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화내는 숨결이 좋아
타천천은 멱살을 잡힌 채로도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화내는 숨결이 너무 좋다, 녕녕.”
그러면서 눈웃음을 짓는데, 가느다래진 눈 안쪽으로 위험한 빛이 번뜩여서 나는 바로 손을 뗐다.
타천천은 아쉬워하는 얼굴로 내가 잡았던 자기 멱살을 만지작거리다가, 개원이 다가와 나와 자기 사이에 서자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이 숨결은 별론데.”
“나도 그쪽 좋자고 나온 거 아니오.”
타천천이 개원의 어깨 너머로 내게 눈을 또 찡긋했고, 나는 혀를 차며 그를 향해 속으로 ‘미친놈!’이라고 세 번 외쳐주었다.
하지만 곧 이럴 때가 아니란 생각에 다시 앞으로 나가 타천천의 멱살을 또 잡고 험악하게 물었다.
“이 개자식! 너 뭐야? 목적이 뭐야? 왜 내 얼굴 까고 길을 뒤집고 다녀?”
“개 씨는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인데.”
타천천은 눈으로 개원을 가리켜도 내가 인상을 구기고 자기만 노려보자, 눈 깜짝할 사이 내게 잡힌 멱살을 풀어내고는 모닥불 앞으로 걸어가며 거짓말했다.
“아 춥다.”
저게? 그 모습에 더 성질이 나서 나는 다시 가까이 다가가 항의했다.
“똑바로 말 안 해?”
별로 효과는 없었지만. 타천천은 모닥불 가까이에 손을 대고 싹싹 비비면서 놀리는 투로 말했다.
“화낼 필요 없어 녕녕. 그대에겐 나쁜 일 하나도 없으니.”
“내 얼굴이 까였어요 인간아, 내 얼굴이. 다른 사람 하나도 안 깠는데 나만 까고 있더라고. 너희가 길 뒤집을 때!”
그런데 나쁜 일이 없다고?
그러나 타천천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생각해 봐, 녕녕. 네가 천년비 몸을 포기한다면, 이젠 얼굴을 까건 덮건 남 일이니 무슨 상관이야?”
‘이…… 그럴듯하잖아?
“원래 몸으로 돌아올 생각이어도 너무 염려하지 마. 내가 네 명성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만들어줄 테니.”
그게 명성이냐? 악명이지? 놈의 첫 번째 말엔 혹했지만 두 번째 말엔 조금도 혹하지 않았다.
나는 황당해서 욕을 뱉었다.
“놀라운 개소리군!”
“멍멍!”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마자 타천천이 낄낄 웃으면서 진짜 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나는 욕도 하기 싫어지고 말았다.
언제봐도 진짜 변태잖아?
“설마. 그 개소리 하러 왔어?”
“아니.”
개소리하고 갈 생각이면 절대로 가만 안 있을 테다, 생각하고 있자니 타천천이 허공에 대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어디서 빼낸 건지 그의 손에 붉은 우산이 쥐여 있었다.
안에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려 넣은, 굉장히 아름다운 우산이.
이거 우산 쓰면 그림 녹아내리는 거 아냐? 의아해서 보고 있자니, 타천천은 그 예쁜 우산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자. 이거 주려고. 비가 많이 오기에. 비 맞지 말라고.”
“고작 이거 주러 왔다고?”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지금은 몸도 약한데.”
타천천은 자기 겉옷을 벗더니, 이미 개원의 겉옷을 입은 내 어깨에 자기 겉옷을 또 걸쳐주며 중얼거렸다.
“약한 천년비라니. 흥분돼.”
“너 변태인 거 동네방네 굳이 소문내야겠어?”
그 작은 목소리에 내가 펄쩍 뛰자, 그는 히죽 웃더니 동굴 밖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러다가 입구에서 손을 젓자 내게 준 것과 같은 똑같은 붉은 우산이 나타났다.
“한 쌍이야.”
