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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06화 (206/283)

##  206화. 부작용 (2)

사실 다른 궁인들이 우리 궁인들을 피해 다니는 데는 나도 한몫을 하고 있다.

황후궁 사람들이 날 계속 의심하도록 하기 위해 요즘 외출할 때마다 검은 피풍의를 입고 다니는 건 물론 좀 수상쩍어 보일 장소만 다니거든.

물론 그냥 놀러 다니는 건 아니다.

나는 요즘 고궐이 또 시체를 비연궁에 두고 간다면 이번엔 어느 쪽에서 올까, 이걸 찾아다니는 중이다.

고궐이 남긴 흔적이 있나 없나도 좀 살피고.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나는 또다시 고궐이 무언가 행동을 할 시기란 걸 눈치챘다.

“전하. 안색이 안 좋으세요.”

장공주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진 것이다.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건가.

“그러네요.”

장공주는 맞은편에서 차를 마시다가 찻잔도 무겁다는 듯 내려놓더니,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눈두덩이를 눌렀다.

“요즘 다시 몸이 좀 무겁고 정신이 멍해요.”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전하. 그러다 또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그럴게요. 또 영영 같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장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순순히 일어나 나갔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자마자 검은 피풍의를 꺼내 걸치며 귀자를 불렀다.

“귀자야. 네게 시킬 일이 있다.”

* * *

“보름 가까이 지켜보았는데 이상한 점이 아무것도 없다고?”

황후의 차가운 질문에 장태감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이상한 점은 많습니다, 황후 마마. 천빈은 늘 수상쩍은 장소를 돌아다니니까요. 하지만 그 곁엔 폐하께서 붙여두신 호위들이 함께 있고, 시체가 나타날 시각엔 천빈은 늘 제 방에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 수상쩍은 장소에 쪽지를 놔둔다거나 암호를 표시해 두어서 자기 부하와 신호를 주고받을 가능성은?”

“그래서 천빈이 다녀간 곳은 늘 샅샅이 뒤졌지만, 아직 그런 정황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수상한 장소만 돌아다닌다면 이유가 있을 게 아니냐.”

“송구하옵니다.”

장태감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려주지 못하자 황후는 이불을 움켜쥐고서 침상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죽은 두 태감에 관한 건 모르겠으나, 황후는 온수연을 죽인 건 분명 천빈이라 확신했다.

무언가 수를 써서 그녀를 죽게 몰아간 거라고.

설령 온수연이 정말 세간의 말처럼 자결한 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온수연이 자결할 정도로 상심한 건 반은 천빈의 탓 아니던가.

그때였다.

“황후 마마. 황후 마마.”

밖에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황후는 얼른 상체를 일으키고서 소리의 주인을 안으로 들이라 눈짓했다.

잠시 뒤, 태감 복장을 하였으나 눈빛이 서늘한 사람이 들어와 곁에 무릎을 꿇었다.

황후가 천빈을 쫓아다니라 붙인 사람 중 대장 격인 인물이었다.

“알아보았느냐?”

황후가 다급히 묻자, 부하는 얼른 보고했다.

“천빈이 홀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쫓아라.”

“예.”

황후의 지시에 부하는 인사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부하가 나가자 장태감이 기쁘게 웃으며 황후를 위로했다.

“드디어 천빈이 꼬리를 밟히려나 봅니다, 황후 마마.”

“그래야 할 텐데.”

황후는 힘없이 중얼거리고서 다시 침상에 머리를 기댔다.

* * *

황후가 붙인 이들은 밤중에 호위조차 붙이지 않고 홀로 빠져나간 천빈을 소리 죽여 쫓았다.

천빈이 홀로 쓰는 비연궁에서 발견된 시체만 셋이었다.

시체를 가져다 두는 게 천빈을 노린 이의 짓인지, 아니면 천빈이 시체를 처리하기도 귀찮아 담벼락에 버린 건지 아직 모르는 일.

황후는 후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했다.

황후의 그림자들은 기척을 최대한 감춘 채 천빈에게 들키지 않도록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계속해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갔을까.

그들은 짙은 피 냄새를 느끼고서 멈추어 섰다.

