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제발 돌아가시지요
운호는 개원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와 시선을 맞추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개원이의 눈 속에 정직하고 온화한 빛이 가득한 반면, 이 운호란 새끼의 눈은 타천천 쪽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찌르지 않기 위해 밥그릇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확실한 건 개원이의 엄마와 달리 저 운호란 새끼는 날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단 점이었다.
내가 ‘천년비’가 아닐 때에도.
* * *
“운호야. 아까 네 행동은 정말 무례했다.”
개원이 방에 둘만 들어가자마자 꾸짖었다. 그러나 운호는 시큰둥하게 미소하며 반박했다.
“내 말이 틀리진 않잖아, 형. 형이 천년비랑 사귀었단 걸 모르는 무림인이 어디 있다고. 오히려 그런 일 없는 척 어설프게 구는 게 더 이상해. 안 그래?”
개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운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형 천년비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 얘기해준 건데 왜 그래.”
그러고는 운호가 맑게 웃는데, 개원이 보기엔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운호야. 왜 성질인 거냐.”
“내가 무슨 성질을 냈다고. 웃고 있잖아, 형.”
“여기. 여기가 부었잖아.”
개원은 단단히 골이 난 운호의 뺨과 턱 사이를 툭 건드렸다.
“넌 내 연인은 다 싫은 거냐.”
그에 대한 운호의 대답은 개원이 생각해본 적 없는 유형이었다.
“형 천년비 좋아하잖아.”
“뭐?”
“천년비 사칭하는 사람 찾아다닌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이상한 여자를 데려와?”
개원은 웃겨서 헛웃음을 뱉었다.
운호의 말도 사실 사정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한데.
천년비를 누구보다 싫어하고 혐오하는 운호가 저러니 우스웠다.
“너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니까.”
“내가 데려온 친구가?”
“형 취향이.”
한 방에 개원과 천년비 모두 이상하게 몰아가는 취급에, 개원은 쓸쓸히 웃었다
“……어디가 어때서. 말 한마디 안 나눠 봤으면서.”
그러나 운호는 같은 말을 거듭하기만 했다.
“형은 천년비 좋아하잖아?”
동생이 왜 이러는지 알기 힘들어서, 개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동생을 보았다.
운호는 운호대로 이상하게 굴면서도 오히려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었다.
이 화제로 가다가는 결론이 안 나올 느낌에, 결국 개원은 먼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물어볼 게 있는데.”
운호는 굳은 표정으로 침상 위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개원이 대화 도중 화제를 바꾼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
하지만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개원도 뭘 어쩔 수 없는 데다, 앞으로 해야 할 질문이 중요하기에 그는 동생의 뚱한 표정을 모른 척하고서 물었다.
“운호야. 너 혹시…… 내 행세를 하고 다닌 적이 있어?”
“행세 안 해도 잘 구분 못 해 사람들은. 내가 형처럼 웃고 있으면.”
“의도적으로 내 흉내를 낸 적은?”
“있어. 이렇게.”
운호가 곧장 개원의 따스한 웃음을 흉내 내자 개원은 거울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
개원과 운호는 얼굴이 같으면서도 분위기는 다른 편이었는데, 운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다른 점을 얼굴 근육을 이용해 지워버린 것이다.
“꽤 흡사하구나.”
천년비가 진짜 속을 수도 있을 만큼.
하지만…… 그러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동생이 그의 연인을 죽였다면? 심지어 그 행세를 하면서? 개원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할 말이 더 있는 모양인데. 해봐 형.”
사람 속도 모르고 운호는 피곤한 얼굴로 침상에 누웠다.
개원은 말하기 어려운 내용에 주저했으나, 어쨌든 진실은 알아내야 하기에 어렵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너. 내 행세를 해서 천년비를 죽였어?”
운호는 기지개를 켜고서 늘어지다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
“내 행세를 해서 천년비를 죽였냐고.”
운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아니?”
“확실해?”
“확실하냐고? 황당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글쎄.”
천년비 본인에게 들었단 이야기를 할 수 없던 개원이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운호는 침상 위에서 몸을 굴려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는 충고하듯 말했다.