굳이 돌아서서 자기 우산과 내 우산이 같은 모양새임을 알려준 타천천은, 이번에는 정말로 뒤를 돌아 폭우 속으로 사라졌고, 물 쏟아지는 소리는 그의 발소리와 기척을 완전히 덮어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데서 빤한 시선이 느껴져서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곳엔 내 몸을 가진 사람이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가만히 있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인지 몸을 어쩔 줄 모르고 계속 쩔쩔매고 있었다.
뭐 하나 싶어서 뚫어져라 그 모습을 보자, 내 몸을 가진 사람은 밝게 웃더니 갑자기 뒤돌아서 빗속에 뛰어들었다.
‘저건 또 뭐야?’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웬걸?
“비야. 잠시만.”
이번엔 개원까지 따라 나가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동굴 속에는 나 혼자 남게 된 것이다.
기분이 나빠서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이건?
* * *
그분은…… 나한테 관심이 없으시네.
아유정은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천년비의 눈빛을 떠올리고서 시무룩해서 걸어가다가, 뒤에서 들려온 발소리에 우뚝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개원이 비를 쫄딱 맞으면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개원을 보자 아유정은 자신의 심장이 또다시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로 인한 두려운 감정보다 신기한 감정이 더 컸다.
이 몸의 반응이 개원을 향한 천년비 몸의 진짜 반응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고 있자니 개원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타천천은 어디 갔소?”
타천천을 쫓아온 모양이었다.
아유정이 고개를 젓자, 개원은 쓰더니 한숨을 내쉬고서 돌아섰다.
그 미련 없는 뒷모습에, 아유정은 아쉬워서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돌연 개원이 다시 돌아서는 바람에 아유정은 얼른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사하비단. 대체 뭘 꾸미는 거지?”
게다가 개원이 한 질문은 그녀가 대답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말을 해주지 않자니 미안해서, 아유정은 우두커니 땅만 계속 보고 있었다.
아유정이 아무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자 개원은 눈썹을 찡그리고서 돌아섰다.
그러나 바로 뒤에 선 타천천 탓에 이번에는 개원이 멈춰서야 했다.
타천천은 개원과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으면서 알려주었다.
“사람 세 명이 거짓말하면 거짓말도 사실이 된다고 하죠.”
“?”
“사람 천 명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공격한다면, 개 대협은 어쩔 겁니까?”
무슨 소리지? 개원이 인상을 찌푸리고 보자, 타천천이 다시 혼자 말을 이었다.
“적들이 뭐라건 옆에 있어 주려나? 연인을 믿어주면서? 안 휘둘리고? 착하네.”
심지어 그가 스스로 결론까지 혼자 내고서 생글 웃자, 개원은 기분이 나빠졌다.
착하다는 데도 그리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어조여서.
“무슨 소리요.”
개원이 딱딱하기 되묻자 타천천이 대답했다.
“난 천 명 다 죽여버릴 겁니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서늘해서, 개원은 지금 그가 한 말이 장난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개원은 혹시나 해서 미심쩍게 물었다.
“혹시…… 천년비를 연모하시오?”
타천천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 가르쳐주면 재미없지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우산을 쓰더니 빗줄기 사이로 들어갔다.
아유정도 눈치를 보다가 얼른 타천천을 따라 갔다.
타천천은 혼자 우산을 쓰고 갈 것처럼 생겨서는, 아유정이 옆으로 와 서자 우산을 기울여 비를 피하게 해주었다.
그 뒷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는데, 개원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치솟았다.
자기야 이전에도 가짜 천년비를 몇 번 적은 있지만, 진짜 천년비는 자기 원래 몸을 처음 보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심란할 게 틀림없었다.
개원은 천년비를 위로해주기 위해 황급히 동굴로 돌아갔다.
하지만 천년비는 이미 붉은 우산을 옆에 놔두고, 겉옷 하나는 아래에 깔고 하나는 위에 덮고서 잘 자고 있었다.
”…….“
* * *
자고 일어났는데 무슨 냄새가 나서 보니 개원이가 모닥불에 버섯을 굽고 있었다. 언제 저걸 따 왔데?
