 태후 마마, 영빈 등 다른 후궁들도 여럿 도착해 있었다. 안 오면 더 이상할 뻔했네.

“촉비도 왔군.”

떡돌이가 말하자, 촉비가 옆에서 우아하게 인사를 올렸다.

나도 얼른 따라서 인사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황후가 나를 우울한 눈으로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평소에도 무뚝뚝하긴 하지만, 오늘은 유달리 기운이 없어 보이네?

“들어가지.”

어쨌든 입구에서 서성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우리는 다 같이 개시시의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개시시는 눈을 뜨긴 했지만 아직 정신이 없는지 혼몽한 얼굴로 누워 있다가, 사람들이 여럿 동시에 들어오자 인상을 찌푸리고 어렵게 허리를 들려 했다.

“아니. 계속 누워 있어라.”

떡돌이가 손을 휘젓자, 많이 힘들었는지 개시시는 거절하지 않고 다시 등을 붙이며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태후 마마. 황후 마마. 상처 부위가 복부여서 아직 일어나기가 힘이 들어서요.”

“이런.”

그 소리에 태후 마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개시시는 어두운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가, 잠시 눈동자를 들었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해 도로 눈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옆에서 승빈이 풋 작게 웃으며 내게만 들리게 중얼거렸다.

“개 답응이 범인을 보니 무서운가 보네요, 천빈.”

발을 밟아 버리자 바로 목소리가 커졌지만.

“아아! 발! 발! 발! 발!”

“시끄럽구나!”

그 소리에 태후 마마가 차갑게 일갈하자, 승빈은 입을 꾹 다물고 억울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모른 척 앞을 보았다.

떡돌이는 태후 마마가 옆구리를 찌르자 앞으로 걸어가, 개시시의 침상 머리맡에 앉아 물었다.

“몸은 좀 어떠냐.”

“아직 정신이 없습니다, 폐하. 측근 궁녀도 다행히 살았다지만, 상처가 다 낫지 않아 걱정도 되고요.”

“그래.”

떡돌이는 걱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몸을 일으키고서 물었다.

“당시 궁 안 분위기가 어수선해 널 공격한 자들을 아직 잡지 못했는데. 혹시 습격받기 전 일이 기억나느냐? 범인의 얼굴을 보았다거나?”

개시시를 습격한 자들이 뭐라고 외쳤는지는, 이후 달려온 태감들이 다 진술해 주었는데.

떡돌이는 이상하게 둘려서 묻네. 저건 궁중 화법인가.

어쨌건 그 질문에, 개시시는 움찔하고, 황후도 움찔하고, 태후 마마는 초조하게 치맛자락을 쥔다.

승빈을 나를 보면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지만,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부담스러운지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개시시를 보았다.

“그게…….”

개시시는 말을 끌면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괜찮으니 말하거라. 전후 사정을 말해주면 범인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네 이야기는 짐이 기몽 장군에게 직접 전하마.”

떡돌이가 재차 묻자, 개시시는 눈에 띌 정도로 불편해하는 얼굴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왜 저러지? 난 개시시가 쓰러지기 전에 내 이름을 외쳤단 습격자들을 불 줄 알았는데?

그럴 때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방어할 말도 준비했다.

그러나 개시시는 주저하다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모르겠습니다. 그자들은 달려들어서 제 궁녀와 저를 바로 베었고, 이후 저는 바로 쓰러져서요.”

그 말에, 승빈이 다급히 물었다.

“확실해요, 개 답응? 근처에 있던 태감들은 침입자들이 천빈 이름을 꺼내고 개 답응을 공격했다던데. 그 태감들 덕에 개 답응이 산 거예요.”

다들 생각만 할 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말을 승빈이 꺼내자, 황후가 승빈을 보며 고개를 빠르게 저어 보였다.

가만히 있으란 신호 같다.

떡돌이 역시 개시시가 이렇게 나오는 게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웃했다.

개시시는 초조하게 이불을 움켜쥐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못 들었어요.”

승빈이 나를 힐긋 보더니 아주 작게 빈정거렸다.

“입막음 한 번 빠르게 해 놓았네요?”

이번에도 발을 밟았지만 승빈은 눈치 빠르게 발까지 싹 피해버렸다.

덕택에 밟힌 건 황후 마마였고-.

“승빈이 그랬어요.”

나는 황후 마마가 나를 보자마자 알려주었다.

“아, 아니에요 마마!”

승빈은 황급히 부정했지만,

“좀 조용히 해라 승빈! 아까부터 자꾸 시끄럽구나!”

태후 마마에게 또 혼이 나고 말았다.

승빈은 얼굴이 붉어져서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래도 또 태후 마마에게 혼나긴 싫은지 이번에는 입을 놀리지 않았다.

다행이야. 나는 다시 개시시에게 집중했다.

개시시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모르는 듯 떡돌이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니 계속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들은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고 하는 듯했다.

떡돌이는 개시시의 말을 들으며 얼굴을 굳히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피곤할 테니 하나만 더 묻고 나가지, 개 답응.”

“네, 폐하.”

“누가 그대를 공격한 건지. 짐작 가는 건 없나?”

“잘 모르겠어요.”

떡돌이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으나, 개시시는 그걸 알면서도 연이어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떡돌이는 “그래.” 하고 중얼거리고서 돌아섰다.

“일단 쉬거라. 몸이 나으면 생각나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

떡돌이는…… 개시시가 입을 다무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네?

* * *

“왜 개시시한테 화를 낸 거야? 개시시가 입을 다물면 나한테 좋은 거 아니야?”

결국 그날 밤. 나는 떡돌이에게 대놓고 묻고 말았다.

떡돌이는 내 손을 주물러주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너한테도 좋지.”

“근데 왜 화를 내? 화를 안 냈다고는 하지 마.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떡돌이 네 표정은 잘 읽는걸.”

“너한테만 좋은 게 아니니까.”

“그럼?”

“진범한테도 좋겠지. 아예 입을 다물고 있지 않으냐.”

“그런가?”

“따지고 보면 진범한테 가장 좋겠지. 너는 그래도 이름이 한 번 거론되었지만, 그쪽은 아예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으니. 머리 좋은 사람은 애초에 널 의심하지도 않았겠지만, 머리 나쁜 사람은 네가 개 답응을 협박해서 개 답응이 거짓말을 한다고 볼 거 아니냐.”

“어…… 그런가?”

“그래. 하지만 이 모든 일에 진범은 아예 발을 빼고 있다. 그러니 화가 안 나겠느냐?”

내 손을 주무르는 떡돌이의 손길이 점점 거세진다.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화가 많이 났구나.

떡돌이는 한참을 그러다가 내 손에서 손을 떼고 중얼거렸다.

“개 답응을 습격한 사람이, 개 답응을 장공주에게 보내 진실을 알려준 사람일 거다.”

“어? 그럼?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개 답응이 누이에게 다녀온 후에 누이가 미쳤으니까. 개 답응에게 진실을 들려 보낸 사람은…… 아마 황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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