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염려
“아니 이유가 있어서 변태라 부르는 건 아니고. 그냥 맨날 웃어서. 걘 맞아도 웃거든. 그래서.”
떡돌이 눈이 생선 가시처럼 뾰족해진다.
“진짜야. 그 변, 아니, 타천천이 왜 날 도운 건지는 나도 몰라. 알던 사이긴 한데. 그리 사이좋지도 않았거든.”
나는 다시 부정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사실이다.
오히려 이전에 나와 타천천 사이를 떠올리면 타천천이 나를 구해준 게 신기할 정도이지,
떡돌이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조용해졌고, 나는 혼자서 생선 가시를 발라 먹으면서 그를 곁눈질했다.
그러다가 떡돌이는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그자를 잡으면. 네게 해로울까.”
“꼭 그건 아닌데. 혼령술에 대해 잘 아는 게 그자뿐이니 살아 있는 게 좋긴 해. 어떤 부작용이 올지도 모르고.”
떡돌이 표정이 어두워진다.
젠장. 괜히 말했나? 사하비단은 떡돌이에게 있어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나쁜 단체인데.
혹시 나 때문에 잡고 싶어도 못 잡게 된다거나, 그러려나?
“그자는 되도록 생포해야겠군.”
일단 못 잡는 건 아닌가 봐. 역시. 떡돌이가 그러면 그렇지.
대체 황후는 어딜 보고서 떡돌이가 내 요구대로 움직여준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떡돌이는 늘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아, 폐하.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무엇이?”
“장공주 전하 말이야.”
“고궐 건이라면 계속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자가 없어.”
당연하지. 그자가 그래 봬도 무림 악적 넷 중 하나인걸.
그자에 대한 그간 소문을 떠올리면, 여기서 사고 안 치고 가만히 숨어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난 고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고궐은 타천천한테서 혼령술 방법을 훔쳐서 장공주 전하를 부활시킨 거잖아. 죽은 지 오래된 몸인 데다 훔쳐 배운 거라서 장공주 전하 몸이 무너질지도 모른대.”
“몸이 무너지다니?”
“이것도 확실하진 않아. 어쨌든 이래저래 타천천은 안 죽이는 게 나아.”
* * *
월요는 잠든 천빈이 쌕쌕 잘 자는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그만 코, 축 처진 눈썹, 꼭 닫은 입술, 발그레한 뺨…… 이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그는 그녀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황궁 사람을 아무도 믿지 못하는 그에게 나타난, 무림에서 뚝 떨어진 이 여인의 존재는 가끔 갑자기 사라질 환상 같아서 불안했다.
사실 월요는 장공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천년비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너는? 이라고. 너는 괜찮은 거냐고.
그런데 이건 입 밖에 꺼내기도 두려워서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다음날.
월요는 잠든 천빈을 깨우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빠져나와서 겉옷만 걸치고 나갔다.
자신의 침실에 돌아간 후에야 씻고 의복을 갈아입은 그는 식사를 간략하게 마치고 집무실로 가서 지시했다.
“오원요. 흑합과 기몽을 불러와라.”
“예, 폐하.”
월요가 상소문을 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흑합과 기몽이 들어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둘 다 얼굴이 좀 부어 있었으나, 의욕은 가득해 보였다.
황제는 두 사람이 서서 인사 올리길 기다렸다가, 둘이 나란히 인사를 올리자마자 물었다.
“정파인 조사는. 어떻게 되었지?”
월요는 전에 무림인들이 사하비단을 꺼리면서도 황실과 관의 개입이 두려워서 사하비단을 감싸는 걸 막기 위해 사하비단을 칠 만한 정파인을 조사해오라 지시했다.
이 답을 묻는 것이었다.
기몽은 안 그래도 슬슬 답변을 준비하던 중이었기에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근 무림에, 고수 천년비와 대결이 될 만큼 강한 이가 나타났다 합니다. 개원과도 친하다니 정의감도 있을 겁니다. 개원을 쓰기 싫으시다면 그자가 어떨까요?”
말을 마친 기몽은 흑합을 거만하게 한번 보고 말을 이었다.
“천반숙이라 합니다.”
그러나 노렸던 흑합은 덤덤했고, 오히려 천반숙이라는 이름에 놀란 월요가 붓을 들다가 손을 삐끗해서 글씨가 촥 번졌다.
