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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18화 (218/283)

##  218화. 타천천도 여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다

“마마, 마마! 어디 가셨던 거예요!”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내 방 앞에 쪼그리고 있던 원웅과 부성이 울먹이면서 달려왔다.

어디 갔다 오긴!

나는 두 사람을 향해, 한 손에 약병을 하나씩 쥐고 만세 자세를 취해 보였다.

“폐하를 깨울 약 구해왔지! 못 들었어?”

“들었지만 무서웠다고요. 우아아!”

“회임하신 몸으로 왜 항상 위험한 행동만…… 까악!”

원웅과 부성은 그래도 흐느끼다가, 뒤늦게 내가 한 말을 알아듣고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날뛰었다.

“약을!”

“마마께서 약을!”

“잘하셨어요!”

두 사람은 신이 나서 내게 다가와 약병을 받아 들고서, 신기한지 자기들끼리 쳐다보다가 또다시 발을 굴러댔다.

“아, 하나는 독이니 조심해.”

“!”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들려준 말에 바로 행동이 멈춰 버렸지만.

침실 안에 들어가서 겉옷을 벗으며 보니, 독약 병에 당첨된 원웅이 탁자 위에 병을 내려놓으며 손을 달달 떠는 게 보인다.

“들고 있는다고 죽고 그러진 않아.”

“깨지면요?”

“죽겠지만.”

“악! 마마!”

“괜찮아. 안 깨고 잘 들고 왔어. 아마.”

“뒤에 아마가 붙잡아요!”

나는 웃으면서 그 약을 준 사람은 나한테 그 약병을 던져서 줬다고 알려주려다 굳어버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타천천 그 자식? 나한테 저거 던지지 않았어? 물론 잘 받긴 했지만…….

“자, 얼른 옷 갈아입고 폐하 뵈러 가자.”

“네!”

뭐, 지나간 일을 생각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중요한 건 타천천이 내게 떡돌이 고칠 약을 준 거지.

타천천은 떡돌이를 방해할 마음이 가득해 보이니까. 안 줄 가능성도 있다 생각했단 말이야.

……그러고 보면 진짜 그놈은 뭘 생각하며 사는 걸까.

“마마? 옷 다 갈아입으셨는데요?”

“아, 그래. 가자. 가야지.”

* * *

옷을 갈아입고 가져온 약병에서 독이 안 새도록 종이로 잘 포장한 다음 보따리로 싸려는데, 창문 뒤에서 웬 손 하나가 슬며시 올라온다.

뭔가 싶어서 끝을 날카롭게 깎은 머리 장신구로 찔러버리자, 손은 쫘아악 손바닥을 펼치더니 괴로운 듯 꿈틀거리다가 도로 밖으로 나갔다.

‘뭐지?’

옆 창문으로 가서 보자, 복면을 쓴 사람이 손을 부여잡고 달아나는 게 보였다.

이상한 사람일세.

“마마?”

“어, 나갈게. 가자.”

* * *

떡돌이가 임시로 쓰는 궁전 앞으로 가자, 많은 태감들이 빼곡하게 진을 치고 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냥 태감들이 아니고, 모두 다 무술을 익힌 태감들이다.

내가 가마에서 내려 안쪽으로 다가가자, 오 공공이 얼른 달려왔다.

“마마, 오셨습니까.”

“폐하께서는?”

내가 작게 묻자, 오 공공은 이쪽으로 오시라 안내하면서 쓸쓸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한데 어의는 괜찮다고만 하고. 참으로 곤란합니다.”

그러다가 오 공공은,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보따리를 들어 보이자 어리둥절해 물었다.

“무엇이옵니까?”

“타천천을 보고 왔네.”

“설마……!”

타천천이 유능한 의원은 아니지만, 이 상황에선 누구보다도 유용한 사람이란 걸 아는 오 공공은 내 말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날 보았다.

“그래. 몰래 밖에 다녀왔지.”

“마마, 위험하십니다!”

“괜찮아. 이미 다녀왔는걸.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네.”

“문제라니요?”

“병이 말이야…….”