“이상한 망상 하지 마, 형.”
개씨 가문 사람들은 대대로 친탁을 해서 후손들 얼굴이 죄다 비슷비슷했으나, 그래도 천년비가 헷갈릴만큼 닮은 사람은 운호 하나뿐이었다.
개원은 운호의 부정을 연달아 들었으면서도 다시 물었다.
“용고라고. 그건 알아?”
좀 더 뚜렷한 증거를 제시했으나 운호는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알지. 그게 왜.”
조금도 찔리는 구석 따위 없는 말에, 개원은 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운호는 ‘이 형이 오늘 왜 이러나’라는 표정이었다.
그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다가, 개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돌아섰다.
“아니다.”
* * *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원이가 동생을 데리고 간 사이. 나는 민신과 나란히 서서 연못을 구경했다.
딱히 연못을 보자고 나온 건 아니고. 얼결에 이렇게 된 거였다.
‘사실은 개원이가 동생하고 대화 나누는 걸 엿들을 생각이었는데!’
아쉽지만 여기서 그쪽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멍하게 연못을 바라보았다.
연못 한쪽에는 살얼음이 덮여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얼음이 없어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노는 게 잘 보였다.
민신은 주머니에서 먹이를 꺼내 물고기들에게 뿌려주었는데, 한두 번 해본 게 아닌지 솜씨가 아주 좋았다.
그러나 민신은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건 익숙해도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가보다. 나처럼.
말을 잘 못하는 사람 둘이 나란히 서 있으려니 아주 불편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는 걸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던 중. 한 차례 물고기 밥을 다 준 민신이 작은 종이봉투를 뜯어 새 물고기 밥을 꺼내다가 입을 열었다.
“천 낭자가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그녀 쪽을 보았으나 민신은 또다시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상태로 계속 말을 이었다.
“천년비가 죽고 나서 개원이가 너무 슬퍼했거든요.”
“그래요?”
“네. 너무 아파해서 이젠 아무도 못 사랑할 거라 생각했어요.”
방금 뜯은 게 마지막 봉투였나 보다. 이젠 새 봉투를 안 꺼내고 손을 털면서 나를 쳐다보는 걸 보니.
눈이 마주치자 민신은 방긋 웃었다.
“그래서 안심이에요. 천 낭자를 데려와서.”
“음.”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해주자면 난 절대로 개원이랑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알아온 소꿉친구이지. 의심하지 않아도 돼요.”
별로 의심하진 않았는데.
민신은 밝게 웃고서 돌아서더니, 물고기 밥을 준다고 이리저리 늘어놓았던 도구들을 주섬주섬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데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개원이를 직접 통하지 않고, 나도 이 여자를 통해서 개원이 동생인 운호에 대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민 낭자는 개원이 동생 연인인 거죠?”
민신은 어색하게 웃더니 “글쎄요.” 하고 대답했다.
“연인 같던데. 분위기가.”
“그럼 좋고요.”
쑥스럽게 웃네. 사귀는 거란 거야 아니란 거야?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더 노골적으로 물었다.
“개원이 동생이랑은 늘 붙어 지내요?”
“자주 붙어 지내긴 하는데…… 하하. 이런 이야기 좋아하나 봐요?”
“엄청 좋아해요.”
예를 들어서 주기적으로 어디에 사라졌다가 돌아온다거나.
자주 놀러 가는 곳이 있는데 그 위치가 나와 개원이가 지내던 동굴 근처라거나 등등.
“난 이런 얘기 재밌게 잘 못하는데. 아쉽네요.”
자주 붙어 다니냐고 물은 건데 여기에 뭘 재밌고 말고 할 게 어딨다고.
내가 둘이 연애하는 이야기 듣고 싶어한다 생각하나.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그 생각 하는 거 맞나보다. 저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저렇게 반응하면 내가 뭘 알아낼 수가 없는데.
* * *
개원이 엄마는 좋은 사람이지만 ‘천년비’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다 보니 대화하고 있으면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이상해져서 피하게 된다.
