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가짜일까 진짜일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장공주가 돌아오다니? 죽었잖아.”
말하고 나니 나도 죽었다 깨어났구나. 남들도 가능하겠지.
죽었다 깨어났단 이유로 말도 안 된다고 하긴 좀 그래.
하지만…… 사정이 좀 다르긴 해. 장공주는 죽은 지 오래됐잖아? 나는 시체가 부패할 틈도 없이 천소여 몸에 들어온 거고.
“원웅 소저, 이상한 소문 들은 거 아니에요?”
귀자도 떨떠름해서 물었다. 하도 기가 막혀서 농담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원웅은 딱 잘라 말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궁 전체가 난린데.”
어쩔 수 없지. 이런 건 직접 확인해야지.
“귀자야. 나가보자.”
나는 얼른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보았다.
어디로 가야 확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보면 알겠지.
확실히. 밖에 나가보니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다른 후궁들도 모두 거리로 나와 서성이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장공주’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다들 소문을 들은 건 맞는데, 그게 어디서 난 소문인지는 모르는 듯 나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왔나 봐.
“언니!”
온 귀인도 마찬가지.
며칠 전부터 언니 동생 하기로 한 온 귀인은 나를 부르면서 얼른 곁으로 다가와서는, 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다급히 물었다.
“언니도 그…… 장공주 전하께서…… 맞죠? 듣고 나온 거죠?”
“어.”
“진짜예요?”
“나도 모르지. 나도 방금 듣고 나왔는걸.”
“아닐 거 같아요. 말이 안 되지 않아요? 죽은 지 몇 해가 지났는데 돌아오다니요. 분명 가짜일 거예요!”
“음.”
“아니, 언니는 이런 일 생각할 때가 아니지. 일단 들어가요. 너무 머리 아픈 생각 하면 안 좋대요.”
온 귀인이 아주 살짝 내 배에 손을 얹고 반대 손으로는 등을 밀었다.
어차피 지금은 소문만 돌지, 다들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듯해서 나는 순순히 방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정말 무슨 일일까?
* * *
어디서 시작된지 모를 소식에 후궁들은 다들 진위여부를 두고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사방이 소란스럽고 들떠서,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식을 두고도 심궁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평소에도 조용한 심궁 내부는 오늘은 더욱 조용해서, 달팽이가 기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심궁의 어전 안, 주위에 늘어선 대신들은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대전의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여자 쪽을.
여자는 눈썹이 짙고 길었으며, 커다란 눈동자는 움푹 들어가 깊고 그윽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뚝한 콧날에 콧방울이 작고 입술은 도톰해서 화려한 작약 같은 인상이었다.
그녀는 궁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연비와 비견될 만큼 아름다웠으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 그 누구도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경악만 차올라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화사하게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황제의 죽은 누이인 화연 장공주였으니까.
병사한 거다 자결한 거다 등의 소문이 무성했으나, 확실한 건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선황제는 가장 아끼던 딸이 죽자 몹시 상심했단 점이었다.
그녀는 몇 해 전 6월에 사망했고 모두가 그걸 알았다.
그런데 그 죽은 여인이 뜬금없이 멀쩡히 돌아오다니.
다들 혼란스럽기 그지없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다 가짜다 각자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달랐으나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워 보이는 월요 황제 때문에.
입가를 면사로 가린 황제는 눈만 드러내고 있었지만, 눈동자만으로도 그가 몹시 충격을 받았다는 걸 온 대신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장공주 닮은 여자가 물끄러미 월요를 보더니, 먼저 입을 열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면사는 갑자기 왜 하고 계십니까.”
황제가 대답하지 않고 보기만 하자, 장공주 닮은 여자는 짐짓 서운한 적 말했다.
“폐하께선 이 누이를 보고도 반기지 않는군요. 섭섭합니다.”
그래도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뚫어져라 장공주 닮은 여자만 보았다.
