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사냥개가 달려든 곳은
그 사냥개가 대체 어디까지 파고 들어가려는 건가, 좀 걱정이 되긴 했으나 나는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수사하다 보니 거기까지 갔겠지. 괜찮아. 전에도 우 귀인을 수사했는데 별거 안 나왔잖아?”
하지만 말과 달리 구경할 마음이 뚝 떨어져서, 나는 건성으로 내 예비 궁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처소로 돌아와 버렸다.
“원래는 폐하의 별궁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새로 개조해서 마마께 주시는 거래요.”
“폐하 침궁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대요, 마마.”
“폐하께선 마마와 늘 붙어 있고 싶으신가 봐요.”
내 표정이 어두워진 걸 눈치챈 궁녀들이 옆에서 재잘대며 기분 좋은 정보들을 전해주었지만, 기몽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계속 기몽만 신경 쓰였다.
나중에는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연비가 ‘공부 좀 하라’면서 보내준 서책을 자발적으로 펼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인지라, 저녁 무렵 기몽이 찾아왔을 때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어디까지 수사가 이루어졌는지 알게 된다면 그게 덜 불안할 거 같았으니까.
“왜 왔어요?”
그래도 시치미를 때며 묻자, 기몽은 묘한 눈길로 나를 보다가 물었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천빈 마마.”
“괜찮아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기몽은 바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원웅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 하고서 기몽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기몽은 ‘편찮으셨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괜찮으신지’ ‘그간 잘 지내셨는지’ 등 간단하게 안부만 묻다가, 원웅이 찻잔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천년비진쾌도래’라고 쓰인 종이는 처음에는 염 귀인이, 그다음에는 우 답응이, 세 번째는 천빈 마마께서 묻었을 겁니다. 그 경위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런데 그 본론이 내가 짐작한 내용과는 너무 달랐다.
난 촉비 어쩌고 얘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아, 물론 그 종이를 묻었으니 그 이야기도 할 거라 여기긴 했지만, 갑자기 여기서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촉비 어디 갔어 촉비?
나는 황당해서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맞는 순서이긴 한데, 저 사냥개가 어떻게 저 방향으로 나아간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차를 한 번에 입안에 털어넣자, 기몽은 덤덤하게 자기 추측을 들려주었다.
“이번에 촉비 마마의 사가에서 전에 수사하다가 끊어진 흔적이 다시 나왔습니다. ‘천년비진쾌도래’라는 글이 쓰인 종이가 파묻혀 있다가 발견되었지요.”
“그런가?”
“예. 드디어 수사를 이어갈 수 있겠다 싶어 기뻤지만, 지난번에 한 번 유야무야된 일이라 이번에는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음. 그렇군.”
나는 영혼 없이 대꾸하면서 혓바닥을 치아 뒤에 대고 눌렀다.
뜨거운 차를 한 번에 털어넣으면서 혓바닥에 약간 화상을 입은 거 같았다.
“염 귀인께서 이 종이를 파묻었을 때, 염 귀인께선 사망하셨습니다. 당시 귀인이었던 천빈 마마께서는 사망했다가 깨어나셨지요.”
“음.”
“다음에 천빈 마마께서 쓰러졌을 때도 근처에서 이 종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종이를 파내자 천빈 마마께선 살아나셨지요.”
“…….”
“최근에도 천빈 마마께서는 병이 들어 몇 주나 행궁에서 두문불출하셨다 들었습니다.”
나는 허벅지 위에 두 손을 내려놓고 계속해 꼼지락댔으나, 초조한 걸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랬지.”
“천빈 마마께서는 병이 들기 전 촉비를 공격하려다 실패하기도 해서, 저는 촉비 마마가 천빈 마마를 공격할 계기는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그러다가 전에 폐하께서 우 답응에 대해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우 답응?”
“우 답응께선 예전에 직접 폐하를 찾아가서, 염 귀인이 비원이란 가명을 쓰는 자와 거래했고, 혜비와 관련이 있고, 소원은 들어주는 일을 하고, 그 흔적으로 나비 비녀를 둔단 이야기 등을 하였다 하셨지요.”
“그런가.”
