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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16화 (216/283)

##  216화. 타천천 찾기

“귀자야. 잘 들어. 난 지금 밖에 나갈 거야. 폐하를 깨울 약을 구해와야겠어.”

이런 상황이 되어 보니 실감 나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떡돌이랑 싸우고 할 때가 있더라도, 어쨌든 나랑 같이 계란이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떡돌이 뿐이란 걸.

계란이에겐 황후의 권력보다 더 큰 떡돌이의 권력이 필요했다.

“그러면 제가 망을-.”

“어허. 무슨 소리. 아니야.”

“예?”

“넌 비연궁에 남아. 남아서 누가 날 보러 오면 막아. 누가 날 보려 하거든 말해. 내가 지금 충격 때문에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죽은 듯 자고 있다고.”

귀자 표정이 안 좋네. 싫은가 봐. 싫어도 어쩔 수 없어. 해야 해.

“더 중요한 할 일도 있어, 귀자야.”

“무엇입니까?”

“부성이랑 원웅이한테 말 좀 잘해줘.”

“예?!”

놀란 귀자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나는 얼른 담을 넘어 달아났다.

작게 귀자가 ‘마마!’ 하고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른 척 계속 뛰었다.

응, 미안해 귀자야. 하지만 원웅이랑 부성이를 설득하고 몰래 나갔다 올 자신은 없어서 그래. 걔들은 내가 날씨만 궂어도 힘들어하는 연약한 후궁인 줄 아는걸.

‘응?’

그런데 이게 뭔지 모르겠네. 열심히 뛰어가고 있자니,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게 느껴진다.

‘귀자? 아니면…….’

어느 쪽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보면 되겠지.

귀자면 돌려보내고, 적이면 죽, 아냐, 여긴 궁궐이잖아. 적이면 묶어서 어디 던져 놓자.

* * *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입궁해 흑합 장군을 찾아간 운호는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좀 그러니 나중에 오게.”

운호는 반사적으로 인상이 구겨지려는 걸 참았다.

긴하고 중하고 은밀하게 보아야 한다며 사람을 보내 부르더니.

막상 오니까 뭐? 상황이 그러니 나중에 오라고?

권력자들은 아무리 대단한 가문의 무림인이라도 자기들보다 아래로 보고 대한다더니. 정말로 딱 그 꼴이 아닌가.

“자네에겐 미안하군.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상황이 여의치 않네. 폐하께서 습격을 받아 쓰러지셨거든.”

흑합 장군은 운호의 그 표정을 보자 사건을 축약해서 이 정도로만 알려주었다.

어쨌건 그들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인데. 굳이 나쁜 사이로 남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것도 자네가 개 답응의 오라비이니 해주는 말이야.”

하지만 혹시나 싶어 ‘다른 데서 말을 전하고 다니지 말라’는 뜻을 돌려 표현하자, 운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고맙군. 폐하의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연락하겠네.”

“예.”

운호는 돌아서려다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개 답응을 보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 * *

허락을 받아 커다란 통행등을 손에 든 운호는 개시시가 머무는 궁전에 태감의 안내를 받아 찾아갔다.

“여기입니다, 대인.”

“고맙소.”

운호는 태감에게 감사를 전하고서 개시시의 처소 앞으로 가 그곳 태감을 불러 말했다.

“개 답응의 사촌 오라비요. 누이를 보러 왔소.”

운호를 본 태감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개 대인이 아니십니까?”

개원이 몇 번 궁궐에 왔다 갔다 했다더니. 운호를 개원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운호는 자신도 개 대인이 맞긴 하기에, 부인하는 대신 그냥 물었다.

“개 답응께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요즘 몸이 좋지 않으셔서요. 하지만 개 대인께서 오셨으니 보려 하실 겁니다.”

태감은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태감은 다시 밖으로 나와 들어오시라 손짓했다.

태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침상에 개시시가 힘없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시시야.”

운호가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자, 개시시는 바로 알아보고서 힘없이 미소지었다.

“원 오라버니가 아니네.”

