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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98화 (198/283)

##  198화. 부작용

장공주의 팔이 빠지자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장공주 본인은 나보다 더 놀라서 눈이 금붕어만큼 튀어나왔고, 떡돌이 역시 당황해서 들고 있던 떡을 떨어뜨렸다.

“어…… 이게 왜 빠지지……?”

나는 웬만한 일로는 이렇게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팔짱을 끼자마자 사람 손이 빠지는 건 ‘악적 천년비’로 살면서도 겪은 적이 드문지라, 안 놀랄 수가 없었다.

주저하다가 얼결에 장공주의 팔을 도로 들어 끼워주자 뜻밖에도 팔을 다시 붙었다.

“!”

장공주는 더 놀랐고 떡돌이는 아예 의자에서 미끄러졌다. 이 자리에서 여유로운 건 거북빈뿐.

나는 장공주의 팔에서 슬그머니 손을 떼고서 장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니, 장공주가 자기 손을 주섬주섬 움직여보는 게 보였다.

빠졌던 팔의 다섯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반복하는데, 다행히 다 움직이는 듯하다.

그걸 보자 좀 안심이 되면서도 여전히 민망해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아프세요……?”

장공주는 떨떠름해서 대답했다.

“아, 아프진 않네. 아프진 않은데 어…… 신기해서.”

나와 장공주가 멍하게 서로를 보고 있자니, 뒤늦게 황제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장공주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소매 안에서 드러난 팔은 겉보기엔 멀쩡했다.

“아프지 않습니까, 누이?”

“어어, 괜찮아.”

장공주가 얼결에 반말로 대답했으나, 떡돌이는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는 듯 다급히 외쳤다.

“오원요! 어의를 급히 불러오라!”

떡돌이는 장공주를 오른쪽에서 부축했고, 나도 얼른 왼쪽에서 부축했다.

우리는 떡돌이가 아까 앉아서 나를 놀리던 그 의자로 장공주를 데려가 앉혔다.

“아니, 다리는 멀쩡한데…….”

장공주는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으나, 나와 떠돌이는 그녀의 몸이 또 어디 툭 빠지기라도 할까 봐 불안했다.

내가 떡돌이 마음까지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아마 그럴 거다. 표정이.

잠시 뒤,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온 황보 궁의는 황제의 침실 의자에 앉은 장공주를 보자 대번에 사태를 파악하고는 그녀 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신지요, 공주 전하?”

“전체적으로 살펴보라.”

떡돌이는 차마 내가 장공주 팔을 뺐다 끼웠단 말을 하기가 뭐한지 두루뭉술하게 명령했다.

“예, 폐하.”

황보 궁의는 얼른 인사하고서 조심스레 장공주의 맥을 짚고, 팔과 다리, 어깨, 발목 등에 두꺼운 천을 깐 다음 꾹꾹 눌러보았다.

거의 이 각 정도를 그런 후에야 황보 궁의는 의료 도구를 치우고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난처해 보여서, 떡돌이는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러느냐. 누이께 문제라도 있는 거냐.”

“병이 있진 않습니다, 폐하. 하지만 몸 여기저기가 많이 쇠락해지셨습니다. 당장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요.”

찔리는구먼.

“심각한가?”

자기 일인데도 장공주는 차분하게 물었다.

황보 궁의는 장공주를 향해 다시 돌아서서 허리를 조금 숙이고 대답했다.

“몸이 많이 약하십니다. 천빈 마마께서도 맥이 약하신 편인데, 공주 전하께선 그보다 더 심하십니다.”

“…….”

“하지만 몇 년이나 누워……계셨던 걸 생각하면, 사실 지금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것도 기적이지요. 차츰 나아질 겁니다, 전하. 폐하. 마마.”

황보 궁의는 장공주와 떡돌이, 나에게 돌아가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떡돌이는 잠시 착잡한 눈으로 공주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황보 궁의에게 탕약을 지어 오라 지시하고 손을 내저었다.

어의가 나가자 장공주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던 사람이 깨어났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아니면 매일 운동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뭐가 되겠어?”