“천빈 마마께서 비원과 거래해 온 귀인을 공격했단 말도 했고요.”
“하지만 엉터리란 결론이 나왔지.”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그랬지요.”
기몽은 부정하지 않았다.
“염 귀인이 종이를 묻은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염 귀인은 그 종이와 저주 물품 등에 대해 수사할 때, 그것들에 대해 영 모르는 눈치셨지요. 저는 그 일과 폐하께 들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 보다가, 자택에 감금된 우 답응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기몽의 말이 길어질수록 나도 점점 더 불안해진다.
왜 결론을 안 알려주고 이렇게 사근사근 추리 과정을 다 알려주는 걸까.
“저는 우 답응에게, 이번 조사를 도와준다면 폐하께서 유폐를 풀어주실지도 모른다고 설득하고 ‘천년비진쾌도래’ 종이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우 답응이 뭐라 했는데?”
“그 종이를 묻은 건, 비원이란 자가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내건 조건이었다 다더군요. 염 귀인과 거래한 자와 자신이 거래한 자가 같다는 건 인정했습니다. 그 종이가 무슨 뜻인지는 자기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답니다.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사기 갔다고 했죠. 우 답응은 여전히 비원이란 자가 혜비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목이 탄다. 기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잠시만.”
나는 기몽에게 말을 멈추게 하고서, 들어온 궁녀가 차준 타를 이번에는 반 정도 꿀꺽꿀꺽 마셨다.
탄 목은 조금 가라앉았으나 머리를 여전히 백지상태로 차분했다.
기몽은 내가 차를 홀짝거리자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염 귀인과 우 답응이 같은 종이를 묻었을 때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모두 천빈 마마께서 쓰러지셨죠. 촉비 마마께서 종이를 묻었을 때 천빈 마마께서는 행궁에 계셨으니 이전처럼 사경을 헤맸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같은 증세가 있었단 전제를 해보았습니다.”
“…….”
“그러니 이상하더군요. 다 같은 짓을 했는데, 왜 염 귀인만 죽은 걸지. 우 답응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진범하고 문제가 생긴 건 그쪽인데, 왜 우 답응은 멀쩡한 건지. 우 답응이 본인 주장처럼 진범에게 역으로 당해 유폐되었다 해도, 어쨌든 죽은 염 귀인과는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까.”
아이고 손바닥이 간지럽구먼.
“그러다가 염 귀인이 종이를 묻고 천빈 마마께서 쓰러졌을 때와, 우 답응이 종이를 묻고 천빈 마마께서 쓰러졌을 때 날짜 간격이 다르단 걸 알았습니다. 후자 쪽이 훨씬 멀었지요.”
“!”
“게다가…… 제가 두 번째 ‘천년비진쾌도래’라 쓰인 종이를 파낸 곳과 우 답응이 그 종이를 묻은 곳 위치가 다르더군요.”
심장이 콩닥거린다.
사실 아직도 기몽의 말을 반은 못 알아듣겠지만, 이 사냥개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 파고들어 가고 있단 건 알겠다.
“그렇다면 우 답응이 그 종이를 묻었는데 누군가 그걸 파내서 옮겨 묻었단 거겠지요. 당시 갑자기 숨이 멎은 천빈 마마의 손에는 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옮겨 묻은 게 천빈 마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
“그러면 염 귀인은 종이를 묻은 후 사망했는데, 우 답응은 결과가 달랐던 게 설명되지요. 우 답응이 묻은 종이는 바로 천빈 마마께서 한 번 파냈다가 다시 묻었단 중간 개입이 있었으니까요.”
“염 귀인이 그럼 종이를 묻었을 뿐인데 사망했단 건가요? 그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기몽이 너무 잘 파고들어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일부러 중간에 끼어들었으나 기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원인과 결과로만 묶어서 파악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또 발생했죠. 우 답응은 천빈 마마 때문에 살았다고 쳐도. 염 귀인은 죽었는데 왜 천빈 마마는 멀쩡할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빈 마마도 같은 결과로 사망했지만, 종이를 파내면서 살아나신 경우. 아니면 천빈 마마는 염 귀인이나 우 답응과 달리 비원이란 자와 거래를 해서 종이를 묻은 게 아니다 보니, 중간에 뭔가 다른 절차가 있는데 빠뜨렸을 경우. 들어보니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하더라고요.”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몽이 너무 잘 맞혀서가 아니라, 그의 추측을 들으면서 나도 방금 막 깨달은 게 있어서였다.