그녀는 황제가 쳐다보는데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마주 보기만 했고, 이런 모습은 월요에게 어릴 적 총명한 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한참 동안 여인을 보던 황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원요.”
“네, 폐하.”
“……데려가 쉬게 해라.”
그렇게 내린 지시에는 호칭이 다 생략되어 있었다.
그 지시 안에는 저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월요 황제의 심정이 다 배어 있었다.
“네, 폐하.”
장공주 닮은 여자는 황제가 자신의 말은 죄다 무시하고 명령만 내리자 잠시 마음이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순순히 황제의 명령을 따랐다.
그녀가 깔끔하게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서 오원요를 따라 나가자, 대신들은 반쯤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는 여자는 뒷모습과 걸음걸이에서조차 기품이 흘렀지만, 대신들은 그조차 지금은 무섭게 여겨졌다.
장공주를 닮은 여자가 떠나자, 사람들은 제대로 말도 못 하다가 그제야 한두 마디씩 말을 얹기 시작했다.
“폐하. 소신도 장공주님의 용모를 알고 있사옵니다. 아까의 그 낭자는 장공주님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장공주님일 수가 없습니다.”
“소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낭자가 장공주님과 놀랍도록 닮은 외양이지만,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장공주님 닮은 사람을 발견하고 일부러 폐하를 자극하려는 겁니다. 꾀를 부리는 거지요.”
장공주가 살아있을 때부터 보아온 대신들은, 아까의 여자가 장공주와 닮았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다들 장공주는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게, 몇 해가 지났는데, 죽은 사람이 저리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게 이상했다.
“몇 달 전에 누군가 장공주님의 시신을 파헤쳐 갔습니다. 어쩌면 이런 일을 꾸미느라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폐하. 닮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요.”
“폐하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음모입니다.”
“하지만 닮은 정도가 아니오. 저 모습은 분명 장공주님이오. 돌아가시기 전 모습 그대로란 말이오.”
“맞습니다, 목소리까지 똑같은걸요.”
반면 장공주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으니 입을 다물고 말을 섞지 못했다.
사방 여러 곳에서 가짜다 진짜다 말이 오갔고, 그때마다 월요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일단 가짜란 의견이 훨씬 더 많기는 했으나, 가짜라 주장하는 이들도 혹시나 싶은지 말을 심하게 하지는 못했다.
천소여와 천년비의 일을 모르는 대신들이 이 정도이니, 한 차례 사람의 영혼이 바뀌는 걸 본 월요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 *
늦은 오후. 태교를 위해 원웅이 가져다준 책자를 들고 노려볼 때였다.
“마마. 책을 읽으셔야지요…… 눈싸움하지 마시고요.”
원웅이 지다가다가 참다 못 참고 책으로 잔소리를 시도했다.
“읽어보려 했는데 아이가 내용을 거부해.”
“아기씨가 아니라 마마께서 거부하시는 거 아닐까요?”
“아이가 좋아하면 내게도 재밌겠지. 하지만 책을 보자마자 울렁이는 게, 애가 거부하는 거야. 후우. 내 아이도 서책과는 인연이 없나 봐.”
한숨을 내쉬며 원웅을 놀리자니, 원웅은 끔찍한 소리 마시라고 두 손을 저었다.
“안 돼요 마마. 아기씨는 폐하의 장자이실 텐데, 서책을 가까이하셔야 한단 말이에요!”
“꼭 그래야 해?”
“그럼요. 억지로라도 책을 읽으라 해보세요.”
그 말에 마지못해 다시 ‘으으’ 소리를 내며 서책을 다시 펼치려는데, 뒤에서 떡돌이가 들어오며 얼른 허리를 굽혔다.
“이게 무슨 소리지?”
돌아보자, 떡돌이가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 건지, 평소보다 좀 비몽사몽 한 모습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괜찮아요?”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의아해 묻자, 원웅이 뜨거운 물을 가져오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책을 두고 얼른 그를 부축해주었다.
