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너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무공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서 움직이던 걸 멈추고 소리 나는 쪽을 보자, 일부러 군데군데 세워 놓은 굵은 기둥 너머로 귀자가 나타났다. 다급한 얼굴로.
“무슨 일 있어?”
그 표정이 의외라 묻자, 귀자가 지척까지 다가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지금 장공주 전하께서 미쳐 날뛰고 계신답니다.”
“응?”
이게 뭔 소리야? 장공주가 미쳐서 날뛰다니. 아니 그보다 황족을 두고 미쳐 날뛴단 표현을 써도 되나?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그렇게 말해도 돼?” 하고 묻자, 귀자가 울상을 지었다.
“욕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날뛰고 계십니다. 게다가 뭔가 상태도 이상해요.”
“상태가 이상하다니?”
“모르겠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무차별로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죄다 공격하고 계신답니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설명을 들었는데 오히려 더 놀랍다니.
“폐하는? 알아?”
“네, 그쪽에 갔다가 들은 얘깁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타천천이 한 말이 떠오른다. 장공주가 절대로 자기가 저지르는 짓을 알지 못하게 하라 했지.
그건 장공주가 스스로의 이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하는 짓을 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혹시 장공주가 뭔가 알아냈나? 어떻게? 떡돌이가 마음을 바꿔서?
떡돌이는 고궐을 잡아 치울 생각을 하면 했지, 장공주 건에 관해선 아직 결정을 못 내린 거 같았는데?
“미치겠네.”
“마마까지 그러지 마세요, 무섭습니다!”
뭐 어떻게 된 건진 모르지만 일단 중요한 건 장공주가 진실을 알았고, 타천천이 경고한 일이 벌어졌단 거겠지.
대체 어느 정도로 이성이 사라진 건진 모르겠지만……
무차별로 공격하며 다닐 정도면 아예 이성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나.
“일단 나가보자. 옷부터 갈아입고, 아니, 그냥 이대로 나가야겠어.”
“예?”
“장공주가 날뛰다가 나한테 올지도 모르잖아. 이 옷이 그나마 덜 치렁거린단 말이야.”
“싸우시려고요?”
“위험하면 싸워야지 별수 있어?”
“마마, 마마께선 회임하셨습니다! 싸울 게 아니라 최대한 그 자리에서 벗어나셔야지요! 아니, 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귀자는 단호하게 말렸지만 나는 그를 지나쳐 뛰어갔다.
장공주의 몸은 평범한 몸이 아니야.
몸이 약해질 땐 건드리기만 해도 팔이 빠질 정도로 약해지지만, 튼튼할 땐 그냥 강시 몸이라고.
물론 싸울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나서서 싸우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내가 나서면 진정시킬 수 있는 일을 나서지 않다가 피해를 키우기도 좀 그렇잖아?
“마마! 마마!”
귀자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결국 나를 따라왔다.
“어디야? 위치가?”
“저도 모릅니다. 본궁 근처에서 소식을 들은 거니까요.”
“금룡궁 주위일지도 몰라. 거기서부터 출발했을 거니까. 그쪽으로 가보자.”
“마마!”
그곳에서 소란이 발생했으리란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쪽으로 다른 위병들 역시 우르르 달려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장공주는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난 건지, 도착한 곳엔 장공주는 없고 부상을 입고 바닥을 구르는 이들뿐이었다.
게다가 위병들은 또다시 다른 쪽으로 뛰어가고 있어서, 나도 방향을 바꾸어 그곳으로 뛰었다.
“마마,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지요!”
귀자가 외치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짙은 피 냄새와 비명이 들려왔다.
우리는 얼른 골목길을 돌아 그곳으로 갔다.
“이런.”
골목길과 골목길이 만나 넓은 공터가 조성된 그곳은 상황이 아주 가관도 아니었다.
장공주는 피투성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표정이며 눈빛부터가 평소의 따뜻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차갑거나 서늘하지도 않아. 장공주는 지금…… 아무 감정이 없어 보였다.
움직이는 바위처럼 말이다.
게다가 나쁜 상황은 장공주가 날뛰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잡아!”
