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참 참 참
황후는 온수연이 태안루 주인 사내에 대해 긴 수식어를 붙이는 걸 듣자마자, 그를 연모하는 건 천빈이 아니라 이 등신 같은 사촌이란 걸 알아차렸다.
“온수연!”
황후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치자, 온수연은 딸꾹질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마, 마마…….”
“설마 다루의 사내를 연모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에요.”
“넌 저번에도 어느 노비가 뽀얀 부엉이처럼 생겼다고 반해서 난리 친 적이 있었지. 그전에는 어느 집안 호위가 듬직하고 매력적이라면서 난리 친 적이 있었어.”
“이번엔 절대 아니에요, 마마!”
온수연이 서둘러 두 손을 내저었으나, 이미 황후는 의심스럽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결국 온수연은 ‘흐어엉’ 울음을 터트리며 이실직고했다.
“너무 잘생겨서 좀 눈여겨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사내는 천빈이랑 서로 희롱하며 놀고 있었다고요!”
한숨을 내쉰 황후는 관자놀이를 누르고서 손을 내저었다.
“돌려보내라.”
“네, 마마.”
황후의 측근 궁녀인 영영은 힘을 주어 온수연을 부축해주었으나, 그 손길에는 짜증스러운 힘이 들어가 있었다.
황후는 아무리 천빈에게 화가 나도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인내하는데, 이 철부지 소저 때문에 황후까지 난처한 입장에 처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자 몹시 화가 났다.
“온수연.”
“네에…….”
“당분간 외출 금지다.”
“마마!”
“데리고 나가.”
영영이 온수연을 데리고 나가자 황후는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궁녀가 황후의 앞에 재빨리 방금 막 끓여 달콤한 향을 내는 차를 가져왔다.
황후는 차를 마시며 속을 조금 가라앉히다가, 영영이 돌아오자 차갑게 지시했다.
“태안루란 곳에 가서 천빈 같은 사람이 그곳을 오갔는지 알아보고 오거라.”
* * *
“눈썹이 처지고 약간 미인상의 여자요? 글쎄요.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나리.”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전 너무 많아서…… 저희 다루는 귀부인 손님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눈썹이 처진 분도 있고 올라간 분도 있죠. 대단한 미인이라면 손꼽히게 보았지만, 약간 미인이라면 많이 봤습니다.”
황후의 명령을 받은 이들은 태안루의 곳곳을 다니며 천빈의 인상착의를 말했지만, 그곳 종업원들은 다들 고개를 기웃거렸다.
대부분은 모르겠다 했고, 몇몇은 여자 손님이 하나둘이 아닌데 어떻게 그 정도 가지고 알아듣냐고 되려 갑갑해 했다.
하지만 황후의 심복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나는 본 거 같은데. 좀 잘 사는 집 소저처럼 차려입고 왔지.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서는 어느 방 안에 들어갔어.”
“두 번이었나 본 거 같은데.”
“귀한 집 소저가 호위도 없이 홀로 다니기에 참 독특하다 생각해서 기억이 납니다.”
종업원과 달리 손님 몇몇은 ‘눈썹이 처진 조금 미인’을 본 적이 있다고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사람과 천빈이 동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보고할 만한 성과이긴 했다.
심복들은 이 일을 영영에게 전하고, 영영은 황후에게 전했다.
황후는 이야기를 듣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수연이가 아주 헛말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종업원들이 모두 다 말을 맞추었단 건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있단 거지. 정말 태안루주와 천빈이 관계가 있긴 있는지도.”
영영은 기쁘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해서 물었다.
“이 일을 폐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마마. 폐하께서 천빈의 실체를 아셔야 해요. 실제로 천빈 배 속 아기가 폐하의 아기씨라 해도, 이런 사실만으로도 의혹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기가 황제를 쏙 빼닮아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설령 진짜 황제의 아기라 해도 태안루주의 아기라고 우기고 보면 그만이다.
