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생각해보지 못한 미래
장공주에 대해 말하기 위해 떡돌이를 얼른 보고 싶었는데.
떡돌이가 장공주가 돌아온 걸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고 나니, 목구멍이 턱 막힌다. 이제는 떡돌이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마마. 폐하께서 오고 계신답니다.”
떡돌이 얘는 청개구리인가. 기다릴 때는 안 오더니, 왜 오늘은 또 오는 거야? 헤어진 지 한 시진도 안 지났는데!
“폐하께서 마마를 보고 나니 다시 그리워지셨나 봐요. 오늘 잘 차려입고 간 보람이 있어요, 마마!”
나는 괴로워서 몸을 비틀었지만, 원웅과 부성은 신이 나서 머리를 다시 빗니 어쩌니 야단법석을 부렸다.
다행히 두 사람이 내 머리를 다시 풀기 전에 떡돌이가 도착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얼른 침상에 누워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아프다고 상황을 외면해 버리는 건 좋지 않단 걸 알지만, 지금 당장 떡돌이 얼굴을 보고 ‘누이 보니까 좋아? 그런데 그 누이 네 누이 아닌데!’라고 말하기 어려운걸.
뒤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와 바스락대는 소리, 발소리가 가까워졌지만 나는 절대로 눈을 뜨지 않고 버텼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마마께서 폐하를 기다리다 지쳐 잠드셨나 봅니다.”
“며칠 동안 내내 폐하를 기다리셨어요.”
다행히 원웅과 부성은 내 편이었다.
“폐하, 마마를 잘 챙겨주세요. 마마는 처음 회임하셔서 지금 겁에 질려 계세요.”
“폐하, 마마는 폐하가 옆에 없으면 제대로 잠도 못 주무세요. 아니, 숨도 못 쉬세요.”
“폐하께서 마마를 지켜주셔야 해요. 마마는 폐하만 믿고 살아가시는걸요.”
“폐하께서 안 계시면 제대로 뭘 드시지도 못하세요.”
나를 너무 떡돌이에게 안달 난 사람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리고 부성아. 과장을 해도 좀 그럴듯하게 해야지.
내가 지금 자는 척하고 있는데 네가 ‘마마는 폐하 없인 잠도 못 잔다’고 말하면 우리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그보다 어쩐다. 떡돌이가 속아줄까? 은근히 눈치가 좋아서 말이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래. ……알았다. 나가들 보아라.”
그래도 계속 자는 척 버티고 있자니, 떡돌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발소리가 물러났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
그리고 정적.
떡돌이, 뭘 하길래 이리 소리가 없어? 돌아간 건 아닌데. 나가는 발소리에 떡돌이 발소리는 없었어.
하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움직이면 기척이 있어야 할 건데, 기척이 없어. 그렇지만 떡돌이는 기척 없이 잘 움직이긴 해.
‘뭘 하는 거지?’
나는 슬그머니 실눈을 떠보았다.
“!”
아이고야!
실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내 코앞에 와 있는 떡돌이의 얼굴이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동자가 꼭 대나무 이슬처럼 맑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더니, 내 미간 사이에 입을 가까이 대고서 놀렸다.
“넌 자는 척을 못 하더라.”
“어떻게 알았어?”
“자는 척을 못 하니까.”
“아니, 내가 안 자고 있던 거 어떻게 알았냐고.”
“자는 척을 못 하니까.”
눈에 힘을 주고 째려보자, 떡돌이는 내 옆에 눕더니 눈을 감고서 눈꺼풀을 마구 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번 호흡을 크게 해 가슴을 들썩거리게 하더니,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배를 쥐고 굴러다녔다.
“채신머리 없다.”
그 모습이 얄미워서 찰싹찰싹 허벅지를 두드리자, 떡돌이는 내 손을 가져다가 열 손가락을 한 번씩 입에 넣으면서 아프지 않게 우물거렸다.
“우리 예쁜 반숙이.”
“실컷 놀려 놓고선 이쁘대.”
“그럼 안 이쁜가?”
“당연히 이뻐. 근데 당연한 거라 그런 말엔 기뻐하지 않아.”
“이런. 그런 건가?”
“그럼!”