그림자들은 시선을 빠르게 교환했다. 약간 팔다리를 다쳐서 나올 수 있는 피 냄새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황급히 속력을 빠르게 내어 천빈이 앞서 춤추듯 걸어간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 있는 건 시체였다. 심장이 뜯겨 있는 시체.

그 부근에서 흘러나온 피가 사방으로 번져가며 여름날 밤, 짙은 피 냄새를 풍기게 된 것이다.

그림자들은 본능적인 거부감에 치를 떨었다.

“천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자 중 가장 우두머리 격인 이는 앞으로 나서서 쓰러져 죽어 있는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에 온수연. 그다음에는 태감 둘이더니. 이번에는 궁녀였다.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는 사람들.

“흩어져서 천빈을 찾아라. 현장에서 잡아서 데려가야 한다.”

우두머리 부하는 명령을 내리고서 굽혔던 허리를 펼쳤다.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하는 궁녀를 내버려두고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으악!”

그곳엔 아까 그의 명령을 받던 부하가 똑같이 심장이 뜯긴 채 누워 있었다.

우두머리 부하는 뒷걸음질 치다가 고개를 빠르게 젓고 상황을 살폈다.

“대체 이게 무슨…….”

마을 다 끝맺기도 전에 이번엔 다른 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쪽으로 가보자 또 다른 부하 역시 심장이 사라진 채 누워 있었다.

“!”

우두머리 부하는 물론 다른 부하들까지 놀라서 한곳에 모여들었다.

“천, 천빈이 아닌 거 같습니다.”

“움직임이…….”

움직이는 이는 보이지 않는데 죽어 나가는 이만 있다.

부하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무기를 들어 올린 채 상황을 주시했다.

귀신에 홀린 듯 상황이 섬뜩하기만 했다.

그러다 그들은 보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입가에 피를 묻히고 선 그것을.

“대, 대장, 대장, 저분은……!”

그때.

“무슨 일입니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골목 너머에서 들려오더니,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등롱불을 든 사람들인 듯 옆 골목 즈음에서 아른한 빛이 보였다.

여러 사람의 소리와 함께 빛이 다가오자, 몸을 숨긴 짐승처럼 그들을 지켜보던 ‘그것’도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곧 여러 개의 등롱 빛이 멀리서부터 다가왔다.

다가온 사람은 기몽 장군과 휘하의 부하들이었다.

기몽 장군은 그들의 뒤편으로 보이는 쓰러진 사람들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무슨 상황입니까.”

* * *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마마.”

귀자와 둘이서 검은 피풍의를 눌러쓰고 황후가 보낸 사람들을 목표한 장소로 보내다가, 먼저 내 처소로 돌아와 수박을 먹고 있을 때였다.

조금 늦게 돌아온 귀자는 피풍의를 내게 돌려주고서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오늘은 고궐이 나타나지 않았어?”

심지어 수박 하나를 내밀자 그는 치를 떨며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왜 그래?”

정말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묻자, 귀자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황후가 붙인 사람들을 장공주님 처소 부근으로 데려갔습니다.”

고궐이 장공주를 위해서 사람들을 사냥한다면 장공주 처소 부근에서 할 거라고 생각했다.

장공주가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 그쪽에서 사냥을 하고 시체는 비연궁에 가져다 두는 거라고.

그래서 장공주 처소 인근으로 유도해 데려가 보라 한 건데.

“그게 왜? 아무 일이 없으면 그자들이 허탕 치게 둬도 좋으니 그냥 돌아오라 했잖아.”

“일이 있긴 있었습니다. 그자들이 죽은 궁녀를 발견하고, 그자들 중 몇몇도 죽었으니까요.”

“기몽은?”

“제때 나타나 주었습니다. 마마께서 직접 함정을 파고 그자들을 잡으려 하신다고, 말려도 안 듣는다고 도와달라고 하니 와 주었습니다.”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범인은 잡지 못했습니다.”

“고궐을 놓쳤어?”

“그게…….”

“왜 그래?”

귀자의 안색이 촛불을 바로 옆에서 받는데도 창백한 티가 났다.

“얼핏 장공주 전하를 뵌 것 같습니다.”

“!”

* * *

날이 밝고 평소처럼 아침이 찾아왔으나 분위기는 몹시 어수선했다.