신기해서 멍하게 보고 있다가 나도 달라고 손을 뻗자, 그는 버섯 대신 자기 손을 주었다.
”아직 덜 익었다.“
뭐야. 이거 먹으라고? 나는 그 손을 콱 깨무는 시늉을 하다가, 개원이가 눈도 깜짝하지 않자 흥이 식어서 물었다.
“어디 갔다 왔어?”
“타천천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물어보러 갔지. 다녀오니까 네가 자고 있더라.”
“그래?”
내 몸을 보러 간 건 아니고? 그리워서? 좀 수상한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으나, 개원이는 순순히 다 구워진 버섯만 내밀며 물었다.
“왜 자고 있었어?”
“그냥 피곤하니까 잔 건데?”
왜 저런 질문을 하지? 이상해 쳐다보자, 개원이가 또 갑자기 웃었다. 뭐야 왜 저래?
“독 발랐어?”
떨떠름해서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심각한 상황 같은데. 중심에서 제일 태평하다 싶어서.”
“원래 파도 밑바닥이 제일 잔잔하다잖아.”
“태풍 중심을 말하는 거지?”
“그래. 그거.”
버섯 한 입을 베어 먹자 안에서 고소한 맛이 났다. 나는 다시 버섯을 후 후 불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타변태 말이 맞긴 해.”
“맞는다니? 어느 부분이? 내가 볼 땐 죄다 틀린 말만 하던데.”
“난 원래 몸으로 절대 안 돌아갈 거거든. 그 부분.”
“!”
“그러니까 천년비로 더 악명을 떨치든 말든 상관없어. 버섯이나 먹어야지.”
* * *
개원이의 본가로 가는 길에 우리는 몇 번 더 사하비단이 싸지른 똥을 발견했다.
가는 족족 사하비단은, 정확히는 ‘천년비’가 포함된 사하비단이 여기저기서 사고를 쳐둔 것이다.
게다가 내 얼굴을 내내 까고 다녀서, 갈 때마다 들려오는 거라곤 천년비에 관한 욕이었다.
물론 나는 이제 그 천녀비가 아니라 천소여로 살 거지만, 그래도 평생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당장 기분이 안 나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 일 아니니까 신경 안 쓰려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지내던 어느 날.
개원이가 어디서 또 사람 하나를 돕고 와서는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사하비단의 공격이 갑자기 거세진 거 같아.”
개원이가 보기에도 사하비단의 행동이 좀 더 거칠어진 게 느껴지는구나.
“그러게.”
“전에 피풍의를 쓰고 길마다 뒤집어엎으며 간 날. 그날이 무슨 계기였던 거 같은데…….”
개원이는 타천천의 계기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인데. 솔직히 나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내가 조금 걱정하는 게 있다면 떡돌이 정도다.
떡돌이는 이 모든 걸 책임지고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잖아.
나라에서 난리가 나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고 신경 쓰이고 그러지 않을까?
“으.”
“비야. 괜찮아?”
“난 괜찮아.”
다른 사람이 안 괜찮을 거 같아서 그러지.
젠장, 떡돌이 자식. 바쁘다고 나 까먹고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천년비가 나라고 오해해서 잡아오라고 지시해도 안 되지만.
그래, 나랑 있던 즐거운 일은 다 기억하고, 나한테 화났던 일만 바빠서 다 까먹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좋을 거 같아.
“걱정 마. 나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어. 짜증 나긴 한데 그게 다야. 난 이 몸으로 살 거니까.”
계속해서 나를 걱정스레 보는 개원이에게,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고서 기지개를 켠 다음 창으로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이 중 하나가 개원이의 집이다 이거지?
그러다 마침내 개원이의 본가에 도착했다.
변두리 쪽에 있어서 다행히 찾기 쉬운 위치였다. 내가 여길 또 찾을 일은 없겠지만.
그러는 사이. 개원이는 자연스럽게 본가 대문을 열었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개원이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
“잠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