“그럼 평소에 안 듣는 말을 해줘야 좋아하나?”
“암!”
“똑똑하다던가?”
“암!”
뭐라고?
내가 도끼눈을 뜨고 보자, 떡돌이가 황급히 베개를 가져다 방패처럼 자신을 방어했다.
베개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서 마구 밀자 그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우리 반숙이는 똑똑하지. 짐은 아는걸. 우리 이쁘고 똑똑한 반숙이.”
“흥. 나는 사탕발림엔 넘어가지 않아.”
“도도하기도 하지.”
“흥흥.”
“여기 이만큼 올라간 입꼬리만 솔직하구나.”
그가 한쪽 손으로 내 뺨을 쓸며 하는 말에, 나는 얼른 다른 쪽 뺨에 손을 대보았다.
정말로 내 광대가 높이 올라가 있었다. 세상에. 몸 주인은 지금 체면을 차리고 있는데, 입꼬리가 혼자 올라가다니!
황급히 입꼬리를 내려 보았지만, 떡돌이는 이미 자신의 아부가 내게 잘 통했다 여기는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흘겨보다가, 그래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 번 봐주기로 했다.
나는 때로는 대범한 고수니까. 강한 자는 강한 자의 풍모가 있는 법이다.
“자, 자세. 편하게 등을 기대고 누워야지.”
티격태격하던 분위기는, 떡돌이가 내가 앉은 방향을 돌려주면서 잠시 끊어졌다.
내가 침상 등받이에 푹신한 베개를 겹쳐 앉자, 떡돌이는 그제야 웃고서 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아주 소중한 유리를 만지듯 살살 문질렀다.
“조심해야지. 배에 힘을 가하면 안 되지 않느냐.”
“내 아기는 강할 거야.”
“음. 강하겠지. 태어난 다음 좀 성장한 후에는.”
“내 아기는 무림 고수가 될 테니, 강해야지.”
“무림 고수?”
“그럼. 내가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시킬 거야. 나는 조기를 못 먹고 자랐지만 우리 애는 조기를 많이 먹일 수 있잖아? 배부르게 먹여서 강하고 똑똑하게 만들 거야.”
“!”
“나도 어릴 때 조기를 많이 먹었으면 더 튼튼했을 텐데. 그래도 이젠 황제 아빠가 있으니 괜찮아.”
말하다 보니 조기가 먹고 싶다. 내일 원웅에게 말해서 조기를 가져다 달라 해야겠어.
괜히 침이 넘어가서, 나는 배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계속 조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중얼거리다가 옆을 보니, 떡돌이가 슬픈 눈에 진동하는 입을 하고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웃는 거야 우는 거야?”
그 표정이 너무 이상해서 묻자, 떡돌이는 내 어깨에 한 번 자기 이마를 댔다가 올리며 중얼거렸다.
“모르겠다.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왜?”
“슬픈 이야기를 들은 거 같은데. 네 오해가…….”
“오해라니?”
“조기 교육의 조기는 생선 이름이 아닐 거다, 반숙아.”
“뭐? 그럼?”
“빨리, 일찍 이런 뜻인데…….”
내가 멍하게 입을 벌리고 보자, 떡돌이는 얼른 덧붙였다.
“염려 마라. 짐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거다. 모른다고 민망할 필요 없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난 내가 기억력이 나쁜 게 조기를 못 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러면 내가 타고나길 기억력이 나쁘단 거야?”
“픕!”
떡돌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나를 끌어안는 바람에, 눈가가 뜨끈해졌다.
나는 후천적으로 머리가 나쁜 거지, 선천적으로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 믿었는데.
떡돌이가 지금 내 믿음을 박살 냈어!
충격에 젖어 몸에 힘을 빼고 있자니, 떡돌이는 나를 다시 베개에 미역처럼 널어 주고서 배를 토닥거렸다.
“걱정 마라. 우리 반숙이는 짐이 본 누구보다 똑똑하니까. 짐은 아이가 널 닮았으면 좋겠는걸?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아기가 내 머리를 닮으면 어쩌지?”
“머리만 날 닮으면 되지.”
“머리만 날 닮고 모두 널 닮으면?”
“……굉장한 조합이로군.”
