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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97화 (197/283)

##  197화. 너를 믿을 수 있어 이젠

떡돌이는 동공이 커다래진 채 거북이를 계속 쳐다보았다.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는 걸 보니, ‘얘가 천빈인가?’ 의심하는 게 분명했다.

이윽고 그가 주위를 마구 둘러보아서, 나는 기둥 사이로 내 옷자락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바싹 움츠렸다.

한참 그러다가 떡돌이는 주저하며 거북이 등껍질을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다.

거북이는 놀랍게도 목을 뒤로 빼는 대신 고개를 들어 떡돌이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나. 황제는 한 손으로 자기 입가를 가렸다.

희미하게 ‘반숙’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했지만, 너무 작아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잠시 그 상태로 시간이 멎은 듯했다. 거북이는 계속 떡돌이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혹시 저 안에 진짜 다른 사람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주웠을 땐 모가지도 안 내밀려 했으면서!’

잠시 후, 떡돌이는 입에서 손을 떼더니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거북이를 집어 들어올렸다.

거북이의 얼굴과 떡돌이의 얼굴이 아주 가까워졌다.

XX, 설마 입 맞추려는 건 아니지? 그 모습에 잠시 비명이 나올 뻔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떡돌이는 거북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듯했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거기에 내 얼굴이 있겠냐. 거북이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지만 떡돌이는 신중하게 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북이가 머리를 더 쭉 빼더니, 황제를 향해 헤엄쳐가려는 것처럼 두 손과 다리를 허우적대기 시작한 것이다.

‘저 거북이, 사람 얼굴을 보잖아?’

자못 거북이란 사람이 코앞에 있으면 머리를 숨겨야 하지 않나?

충격을 받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어쨌든 더 저 얼굴 밝히는 거북이의 행동 때문에, 떡돌이는 오해가 더욱 깊어진 게 분명하다.

그는 슬픈 표정으로 거북이를 바라보더니 품에 거북이를 안고서 문밖을 향해 “오원요!”하고 외쳤다.

‘저 거북이 새끼, 왜 가만히 있지?’

오 공공은 떡돌이 목소리에 어린 슬픔을 눈치챈 건지 다급히 들어 왔다가, 황제가 품에 꼭 안은 거북이를 보고는 넘어질 뻔했다.

그는 벽을 짚고서야 가까스로 균형을 도로 잡더니 떨떠름해서 물었다.

“폐하? 웬 거북이를 안고 계십니까?”

황제는 거북이를 품에서 놓고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받쳐 들고서 오 공공을 향해 보이며 물었다.

“어떤 거 같지?”

오 공공은 눈치가 좋았지만, 사람이 거북이로 변했으리란 짐작은 눈치 가지고는 할 수 없는 법이다.

“아, 혹시 거북이 요리를-.”

“오원요!”

황제가 버럭 소리 지르자 오 공공은 황급히 입을 다물고 무릎을 꿇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해 보였다. 황제는 다시 한번 거북이를 그를 향해 얼굴을 내보이며 물었다.

“오원요. 이 거북이, 누구 닮지 않았느냐?”

“예?”

오 공공은 황제의 뜻이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듯 우물우물하다 찍었다.

“폐하를 닮은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

“천빈을 닮지 않았느냐?”

“천빈 마마요?”

“눈이 맹하고 눈 끝이 내려갔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예쁜데, 자꾸 나한테 달라붙으려 해. 천빈 같다. 아무리 보아도 천빈이야.”

오 공공이 눈을 비볐다. 한참 만에야 그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소신의 눈에는 예쁜 이목구비는커녕 코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한숨을 내쉰 떡돌이는 한 손에 거북이를 올려놓고 물끄러미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오 공공은 자신이 최측근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자책했는지 얼른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천빈 마마를 닮아서 이 거북 공을 데려오신 거로군요. 폐하께선 정말로 천빈 마마를 아끼십니다.”

“아니, 닮아서 데려온 게 아니야. 이 거북이가 천빈이다, 오원요.”

“!”