기몽은 모르겠지만, 염 귀인이 종이를 묻었을 때 나는 원래 몸으로 잠깐 돌아갔었다.
염 귀인이 도로 파내면서 천소여 몸으로 돌아왔지만.
하지만 내가 종이를 묻었을 때 나는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쓰러졌다.
아마 기몽의 추측 중 후자가 맞을 거다. 내가 절차를 빠뜨린 거 말이다.
즉, 염 귀인이 갑자기 사망한 이유는……
그녀가 비원과 거래해서 내 영혼을 움직이는 절차를 완벽하게 실행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젠장. 비원, 이 자식.
그냥 자기가 종이를 묻었다 파냈다 하면 될 걸 왜 굳이 사람들 소원까지 들어줘 가며 시키는가 했더니.
그 종이를 묻는 대가가 목숨이어서 그랬던 거야?
비원은 염 귀인이 죽을 줄 알면서 그런 걸 시킨 거고?
내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다는 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 났으니까.
기몽은 내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
“다시. 이번 수사로 돌아와서. 촉비 마마는 천빈 마마를 저주할 계기도 충분히 있고 정황도 있지요. 하지만 촉비 마마께서는 염 귀인처럼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촉비 마마가 만약 종이를 묻었다면, 이번에도 저주가 완전히 시행되지 않은 거지요. 하지만 우 답응 사례처럼, 누군가 촉비 마마께서 묻은 종이를 다시 파냈다 묻어서 실패했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그 종이를 파내기 전에 천빈 마마께서는 이미 쾌차해서 본궁에 돌아와 있었으니까.”
“!”
나는 기몽의 눈치를 살폈다.
기몽은 아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으나, 언제 올라간 건지 한쪽 입꼬리만 위로 휘어져 있었다.
“게다가 천빈 마마는 모르고 계셨겠지만, 촉비 마마가 범인이라면 절대로 자기 친정에 그런 걸 묻진 않았을 겁니다. 촉비 마마의 친정은 촉비 마마의 적진이나 다름없거든요.”
저 말. 저 ‘천빈 마마는 모르고 계셨겠지만’ 하는 말. 꼭 내 자작극이라는 걸 알고서 말하는 거 같은데.
“그럼 이번에 촉비 마마의 사가에 종이를 묻어둔 범인은 누구일까, 고민해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우 답응 사건을 역으로 이용한 천빈 마마의 자작극이라고요.”
“아, 아닌데!”
“……저주가 어설프게 진행됐단 것도 천빈 마마께서 범인인 이유입니다. 천빈 마마는 우 답응과 달리 저주 절차를 잘 모르는 듯하니까요. 설령 비원과 거래한 또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절차는 제대로 알고 진행했을 겁니다.”
이 사냥개는 촉비를 물어뜯으라고 풀어 놨더니 달려나가다가 나한테 도로 오는구나!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문득 여기서 기몽을 처리하면 문제가 많이 커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많이 커지겠지. 기몽이 내 처소에 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다 봤으니까.
내가 입술을 씹으며 쳐다보자, 기몽은 방긋 웃더니 다 식은 차를 처음으로 한 모금 마시고서 제안했다.
“두 분 마마가 동시에 얽힌 사건이니 어차피 함부로 발표하진 못합니다, 저도. 그냥 발표할 생각이라면 애초에 여기로 오지도 않았을 거고요.”
나는 찻잔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원하는 게 있단 거야?”
“우 답응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자는 ‘비원’이란 사람이지요.”
“?”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걸 다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일은 폐하께만 보고하겠습니다. 폐하는 마마를 지극히 총애하시니, 이 일도 그냥 넘어 가주실지도 모르지요.”
“나는 그 자랑 거래한 적이 없다면서 왜 그걸 나한테 묻는데?”
“마마는 그자와 목숨을 건 거래는 하지 않았지만, 그자와 손을 잡고 우 답응을 유폐시키긴 하셨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