그러고서 내 쪽을 보기에, 나는 이번에는 얼른 제대로 사과했다.

“아까는 일부러 그런 게 절대로 아니에요, 공주 전하. 지난번 일을 사과드리고 싶어서 친한 척하려 한 건데, 설마 팔이 빠지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

장공주는 ‘팔이 빠진다’는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괜찮네. 천빈이 힘을 주지 않은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게다가 들었잖은가. 내 몸은 부러지기 쉽다고. 그래도 부러진 것보단 빠진 게 낫지. 도로 끼울 수 있으니까.”

“누이!”

장공주의 말에 떡돌이는 그게 말이냐는 듯 불렀지만, 장공주는 나를 보며 그저 위로하듯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은 전혀 가짜 같지 않고 진짜 장공주처럼 보여서, 나는 잠시 멍하게 그녀를 보고 말았다.

“천빈? 그렇게 보면 민망한데.”

“공주 전하. 전하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어?”

“빠졌다 붙은 건 공주 전하의 팔이 아니라 제 마음인가 봐요.”

“응?”

“공주 전하가 방금 전 제 마음에 걸어들어오셨어요.”

“으응? 내가?”

공주의 담대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 중얼거리자, 장공주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떡돌이를 보았고, 떡돌이는 나와 장공주의 손을 떼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누이는 도로 내보내라 천빈. 그 자린 짐의 자리다.”

“아, 나, 벌써 쫓겨나는 건가.”

장공주가 서운한 듯 중얼거리는 말에 떡돌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안도해서 그의 이마에 내 이마를 기댔다.

다행이야. 내가 힘이 너무 세져서 공주 팔을 뽑은 줄 알았는데, 죽었다 깨어난 거라 그런 거라니.

……아니, 다행이 아닌가? 혹시 이게 타천천이 말한 그 부작용 아니야?

* * *

장공주와는 얼결에 사과까지 해버렸지만, 이 일은 타천천과 상의해 보아야겠다.

나는 비원을 통해 타천천을 만나고 싶단 연락을 보내고, 이전처럼 약속을 잡아 태안루주로 그를 찾아갔다.

타천천은 전의 그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 빈손을 보자 서운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꽃다발이 없네, 녕녕?”

“물어볼 게 있어.”

“빠르기도 해라. 밥은 먹고 왔어? 배 안 고파?”

“고, 용화노가 장공주를 살려냈다 했잖아. 내가 장공주 팔짱을 끼니까 힘을 안 줬는데도 팔이 빠지더라고. 놀라서 도로 끼우니까 근데 잘 움직였어.”

“내 말 들리는 거 맞지, 녕녕?”

“어의 말로는 장공주 몸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약하대. 병은 없고. 혹시 이게 부작용이야?”

질문을 연달아 던지고 나니 타천천이 드러누워 자는 척하기 시작했다.

“꽃다발 없고 밥 먹고 왔고 네 말 들었어.”

뒤늦게 그가 한 질문에 다 대답해주자, 타천천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부작용 맞는 거 같은데.”

“왜 그러는 거야? 나는 맥이 약할 뿐 그런 적이 없어. 내 몸에 들어간 사람, 누구지, 하여튼 그 사람도 몸이 튼튼해 보였는데 장공주 몸은 왜 그래?”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을 부활시켰으니까.”

“몇 년 안 됐잖아.”

“몇 년이면 썩지.”

“장공주 몸에 썩은 부분은 없던데. 다 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팔은 아주 멀쩡했다.

타천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강시로 만들면서 여기저기 보수했겠지.”

“좀 더 제대로 만들 수는 없어?”

“어떻게?”

타천천은 내 질문을 듣더니, 탁상에 팔을 괴고서 우습다는 듯 물었다.

“장공주한테 내 이야기를 하고 데려오려고?”

“그건…….”

안 되겠지. 타천천 이야기는 떡돌이에게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쳐다보자, 타천천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래도 괜찮잖아? 내가 생각한 부작용보단 훨씬 나은데, 녕녕.”

“넌 무슨 부작용을 생각했는데?”

