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타천천과 월요의 만남
황후는 놀라 되물었다.
“현장에서 모두 수사청에 잡혀가다니?”
천빈의 범죄 행각을 목격하라고 보낸 이들은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알아내기 위해 수시로 사람들을 여기저기 보내며 노력했는데.
그들이 전부 수사청에 잡혀가 있다고?
사람 여럿이 시체로 발견되었단 말에 심장이 수란스럽긴 했다.
혹시 그 일에 천빈이 얽혀서 측근들이 오지 않는가,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전부 다 수사청에 잡혀가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이냐?”
황후가 다급하게 묻자, 태감이 송구스러워하며 작게 대답했다.
“저도 정확히 어쩐 일인진 모르겠습니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수사청에 가 보았지만 가로막혔습니다. 기몽 장군의 부하들이 심각한 사안이라면서 들여보내 주질 않았습니다.”
“심각한 사안?”
“예.”
황후는 초조하게 손수건을 문질렀다.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가 보낸 이들은 모두 그 사건에 얽힌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한 게 있다면…….
“천빈은 왜 수사청에 가지 않았지?”
부하들은 모두 천빈을 따라다녔을 테니, 어떤 일에 연루되었다면 분명 같이 연루되었을 텐데?
“모르겠습니다.”
“비연궁 앞에 가 보았느냐?”
“예. 하지만 비연궁은 평소와 다른 바 없었습니다, 마마.”
황후는 손수건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천빈에겐 해가 가지 않았다……? 내 부하들은 천빈을 따라 다녔는데 수사청에 잡혀갔고……?”
차라리 둘 다 돌아오거나 둘 다 잡혀갔다면 같은 사건에 얽혔겠거니, 하기라도 할 텐데.
왜 한쪽은 아무렇지 않고 한쪽은 잡혀간 것일까.
황후는 초조하게 탁상을 두드렸다. 이 일에 함정은 없는 건가?
“다른 범인이 있었나 봅니다, 황후 마마.”
“하지만 괜찮습니다, 마마. 어쨌든 범인을 잡은 거라면 좋은 일을 한 거 아닙니까. 이건 마마의 공적이 될 겁니다.”
“그러면 좋지만…….”
황후는 결국 한 시진 뒤, 옷을 갈아입고 몸소 수사청을 찾아갔다.
수사청 앞에는 수많은 이들이 몰려 있었는데, 황후를 보자 다들 자리를 비켜주었다.
좀 더 늦은 시각에 올 걸 그랬나.
황후는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몰리자 너무 가볍게 움직인 건가 싶어 잠시 후회되었다.
“황후 마마.”
그러나 이미 황후가 왔단 소식을 들은 기몽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더 물러설 수가 없자, 황후는 미소를 띠고서 그를 기다렸다가 기몽이 바로 앞으로 와 인사하자 물었다.
“일하는 도중에 내가 괜히 찾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군.”
기몽은 여상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번에 잡혀온 사람들이 황후 마마의 측근들이라지요. 황후 마마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게 당연합니다.”
흠잡을 데 없는 말이었으나 기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황후가 들어설 수 있게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들어가지 말란 신호였다.
자신이 나서서 출입을 거절하면 황후의 체면이 상하니, 그냥 말도 마시라는 뜻.
하지만 그 표정에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황후는 기몽의 덤덤한 표정을 보다가 알아차렸다. 일단 그녀의 사람들이 누명을 쓰거나 할 일은 없는 모양이다.
* * *
“황후 마마. 무슨 일인지 알아내셨습니까?”
황후를 부축해 황후궁으로 돌아오자마자 궁녀가 서둘러 신을 벗겨주며 물었다.
“왜 우리 쪽 사람들이 갇힌 겁니까?”
다들 이 문제를 알 길이 없으니 애가 탔던 모양이었다. 황후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죄인 취급 받는 건 아닌 듯했어. 천빈도 이 일엔 관련이 없는 것 같고…….”
* * *
며칠 뒤.
나는 떡돌이의 부탁으로 그가 타천천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대놓고 타천천에게 ‘황제가 너 좀 만나재’라고 부르진 않았다.
