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설득하지 말아요
떡돌이의 유별나게 긴장하는 태도는 나까지 덩달아 긴장되게 만들었다.
그가 넋을 놓고 바라보는 바람에, 나중에는 슬금슬금 발로 찼던 이불을 도로 회수해 덮게 되었다.
두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가리려 하자, 떡돌이는 내 손바닥 위에 입을 맞추면서 조심스럽게 내 팔 사이로 들어왔다.
내가 마치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처럼.
내게 자기 머리를 쥐여준 떡돌이는 손에 자유를 얻어 여기저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기막힌 탐구열은 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서책이라도 된다 여기는 듯했다.
옆구리부터 배, 허리, 모두 다 자기에게도 있는 부분인데도 떡돌이는 생전 처음 본다는 것처럼 굴었다.
어느새 그의 하의 역시 옆으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찬찬히 손을 내리다가 아주 살짝 닿았을 뿐인데, 그가 견디기 힘들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반숙아. 천빈.”
그가 평소보다 더욱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손을 돌려 그를 꽉 끌어안고서 내게로 잡아당겼다.
* * *
다음날.
온몸이 무리해서 무공을 연마한 것처럼 욱신거린다.
무공을 연마했을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안 쓰던 근육까지 욱신거린단 데 있겠다.
눈을 뜨긴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어 축 늘어져 있자니, 어느새 눈을 뜬 떡돌이가 한 손을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감고서 잡아당겼다.
데굴 굴러서 그의 몸 위에 올라가게 되자, 떡돌이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표정을 보니 한껏 겨울잠 잘 준비를 만족스럽게 해낸 곰 같았다.
“반숙아.”
“응.”
“반숙아.”
“왜.”
“반숙아.”
왜 자꾸 부르는 거래? 그의 가슴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놀다가 힐긋 고개를 들자, 떡돌이는 취한 사람처럼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 사이에 제 손을 묻고 만지작거렸다.
“어젯밤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봐?”
“마음에 들었지. 오늘 새벽도. 오늘 아침도.”
코웃음을 치고 있자니, 떡돌이가 나를 다시 꽉 안고 있다가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뭐가.”
“너는 마음에 들었느냐? 우리 밤도. 새벽도…… 아침도?”
솔직히 나는 떡돌이가 너무 조급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면 할수록 좀 늘어나는 티가 났지만.
그러니까 솔직한 순서를 말하자면, 밤은 ‘노력은 가상. 그래도 귀여워’ 새벽은 ‘열심히 하네’ 아침은 ‘오 좀 괜찮아’ 되시겠다.
“반숙아? 대답이 없는데.”
내가 대답을 미루고 그의 머리카락만 가지고 놀자, 떡돌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별로였느냐?”
좋았다고 말하면 그가 이대로 안주할까 봐 염려스럽고.
별로였다고 말하면 그가 기가 죽어버릴까 봐 염려스럽네.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힐긋 고개를 들어 보니, 떡돌이의 턱이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은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진실 한 조각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위에서 봐도 아래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떡돌이 너는 참 보기 좋아.”
“!”
그의 뺨이 조금씩 위로 솟아오르는 걸 보니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그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나를 향했지만, 나는 진실을 사수하기 위해 그의 몸에서 내려와 이불 아래로 파고들어 갔다.
“천빈. 나오지 그래?”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소.”
“천반숙.”
“나는 빈말을 하지 않소.”
“손손숙.”
“나는 거짓은 말하지 않을 거요.”
“!”
* * *
평소에는 황제가 먼저 조례를 보러 가면 천빈은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다 일어나서 돌아가곤 했는데.
오늘은 천빈이 먼저 일어나 씻고 산책을 가버렸다.
게다가 어쩐 일인지 ‘요 앞에’ 산책하러 간다던 천빈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오원요는 의아하게 여기며 황제의 옷시중을 들러 방 안에 들어왔다가, 주군의 맨몸을 보고 당황해 엉덩방아를 찧었다.
“폐, 폐하, 살이! 살이……!”
피부가 옥처럼 매끄럽고 흠 하나 없던 그의 주군의 몸 여기저기가 거대한 육식동물에 물어뜯긴 흔적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살이 뜯겨 나간 곳은 없지만, 잘근잘근 씹었다가 푼 흔적으로 가득해서, 얼핏 보면 늑대가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침만 발라놓고 간 것처럼 보였다.
오원요의 놀라워하는 시선에 아직도 월요는 그제야 제 몸 상태를 확인하고서 민망해 얼굴을 붉혔다.
아까까지는 천빈이 묘한 말을 하고서 달아나버린 게 분해서 몸 상태를 신경 쓸 여력도 없던 것이다.