하나는 독이라서 사람들 앞에서 붓기 좀 그렇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복도 안쪽에서 문이 열리더니, 어의가 험악한 인상의 태감 둘을 대동하고 나타나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천빈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고는 내가 손에 든 보따리를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천빈 마마. 그게 무엇이옵니까?”

그러고서 보따리를 수상쩍다는 듯 마구 쳐다보는데, 그 옆에 선 험악한 인상의 태감 중 하나가 손등에 붕대를 똘똘 감고 있는 게 아닌가.

“…….”

그 손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 태감은 다른 손으로 자기 손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내 약을 훔치려다가 손을 찔린 그 복면인인가 보다.

내가 약 구해온 걸 내 궁인들보다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을까.

혀를 차다가, 어차피 알고 온 듯해 그냥 말해버렸다.

“폐하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약이라네.”

그러자 어의는 내가 든 보따리를 자연스럽게 가져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마. 하지만 폐하께 약을 쓰기 전에 먼저 성분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에 오 공공이 인상을 찡그렸으나, 그 역시 떡돌이가 깨어 있을 때 권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항의하긴 했으나, 떡돌이가 쓰러진 상황에서 그를 담당하는 어의 쪽 목소리가 더 큰 건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 공공. 하지만 폐하의 건강은 소신의 책임 아닙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의원에게서 받아온 약인데, 잘못 썼다가 폐하께서 상태가 더 나빠지신다면 회임하신 천빈 마마께선 무사하시겠지만 소인은 죽습니다.”

틀린 말은 또 아닌지라 오 공공이 뭐라 말하려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가져가서 확인해도 되네. 근데 그거 독이야.”

그 말에, 어의는 물론 오 공공까지 나를 놀라 쳐다보았다.

“예?”

“독이라니요?”

“폐하께서 못 일어나는 건 특수한 시독 때문이래. 그 시독을 이길 수 있는 게 그 독이라 하고.”

“이독치독…… 말씀이십니까.”

어의는 어의답게 바로 알아듣긴 했으나 표정은 심각했다.

“말이 이독치독이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그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 가져가서 잘 살펴봐. 자네 말에 따르면, 자네 책임 아닌가.”

“!”

* * *

“천빈이 멍청하단 것도 다 옛말이구나.”

황후는 태감과 어의가 가져온 병 두 개를 번갈아 보다가 헛웃음을 뱉었다.

“굉장히 머리를 썼어. 병이 두 개. 하나는 독이라.”

태감이 어의를 툭 치고 물었다.

“독은 확실하던가?”

어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마마. 하나는 뭔진 모르겠지만 독이 아니었고, 저 까만 건 분명 독입니다.”

황후는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은 여러 개였다.

“이 두 개를 전부 다 사용하는지, 이 중 하나만 사용하는 건데 하나는 천빈이 일부러 넣은 건지 모른단 거로군. 하나를 쓴다면 이독치독으로 검은 약을 쓰는 건지, 평범하게 하얀 약을 쓰는 건지도.”

“두 개를 다 사용한다면 순서가 뭔지도요.”

“하하. 이거 참.”

황후가 기가 차 중얼거리자 어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어찌할까요, 마마? 소신은 모험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약은 사용하는 순서도 중요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 폐하께서 상태가 더 나빠지시면 약을 가져온 천빈이 아니라 중간에 가져간 소신과 마마께서 덮어쓰게 됩니다.”

어의의 말에는 ‘내가 죽게 되면 마마 이름은 반드시 끌고 갈 겁니다’라는 의지가 가득했다.

황후는 기가 막혀서 어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황후는 침착하게 눈을 감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죄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폐하는 구해야 한다. 무조건. 그러면 약을 써야 하는데…… 천빈도 직접 약을 구해왔으니, 안 좋은 약을 구해오진 않았을 거야. 안 좋게 효과가 나온 거라면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

황후의 손가락이 생각하는 속도에 맞추어 탁자를 빠르게 두드려댔다.

그녀의 머릿속에 천빈과 황제, 장공주, 개시시의 모습이 빙글빙글 빠르게 돌아갔다.