오 공공의 표정이 다시 불경해졌다. 그의 눈은 누가 봐도 ‘폐하가 제정신이신가?’로 보였다.

떡돌이도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서 도끼눈을 떴다.

오원요는 재차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지만, 볼이 평소보다 부풀어 있는 걸 보니 할 말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아마 다 불만이겠지.

잠시 뒤. 떡돌이는 거북이를 안아 들고서 침상에서 일어났다.

“우선 돌아가자.”

떡돌이가 그렇게 나가 버리니, 그 뒤 내 방은 어떻게 됐을까.

“마마?”

“우리 마마는요?”

“마마!”

“마마?”

황제가 다녀갔는데 갑자기 내가 사라지자, 내 궁녀인 원웅과 부성은 기겁해서 난리가 났다.

두 사람은 펄쩍 뛰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나는 둘이 잠시 나간 사이 천장에서 내려와 야행복을 재빨리 벗고 잠의로 갈아입었다.

“마마가 없어-.”

원웅은 반각쯤 뒤에 다시 내 방에 울먹이며 돌아왔다가, 나를 보자 당황해서 멈춰 섰다.

나는 두 사람에게 쉬고 싶으니 세 시진 정도는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 당부한 뒤, 다시 옷을 잠행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하지만 떡돌이의 침전 쪽에는 사람들이 너무 빼곡해서 안을 엿볼 수 없었다.

밖에는 호위들이 빼곡하고, 안에는 그림자들이 빼곡하다.

나는 거리를 두고 나무 위에 서서 떡돌이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리가 저릴 즈음, 떡돌이는 옷을 갈아입고서 밖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거북이를 들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호위와 그림자들을 이끌고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얼른 그의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거북이를 어디 뒀지?’

거북이는 그의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방바닥에 커다란 대야를 두고 그 안에 물과 수중식물을 넣은 다음 거북이를 거기 풀어둔 거였다.

가까이 가서 살피니, 거북이 등에 비단을 묶어 헷갈리지 않게 표시까지 해두었지 뭔가.

즐겁게 노는 거북이를 보자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떡돌이, 내가 거북이가 된다고 바로 버릴 것 같지 않으니 다행이야. 옆에 끼고 자진 못해도 방에 두고 길러 주길 하려나 봐.

그런데 안도하는 순간.

“이제 되었느냐?”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문 너머에서.

놀라서 안쪽 문을 쳐다보자,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더니 그곳 긴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듯 옆으로 앉은 떡돌이가 보였다.

“!”

내가 놀라서 입을 벌리고 쳐다보자, 떡돌이는 빙그레 웃더니 몸을 일으키고서 내 곁으로 다가오며 놀렸다.

“어디서 너랑 이렇게 똑 닮은 거북이를 가져왔을까. 정말로 놀랐다.”

“내, 내가 거북이를 가져다 둔 걸 어떻게 알았어? 속은 줄 알았는데!”

그 놀란 표정은 연기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내 항의에 떡돌이는 순순히 인정했다.

“처음엔 속았지.”

“그럼 언제 알았는데?”

“내 침실에 돌아오고서.”

“왜?”

그땐 난 아예 여기 따라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어리둥절해 그를 보자 떡돌이가 손가락으로 승언이 위치를 가리켰다.

“승언이 천장 기둥으로 가려다가 선객이 있어서 못 갔다더라. 여기 와서 그 얘길 전해주어서 넌 줄 알았지.”

이럴 수가 있나!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자, 떡돌이가 머리맡 접시에 놓아둔 떡을 조금 뜯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우물우물 씹고 있자니 그가 내 배를 문지르며 물었다.

“그래, 재미있으셨소 부인?”

“재밌기는. 그냥 시험을 해본 거야. 내가 거북이가 되었을 때 내 남편이 과연 어떻게 나오나 본 거지.”

“시험 결과는 어떤가. 만점인가.”

“한 구 점 정도.”

“구 점 밖에?”

“십 점 만점에.”

흥 소리를 내며 덧붙이자, 떡돌이는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만족스럽게 웃더니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어딜!

나는 회임한 몸이기에 막 허리 만지고 배 만지고 그러면 안 된다.