“어, 어의한테 좀 봐달라고 할까요? 너무 많이 물린…….”
“천빈이 짐승인 줄 아느냐. 되었다.”
“세상에. 천빈 마마 작품입니까.”
“그럼, 천빈이 밤새 늑대를 가져와 풀어 놨겠느냐?”
“그건 그렇지만…….”
오원요는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얼른 깨끗한 물을 가져오게 해서 커다란 수건에 물을 묻힌 다음 황제의 얼굴과 몸을 닦아 주었다.
등을 얼마나 야무지게 여기저기 물어 놨는지, 천으로 살살 닦으면서도 황제가 쓰리고 아플 것 같아 염려되었으나 다행히 보기만큼 세게 문 건 아닌 듯 월요는 우두커니 시중을 받기만 했다.
이후 오원요는 미리 준비해 둔 의복을 미루고, 목 위까지 다 가려질 만한 새로운 의복을 가져오게 해 황제가 입도록 도왔다.
“가자.”
거울에 이리저리 자신을 비춰본 황제는 평소처럼 말끔한 차림새인 걸 확인하자 궁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원요는 황제가 옷이 몸에 닿으면 쓰리지 않을까 싶어 연신 눈치를 살폈으나, 황제가 인상을 찡그리기는커녕 입가에 미소를 짓고 걷자 안도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내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월요는 집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몽 장군을 보자 표정이 바로 굳었다.
기몽이 무슨 일로 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그가 보고한 촉비와 천빈에 대한 일 때문일 것이다.
이미 천빈에게 전후 사정을 들은 후 보고를 받은지라, 황제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자신이 생각해보겠다 둘러대고서 기몽을 내보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도 황제가 그 일을 거론하지 않자, 기다리다 못한 기몽이 다시 찾아온 게 분명했다.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언제든 사람을 물 준비를 한 커다란 사냥개처럼 인사하는 기몽에게, 황제는 손을 저어 일어나라 손짓하고 물었다.
“천빈과 촉비 일로 왔느냐.”
“예. 폐하께서 답을 주시지 않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더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요는 이미 답을 내린 일이었으나, 잠시 생각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말했다.
“이번 일로 촉비와 천빈 모두 해를 입지 않았지. 장군이 중간에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한 덕이다.”
“송구합니다. 그럼 천빈 마마는…….”
“그 일은 촉비와 천빈이 평화로이 화해를 하였으니 넘어가도록 하지.”
기몽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지 않아도 촉비와 천빈이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단 소문을 듣기는 했다. 믿진 않았지만.
그런데 황제가 직접 거론하는 걸 보니, 정말로 어찌어찌 화해가 된 모양이었다.
불만족스러웠으나 기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황제가 대답에 시간을 끌고, 천빈이 먼저 황제에게 이 일을 보고하고, 천빈과 촉비가 갑자기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풀리지 않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다.
행궁에서 이미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또다시 천빈과 싸우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까.
황제가 천빈을 지극히 아끼는 건 이미 궁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던가.
그리고 애초에 기몽이 이 일로 노린 건 천빈도 아니었다.
“하면 폐하. 천빈 마마에 대한 건 촉비 마마와 화해해 넘어갔다고 해도, 비원이란 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황제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폐하. 염 귀인은 그자로 인해 사망했고, 우 귀인도 그자와 안 좋게 얽혔습니다. 그자가 궁궐에서 활동하고 다니면 피해자도 계속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사특한 말로 다른 사람을 현혹할지 모르니, 반드시 잡아내야 합니다.”
기몽의 보고에 황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떡돌이가 일하러 갔단 보고를 받고서야 나는 내 처소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하루 종일 뒹굴거렸다.
떡돌이가 경험이 미숙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툴긴 했지만, 체력은 경험과 그리 관련이 크지 않았다.
떡돌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 몸으로 훈련을 했으니 체력이 아주 강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한 번 다른 몸으로 이동을 했고, 내가 이동해 온 천소여의 몸은 그냥 평범한 귀족들처럼 연약했다.
몇 달간 열심히 운동해서 희미하게 근육이 잡히고는 있지만, 고작 몇 달 만에 갑자기 체력이 이전만큼 늘 수는 없는 법.
당연히 떡돌이의 체력에 비하면 내 체력은 반딧불…… 반딧불…… 뭐더라. 하여튼 그거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체력을 좀 잘 길러야겠어.’
그래도 오늘은 푹 쉬고.
* * *
새로운 처소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보름 정도가 지나갔고, 처음에는 들떠서 춤추듯 걸어 다니던 궁인들도 이젠 발걸음이 차분해졌다.
여전히 나는 평화롭고, 촉비도 아주 조용하다.