민신은 가끔 물고기 밥을 줄 때를 제외하면 운호란 자와 붙어 다니는 것 같고, 운호가 홀로 어딘가로 가버리면 자기도 어디로 가버린다.
운호는 이후 딱 두 번 더 스치듯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 시비를 거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해대서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운호란 놈의 눈알이 찔러버리기에 아주 적합하단 걸 제외하면, 아직 그가 범인이란 정확한 물증은 없는 상태였다.
뭐…… 저 정도로 닮았다면, 범인은 개원이가 아니라면 그놈일 수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이건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 나는 운호 그놈에게 제대로 된 자백을 받을 방법을 찾아 산책에 나섰다.
“같이 가자.”
개원이 바로 겉옷을 입고 따라 나오려 했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아서 됐다고 거절했다.
“안 돼. 난 지금부터 아주 냉정한 가슴을 유지해야 하거든. 이럴 땐 혼자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야 해.”
“아, 그러면 근처에서…….”
“됐어. 오는 길에 탕후루 사 먹을 돈이나 줘.”
개원이 탕후루를 50개는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주었고, 나는 그걸 받고서 얼른 그 집 근처를 벗어났다.
이미 앞서 한번 해 온 절차이기에 나는 요 근방에서 가장 탕후루를 맛있게 만들어내는 집을 찾아가서, 생각하면서 먹을 탕후루 하나, 가는 길에 먹을 탕후루 하나, 지금 먹을 탕후루 하나, 입이 심심하면 먹을 탕후루 하나 이렇게 네 개를 샀다.
“동생들이 좋은 언니 누나를 둬서 좋아하겠네요.”
“내 동생들은 행운아죠.”
어째서인지 내 밑으로 동생이 셋 있다고 생각하는 가게 주인에게 거짓부렁을 한 번 날려주고서, 나는 탕후루 하나를 입에 물고 가게 밖으로 나와 번화가 끄트머리를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나 그러고 다녔을까. 탕후루를 세 개째 먹고 있는데, 여기서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얼굴이 보였다.
뭐야 저거. 아니, 저 사람. 귀자 아냐?
나는 목을 쑥 빼서, 저기 보이는 저 사람이 내가 아는 내시인가 뚫어져라 보았다.
얼굴은…… 흡사한데. 옷이 태감 복장이 아니어서 그렇지.
‘닮은 사람인가?’
가까이 가서 볼 만큼 궁금하진 않아서 멍하게 보고 있자니, 그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가온 사람은 곧장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계시면 어떡합니다, 마마.”
“귀자야?”
“제 얼굴도 잊으셨습니까?”
“얼굴이 같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개원 형제처럼요?”
“네가 개원이 형제가 같은 얼굴인 걸 어떻게 알아?”
“둘이 같이 걸어가는 걸 봤으니까요. 마마께서 개원 그자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걸 압니다.”
내가 탕후루 하나를 내밀자 그는 받아 들면서 속상하단 듯이 물었다.
“언제까지 여기 계실 겁니까, 마마. 폐하께선 마마께서 떠났단 게 문제가 될까 봐, 전염병에 걸렸다고 둘러대고 마마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폐하가 날 기다려?”
“당연하지요. 늘 마마만 생각하시는걸요.”
“그런 인간이 추운 겨울날에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코빼기도 안 비췄다고?”
제발 마음을 풀고 돌아와 달라, 같은 이야기를 하려던 귀자가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탕후루 가장 윗부분을 와작 깨물고서 퍽퍽퍽 씹었다.
사실 일이 해결되면 궁전에 돌아갈 생각을 어렴풋하게 하긴 했다.
떡돌이랑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지 않더라도, 후궁 생활 자체는 편하고 여유로웠으니까.
원웅이랑 부성도 신경 쓰이고.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하지. 왜 가자고 하니까 막상 또 이렇게 화가 나나 모르겠다.
떡돌이를 문 앞에서 기다리던 마치 그날처럼.
“마마. 이미 입궁한 마마께서 여기에 이러고 계신 게 알려지면 폐하도 더 마마를 보호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제발 돌아가시지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