타천천은 그 부분은 설명할 마음이 없는 듯 웃기만 하다 물었다.

“정말 배 안 고파?”

* * *

장공주의 팔을 뺐다가 도로 끼워준 이후로 나와 장공주 사이는 부쩍 가까워졌다.

태후 마마에게 놀러 갈 때는 제외하면 늘 혼자 있는다던 장공주는, 사실은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와 사이가 가까워지자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갔다.

내 궁녀들은 영 장공주를 의심스러워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애들은 내가 장공주 팔을 뺐다 끼운 걸 몰라서 그런다.

그걸 알면 원웅과 부성도 감동할 텐데!

어쨌든 장공주는 워낙 밝은 사람이어서 같이 어울리면 즐겁고 좋았다.

게다가 분명 그녀가 가짜인 걸 아는데.

가끔 장공주가 떡돌이와 마주쳐서 둘이 대화하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장공주가 진짜처럼 보여서 이상했다.

나와 달리 장공주는 온갖 옛날 일들을 다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러는 사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영빈의 생일이 가까워졌다.

* * *

“아니, 영빈 생일 얘기를 왜 지금 말해?”

“죄송해요, 마마. 마마께선 늘 영빈 마마 생일에 그냥 가지고 있는 비녀라거나 장신구 같은 걸 선물하셔서요……. 다 되어갈 즈음해서 말씀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원웅과 부성은 영빈의 생일이 나흘 남았을 때 내게 생일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비연궁이 아니라 다른 궁에서 지냈더라면 소란스러운 분위기 때문에라도 미리 알았을 텐데.

궁도 따로 떨어져 있다 보니, 유독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선물을 준비하시려고요, 마마?”

“언제까지 사이 나쁘게 지낼 수는 없잖아.”

‘천소여’와는 사이 나쁜 이복자매라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게는 영빈이 이모가 될 건데.

아이에게 아군은 많은 게 좋지 않을까?

게다가 천소여가 영빈을 냉담하게 대해서 둘이 사이가 나빠진 거라면, 지금은 잘 처신하면 이전보다는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마마께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인품이 고아지시는 거 같아요.”

원웅은 내 말에 감탄했고, 부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선물은 정말 뭐로 한다…….”

열심히 고민한 끝에, 영빈이 좋아하는 색 보석이 여기저기 들어간 머리 장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달리 선물할 게 없는걸.

어쨌든 선물은 준비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 영빈의 생일날이 되었다.

생일날에는 연회가 열렸지만 큰 규모는 아니었다.

황후의 생일이라면 연회가 크겠지만, 후궁은 수가 많지 않은가.

후궁의 생일마다 큰 연회를 여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영빈의 생일 연회는 경치가 좋은 곳에 상을 차려놓고 내명부 사람들이 모이고 손님 몇을 초대해 식사하는 정도였다.

후궁들이 거의 다 모였을 즈음, 황제가 오지 않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오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떡돌이는 오늘도 일이 많기에 나중에 들른다고만 하고, 언제 올지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최대한 가겠지만 못 올 수도 있으니 먼저 연회를 하고 있으라 했다던가.

후궁들은 영빈에게 찾아가 가져온 선물을 내밀었고, 영빈은 평소보다는 좀 더 친절하게 선물을 받았다.

내가 머리 장식을 선물했을 때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는 회임 중이라 시침도 못 들 텐데. 그래도 옆에 폐하를 붙여두는 걸 보면 수완이 대단한가 봐?”

“응, 쑥스럽네.”

“…….”

그런데 한창 즐겁게 먹고 노는 와중이었다.

양옆에 앉은 촉비, 온 귀인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쳐다보자 외부에서 온 여자 손님들이 모여 있는 곳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여자가 나를 힐긋힐긋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어디서 봤더라. 아아! 태안루!

내가 그 여자를 눈치챈 순간.

그 여자가 갑자기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곁에 앉은 사람에게 나를 눈짓하며 무어라 속삭였다.

뭐라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옆 사람은 눈이 커다래져서 나를 덩달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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