“몸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운호는 개시시의 곁으로 다가가 침상에 바로 걸터앉아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 격의 없는 모습에 궁녀 하나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으나, 개시시가 사가에서 데려온 측근 궁녀는 놀라지 않았다.

개원과 개운호는 쌍둥이면서도 성격이 전혀 다르단 걸 이미 아는 탓이었다.

개운호는 개원보다 좀 더 격의 없고 사근사근한 성품이었다.

“별일 아니야 오라버니.”

“폐하께서도 편찮으시다면서.”

“어디서 들었어?”

“흑합 장군에게 들었어.”

개시시는 잠시 생각하다가 측근 궁녀에게 다른 궁인들을 모두 내보내 달란 눈짓을 했다.

“자자, 나가자. 소주께선 친정 오라비와 편하게 말씀 나누고 싶어 하셔.”

측근 궁녀가 눈치껏 다른 궁인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자, 개시시는 무겁게 한숨을 토해냈다.

개운호는 무언가 엄청난 일이 있었단 걸 바로 눈치채고 표정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냐. 누가 널 괴롭혀? 왜 얼굴이 죽을상이야?”

“내가 이 모든 일을 덮어쓰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

“네가 덮어쓰다니? 무슨 일을?”

“……폐하께서 쓰러진 건 장공주 전하의 습격 때문이야.”

“장공주?”

운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공주는 죽지 않았나?”

“죽었는데 살아서 돌아왔어.”

“!”

운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개시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 믿기 힘들지? 다들 놀랐어. 그런데 정말 돌아왔어. 말하는 거나 기억하는 거, 행동, 몸, 얼굴, 표정, 키, 모든 게 다 공주 전하야.”

“그게…… 가능한가? 이미 죽은 지 몇 해나 지났는데? 무덤에 묻히지 않았던 건가?”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운호는 여전히 얼떨떨했으나, 동생에게 계속 이야기하라 표현하며 자신의 입을 자기 손으로 가로막았다.

말 안 할 테니 계속 얘기해 봐.

개시시는 그 수신호를 보고서 처음부터 털어놓기 시작했다.

“황후 폐하께서 장공주와 천빈을 갈라놓고 싶다고, 나한테 부탁했어. 장공주에게 천빈이 한 말이라며 이상한 말을 전하게 하라고. 둘이 친했거든. 듣고 싶지 않은 부탁이었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어.”

“황후가?”

“응.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황후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날 밤, 바로 장공주가 미친 거야. 사람들을 마구 공격하고…… 결국 폐하도 공격했어. 그 후 폐하는 쓰러지셔서 아직까지 못 깨어나고 계셔.”

개시시는 이불을 꼭 움켜쥐고서 운호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 같아? 난 모르겠어. 하지만 장공주 전하가 갑자기 미친 게, 나랑 만난 직후잖아. 혹시라도 이 일이 나한테 불똥이 튈까 봐 걱정돼.”

“이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텐 했어?”

“내 궁녀들은 알고 있지.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못했어. 누명을 쓸까 봐.”

운호는 문득 형이 천년비가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던 걸 떠올렸다.

세간에 떠도는 천년비는 가짜라 확신하는 운호에게는 신경 쓰이던 장면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 가능한 건가?’

“오라버니?”

운호의 표정이 흐트러지자 개시시가 다시 그를 불렀다.

우선 당장 중요한 일은 누이에 대한 일인 걸 떠올리고서 다시 누이를 보았다.

개시시는 담요를 꽁꽁 온몸에 덮어쓰고 자신 없이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제일 염려하는 건 단순히 장공주 건이 아니야.”

“그럼?”

“나와 같은 고민을 황후도 할지 모른단 거야, 오라버니. 이게 가장 무서워.”

“!”

“황후도 무서워할 거잖아. 혹시 장공주 건을 조사하다가 내게 수사 차례가 돌아오면 내가 황후에 관해 말할지 아닐지. 혹시 황후가…… 내 입을 막고 나한테 덮어씌울까 봐 염려돼.”

