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약한 모습
“이게 무슨 소리냐?”
놀라 외친 황후는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더욱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 뒤를 따라온 후궁들도 크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황, 황후 마마. 황후 마마.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니에요.”
끔찍한 광경이었다.
아직 의식이 없는 장공주의 소매가 축 늘어져 있고, 황후의 상궁 영영은 팔 한 짝을 안고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팔은 장공주의 팔인 듯했는데, 영영은 그걸 내려두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황후 마마!”
“황후 마마!”
충격받은 황후가 비틀하자 황급히 후궁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황후가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자 혜비가 그녀를 긴 의자에 앉히며 호통쳤다.
“어떻게 된 일이냐. 상궁, 그대가 왜 공주 전하의 팔을 가지고 있는가!”
영영은 황급히 팔을 장공주의 발치에 내려놓고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억울합니다, 혜비 마마. 소신은 그저 약을 먹여야 해서 공주 전하의 팔을 잡고 상체를 일으켜드렸을 뿐입니다.”
“부축을 하는데 팔이 왜 빠진단 말이냐!”
영영이 울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놀랍고 비통해 보였다.
“혜비 마마, 황후 마마, 주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소신이 미치지 않고서야 장공주 전하의 팔을 세게 잡아당길 리가 있겠습니까!”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난 황후가 안비의 부축을 받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마를 짚고서 곤경에 빠진 자신의 충격을 바라보았다.
영영은 정신이 반쯤 나간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황후는 뒤늦게 깨닫고 중얼거렸다.
“함정이다.”
“예?”
안비를 비롯해 후궁들이 황후를 돌아보았다.
“함정이라니요?”
“사람 팔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적어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영이 자연스럽게 잡아당겨 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부축한 것만으로 팔이 빠질 정도라면…….”
승빈이 외쳤다.
“천빈이 이미 뭔가를 해둔 거로군요!”
황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건 심증일 뿐,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다.
“장공주 전하께서 깨어나셨을 때 여쭈어보면…….”
“공주 전하께선 내내 기절해 계셨는데 어찌 아시겠나. 심지어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리시는데.”
황후는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은 최측근을 보며 마음이 아파왔다.
이대로 그냥 덮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황후궁 사람들만 있다면 모를까.
이곳엔 다른 후궁들의 궁인들도 많지 않은가.
게다가 팔을 끼우기 위해 의원도 불러야 한다. 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었다.
“황후 마마…….”
영영은 울면서 바닥에 엎드렸다.
* * *
장공주가 깨어났을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의 처소였다.
깨어난 장공주는 자신의 팔에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보고 당황했고, 곁에 있던 태후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네가 쓰러져서 황후궁에서 널 데려갔는데, 황후의 상궁이 네게 약을 먹이려다가 팔을 세게 잡아당겨 네 팔이 빠졌단다.”
“아, 제 팔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조심성 없이 사람 팔을 빼다니. 네 몸이 약해진 건 모두가 아는 일 아니냐. 조심했어야지.”
궁녀들에게 물어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장공주는 어이가 없고 허탈해서 침상 기둥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황후 마마께선 천빈이 전하께 이상한 걸 먹였다고 의심하고 계세요. 저희도 곁에 있었지만, 정말로 영영이 세게 잡아당기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심증뿐인 데다 영영이 전하께 해 끼치는 건 수많은 사람이 보았으니 처벌하지 않으실 수 없었지요.”
“그럼 황후 마마의 상궁은?”
“지금 수사방에 끌려갔답니다. 황후 마마께서 꼭 천빈의 짓이란 걸 밝혀서 빼내 주겠다 약조하셨지만…… 그러기까진 좀 고생하겠지요.”
“천빈은 내게 이상한 걸 먹이지 않았다. 그 궁녀도 죄가 없어. 내 몸이 약한 탓이지.”
장공주의 파리한 얼굴을 본 궁녀들은 번갈아 그녀를 위로했지만, 장공주는 고개를 젓고 침상에 도로 누워버렸다.
그녀는 눈을 꽉 감아버렸다. 아무것도 보기 싫다는 듯.
* * *
장공주의 지붕 위에 누워 이야기를 들은 고궐은 동시에 감았던 눈을 떴다.
‘좀 더 타천천의 곁에 있어야 했나.’
하지만 장공주는 죽은 지 이미 오래라,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 가능성이 빠르게 낮아졌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예 그녀를 되살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고궐은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을까. 고궐은 아래에서 나는 아주 희미한 인기척에 눈을 번쩍 떴다.
