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질투하지 마라
떨리는 입술이나 평소보다 더욱 커다래진 눈이며, 흔들리는 눈동자는 한 눈동자 당 하나씩 ‘충’ ‘격’이라고 써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왜 저렇게 놀라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며.”
그러면 이리 놀랄 필요가 없지 않나 싶어 묻자, 떡돌이는 연못가에서 먹이를 달라며 재촉하는 잉어들처럼 뻐끔거리다 항의했다.
“네가 무림인이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네가 ‘천년비’란 이름으로 생활한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입궁 전에 가명을 쓰고서 자유로운 생활을 보냈다 여겼지, 아예 천소여가 아니라니?”
마른세수를 한 떡돌이는 한참 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밖에서 술시를 알리는 나무패 소리가 들려오자 가까스로 손을 내리고 물었다.
“총서서나 공오부인이 너를 자기들 딸로 삼은 건가? 천소여, 그러니까 천 소저가 입궁하기 싫어한다거나 병이 있다거나 해서?”
와. 떡돌이 이 녀석. 잘난 척하더니 영혼이 바뀌었을 거란 생각은 거의 안 한 모양이구나.
내가 귀자한테 알려준 딱 그 거짓말 수준으로만 내 정체를 짐작했나 봐.
하긴. 세상에 누가 ‘저 사람 성격이 갑자기 바뀌다니. 영혼이 바뀌었나 본데?’라고 여기겠어.
“아니야. 내 몸은 천소여가 맞아. 총서서랑 공오부인이 혼인해서 낳은 천소여 몸이야.”
“천소여 ‘몸’이 맞다고?”
떡돌이는 마른침을 삼키고서 다시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뒤덮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보기 좋게 달싹였다.
“천소여 ‘몸’이 맞지만 천소여가 아니라면…… 혼이 다른 사람의 혼이란 뜻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떡돌이는 두 손으로 아예 자기 머리 양옆을 눌렀다. 많이 놀랐구나, 떡돌이.
“그럼 반숙아. 이 일을 총서서나 공오부인은 아느냐?”
“둘 다 모를걸. 연비나 영빈도 몰라. 내 궁녀들도 모르지. 이걸 아는 건 네가…….”
최초는 아니구나. 이건 빼고.
“놀랍지?”
나는 그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다가 다시 알려주었다.
그가 이 정도로 나에 대해 모를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막상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떨림은 가셨다.
그 전에는 떡돌이 머리를 두드리고 싶을 만큼 긴장감이 극심했는데.
“어때? 이제 날 신뢰할 수 있겠어?”
“신뢰……를 떠나서 아예 다른 사람이잖아!”
“몸은 천소여 몸이 맞다니까?”
떡돌이가 또 이마를 짚는다.
그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그가 묻지 않은 걸 하나 더 알려주었다.
“천소여가 용고를 먹고 죽었대, 폐하.”
“용고?”
“물론 용고를 먹고 죽은 건 나만 알지. 그때 내가 이 몸으로 들어와 버렸으니까. 어쨌든 용고를 먹긴 했어. 그리고 나도 그걸 먹었어. 그 이유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난 천소여 몸에 들어왔고.”
“용고를 먹은 그 시기가, 혹시 네가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던 그 시기와 같으냐? 네가 기억을 잃었다고 한……?”
“맞아.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그때 영혼이 바뀐 거야. 그래서 난 천소여 기억이 없어, 폐하.”
“후우.”
떡돌이가 이번에는 부채질을 시작했다. 아직도 혼란스러운가 봐.
슬며시 눈치를 살폈으나 다행히 화를 내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놀랍고 놀랍고 한없이 놀라워할 뿐.
새삼 이 일이 정말 놀라운 일이긴 하단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전까진 이런 일이 가능한 줄도 몰랐지.
“어쨌든 내가 천소여 몸을 쓰게 되었으니, 원수라도 갚아주자 싶어서 누가 천소여에게 용고를 먹였나 알아보려 했거든? 근데 알아내지 못했어.”
“살해당한 건가.”
떡돌이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그는 이불과 부채를 빠르게 파닥거리다가 물었다.
“네 진짜 정체가 ‘천년비’인 건 맞는 거지?”
“맞아.”
떡돌이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중얼거렸다.