괜히 성질이 난 월요가 기몽을 쳐다보자, 기몽은 황제가 왜 저러는가 의아해서 눈을 끔뻑였다.
황제는 기몽을 무시하고 이번에는 흑합에게 물었다.
“너는?”
흑합은 기몽이 무시당한 게 기뻤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하비단 자체가 큰 문파는 아니지만, 관이 개입하는 걸 무림인들이 뭉쳐서 막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커다란 문파나 집단, 예를 들어 무림맹 같은 곳에 힘을 실어준다면 오히려 그쪽의 힘이 과해져 무도한 생각을 할까 염려됩니다. 해서 신은, 역시 가장 적당한 건 개원이 있는 정영문 같습니다.”
월요가 눈살을 찌푸렸고 기몽이 타박했다.
“폐하께서 그자는 싫으시다지 않나.”
“정영문에 사람이 그자뿐이진 않습니다, 폐하.”
월요는 차마 천빈의 전 연인이 개원이라 얽히기 싫단 말을 할 수 없어 조용히 숨만 골랐다.
차마 나랏일에 사감을 섞는 중이라 알리긴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기몽과 흑합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자니, 월요는 한참 더 생각하다가 어렵게 지시했다.
“좋다. 그럼 정영문을 불러보지.”
흑합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으나, 반대로 기몽은 얼굴이 썩었다.
“하지만 이곳에 대표로 오는 건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데.”
월요도 속은 기몽만큼 썩었다. 그러나 불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을 시켜도 천빈은 회임도 하였으니, 다시 무림에 나가 그들과 싸울 일은 없다.
반면 당장 정영문에겐 일을 맡겨야 한다.
그러니 정영문에서 사람이 올 때만 천빈이 이 근처에 못 오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월요는 억지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상념에 젖어 붓을 쥐는 황제의 손등을, 멀지 않은 곳에서 황제가 나누는 이런저런 대화를 기록하던 비원이 보고 흠칫했다.
‘상처가 없다?’
* * *
큰일이다. 장공주 몸이 언제 부서질지 모른단 생각을 해서인가?
같이 나들이하러 나왔는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제대로 놀 수가 없다.
게다가 신경 쓰고 봐서인가. 자꾸 장공주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이를 어쩌지?
“왜 자꾸 그렇게 쳐다보는가?”
“안색이 좀 창백한 거 같아요, 전하.”
“내가?”
“네. 안에 들어가서 쉬는 게 낫겠어요.”
“정말 괜찮은데.”
“제가 쉬고 싶어서 그래요.”
결국 나는 장공주가 감당이 안 되어서, 일부러 내가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서 평상에 앉혔다.
그러고서 장공주에게 직접 부채질을 해주자, 장공주는 얼굴이 빨개져서 손을 휘저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더위 먹을까 봐 그래요, 전하.”
“더위는 회임한 천빈이 조심해야지. 나는 정말 괜찮네.”
“그래도요.”
그러다 장공주가 원웅이 잘라온 수박을 먹으려다 떨어뜨리기에, 나는 얼른 수박도 허공에서 잡아채주었다.
“괜찮으세요?”
“어…… 천빈, 자네 참 손이 빠르군.”
그러고서 장공주가 떨어뜨리려 했던 수박을 들면서 “이거 무겁죠? 드실 동안 제가 들고 있을까요?”라고 묻자, 장공주는 얼굴이 더 붉어졌다.
“어? 아니, 그렇진 않네. 그리고 정말 괜찮아. 그렇게 안 해도.”
원웅은 이를 지켜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마마. 장공주 전하를 아기처럼 대하시잖아요. 미리 연습하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팔이 떨어질까 봐 그러지!
하지만 장공주가 머쓱하게 웃는 걸 보니 내가 너무 과하게 챙겼나 싶기도 하다.
나는 수박을 장공주에게 도로 건네고서 걱정스럽게 그녀를 살폈다.
장공주 몸이 갑자기 햇살 받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릴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한데.
* * *
그러나 한 번 나쁘게 보고 나면 다 나쁘게 보인다고, 장공주의 측근 궁녀들은 천빈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다 가식적으로 보였다.
“전에는 없던 죄를 뒤집어씌워서 전하를 몰아가려 하더니. 안 통하니까 방법을 바꿨나 봐.”