뭘 계기로 내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별 움직임이 없었다.
그걸 두고서 부성은 이렇게 말했다.
“마마께서 폐하께 총애를 받으니 줄을 타려는 거지요. 마마랑 싸워 봐야 남는 게 없으니까요.”
“그럴까?”
“그럼요!”
그러면 오히려 나은 거지.
황후에게는 다시 문안을 가기 시작했고, 가끔은 태후마마도 뵈러 가고 있다.
이 좋은 소식 가운데 마음에 안 드는 소식이 하나 있다면, 자기 처소에 감금되었던 우 귀인, 아니, 우 답응이 기몽 장군의 수사에 협조한 공 덕에 드디어 감금에서 풀려났단 것이었다.
처음에는 또다시 나한테 시비를 걸까 싶어 유심히 보았지만, 이젠 품계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인지 그러지는 않았다.
게다가 막상 풀려난 우 답응은, 나보다는 자기가 한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온 귀인 쪽을 더욱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온 귀인은 이젠 나와 더 친해져 버렸으니까.
한때 며칠에 한 번씩 술을 들고 날 찾아오던 연얼 군주를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내가 그녀를 찾아갈 방법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차츰 그녀가 오지 않게 되자 나 역시 연얼 군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건 태후마마와 식사하던 도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빈이 연얼과 가깝게 지냈었지?”
태후마마께서 다른 후궁은 부르지 않고 나만 불렀기에, 이 자리에는 나와 태후마마 둘뿐이었다.
나는 태후궁에 소속된 숙수만 만들 수 있는 간식을 열심히 먹다가, 태후마마의 말에 아주 오랜만에 그녀를 떠올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태후마마께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게 떠올라서 다시 간식을 삼킨 다음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태후마마께서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
“그럼 천빈, 네가 연얼을 좀 설득해보겠니?”
“뭐를요?”
“서천의 황제가 황태자일 때, 금슬 좋던 황태자비가 병으로 사망했어.”
“?”
그게 연얼 군주랑 무슨 상관이지?
“이후 황태자는 내내 후궁도 들이지 않고 재혼하지도 않고 홀로 지내다가, 즉위하고서도 10년이 지나서야 후계자 문제로 다시 황후를 들이려 한단다.”
“아…… 네.”
근데 그게 연얼 군주랑 무슨 상관이지?
“황후 자리라지만, 15년 가까이 다른 여인에게 시선 한 번 안 주던 황제잖니. 이미 죽은 사람을 연모하는 사람이야. 이번에 혼인하려는 것도 후계자 때문이고. 혼인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 자리에 앉는 거지. 사이가 안 좋을 게 뻔한데 얼마나 마음고생을 할까.”
“네에…….”
“그런데 연얼이 그 자리에 자기가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구나. 아니, 그 애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자리에 간다고.”
태후마마는 연얼 군주와 그리 친해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상한 자리에 결혼하러 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나 보다.
하지만 설득해보는 것뿐이라면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나는 그러겠다고 했고, 태후마마는 곧장 다음날 연얼 군주와 나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불러 우연인 척 만나게 해주었다.
그러고서 자리를 비워준 덕에 순식간에 나는 연얼 군주와 둘만 있게 되었다.
그 빠른 진행에 아직도 얼떨떨해 있자니, 연얼 군주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 픽 웃고서 물었다.
“태후마마께서 날 설득하라고 한 모양이죠, 천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얼 군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설득할 필요 없어요, 천빈. 뭐라고 말해도 난 설득되지 않을 테니까. 태후마마께는 설득했는데 내가 안 들었다고 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얼 군주는 밝게 웃다가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전에 천빈이 나한테 한 말. 기억해요?”
“뭐가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그게 내 선택이라고. 내가 원하는 걸 남한테 묻지 말라고.”
그렇게 길게 말한 것 같진 않지만 비슷하게 한 것 같긴 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얼 군주는 아프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려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설득할 필요 없어요.”
“무슨 소리예요?”
“사랑하러 가는 것도 사랑받으러 가는 것도 아니에요. 복수하러 가는 거예요. 칼이 필요해서.”
“?”
“그러니까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가서 애정을 못 받니 어쩌니 하는 건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은 내용이니까.”
내가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자, 연얼 군주는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천빈. 난 서천에 가서, 월요 황제를 죽일 거예요.”
나는 눈을 끔뻑이다가 뒤늦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연얼은 나를 시험하듯 바라보다 물었다.
“그대가 이 이야기를 폐하께 알린다면 나는…… 벌 받아 죽진 않겠죠. 아직 뭘 하진 않았으니. 하지만 살해당하겠죠. 내 오라버니처럼.”
“!”
“말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