비원을 통해서 나와 그가 만날 약속 장소를 잡은 다음, 황제와 잠행을 나가는 척 데리고 나갔다.
잠행이라고는 해도 오늘은 그리 신이 나진 않았지만.
타천천에게 손님을 한 명 데려간단 이야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황제를 데려간단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많이 놀라겠지? 황제란 걸 알아볼까?
그러는 사이, 마침내 우리는 약속한 식당 앞에 도착했다.
떡돌이가 미리 지시해 둔 대로 한 층 전체를 텅 비워서인가. 식당은 고요했다.
“손님, 오늘은 한 층 전체를 예약하신 고객님께서-.”
“그 사람과 만나기로 했네.”
“예? 정말이십니까?”
놀라는 점소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서 나는 떡돌이와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타천천은 커다란 탁자 앞에 홀로 앉아 술인지 차인지 알 수 없는 걸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는데, 내 뒤에 누군가 있는 걸 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게 누구야.”
몸을 일으킨 타천천은 내 옆에 얼굴을 가리고 따라온 떡돌이를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거. 나한테 한 말이야 떡돌이한테 한 말이야?
내가 타천천의 맞은편에 앉고 떡돌이는 내 옆에 앉았다.
탁자를 두고 마주 앉자 떡돌이는 죽립을 벗어 옆에 두었다.
그래도 면사를 매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하지만 타천천은 그것만으로도 흥미가 드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월요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물었다.
“데려오고 싶단 손님이 이 사람이야, 녕녕?”
‘녕녕’이란 말에 월요가 눈썹을 날카롭게 올린다. 기분이 상했나 봐.
하지만 타천천은 얼굴을 면사로 가려도 눈썹은 보일 텐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더니, 이곳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서 웃었다.
“황제라도 온 거야, 녕녕? 한 명 데려오는 게 아니잖아? 이렇게 줄줄이 사람들을 데려오다니.”
“!”
말이 끝나자마자 승언이 타천천의 목 앞에 검을 들이밀었다.
“인내심이 없는 친구를 데려왔네, 녕녕.”
타천천은 여전히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검을 거두어라.”
월요가 명령을 내리자 타천천은 오히려 “응?” 하고 놀란 시늉을 하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녕녕. 정말 황제를 데려왔어?”
나는 월요의 눈치를 살폈다. 월요는 타천천의 말에 이렇다 아니다 대답하는 대신 승언에게 지시했다.
“호위들을 주위에서 물려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라.”
“예.”
승언이 나서기도 전에 이미 주위의 다른 호위들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어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을 만큼 공간이 확보되자, 월요는 그제야 타천천을 바라보았다.
타천천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녕녕? 너무 궁금한데.”
나는 눈으로 떡돌이를 가리키고서 말했다.
“여기가 내가 데리고 오겠다는 손님. 나머지는 다 호위.”
물론 이 정도는 데리고 올 때부터 알겠지만. 타천천은 미소를 짓고서 월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월요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타천천과 눈이 마주치자 말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장공주를 고칠 방법을 알고 싶다.”
떡돌이…… 굳이 자기가 황제가 아니란 걸 감출 마음이 없구나. 면사는 왜 쓴 거야?
타천천은 잠시 멍하게 떡돌이를 보다가, 뭐가 재미있는지 다시 푸하하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몹시 즐거워 보였다. 뭐가 재미있는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타천천도 굳이 떡돌이에게 ‘황제시죠?’ 하고 정확히 묻진 않았다.
대신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사전에 주고받아야 할 법한 대화를 죄다 생략하고 물었다.
“그러면 제가 뭘 받을 수 있을까요?”
월요는 미리 생각해 온 바가 있는지 바로 대답했다.
“사면.”
그 덤덤한 목소리에 타천천은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으하하하 웃더니, 자기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고 있자 날 보며 물었다.
“들었어, 녕녕? 날 사면해 주신다네.”
난 두 손으로 내 입을 가리고서 월요를 눈길로 가리켰다.
월요랑 얘기해. 난 이 일에 대해선 몰라.
그리고 네가 나한테 ‘녕녕’이라 부를 때마다 떡돌이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잖아.