온몸에서부터 술 냄새가 독하게 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인상을 찡그리고서 서책을 옆으로 밀어두자니, 월요는 내 옆에 나란히 앉으며 말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아도 된다, 반숙아. 나중에 아이가 직접 읽으면 되지.”
“그럴까? 좋은 생각 같긴 해. 그렇지. 내가 읽으면 무슨 소용이야. 직접 읽어야지. 그런데 그…… 떡돌아? 괜찮아?”
떡돌이는 아까 내내 내가 읽던 서책을 짚고서 펼치더니, 심도 깊은 연구를 하는 척하면서 “진짜지.” 하고 대답했다.
딱 취한 사람이 내는 허세다.
괜찮냐고 묻는데 ‘진짜지’는 무슨 답이래. 지금 제정신은 맞나?
“네 누이가 돌아왔다던 소문 이야기야. 정말이야?”
떡돌이는 서책을 옆에 탁 내려놓으면서 웃었다.
“소문이 여기까지 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사방이 죄다 그 이야기야.”
“…….”
“진짜야?”
“모르겠다.”
“모르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있을 수 없는 사례를 먼저 봤으니.”
그 사례가 나구나.
“외양은 누이와 같다. 목소리도. 말하는 방식도.”
“그럼 진짜 아니야?”
“가능한 걸까?”
“아깐 내 사례가 있다면서.”
“너는 천소여가 죽자마자 그 몸에 들어왔지. 네 몸도 비슷하지 않으냐. 하지만 누이는…… 죽은 지 몇 해나 지났는데. 게다가…….”
그는 말을 멈추더니 걱정스럽게 나를 보며 물었다.
“살아 돌아온 게 누이의 몸이 맞다 해도, 그 안에 든 게 누이가 아니라면? 그건 내 누이일까 아닐까.”
“!”
“우선 저녁에 대화를 좀 나누어 볼 생각이다. 모후와 같이.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거라.”
* * *
밤이 깊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서, 나는 혼자 뜰에 나와 서성였다.
떡돌이가 걱정하는 부분을 듣고 조금 충격이기도 하고…….
그래. 떡돌이는 애초에 천소여와 인연이 깊지 않았으니 내가 천소여가 아니란 걸 알고서도 쉽게 받아들였지.
하지만 누이와는 친했으니, 그 누이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나타난다면 그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멍하게 있자니, 다시 타천천 생각이 난다.
안 그래도 몸이 다시 바뀔 일은 없는지 물어보기 위해 타천천을 한 번 보러 갈까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더욱 가보고 싶었다.
타천천이라면 장공주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타천천이 이 공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나?
타천천과 장공주라니, 전혀 관련 없어 보이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에 잠겨 뒷짐을 지고서 계속 돌아다니고 있자니, 나중에는 비연궁 밖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혼자 멍하게 엉뚱한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자니, 누군가 쫓아오는 기척이 났다.
걷다가 우뚝 멈추면 기척도 같이 멈추었고, 다시 걸어가면 기척도 따라왔다.
‘뭐지? 혹시 암살자 그런 건가? 내가 회임해서 누가 암살자를 보냈나?’
그 생각을 하자 심장이 두근거려 온다.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편한데. 이참에 몸을 좀 움직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하지만 사냥감이 달아나면 안 되지.
나는 흥분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푼 다음 인적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너무 신이 난 티가 안 나도록 총총 걸어가다가, 따라오는 사람이 날 따라 골목길에 접어들 즈음.
나는 일부러 담을 넘어가 다른 곳에 숨었다가, 그 사람의 뒤쪽으로 이동한 다음 이번에는 내가 인기척을 줄여서 따라온 사람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따라온 사람은 갑자기 내가 사라진 게 의아한 듯 제자리에서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신이 나서 일단 내려치자, 상대는 어깨를 얻어맞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는데…… 아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