내가 찰싹 손등을 치자, 떡돌이는 자기가 직접 일어나 두 팔을 뻗어 나를 자기 품에 넣고 이마를 비벼댔다.

“내 아내는 왜 이렇게 엉뚱할까.”

“그래서 싫어?”

“싫을 리가!”

딱 잘라 말한 떡돌이는 대야에서 거북이를 건지더니, 거북이 등을 한 손가락으로 긁고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거북빈은 내가 계속 길러야겠지?”

“왜?”

“연습 삼아 미리 길러두는 것도 좋지.”

그런가?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자, 떡돌이는 거북이를 도로 대야에 내려놓고서 내 손을 꽉 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주기적으로 하나씩 바꿔가면서 해줄게, 떡돌아.”

“그러진 마라.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꼭 거북이가 된단 보장은 없는걸!”

“……안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확신할 수 없대.”

“누가?”

타천천 이야기를 해도 되나? 내가 잠시 우물거리자, 떡돌이가 그 찰나를 눈치채고서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때였다.

“폐하.”

문밖에서 오 공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공주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오 공공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떡돌이를 힐긋 보았다. 떡돌이 역시 마침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입은 꾹 다물려 있고 눈썹 양 끝이 내려갔는데 눈동자만 커다래진 걸 보니, 내가 장공주와 사이가 좀 그런 걸 알기에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그러다가 떡돌이는 문 너머를 향해 말했다.

“나중에-.”

‘들라 하라’고 말하려는 듯했으나, 나는 그의 입을 내 손바닥으로 막아버렸다.

“!”

떡돌이가 말을 하다가 멈추자, 오 공공이 다시 “폐하?”하고 불렀다.

내가 손을 떼자, 떡돌이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젓고서 작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들어오시라 해. 나 때문에 안 그래도 돼.”

떡돌이는 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정말이냐?”

“그래.”

“하지만 넌 누이를…….”

곧 떡돌이는 눈이 더 커다래지더니, 경악한 눈으로 거북빈과 나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진짜 바뀐 거 아냐?’ 하고 의심하는 눈이라, 나는 그의 배를 콱 집는 시늉을 하고서 다부지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전에는 내가 아기를 가진 것도 처음이고 속이 안 좋은 것도 처음이라 좀 당황한 거 같아. 생각해보니까 파독 팔찌는 오랫동안 묻혀 있으면서 효과가 떨어졌는데 공주 전하가 그걸 몰랐던 걸 수도 있잖아. 당황해서 너무 급하게 일이 처리된 거 같아서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방금 막 꾸며낸 말이어서 그렇다.

사실 내가 장공주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건 타천천이 한 말 때문이니까.

하지만 막말을 뱉고 보니, 꽤 그럴듯했다.

어쩌면 정말 팔찌는 고의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팔찌를 내게 주기 전, 그녀는 그 팔찌를 자기가 착용하고 있었잖아.

떡돌이는 내 한 손을 꼭 잡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힘을 주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숙이고서 말했다.

“드시라 해라.”

목소리가 촉촉한 걸 보니 내 대인의 풍모에 감탄한 게 분명하다.

나원 참. 떡돌이 얘는 대체 전생에 뭔 복을 쌓았길래 황제로 태어난 데다 나처럼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을까?

……아냐, 전생 얘긴 하지 말자.

그러면 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도 없이 이리저리 돌처럼 굴러다니면서 어렵게 크고, 다 커서는 악적 취급을 받으며 쫓긴 게 전생의 업보 같잖아.

그러는 사이. 문이 드르륵 열리고 오랜만에 보는 장공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공주는 인자한 얼굴로 들어오다가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곧 그녀는 몸을 뒤로 뺐다.

딱 보니 달아나려는 태세여서, 나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내가 장공주를 배척하고 있지 않단 걸 보여주기 위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팔짱을 잡고 살짝 당기며 웃었다.

“장공주 전하, 전에는 제가-.”

그런데 말이 끝나기도 전. 장공주의 팔이 쏙 빠졌다.

아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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