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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19화 (219/283)

##  219화. 깨어난 월요

“나야 늘 폐하를 살리지.”

내 말에 떡돌이가 ‘말투 말투’ 하고 입모양으로 알려주었다.

“요.”

얼른 대외용 존댓말을 덧붙였다. 떡돌이는 바로 미소지으며 내 등을 가볍게 쓸었다.

“그렇지. 우리 반숙이가 늘 짐을 살리지.”

“반숙이가 천빈의 별명인가?”

그 단어를 들은 태후 마마가 묻자, 떡돌이는 이번엔 내 배 위에 살며시 손을 얹는 시늉을 하며 자랑했다.

“네, 모후.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아기는 계란입니다.”

“하하. 소꿉놀이도 아니고.”

태후 마마는 웃음을 터트리며 타박했지만, 나와 떡돌이가 계란이니 반숙이니 하는 걸 귀엽게 여기시는 티가 목소리에 또렷이 나타났다.

황후는 그늘진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걸 본 걸까? 태후 마마가 떡돌이를 다시 불러서 눈짓으로 황후를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황후도 며칠 동안 제대로 한숨도 못 붙이고 간호하였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마마.”

그제야 떡돌이도 웃는 얼굴로 황후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생하셨소, 황후. 고맙소.“

황후는 옅게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말을 주고받았을까.

처음에는 그저 기뻐하기만 하던 태후 마마의 표정이 어느 지점부터 흐릿해지더니, 떡돌이에게 물었다

”깨어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진 않지만…… 아드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다급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태후 마마는 장공주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궁금했을 텐데.

떡돌이가 갑자기 깨어나지 않게 된 바람에 제대로 뭘 물어볼 수도 없었을 테고.

떡돌이가 오 공공에게 눈짓하자, 오 공공이 얼른 주위 사람들을 내보냈다.

어의와 호위 태감들이 모두 나가자, 태후 마마가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화연이가 미쳐서 폐하를 공격했다 합니다. 이 어미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화연이가 갑자기 미치다니요?“

”누이를 만나보셨습니까, 모후?“

태후 마마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났지요. 날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죄송합니다, 모후.”

“대체 무슨 일인가요?”

어째서인지 황후가 움찔한다. 힐긋 보니 태연해 보이지만 입술이 빈틈없이 꽉 닫혀 있었다.

떡돌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모후께 이 말씀을 드려도 좋을지 고민하였지만, 역시 모후께서도 아시는 게 낫겠지요. 누이를 살린 건 고궐입니다, 모후.”

태후 마마와 황후가 둘 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궐이라니? 고궐은 화연이를 배반하고 달아났을 텐데?”

“네. 하지만 죽은 누이를 살린 것도 고궐입니다. 목적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요.”

“미친 것도…… 고궐 때문인가?”

“처음에는 미쳤다 안 미쳤다 하고 있었지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고궐은 누이가 잠시 미쳤다 안 미쳤다 하는 걸 먼저 알고, 그 이야기가 새는 걸 막고자 수사청에 잡혀 있던 사람들을 다 죽이기도 했습니다.”

어째서지? 황후가 움찔한다.

“갑자기 완전히 미치게 된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알아보아야겠지요.”

또 움찔했어.

하지만 태후 마마와 떡돌이와 얘기를 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며칠 전에 일어난 그 태감과 궁녀들이 대거 죽은 사건 말인가? 수사청에 있다가 죽은 거기 목격자들? 고궐이 죽인 거였다고?”

“예.”

태후가 힘없이 비틀거리자 황후가 얼른 부축했다.

“아니. 괜찮네.”

태후는 손을 내젓고서 눈을 몇 번 세게 감았다 뜨고서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찌하고 싶습니까? 화연이는 계속 미친 상태로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고칠 방법이 있는 겁니까?”

* * *

“폐하. 조금이라도 더 쉬셔야 하지 않을까요?”