일단 의혹을 뿌린 다음, 아기가 황제를 닮았으면 의혹을 접고, 아기가 천빈을 닮았으면 태안루주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바람을 넣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황후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일은 폐하께 알리면 그냥 묻어버리실 거다. 이미 촉비 사건 때 몇 번 천빈을 위해 일을 묻은 전적이 있으시니.”
“그럼 소문을-.”
“소문을 내면 온수연 그 아이가 화를 입겠지.”
황후가 차갑게 말하자, 영영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소인이 실언하였습니다.”
황후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라고 온수연이 예뻐서 보호해주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온수연은 그녀와 같은 온씨 가문 사람이었고, 온 귀인과 달리 먼 친척도 아니었다.
사촌 동생이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는 온수연의 아버지를 퍽 예뻐했다.
온수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문을 위해서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태안루 근처에 사람들을 보내서 천빈이 또 오는지 보아두었다가 현장에서 잡아야 한다. 소란을 일으켜서. 그러면 천빈도 발뺌할 수 없지.”
“예, 마마.”
* * *
얼결에 온수연이 거는 시비에서도 벗어났고, 영빈의 생일로부터도 며칠이 지났다.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지고 있어서, 초여름인데도 이 정도이면 나중에는 얼마나 더워지려나 무서울 정도였다.
나는 회임했기 때문인지 다시 속이 안 좋아져서, 평상에 드러누운 채 궁녀들로부터 부채질만 받았다.
평상 위에는 태후 마마께서 보내준 빙로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빙로는 안에 얼음을 넣어둔 상자인데, 상자에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어서 차가운 기운이 그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평상에 늘어져 있자니, 또다시 나무 어딘가에서 빛이 반짝인다.
비원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부르는 표시.
‘어휴 귀찮게.’
하지만 궁금하긴 해서,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산책 좀 다녀올게.”
“괜찮으시겠어요? 많이 더우시다면서요, 마마.”
“좀 걸어야 체력이 안 떨어지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다음, 나는 궁녀들이 곁에서 함께 다니면 더 덥단 핑계를 대고서 홀로 빛을 낸 나무 근처로 걸어갔다.
나무 위쪽에는 역시나. 비원이 가지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자, 비원은 근처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풀쩍 아래로 뛰어내려 말했다.
“태안루에 누군가 그쪽 뒷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건 저도 모르지요. 하지만 황실 사람입니다. 당분간 그쪽엔 안 오는 게 좋겠습니다.”
비원이 돌아간 뒤.
나는 반 바퀴를 마저 산책한 다음 평상에 다시 앉아서, 혼자 부채질을 하며 그가 전한 말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황실 사람이 내 뒤를 추적한다고? 누가?
* * *
그 질문을 해결하기 전.
그날 밤, 내 방에 들어온 떡돌이가 이렇게 말했다.
“황후가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당분간 몰래 마실 다니는 건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
나는 침상에 누운 채 한 손으로 배를 쓸다가 놀라서 그를 보았다.
내가 몰래 마실 다니는 걸 어떻게 알았데?
당황해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자니, 그가 미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태안루에 누굴 만나러 갔는지 말해주면 더욱 좋고.”
뭐야…… 혹시 태안루에 날 조사하러 돌아다닌 게 떡돌이 부하들이야?
“태안루에 내 뒷조사를 한 사람이 폐하야?”
“뒷조사?”
“누가 내 뒷조사를 했다던대. 그게 폐하야?”
내 질문에 떡돌이는 ‘이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아직은 아닌데.”
“아직은?”
“황후가 이미 움직였나 보군.”
“그럼 아직은 폐하가 아닌 거야?”
“그래.”
떡돌이는 진지하게 대답하고서 이마를 구겼다. 어딘가 불쾌해하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난 온수연이 한 말이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이어서,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황제가 저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자,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혹시…….
“폐하. 폐하도 우리 달걀이 아빠가 다른 사람이라 의심해?”
그런 거라면 정말로 화가 날 것 같다.
만약 떡돌이가 우리 달걀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의심한다면, 나는 떡돌이를 부침개로 만들어버릴 거다.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과 힘이 있는 악적이다.
그러니 넌 대답을 잘해야 할 거야.