운호는 개시시 옆에서 누이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보살펴 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개시시는 후궁이었고 그는 여기서 지내는 이가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개시시가 염려하는 것 역시 현실적인 고민이긴 해서, 운호는 생각하다 제안했다.

“태후 옆에 있도록 해, 시시야. 태후 옆에 있으면 안전하겠지.”

개시시는 고개를 저었다.

“난 태후 마마와 친하지 않아서 옆에 붙어 있기 이상해.”

“그럼 다른 후궁들은?”

“다른 후궁들은…… 친한 후궁이 없어.”

개시시는 말을 하다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아무도?”

한참만에야 개시시는 가까스로 하나를 생각해냈다.

“지금은 데면데면해졌지만. 아까 내가 얼핏 말한 천빈과 예전에는 친했어.”

“그래?”

“응. 원 오라버니랑 같이 본 적도 있고.”

“그러면 천빈 옆에 있어. 민망하고 그래도 무조건. 절대로 혼자 있지 마. 네 말을 듣고 나니 좀 신경 쓰여.”

* * *

날 쫓아오던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에 나는 그 사람을 기절시킨 다음, 꽁꽁 묶어두고서 비원을 찾아갔다.

“타천천 위치를 알고 싶어.”

비원은 일하다 뛰어나와서는 나를 황당하단 듯 쳐다보았다.

“단주님은 왜요?”

“만나야 해. 한두 시진 내로 볼 수 있어?”

“연락을 해서 만날 수는 있지만 한두 시진 내로는 무립니다. 어디 계신지 어찌 알고요.”

“이런. 일단 연락해 봐.”

나는 그에게 말하고서, 우선 궁궐 밖으로 나가 태안루로 달려갔다.

전에 타천천을 만날 때 늘 태안루에서 만났지. 이번에도 혹시나 해서였다.

타천천이 계속 그곳을 오간다면, 태안루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전에 꽃다발 받은 날에 보니 태안루주도 타천천을 아는 눈치였고.

“만날 사람은 한 명인데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두 명이로군.”

태안루주는 타천천을 만나고 싶단 내 말에 뜻밖에도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말고도 누가 타천천을 만나고 싶어 한단 건가?

태안루주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물었다.

“같이 기다렸다 볼지 따로 볼지 고르지.”

그 말을 듣는데, 타천천을 만나고 싶어할 또 다른 사람 세 명이 떠올랐다. 태후, 황후, 고궐.

하지만 태후와 황후는 타천천의 존재를 의원으로만 알고 그 외엔 아무것도 모르니 아닐 거야. 그렇다면…… 고궐?

“같이 볼게.”

내 대답에, 태안루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방 위치를 알려주었다.

“꼭대기 층 가장 안쪽 방입니다.”

* * *

타천천이 안내해 준 곳으로 가 방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날 향해 엄청난 속도로 공격해댔다.

나는 방을 안내해 준 점소이에게서 쟁반을 뺏어서 그자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윽.”

전에 내가 정보호 머리통 치는 걸 본 적 있던 점소이는, 내가 또다시 쟁반을 휘두르자 ‘이 사람 이거 아주 선수네?’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자기가 신음을 뱉었다.

나는 쟁반을 점소이에게 도로 준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턱을 거만하게 치켜들고 보자, 잠깐 쟁반에 맞고 찌그러들었던 고궐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년비.”

나를 본 그가 중얼거렸다.

“맞지? 천년비.”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빌어먹을 X 같은 무공을 쓰는 게 너 외엔 있을 리가. 남들은 가짜를 보며 속아도 나는 속지 않아. 가짜는 네 무공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거든.”

또다시 어깨를 으쓱하자, 그는 대답 대신 허리에 찬 검을 풀어 쥐었다.

“네 발로 온 걸 후회할 거다.”

“타천천 기다리던 거 아니었어?”

“오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여흥이나 즐기지.”

“난 네가 신기해, 용화노.”

“?”

“겨룰 때마다 졌으면서. 왜 겨룰 때마다 자기가 큰소리지? 누가 보면 제가 계속 이긴 줄.”

“너-!”

“와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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