월요가 붕대를 칭칭 감고 바로 집무실로 가자, 오원요는 서류를 들고 와 책상에 내려놓으며 걱정스레 물었다.

“이제 막 일어나셨는데 벌써부터 이리 일하시면…….”

“외상은 처음부터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다 며칠씩 누워 있었더니 거의 회복이 다 되었어.”

“외상만 병입니까. 속병도 병입니다, 폐하.”

“괜찮다니까.”

월요는 웃으며 말하다가 서류를 내려다보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군.”

“왜 그러시옵니까?”

“왜긴 왜겠나.”

미간을 찡그린 월요는 손으로 수북이 쌓인 안건들을 두드렸다.

“이중 절반 이상이 누이에 대한 일이니 그러지. 내가 도장을 찍고 말고 할 것도 없군.”

“폐하…….”

“다들 누이를 두려워하고 있어. 죽었다 살아났다 할 때부터 무서웠다가 이번에 또렷해진 거겠지.”

“정말로 장공주 전하를 고칠 방도는 없는 걸까요?”

“아마도.”

월요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태후 앞에서 차마 고칠 방도가 없다 대답할 수 없어 둘러댔지만, 그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장공주를 고칠 방도는 없다 했다.

물론 타천천 그자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 외에 이런 문제에 대해 뭔가를 아는 사람이 더 없기도 했다.

“누이가 이성을 잃었단 건 분명 누군가 누이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단 건데…….”

“장공주 전하의 궁녀가 말하기로, 마지막에 개 답응이 공주 전하를 찾아왔다 했습니다.”

“그랬지. 하지만 기몽이 알아낸 바로, 개 답응은 평소 누이와 사적인 교류가 없었어. 그런데 왜 찾아갔을까. 갑자기.”

“개 답응이 공주 전하께 진실을 이야기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게 온전한 진실은 아닐 거야.”

월요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본인에게 쉬이 전하겠느냐. 친한 친구 간에도 ‘너 사실 미쳤더라’는 이야기는 하기 어려운데. 그걸 교류도 없는 개 답응이 누이에게?”

“이상한 일이지요.”

오원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기가 막히게 개 답응은 습격을 받아 의식을 잃었고요.”

한참 생각하던 월요는 붓에서 새어 나온 먹물이 뚝뚝 흐르자, 벼루에 붓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천빈은?”

“약을 구하느라 많이 고생하셨답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쓰러지셨을 때, 토혈도 하셨고요. 어의 말론 회임한 몸으로 폐하를 너무 많이 걱정해서 그렇답니다.”

천빈의 특기가 피 토하기라는 걸 아는 월요는 애매한 표정으로 입술 끝만 올려 웃었다.

“그렇군. 우리 반숙이가 많이 고생을 했어.”

오원요는 밝은 얼굴로 월요의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이번에 천빈 마마께서 폐하를 구하셨으니, 정말로 큰 공을 세운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월요는 구석에 선 승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짐이야 그렇다 쳐도. 너희는 둘 다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냐. 천빈이 내 곁에 자기 편을 만들어 놓았군.”

* * *

떡돌이가 무사히 깨어나자마자 바로 대접이 바뀌었다.

궁전의 권력이란 정말. 반나절 만에도 왔다 갔다 하는구나.

떡돌이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는 갇혀서 나가지 못하기도 했는데.

떡돌이가 깨어나마자 수많은 태감들이 온갖 선물이며 꽃화분을 줄줄이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안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비연궁 여기저기에 꽃화분을 놓아 장식해 주었고, 꽃 담당 궁녀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태감들이 각종 신기한 보석과 비단, 그 외 장신구들을 담은 장신구를 내려놓고 떠나자, 원웅은 심장 부근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무사히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런 패물들보다 그게 제일 좋아요.”

부성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동감이었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알게 됐어.

* * *

요 며칠 내내 고생한 계란이를 위해서 간만에 침상에 누운 채 시집을 읽고 있을 때였다.