‘천빈?’
변복하고 멋대로 밖을 쏘다니고 무공을 사용해 그를 협박하던 그 괴상한 후궁?
보통 사람의 인기척은 아니었다. 그조차 조금만 방심해도 놓칠 만큼 작은 인기척이니.
고궐은 몸을 조금 일으키고서 지붕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래를 본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공주?’
인기척을 거의 내지 않고 나가는 건 장공주였다.
* * *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장공주 전하 팔을 빼버리다니.”
“본인은 억울하다고, 그냥 부축하려 했는데 빠졌다고 주장하나 봐요. 제정신인가. 누가 그 말을 믿어요?”
때론 못 믿을 일이 많긴 하지. 원웅과 부성이 아침에 전해준 소식은 아주 놀랍기 그지없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저 이야기를 들으니 참 기분이 이래저래 이상하구먼.
영영은 진짜 억울할 거야.
하지만 장공주가 자연적으로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 몸이 강시가 되어 살아 돌아온 긴 비밀로 부쳐야 하니,
‘원래 잘 빠지는 몸이다’라고 말하기도 그렇겠지.
내 경우엔 운 좋게도 나와 장공주, 황제 셋만 있을 때 벌어져서 떡돌이가 잘 무마해 줬지만…….
이거 참. 고궐 그놈은 장공주를 부활시킬 거면 몸이라도 좀 잘 부활시키던가.
동시에 장공주가 부작용에 시달릴수록 내 마음 한편에도 불안감이 커져간다.
나는? 나는 괜찮은가?
“…….”
“마마?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야.”
* * *
나는 방 안에만 있으니 몸이 찌뿌둥하단 핑계를 대고서 밖으로 나왔다.
산책을 핑계로 좀 돌아다니면서, 지금 장공주에게 가는 게 좋을지 아닐지 혼자 좀 생각해 볼 셈이었다.
마음이 결정되면 장공주에게 가든가 내 방에 돌아가든가 정해야지.
그런데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다니다 보니 수상해 보이는 인간 하나가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 구석진 곳을 전력 질주하는 게 아닌가.
경공을 써서 뛰어가는 걸 보니 무공을 익힌 사람이다.
‘혹시 고궐인가?’
속도가 제법 빠른 데다 낮인데도 사람들 시선이 안 닿는 부분만 골라서 움직이는 모습이 숨어다니는 데 전문가 같은데.
“마마, 왜 그러세요?”
“저기 이상한 사람이 보였어.”
“이상한 사람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혹시나 싶은지 귀자도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붙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 바닥엔 피가 떨어져 있었다. 그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얼른 가요, 마마.”
무서운지 원웅이 내 팔을 다른 쪽으로 끌었다.
조금 고민하다가 나는 궁녀들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서 귀자에게 지시했다.
“우리는 돌아갈 테니 넌 폐하께 이 일을 말씀드려라.”
“네, 마마.”
* * *
그 이상한 피를 발견한 일은 며칠이 지나자 내 머릿속에서 흐릿해졌고, 궁녀들 역시도 안정을 찾아갔다.
장공주는 그 일 이후 계속해 두문불출하고 있다 했고, 황후도 자기 상궁이 수사방에 들어가서인지 문안마저 거부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온수연에 대한 일도 잊혔다.
그런데 어느 날 태교용으로 시를 읽으면서 침상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뭐지?’
꽤 요란한 비명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나가려는데, 다 나가기도 전에원웅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황급히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리는 게 아닌가.
“마마, 보지 않는 게 낫습니다.”
“왜 그래?”
“밖에 누가 시체를 버려두고 갔어요.”
“시체? 무슨 소리야?”
나는 원웅이 막는 걸 물리고서 시체가 발견되었단 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나는 비연궁을 혼자서 사용하는데, 누가 여기까지 와서 시체를 버리고 갔단 말인가.
누가 범인이든 악의적이었다. 여기까지 굳이 온 거 보니.
범인이 악의적으로 여기에 시체를 버렸단 예감은 꼭 맞아떨어졌다. 시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온수연이었다. 심장이 없는 온수연.
* * *
“반숙아!”
침상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자니, 급하게 문이 열리고 떡돌이가 들어왔다.
나는 읽던 책을 내리고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여. 떡돌이.”