이번엔 사람 여럿이 동시에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한숨도 잠들지 못한 채 침상에 누워 귀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귀자는 장공주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얼핏 본 장공주의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했어. 게다가 몹시 빠르게 움직였다고…….

그럼 고궐이 나서서 장공주의 몸이 무너져가는 걸 고쳐준 게 아니라, 장공주가 스스로 고치고 다닌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장공주는 자기가 죽인 이들의 시체를 내게 버렸지? 내가 자기 팔을 빼서……는 아닐 텐데.

게다가 장공주가 범인이라면 내 방에 자주 찾아와서 몸이 약해질 때와 강해질 때가 언제인지 굳이 보여주려 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내가 보았던 그 무공 실력 뛰어나던 남자는? 그자가 지나간 곳에 피 웅덩이……?

‘아!’

장공주가 죽이면 고궐이 시체를 처리한 거 아니야?

장공주, 안색이 안 좋아질 즈음엔 늘 정신이 멍하다 했어.

설마 장공주.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이성이 사라지는 건가? 그래서 뒤처리를 고궐이?

* * *

“그게 무슨 소리이냐.”

서재로 조심스럽게 찾아온 기몽이 은밀히 전한 말에 월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황후 마마께선 온 소저와 태감 둘을 죽인 데 천빈 마마께서 관련 있다 확신하셨답니다. 이에 천빈 마마께 사람을 붙여 두었고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천빈도 눈치챘고.”

“천빈 마마께선 황후 마마의 사람들이 진범을 잡게 하고 싶으셨다 합니다. 그래서 폐하께서 천빈 마마께 내려주신 태감에게 천빈 마마의 겉옷을 걸치게 하고서, 다음 살인사건이 일어날 법한 곳으로 유인하게 하셨고요. 그 태감이 제게도 이 일을 미리 알려주어서, 저도 혹시 위험할까 싶어 현장으로 바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럿이 죽은 후였지요. 조사를 위해 황후 마마께서 천빈 마마께 붙인 사람들은 증인 겸 용의자로 모두 수사청에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그자들이 말하기론…….”

“사람들을 죽인 게 짐의 누이다?”

기몽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데려왔을 때부터 각기 다른 방에 가둬 수사하고 있으나, 아예 못 본 이들 외에는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장공주 전하께서 그 자리에 계셨고 손과 입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요.”

“일단 이 일은 함구하고.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라.”

“예.”

기몽을 내보낸 월요는 초조하게 서재 밖으로 나가 가마에 올라탔다.

“누이, 아니 천빈에게 가자.”

태감들이 가마를 운반하는 동안 월요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누군가 천빈을 음해하려 한단 건 알았지만 여기서 장공주에 관한 일이 나올 줄은…….

하지만 헛소리를 들었다 여기고 넘기기엔 목격자 수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걸리는 점도 있었다. 장공주가 부활한 데 따른 부작용. 천빈이 여러 번 말했던 이야기.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 * *

입맛이 나지 않아 멍하게 서책을 펼친 채 앉아 있기만 할 때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밖에서 오 공공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대답을 하기도 전에 떡돌이가 들이닥쳤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 아무래도 기몽에게 이야기를 죄다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원웅과 부성에게 눈짓으로 나가라 신호하고서 떡돌이를 방 안쪽으로 끌었다.

초조한 얼굴로 들어온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쥐고서 이불만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상태로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너도…… 들었느냐?”

“귀자한테 들었어. 현장에서 장공주 전하를 보았다고.”

떡돌이는 이불을 꽉 잡고서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했다.

그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누이의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누이는 피를 무서워해 사냥대회조차 보러 가지 않는 사람인데.”

“…….”

나를 붙잡고 울지도 모른다 여겼지만 떡돌이는 울지 않았다. 혼자 이불을 붙잡고서 식은땀만 흘릴 뿐.

그 모습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알려주었다.

“내 생각엔 장공주 전하는 몸이 나빠질 때 의식이 사라지시는 거 같아. 그래서 뒤처리를 안 하고 그냥 떠나시고, 고궐이 그 처리를 비연궁에 하고 가는 거 같고.”

“천빈. 천년비.”

“응…….”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저하고 있자니, 월요가 이불에서 손을 떼고 내 손을 꽉 쥐고서 말했다.

“타천천 그자와 약속을 잡아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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