“무기를 뒤로 돌려라!”
“검날을 뒤로해!”
위병들이 장공주를 말리기 위해 달려들긴 하지만, 감히 장공주에게 검날을 들이밀지 못하는 데 있었다.
문제는 저들이 검을 들고 장공주에게 달려들어도 장공주를 이길까 말까 한 상태란 거.
강시 몸인 장공주는 병사들이 검을 뒤집은 채 주춤주춤 달려오면 가차 없이 그들을 공격했다.
병사들은 점점 더 부상을 입었고, 바닥에 쓰러져 구르는 이들 숫자도 한없이 늘어갔다.
“마마, 뒤로 가 계십시오. 위험합니다.”
상황을 본 귀자가 내 팔을 잡고 세지 않게 당겼다. 몹시 다급한 목소리였다.
“마마께 괜히 이 얘기를 해드렸습니다. 제발 들어가세요.”
그때. 자기를 공격하는 이들과 다른 어조의 목소리를 눈치챈 듯 장공주가 힐긋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바로 이쪽에 오려는 걸, 한 무리의 검은 복면인들이 달려들자 방향을 바꿔 다시 그들과 대치했다.
‘떡돌이 그림자들이구나.’
나타난 복면인들이 모두 무공을 사용하는 걸 보니 승언이 같은 자들인 모양이었다.
복면인들이 장공주를 상대할 동안, 병사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끌고 벽으로 붙었다.
몇몇은 부상이 심한 이들을 골목길 사이로 데려가 현장에서 떨어뜨렸다.
그림자들 중 앞으로 나선 이들은 검이나 다른 무기를 쓰지 않고 주로 권법을 익힌 이들이었는데, 그 덕택에 날붙이를 함부로 휘두를 수 없던 병사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장공주를 상대했다.
그러나 이조차 툭 튀어나온 누군가에 의해 가로막혔다.
나타난 이는 그림자들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한 차림새였다.
심지어 얼굴에 입 쪽을 가린 복면을 쓴 점까지도.
이 탓에 그림자들은 툭 튀어나온 이가 자기들의 동료라고 여긴 게 틀림없다.
툭 튀어나온 이가 뒤에서 검을 찔러넣을 때까지도 등을 보이고 있던 걸 보면.
“큭!”
등을 찔린 이가 황급히 검을 뒤로 하는 사이, 그자가 상대하던 장공주가 무시무시하게 손을 휘둘러 그자를 공격했다.
다른 그림자들과 합세해 장공주의 시선을 돌리는 사이, 툭 튀어나온 이는 그 그림자들을 공격해댔다.
‘고궐!’
그 가짜 그림자가 누구인지, 나는 그자의 무공을 보고 알아차렸다.
고궐이었다. 고궐과 세 번 겨루어 본 적이 있어서 안다.
내가 내 무공을 숨기고 싸우듯 그도 자기 무공을 감추고 싸울 수 있을 텐데.
상황이 급해서인 듯 고궐은 그러지 않고 자기 무공으로 그림자들이 장공주 공격하는 걸 막았다.
그러면서도 장공주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도 막아야 했다.
귀자도 그걸 눈치챈 건지 작게 속삭였다.
“마마, 저자. 그림자와도 장공주님과도 한패가 아닌가 본데요?”
“장공주 전하는 지금 이성이 없어.”
장공주가 이성을 잃을 때 곁에 있었으면 고궐이 뭔 수를 써서도 잡아뒀을 듯한데.
아무래도 고궐이 자리를 비웠을 때 일이 터졌나 봐.
고궐이 끼면서, 가까스로 균형을 맞추는가 싶던 장공주와 그림자의 싸움은 그림자들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날붙이를 쓰지 않고도 장공주와 싸울 수 있긴 하지만, 그림자들 역시 장공주를 온 힘을 다해 상대하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반면 장공주나 고궐은 전혀 봐주지 않고 그림자들을 잡아 죽이려 하니까.
“누이!”
그러다가 어느 길목에서 떡돌이가 뛰어나오며 외쳤다.
그도 소식을 듣고 장공주가 어디 있나 찾으러 돌아다니다 온 모양이었다.