“산은 높고…… 물은 흐르고…… 자연 만세다.”

“시 내용이 정말로 그래요, 마마?”

“아니.”

“그럼 혹시, 그거 마마께서 지은 시인가요?”

“아니. 그냥 아무 말이나 했어. 시집 재미없어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해드릴게요, 마마. 재미없는 걸 억지로 하는 게 더 안 좋을 거 같아요.”

“무공서라도 읽을까.”

“!”

그런데 누운 채 포도를 먹으며 원웅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황제 폐하 납시오!” 하는, 오랜만에 듣는 아주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원웅은 웃으면서 밖으로 달려나갔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불을 덮어쓰고 벽을 보고 누웠다.

그 상태로 있으려니, 잠시 뒤.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발소리가 났다.

“아이 참.”

원웅이 내가 안 자면서 자는 척하는 걸 보고 당황해 중얼거리는 소리도 났다.

그래도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계속 벽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원웅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불 위를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

그래도 가만히 있자니, 그 손길이 글씨를 쓰는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그런데 글자가 왜 이리 복잡해? 뭐 이렇게 단어가 어려워? 무슨 말을 쓰는지 알아맞히려 했는데. 잘 모르겠다.

잠시 뒤. 내 옆에 떡돌이가 앉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래도 가만히 있자니, 그가 내 얼굴 부근을 용케도 알아내고는 그 위에서 속삭였다.

“짐이 무어라 썼는지 알겠느냐?”

“난 자고 있다.”

“자는 사람이 대답을 잘 하는데?”

“…….”

“반숙이는 바보라고 썼다.”

“뭐야?!”

확 이불을 들치고 몸을 일으키자, 웃는 얼굴의 떡돌이가 보인다.

그는 면사도 벗고 웃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튀어나올 줄 알았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놀렸다.

“이러면 일어날 줄 알았지.”

“난 바보가 아니야. 본궁은 영민한 마마다.”

“짐이 무어라 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

“다시 써줄까?”

“됐어.”

“다시 써도 모를 거 같아서?”

“그래.”

단호하게 말하고서 손가락으로 시집을 가리켰다.

“난 이미 저걸 읽느라 머리가 복잡해. 그래서 다른 글자는 받아들일 수 없어.”

“그렇군. 큰일인데. 아주 중요한 글자를 썼거든.”

“무슨 글자?”

“말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그건 그래. 지금 내 머리가 아주 바빠서 그래. 난 폐하를 구하느라 너무 고생해서. 지금 상태가 좀 그래.”

아니, 그보다 이렇게 오랜만에 내 방에 오자마자 꼭 글자 가지고 뭐 해야겠나?

내가 머리가 나쁘진 않지만 공부는 못한다는 걸 알면서!

생각하니 서러워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자니, 떡돌이는 “이런.” 하고 놀리면서 나를 끌어다 자기 무릎에 앉히고 허리를 감싸며 귀에 대고 물었다.

“그럼 짐이 써준 글자는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지?”

“내년쯤.”

“너무 먼데. 일 년이나 머리가 바쁜 거냐.”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았어.”

어떻게든 내 머리를 변호하기 위해 둘러대자, 떡돌이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그래. 그럼 ‘천비 책봉식’이란 글자는 짐이 도로 들고 갔다가 일 년 뒤에 가지고 오마. 넉넉하게.”

나는 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두드리면서 내 노여움을 표시하다가, 그가 뱉은 말에 놀라서 손을 멈추었다.

빤히 쳐다보자 떡돌이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대고 물었다.

“아직도 이 머리가 그리 바쁜가?”

“……새치기해서 넣어줄 수 있어.”

“언제?”

“내일쯤.”

고고하게 대답하자, 떡돌이는 환하게 웃고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은인이기도 하니 좀 거들먹거리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그에게서 나는 향이 좋기도 하고, 계란이도 기뻐하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 머리를 대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주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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