“천소여를 죽인 범인은 꼭 찾아내야겠군. 범인이 천소여를 죽였다면 너도 죽이려 할 수도 있지 않으냐.”
나는 그를 유심히 살피다가 물었다.
“내가 진짜 천소여가 아니어도 괜찮아?”
떡돌이의 입꼬리 끝이 힘없이 위로 올라갔다.
“안타깝지만 ‘진짜’ 천 귀인과 짐 사이에는 이렇다 할 추억이 없어서. 말을 해 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천 귀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짐이 아는 천 귀인은 그냥 네 모습이라 받아들이는 게 그리 어렵진 않군. 하지만…….”
“하지만?”
“총서서나 공오부인이 알면 상처받겠지. 그쪽은 네가 아니라, 진짜 천 귀인을 키운 사람들이니. 이 일은 너와 나만 알고 있자.”
나와 떡돌이 외에 몇몇이 더 알긴 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차분하게 굴려 해도 자꾸 입이 벌어지고 광대가 올라가려 해서, 나는 손을 뻗어 내 뺨을 눌러 아래로 내렸다.
떡돌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려고 하는 게 좀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그가 진짜 천 귀인과 대화를 나누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젠 내가 떡돌이의 비밀에 대해 알 차례였다.
나는 떡돌이가 부채질을 계속하게 두고서, 그가 건넨 쪽지를 펼쳤다.
쪽지를 펼치며 보니 떡돌이는 부채를 꼭 쥐고 나를 조금 긴장해서 보고 있었다.
“놀랄 거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경고했다.
나는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쪽지에는 떡돌이에게 대역 황제가 하나 있단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나는 다시 떡돌이를 보았다. 떡돌이는 이제는 부채질도 멈추고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쪽지를 접고는 “음,” 하고 감상을 들려주자, 그는 얼굴이 구겨져서 괜히 신경질을 냈다.
“음, 이라니. 짐의 비밀을 보고 나온 감상이 ‘음’뿐인가?”
내가 자기 비밀을 보고 자기처럼 반응해주지 않은 게 당혹스럽단 투였다. 하지만…….
“별로 놀랍진 않아서.”
“이게 안 놀랍다고?”
떡돌이가 입을 쩍 벌린다.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사실 그럴 수도 있다고 짐작해 본 일이라서.”
솔직하게 털어놓자 황제는 입을 더욱 크게 벌렸고, 나는 얼른 그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황제는 깜짝 놀라 목을 뒤로 빼다가,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헛웃음을 뱉으며 물었다.
“어떻게 짐작해본 건데?”
“태감이 폐하한테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폐하.’라고 말하는 걸 봤거든.”
“그 이야기는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네가 그 근처에 있었다고, 어쩌면 들었을 수도 있다고 한 이야기였지만. 그 일은 잘 넘어간 줄 알았는데.”
“확신한 건 아니야.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만약 황제가 둘이라면, 난 당연히 네가 가짜일 거라 생각해서.”
“어째서?”
“맨날 노는 거 같기에.”
“!”
떡돌이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충격에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그의 비밀에 나는 별로 안 놀라고 그는 깜짝 놀란 건 단순히 떡돌이가 나보다 더 잘 놀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대역 황제가 있다면 대역 황제랑 널 구분하는 방법도 알려줘야지.”
“짐이 왜 그것까지 알려주어야 하지? 우리가 약속한 건 비밀을 알려주는 것까지이니, 있단 것만 알려주면 될 텐데?”
“우리가 뜨거운 밤을 보내고 나서 내가 대역 황제한테 가서 ‘그날 밤 참 좋았지요, 폐하. 어제 고생한 물건의 안부를 확인해 봅시다.’ 말하고 손을 뻗으면 어쩔래?”
“비밀 신호를 정하자.”
떡돌이는 대번에 대답했다.
“내가 고생하지도 않은 대역 황제의 물건 안부를 확인하는 건 싫구나?”
“연모하는 정인이 다른 사내 물건 안부를 확인한다는 데 좋아하는 사내가 있다면 그 사내는 변태다.”
“하긴. 나도 네가 다른 사내 물건 안부를 확인하면 좀 착잡할 거 같아.”
“안 해!”
“승언이가 가끔-.”
“하지 않는다!”
“아하, 반대였던가.”
“아니니라!”
떡돌이 얼굴이 새빨개서 참으로 귀엽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째려보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원앙 한 마리가 혼자 날아갔다가 짝을 찾아와 지금은 둘. 이걸로 하지.”