타천천은 방정맞은 웃음을 그치고는 월요에게 물었다.
“제가 장공주 전하를 고치면 절 사면해 주시겠단 말씀이시지요?”
“그래.”
“한데 궁금합니다. 제가, 폐하께서 사면씩이나 해줘야 할 그런 죄가 있던가요?”
빈정거린다기보다는 정말로 궁금해하는 말투였다.
잔뜩 흐트러진 타천천과 미동도 하지 않는 월요 사이의 분위기는 물과 불이 부딪히는 현장 같다.
나는 그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수증기를 뒤집어쓰는 중이고.
월요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또 대답했다.
“많을 텐데.”
타천천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무엇일까요?”
“그대도 나도 이미 아는 걸 굳이 말해야 할까?”
“제 죄를 말하려면 천빈 마마께서 가짜란 것부터 알려야 하고. 장공주 전하께서 괴물이란 걸 알려야 하지요.”
“!”
“두 분이 죄가 없다면, 저도 죄가 없습니다. 아닌가요?”
타천천은 또 소리 내어 웃진 않았지만 지금 미소만으로도 아주 방정맞아 보였다.
“소신은 미천해 아는 게 적지만, 길을 헤집고 다닌 정도는 그렇게 큰 죄가 아닌 건 알고 있답니다.”
나는 힐긋 월요의 눈치를 살폈다.
월요는 장공주가 사람들을 죽이고 심장을 먹었을지도 모른단 걸 안 후부터 말이 극도로 적어졌다.
타천천이 앞에서 이렇게 깐죽거리기까지 하니, 그가 속이 뒤집어지진 않을까 싶어 염려되었다.
하지만 월요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지간히 성군들만 상대했나 보구나.”
“!”
그 말에 내내 재밌어하던 타천천이 처음으로 움찔했다.
다행이야. 월요가 타천천과 말을 주고받을 정신이 있나 봐.
월요가 반격하는 걸 보니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나는 젓가락을 집어서 앞에 놓인 음식을 소리 내지 않고 조금씩 먹었다.
“하하. 폐하께선 성군이 아니신지요?”
“살해당한 종친들이 사하비단과 접근했단 건 그냥 넘어가려 하는군.”
“역시 알고 계셨군요?”
“알면서도 넘어가려 했나.”
“혹시 모르실 수도 있으니까요.”
타천천 저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떡돌이가 아는 거라도 종친 살해에 대한 건 그냥 무조건 부정하는 게 낫지 않…….
아니, 뭐라고? 종친 살해? 저놈 미쳤나? 황족들을 살해하고 있었다고? 하나둘 죽인 게 아니야?
저놈 저거, 무림과 관을 동시에 적으로 돌릴 셈이야? 사파들끼리 힘을 모아서 정파놈들이 바싹 날이 서게 만들고도 있잖아?
그런데 한편에선 종친들을 건드려? 젠장. 진짜 무슨 생각이야?
약간 돋았던 입맛이 다시 떨어졌다. 생각보다 일이 더 커지고 있다.
타천천 저놈이 종친들을 연달아 죽이고 있고 그걸 월요가 알고 있단 걸 알았다면 절대로 이 자리를 만들지 않았을 거다.
나는 승언을 보았으나 승언은 온몸을 반짝 긴장하고서 타천천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폭탄 같은 발언을 해놓고 월요는 혼자 멀쩡하게 물었다.
“뭘 원하지?”
“사면해 주신다더니요.”
“관심 없어 보여서.”
“하하.”
타천천은 웃으면서 차를 한 잔 마시더니 잠시 바닥을 보았다.
승언 역시 반사적으로 같이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 암살 무기라도 있나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타천천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고서 월요를 볼 뿐.
하지만 뜸을 들인 뒤에 나온 소리는 너무나 엄청났다.
“폐하의 목숨은 어떨까요?”
찻잔으로 내가 타천천의 머리를 내려칠 뻔했다. 저절로 월요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월요는 이번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타천천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또 월요를 자극했다.
“누이를 살리기 위해 폐하의 목숨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폐하의 목숨을 주신다면 장공주님을 천빈 마마만큼 건강하게 만들어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