내가 흉흉하게 눈을 뜨고 쳐다본 덕일까. 떡돌이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하는 말…….”
“아니라니까. 절대로 그런 오해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 다행이긴 해. 바짝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 내려간다.
그러면 떡돌이가 이 얘기를 꺼낸 건, 그냥 날 조심시키기 위해서인가? 황후가 쳐다보고 있으니 태안루에 가지 말라고?
“하지만 네가 만난 사람이 네 몸 상태와 관련 있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반숙아.”
“!”
안심하자마자 떡돌이 이놈이 나를 뒤집어 버리는구나. 부침개는 그가 아니라 내가 됐네.
긴장해서 쳐다보자, 떡돌이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네 적도 아닐 거다. 누군가 네 뒷조사를 하고 있단 걸 네게 알려줄 정도라면. 그리고 그자는 너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야. 그렇지?”
떡돌이 쟤는 무슨 머리가…….
이 정도쯤 되니 좀 무서워질 정도다.
내가 입을 벌리고 멍하게 놀라 있자, 떡돌이는 슬그머니 내 손을 가져가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반숙아. 짐은 네 편이니 너는 짐의 편 아니냐. 그러니 짐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하도록 해라. 그래야 같이 고민하고 할 수 있지.”
말을 하는 목소리는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럽다. 까끌한 설탕처럼 단 목소리였다.
게다가 얼마나 침착하고 믿음직스러운지.
내 마음을 술렁이게 해서 내가 태안루에가서 만난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보려는 게 틀림없었다.
실제로도 사실대로 말을 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예쁘게 휘어진 떡돌이의 눈동자를 보기 전까지는.
좀 더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민해볼게.”
이후 떡돌이는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나를 한 품에 끌어안고 내 등에 이마를 기대고 잠들었다.
하지만 나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럴 수밖에.
타천천은 사하비단 사람인데, 사하비단은 최근에 여러 가지로 행패를 부리고 다녔잖아.
원래 무림과 관은 서로 안 건드리고 모른 척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을 때 일이지.
사하비단은 최근 내내 멀쩡한 길을 헤집으면서 무림계의 두더지처럼 굴었다.
국가 돈으로 토목공사를 하고 길을 보수하는데, 사하비단이 그걸 다 헤집어 놨으니 떡돌이가 그들을 좋아할 리가 없다.
원래 떡돌이는 무림인을 싫어하기도 하니, 아마 싫어함이 두 배는 됐겠지.
그런 상황에서 타천천이 날 살렸고 지금도 좀 도움을 주지만, 나는 타천천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면 그가 믿어줄까?
게다가 타천천은 내 진짜 몸까지 가지고 있는데…… 혹시 내가 타천천과 한패라고 여기진 않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쉬이 입이 열리지 않는다. 어쩌지?
* * *
다음날 새벽.
고민하느라 늦게 잠이 든 천빈을 두고 먼저 일어나 월요는 의복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비연궁을 벗어나자마자 차갑게 중얼거렸다.
“온씨 가문이 대체 얼마큼 설쳐대는 거냐. 얼마큼 설쳐대기에 아무 지위도 없는 사람이 천빈 앞에서 그따위 막말을 하는 거냐.”
오원요는 면사가 떨리는 걸 보고서 얼른 대답했다.
“황후 마마께서 불러다가 혼내시고 한 달간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 명령하셨다 합니다.”
“외출 금지?”
그러나 황제는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천빈의 행실을 모욕하고 짐의 아이를 엉뚱한 작자 아이로 바꾸려 했는데, 외출 금지? 그 일이 잘못 전해졌으면 천빈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외출 금지? 황후는 짐이 그 정도로 이 일을 넘어가리라 여겼다더냐.”
오원요는 황후가 아니니 황후의 속내는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황제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지라, 그는 억울해도 얼른 눈치껏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괜한 소문이 났다가 천빈 마마의 명성에 해가 갈까 조용히 묻으려 하셨을 겁니다.”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손님이 수십 명이다. 조용히 묻어? 조용히 소문이 퍼지겠지. 되었다. 오늘 회의에서 운월에게 이 소문을 짐에게 고하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