“아이 유치해.”
와. 떡돌이가 노려보고 있어.
“알았어. 그걸로 해.”
그가 너무 부끄러워하기에 웃으면서 대답하자, 떡돌이는 괜히 부채질을 더욱 빠르게 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 신호를 한 번이라도 연금에게 쓰게 되면 다시 정하는 걸로. 어떠하냐. 이러면 되겠지?”
“연금이가 누구야?”
“짐의 대역 이름.”
“폐하랑 비슷하게 생겼어?”
“많이 닮았지. 얼굴을 보면 구분이 안 가진 않지만, 얼굴을 가렸을 때 분위기라거나 눈매, 입매, 눈동자 색이나 머리카락 색 등이 많이 닮았다. 체형이라던가.”
어쩐지. 그래서 면사로 눈을 가렸다 입을 가렸다 하는구나.
생각해보니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많이 닮긴 했어. 물론 닮았으니 대역으로 뽑았겠지만.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으려니, 떡돌이가 아까와는 사뭇 다른 진중한 태도로 충고했다.
“비밀을 알려주긴 하였으나 절대로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반숙아. 이 일에 관해 아는 건 정말로 극소수니까.”
“알았어. 너도 내가 천년비라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당연하지 않으냐.”
얼른 대답한 떡돌이는 말을 마치더니 나를 물끄러미 보았고, 나는 심장이 좀 간질간질해서 그의 부채를 가져다가 내가 파닥거렸다.
부채를 파닥거리고 있으려니 호수를 가로지르는 한 마리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많이 고민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길 잘한 거 같아.
이러면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으니 남들보다 좀 더 가까워지겠지.
다행히 떡돌이는 내가 무림에서 평판이 아주 나빴단 걸 모르는 눈치고.
아니, 이건 다행이 아닌 건가? 떡돌이가 뒤늦게 내 평판을 알아내면 어쩌지?
호수를 가로지르던 머릿속의 오리가 도로 헤엄을 쳐서 호숫가로 돌아오더니 꽥꽥 울어댄다.
나는 당황해서 떡돌이를 보았다.
뭔 생각을 하고 있던건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떡돌이도 바로 또 질문했다.
“그럼 지금 돌아다니는 천년비는 누구이지?”
“모르는 사람이야.”
“……이거 참. 이상한 관계로군.”
“나도 천소여랑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렇게 됐잖아. 그런데 일이 꼬여서 내가 천소여 몸을 쓰듯 그쪽도 내 몸을 쓰는 거지 뭐.”
그 몸이 강시란 말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떡돌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조금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
“아니.”
“아니라고? 정말로?”
“난 내 원래 몸으로 사는 게 많이 힘들었어.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 진짜 몸이 살아 있다면, 그래도 다시 돌아가 보겠지만.
지금 그 몸은 살아 있는 몸이 아니라 타천천 그놈의 손아귀에 있기도 하고. 돌아갈 이유가 없지.
떡돌이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다가 내 손가락 손톱 위를 조금 묵직하게 누르며 물었다.
“어떤 게 가장 힘들었지?”
“글쎄.”
“다 말해다오. 너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싶다.”
“……너무 많아서 생각나지 않아. 일단 먹고 자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그건 이제 해결됐잖아.”
떡돌이는 내 엄지를 누르다가 이번에는 내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더니, 자기 쪽으로 쭉 끌어당겨 자기 다리 위에 가뿐하게 앉히며 중얼거렸다.
“그럼 맛있는 음식을 매일매일 가져다주라 해야겠군.”
“맞아.”
“또 다른 건?”
“왜 물어?”
“너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니까. 그리고 네게 아픈 기억이 있다면, 네게 짐이 없던 기억이 있다면, 그걸 전부…….”
꽤 간지럽고 듣기 좋은 말을 해줄 것 같던 떡돌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멈추었다.
왜 그러나 싶어 보자 떡돌이가 내 귓가에 속삭이다가 갑자기 표정이 스산해졌다.
“왜? 왜?”
왜 갑자기 저러는가 싶어서 상체를 뒤로 빼자, 그는 나를 쭉 당겨 자기 코앞에 가져다 놓고서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천반숙. 그럼 넌 네 전 연인을 스승으로 두고 짐 앞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