‘이게 독이라면 천빈이 써야 한다. 만약 약효가 있는 진짜 약이라도, 이쯤에서 천빈과 더 대립하지 않아야 해. 이미 태후 마마께서 천빈이 피 토한 일로 심기가 상하셨어. 이게 독이라면 이걸 못 쓰게 막았다간 더욱 안 좋은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천빈을 돕는다면, 내 공은 아니겠지만 비연궁에 잡아둔 게 고의가 아니란 걸 보일 순 있겠지.’

장공주 건에 관해 입을 열 개시시는 깨지 못하고 있고.

생각을 마친 황후는 손을 저었다.

“약을 천빈에게 가져다주어라. 그리고 천빈이 직접 쓰게 해라.”

* * *

태후 마마 곁에서 떡돌이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황후가 들어와 내게 안부를 물었다.

대답하고 있으려니, 잠시 뒤에는 내 보따리를 가져간 어의가 쟁반에 내 약병 두 개를 담아 들고 와 내게 내밀었다.

“살펴보았습니다, 천빈 마마. 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는 독이고 하나는 독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태후 마마가 놀라 물었다.

“독이라니?”

태후 마마에게 타천천이 말한 이독치독에 대해 설명해주자, 태후 마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떡돌이와 나, 어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까만 약병을 번갈아 보았다.

“괜찮겠느냐?”

어의는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소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태후 마마. 폐하의 증세를 소신이 모르고, 이걸 처방한 의원도 소신이 모르니까요. 하지만 천빈 마마께서 손수 구해오신 약을 두고 소신이-.”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나는 약병 두 개를 한 손에 쥔 다음 약병 뚜껑을 엄지로 부숴 열고 떡돌이 앞으로 다가가 독부터 상처 부위에 부었다.

“천빈!”

“마마!”

“세상에!”

황후와 어의, 태후 마마가 동시에 뒤에서 외쳤지만 나는 그대로 독을 다 부었다.

그러고서 독병을 내려놓고 붕대를 벗기자, 타천천의 말처럼 상처 부위가 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아!”

그걸 본 사람들이 다시 뒤에서 외쳤지만, 개의치 않고 이번에는 해독제를 부었다.

해독제가 들어가자 잠시 뒤. 까맣게 변한 상처 부위에서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시 뒤. 거품이 사라지자 오 공공이 눈치껏 깨끗한 천을 가져왔다.

그걸로 떡돌이의 상처 부위를 닦자 붉은 상처 부위가 눈에 들어온다.

약을 붓기 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

나는 약병을 어의가 든 쟁반에 도로 내려놓고서 떡돌이를 바라보았다.

그걸 본 태후 마마께서 “천빈!” 하고 화가 나 외치는 순간.

내내 감겨 있던 떡돌이가 눈을 뜨더니 내 손을 잡았다.

동시에 태후 마마의 뒷말도 경쾌하게 바뀌었다.

“잘했다!”

떡돌이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가까스로 상체를 들어 올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후?”

“천빈이 약을 구해왔는데, 그 약이 독이었답니다. 그래서 나와 어의가 쓸지 말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천빈이 나서서 그대로 약을 써버리지 뭡니까. 놀라서 소리치는데 아드님이 벌떡 일어났어요.”

태후 마마는 얼른 떡돌이의 다른 한 손을 잡아주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내 팔을 두드리더니, 다른 한쪽 손도 떡돌이 손에 쥐여주었다.

얼결에 떡돌이와 두 손을 잡고 있으려니…… 쑥스럽군! 사람들 많은 데서 잡고 있으려니 참 쑥스러워.

그래도 태후 마마가 쥐여준 거라 놓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으려니, 떡돌이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다 말했다.

“꿈을 꾸었다 천빈.”

“뭐가? 요?”

“심장이 아파서 네게 찾아갔는데, 네가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없어도 잘 살 거 같다고 농을 던졌지. 하지만 아니었어. 넌 짐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라. 그거 나도 며칠 전에 꿈으로 꾼 거 같은데. 아니, 환청으로 들은 거 같은데.

꿈이 아니었나? 설마 떡돌이가 영혼 상태로 다녀가기라도 했던 걸까?

설마 싶어서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나를 살짝 잡아당겨 품에 안고서 웃었다.

“네가 짐을 살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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