“정말 보고만 있어도 짜증 나는 얼굴이라니까?”
“태후 마마가 장공주 전하를 어여삐 여기시고 황제 폐하도 공주 전하와 사이가 좋으니까 일부러 저러는 거야. 저래야지 나중에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황후 자리를 노리는 거 아니야?”
“말조심해.”
“하지만 정말 그럴 만한 여자야. 며칠 전엔 황후 마마랑 같은 가문이란 이유로 가엾은 소저 하나 인생을 박살 냈잖아. 그걸 꼬투리 잡아서 황후 마마한테도 막 뭐라고 했대. 황후 마마가 돌아가는 길에 우는 걸 본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야.”
두 궁녀는 자기들끼리 천빈이 가식적이라고 마구 욕했다.
그러다 돌아가는 길. 장공주가 두 궁녀의 부축을 받고서 가다가 갑자기 풀썩 쓰러지자, 두 궁녀는 비명을 질렀다.
마침 근처에 있던 황후의 궁녀들이 소란을 듣고 와서 이들을 황후궁에 들여보내 주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황후는 놀라서 서책을 보다가 달려 나왔다.
“장공주?”
실려 온 사람이 장공주란 걸 확인한 황후는 더욱 놀라서 장공주와 궁녀들을 번갈아 보다가 황급히 외쳤다.
“빨리 어의를!”
“네!”
몇몇 궁인들이 어의를 부르러 뛰어가자, 황후는 얼른 침실 안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이쪽으로.”
황후는 장공주를 자기 침상에 눕게 했다.
그러고는 궁녀들이 의식 없는 장공주를 침상에 눕히자, 두 궁녀에게 차갑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여름이라…….”
유월은 장공주가 잠시 더위를 먹은 것 같다고 넘기기 위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치월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말았다.
“공주 전하께서는 방금 전 천빈 마마와 식사하셨습니다, 황후 마마.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쓰러지시다니. 말도 안 되는 걱정이지만, 솔직히 걱정이 됩니다,”
치월이 흐느끼자, 황후는 표정이 굳었다.
유월 역시 얼굴이 새파래졌으나, 치월은 이미 죄다 고해바친 후였다.
황후는 가까스로 호통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공주가 천빈과 식사하고 쓰러진 거라니?”
유월은 치월을 말리려 했지만 치월은 무릎까지 꿇어버렸다.
“송구하옵니다, 황후 마마. 원래 두 분은 산책하고 있었는데, 천빈 마마께서 직접 공주 전하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들어가셨습니다.”
황후는 떨면서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치월의 정수리를 유심히 보다가 일어서라 손짓했다.
그 사이, 어느새 어의가 도착했다.
황후는 어의가 장공주를 진맥하는 사이, 자신의 측근들에게 지시해 혜비와 규빈, 승빈, 안비, 우 답응을 불러오게 했다.
그러고서 어의에게 돌아가자, 어의는 장공주 진맥을 막 끝내고 진료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탕 궁의. 장공주의 증세는 어떤가? 무슨 일로 쓰러진 거지?”
어의는 얼른 두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워낙 기운이 약하신 데다 최근 몸도 약해지셔서 쓰러지신 모양입니다. 별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상한 걸 먹진 않았고?‘
“아,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체기도 좀 있으시고, 소화도 잘되지 않으시는 것 같으니까요.”
“독 종류는?”
“아닙니다.”
어의가 물러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가 부른 후궁들이 모였다.
황후는 그들이 장공주를 한 번씩 보게 한 뒤, 따로 데리고 가 지시했다.
“장공주의 두 궁녀가 말하길, 천빈이 장공주에게 이상한 걸 먹였다고 한다. 어의는 뭘 잘못 먹였을 수는 있지만 독은 아니라 하고. 하지만 궁녀들은 장공주가 천빈이 건넨 걸 먹고 쓰러진 거라 주장하고 있어.”
후궁들은 사색이 되었다.
“그러면 폐하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나요?”
“말씀드리면? 폐하께선 천빈 일이라면 무조건 편을 드실 테고. 오히려 우리가 모함을 한다고 몰아가실 건데?”
“그래도…….”
“천빈이 더 악행 저지르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러니 다들 방법을 강구해 보아라.”
그런데 말이 끝나는 순간. 안쪽에서 “으악! 공주 전하! 팔이!”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