“누이!”
월요는 장공주를 보더니 더욱 경악해 그쪽으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월요가 부르자 장공주가 처음으로 멈칫했다.
‘목소리를…… 알아듣는 걸까?’
“누이.”
월요도 눈치챘는지 멈춰 서서 아까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장공주를 불렀다.
장공주를 상대하던 그림자들도, 심지어 고궐까지도 행동을 멈추고 장공주와 월요를 지켜보았다.
면사 위로 드러난 월요의 눈가가 약간 반짝였다. 장공주 상태를 보고 눈물이 고인 듯했다.
“누이. 제발 그만 해요. 내가……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월요는 피투성이가 된 장공주를 보는 게 괴로운 듯 절박하게 중얼거렸다.
놀라운 건 장공주가 계속 움직이지 않고 있단 점이었다. 이성을 잃어도 동생의 목소리는 들리는 걸까?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장공주와 떡돌이를 번갈아 보았다.
장공주가 지금은 가만히 있긴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날뛸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장공주는 떡돌이가 바로 앞으로 다가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오오.”
그걸 본 누군가가 작게 탄식했다. 장공주가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자기 형제를 알아보는 게 감명 깊다는 듯.
그러나 누군가의 탄식이 섞이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월요를 바라보던 장공주가 눈 깜짝할 사이 월요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폐하!”
“폐하!”
승언과 다른 그림자가 거의 동시에 장공주의 양팔을 공격했다. 아까와 달리 조금도 손에 힘을 빼지 않고.
오 공공은 무공도 안 익혔으면서 용기를 짜내 월요의 허리를 안고 무작정 뒤로 당겼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골목길 반대편으로 돌아서 월요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장공주 앞을 가로질러 갔다간 대번에 시선이 집중될 테고, 장공주가 날 향해 달려들면 그림자들이 내 쪽까지 신경 써야 해서 상황이 기울어버리니까.
“폐하.”
내가 다가오자 월요는 가슴 부근에 손을 대고 있다가 “천빈.” 하고 힘없이 나를 불렀다.
스치듯 맞은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월요의 손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게 난 것 같았다.
나는 작게 외쳤다.
“폐하! 피가 많이 나요!”
“귀자야.”
“네, 폐하!”
“천빈을 처소로 데려가 호위해라.”
그러나 월요는 내게 말을 거는 대신 귀자에게 지시해버렸다.
“네, 폐하.”
귀자도 이때다 싶은지 다시 나를 잡아당겼고.
“가시지요, 마마. 상황은 그림자들이 해결할 겁니다. 예?”
월요는 내게 왜 여기 있냐던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귀자에게 날 데리고 돌아가란 말만 할 뿐. 오 공공 역시 내게 청했다.
“돌아가시지요 마마. 상황이 좋지 않지만 곧 해결될 겁니다!”
월요의 부상 때문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으면서도, 다들 내게 왜 여기 있냐고 묻지도 않고 일단 돌아가라고들 한다.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그림자들과 고궐, 장공주 사이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그림자들은 여전히 밀리고 있었다.
그걸 보다 나는 월요를 보았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뭘 해보기도 전에 다쳐서 나서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감추고 있지만 차마 누이에게 손을 댈 수가 없어서인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더불어 황제의 하나뿐이 동복 누이를 상대해야 할 그림자들도.
나는 귀자의 손을 뿌리쳤다.
“마마?”
그러고서 떡돌이에게 무어라 말하는 대신, 그를 건너뛰어 곧장 장공주와 고궐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림자들은 고궐의 공격을 피해 장공주를 잡으려다가, 허공에서 내가 날아오자 다급히 양옆으로 피했다.
그 덕택에 나는 장공주와 고궐의 사이에 완벽하게 착지했고, 망설임 없이 내 독문무공인 천수비로 고궐과 장공주의 옆구리를 내리쳤다.
내공을 진탕 시키는 수법이라서인가. 강시인 장공주는 내공이 없어서인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반면 무림인인 고궐은 피를 토하면서 바닥을 몇 바퀴 구르더니,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