떡돌이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코도 멀쩡하고 눈도 멀쩡하고 입도 멀쩡해. 왜 그래?”
그 태도에 의아해 묻자. 떡돌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내 옆에 앉으며 인상을 썼다.
“네가 시체를 보았다고 해서 놀라 왔더니.”
“내가 시체를 한두 개 본 것도 아니고.”
“……그렇군. 듣고 보니 그렇긴 하구나.”
“떡돌이는 마음이 여리네.”
옆으로 옮겨 앉으며 자리를 만들어주자 떡돌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 반응을 보니 놀라 달려온 네가 멍청해진 기분이다.”
“아니야, 폐하가 바로 와줘서 기뻐.”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떡돌이가 내가 읽는 서책을 보기에 그에게 마음껏 보라고 책을 건넸다.
떡돌이는 잠깐 서책 앞뒤를 살폈지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닌지 옆에 치워 두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보고 받은 그대로일걸. 나도 몰라. 갑자기 밖에서 비명을 질렀어. 나가보니 온수연이 죽어 있었고.”
“온수연이 여기에 왜?”
어깨를 으쓱했다.
“나야 모르지. 폐하는 몰라? 온수연한테 사람을 붙여두지 않았어? 입을 여나 안 여나 확인하려고? 그 사람은 온수연이 여기에 왜 온 건지 봤대?”
“죽었다.”
“죽었다고?”
고개를 끄덕인 떡돌이의 인상이 굳었다.
“그자는 어디서?”
“온수연의 집에서.”
“왜?”
“글쎄. 병사나 사고는 아니었지.”
“그럼 누가 그자를 죽이고 온수연을 죽여서 내 처소에 놓아둔 거야? 아니…… 하지만 그렇다기엔 온수연 시체가 너무 조용히 왔는데.”
“……이 일은 짐이 생각할 테니 너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반숙아.”
“내 집 앞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그래도 시체 생각은 안 하는 게 낫다.”
그가 가볍게 내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떡돌이가 무어라 더 말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문밖에서 “폐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곧 오 공공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오더니 다급하게 알렸다.
“황후 마마께서 온 소저 소식을 듣고 혼절하셨다 합니다.”
* * *
월요가 황후궁 안에 들어가자 그곳 궁인들의 눈시울이 죄다 붉어졌다.
“황후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월요는 황후의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황후는 장막이 거두어진 침상에 누워 있었다.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곁에는 영영을 대신해 황후를 모시는 다른 궁녀가 훌쩍이고 있었다.
“폐하.”
월요는 미간을 찌푸리고서 침상 가까이 걸어갔다.
“어의는?”
“다녀가셨습니다. 직접 약을 조제하시겠다고 지금은 의방으로 돌아가셨고요.”
“뭐라 하더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셨다 합니다. 최근에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이 많으셨으니까요.”
월요는 파리하다 못해 아예 핏줄 너머로 핏줄이 들여다보이는 황후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온수연은 철없이 사고를 치지, 사가에서부터 데려온 영영은 장공주 일로 끌려갔지, 이 와중에 온수연이 죽어 발견되었으니 여러 가지로 힘들긴 했을 것이다.
영영이 장공주 일과 관련이 없단 걸 알다 보니 월요도 이 부분이 신경 쓰였다.
특히 황후는 영영에게 많은 걸 의지했으니까.
적당한 핑계를 대어서 영영은 꺼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고 있자니, 황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너무 울어서 이미 눈가가 퉁퉁 부은 황후는 황제를 보자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폐하.”
황후가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월요는 의자를 가져오게 해 곁에 앉고서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어의가 약을 가져온다고 하니 더 자도록 하시오.”
황후를 사랑하는 건 아니었으나 어쨌건 그녀는 오랫동안 그의 옆에서 부인으로 있어 준 이였다.
게다가 연금에 관한 일을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입을 다물 정도로 그와 신의가 있었다.
이 때문에 황제도 황후와 시침을 하진 않아도, 의무인 날엔 꼭 그녀를 찾아가 밤새 얘기를 나누고 오는 게 아니던가.
이런 모습을 보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
황후는 그런 월요를 퀭한 눈으로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연이가 제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서신이라니?”
“천빈이 궁으로 와서 자신에게 제대로 사과하라 했답니다. 그러면 폐하께 용서를 청해줄 거라고요. 자존심이 상해도 따르는 게 나을지, 제게 물어보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죽은 채 발견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