침울하게 떡돌이를 보고 있자니, 그는 농담이라 말했지만 자꾸 내 머리를 힐긋거리는 게, 생각하니 좀 염려가 되는 것도 같았다.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아. 공부를 못할 뿐이야.”
그게 기분 나빠서 허벅지를 두드리며 항의하자, 떡돌이는 내 어깨를 쓸면서 사과했다.
“그럼. 네 머리가 나쁘다 한 적 없다. 네가 아까 한 말을 생각한 거지.”
“내가 아까 한 말?”
“아이를 무림 고수로 만들 거라면서.”
“맞아. 그게 왜?”
의아해서 바라보자, 떡돌이는 잠시 난감한 미소를 짓다가 내 배 위에 손을 가볍게 올리고서 물었다.
“짐의 생각엔, 황제 아빠를 둔 아이는 조기를 많이 먹고 자라서 황제가 될 거 같은데.”
“무림 고수는?”
“음…… 엄마가 무림 고수이니 만족하지 않을까?”
나는 멍하게 내 배를 쳐다보다가 다시 떡돌이를 보다가, 다시 내 배를 보았다.
피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나며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내 새끼가 황제가 된다고?”
“쉿. 이건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이런 이야긴 잘못 흘러나가면 일이 커지니까.”
내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재차 “우리 아이가 황제가 된다고?”하고 묻자, 떡돌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몹시 불신하는 눈으로 보았다.
“그럼, 넌 누가 황태자가 될 거라 생각했느냐? 뭐 다른 후보라도 있었느냐?”
그게…… 아니. 그건 아니다. 하지만…….
“황후가 낳은 아이가 될 거라 생각했어.”
떡돌이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황후는 누구랑 아이를 낳는데?”
“너랑……?”
떡돌이의 인상이 조금 더 구겨졌다.
좀 기분이 나쁜 표정이어서 눈치를 보고 있자니, 그는 눈을 반쯤 감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물었다.
“짐이 황후랑 아이를 만들 거라 생각했다고?”
“그게…… 아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냥 막연히 황후가 낳은 아이가 황제가 될 거라 생각한 거지.”
얼른 변명해보았지만, 떡돌이는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그는 연신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아까보다 조금 차가워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짐이 널 사랑하는 만큼 날 사랑하지 않는 건 알지만. 이렇게 확인받는 건 그리 좋지 않군.”
그 말에 ‘너도 나를 막 엄청나게 연모하는 건 아니잖아’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하면 순식간에 말다툼으로 변할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가만히 배 위에 손을 대고서 정면을 보고 있자니, 떡돌이는 한숨을 내쉬고서 내 목덜미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화내지 마라. 응?”
“화 안 났어.”
“화난 얼굴인데. 입이 댓 발은 나왔는걸.”
“정말로 화나지 않았어.”
그리고 아까 떡돌이랑 아기 이야기를 하느라 잠시 잊어버렸는데. 나는 떡돌이한테 해야 할 다른 중요한 말이 있었다.
장공주 이야기.
젠장. 그러고 보니 장공주 이야기를 피하려고 자는 척했던 건데. 왜 갑자기 아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시선을 내리자, 장공주가 내게 준 팔찌가 보인다.
딱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팔찌. 파독 효과가 있다고 하는 정말 귀한 팔찌.
좋은 사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좋은 사람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나도 천소여 몸에 들어오게 된 상황이면서, 같은 처지인 장공주한테?
장공주, 그러니까 가짜 장공주가 얼마나 불안할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잖아.
심장이 조마조마하고 혼란스러울 텐데.
하지만…… 문제는 고궐이다.
지금 장공주를 데려오고 부활시킨 게, 그녀를 배반했고, 결국 떡돌이에게도 큰 상처를 준 고궐이라는 것.
그가 어떤 목적으로 장공주를 데려왔든, 좋은 목적은 아닐 게 뻔했다.
“반숙아. 화가 많이 났느냐?”
내가 생각에 잠긴 걸 보고 화가 났다 오해한 건지, 떡돌이가 기죽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이며 귓불을 물었다.
“화내지 마라. 응? 짐은 네가 화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폐하.”
“응?”
“장공주 전하 말이야. 폐하는 진짜라 생각해? 몸 말고. 안에 든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