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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51화 (151/283)

##  151화. 이 숭어대가리

기몽은 다른 사람들이 서신을 볼 새라, 다시 보따리에 넣어 잘 싸서 든 다음 데리고 온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촉비 마마의 궁녀를 추포하라.”

궁녀는 달아날 시도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겁이 난 얼굴로 미약한 발버둥만 몇 번 치던 궁녀는 곧 허수아비처럼 끌려갔다.

병사들은 동쪽으로 갔으나, 기몽은 내게 꾸벅 인사를 올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서쪽을 향해 걸어갔다.

떡돌이에게 이 서신을 보여주려나 봐.

아직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젠장, 비원이 혹시 일을 실수한 건가?

나는 사람들이 흩어지길 기다렸다가, 다른 길로 비원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왜 그쪽이 옵니까?”

비원은 창고 부근에 숨어 있다가, 촉비의 상궁이 아니라 내가 나타나자 제 발로 나와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 다리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겠단 표정으로.

“네가 했어?”

내가 묻자, 비원은 더욱 의아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예?”

“네가 촉비 보따리 짐을 바꿨어?”

“무슨 소립니까. 그러기로 했잖아요.”

“바꾼 데서 한 번 더 바꿨냐고.”

“그게 무슨……?”

이렇게 보아선 비원은 전혀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난 사람을 보는 안목이 개똥이니까, 의심을 풀진 말아야지.

“상궁이 기몽에게 잡혔어. 근데 보따리 안에서 필첩이 아니라 다른 게 나왔어. 선황제가 쓴 서신이래.”

“!”

“네가 한 거 아니야?”

“제가 한 건 아닙니다만…….”

비원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하지만 곧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어디가? 이렇게 가면 어떡해?”

그 뒤를 쫓아가며 묻자 그는 좀 짜증스러워하며 대꾸했다.

“어디 가긴요. 우리가 그 일에 연루되었단 흔적이 남진 않았나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보아하니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손대지 않은 부분까지 덮어쓰면 안 되니까요.”

“나는…….”

“마마는 이런 일엔 도움이 안 될 테니 방에 들어가서 그냥 놀란 척하고 계십시오. 지금은 그게 낫습니다.”

“내가 너무 청렴하단 거야?”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니 좋군요. 예.”

단호하게 말한 비원은 정말로 다급한지 빠르게도 가버렸다. 나도 내 처소로 얼른 돌아갔다.

* * *

천년비의 예상처럼 기몽은 곧장 월요 황제에게 갔고, 그 서신이 담긴 보따리를 황제에게 내밀었다.

“누가 널 거기에 데려갔다고?”

“천빈 마마십니다.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기몽의 보고에 월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고했단 말을 하고 물러가라 지시했다.

기몽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침착한 태도였다.

주먹을 한 번 꽉 쥐긴 했으나 이 일을 그리 크게 여기진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서신에 대해 알고 계셨나?’

기몽의 의심은 정확했다. 월요는 이미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니, 알다 뿐일까. 촉비에게 선황제의 서신을 준 건 월요 본인이었다.

죽은 태감들의 필첩은 촉비 본인의 것이지만, 이 서신은 월요가 촉비에게 맡긴 것으로, 실제 선황제의 서신이 맞기도 했다.

과거에 선황제는 실제로 월요가 황태자에 어울리는가를 두고 은밀히 의논한 적이 있었다.

몇몇 중신들은 월요가 화연공주가 사망했을 당시 완전히 정신이 나간 일을 두고 늘 걱정했는데, 그 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월요가 황태자에 어울리지 않는다 주장했지만, 개중 가장 큰 원인으로 짚은 건 누이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휘청이던 월요의 정신력이었다.

그들은 선황제에게, 월요는 정신력이 약해 불안하니 다른 적임자를 황태자로 세우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화는 은밀하게 이루어졌으나, 월요는 선황제에게 직접 이들의 주장에 대해 들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네가 알아보거라.

-아바마마!

-어느 대신들이 널 반대했는지, 절반 이상 찾아낸다면 나는 널 끝까지 믿고 지지할 거다. 지금처럼. 그러나 그만큼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 아비도 고민을 해보아야 겠다.

-소자를 믿지 못하십니까.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황제가 된 너를 공격한다면, 그건 네가 강할 때가 아니다. 네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일 거다. 너의 고통은 네 적들의 기회일 뿐이니. 사람을 안 믿는 네가 누구의 위로를 받으며 이겨내겠느냐? 아비는 네가 그자들의 공격으로 상처받은 자리에 또 상처 나는 걸 원치 않는다.

선황제는 그렇게 말했고, 그에게 자신이 그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내주었다.

선황제의 이름은 있으나 상대의 이름은 없는 서신을.

그러나 시험 도중 선황제는 사망했고, 월요는 결국 그들이 누구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월요는 아직도 선황제의 시험을 그대로 치르고 있었다.

선황제의 말처럼, 그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약해진다면 그 틈을 타 공격할 이들이니, 당장 문제없어 보이더라도 찾아서 내치고 싶었다.

극소수의 의견이라면 선황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을 터.

이에 월요는 함정을 파고, 누군가 그것을 물기를 기다렸다.

촉비에게 서신을 맡기고, 그림자 몇 명이 그녀와 손을 잡도록 했다.

그러나 몇 해가 가도록 성과가 없었는데, 며칠 전 촉비가 뜻밖의 말을 했다.

-누군가 신첩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신첩이 숨긴 물건에 대해 협박하는 서신을 보냅니다.

촉비의 보따리가 함정이 아니었더라면, 촉비는 협박에 떨었을 것이나, 그 보따리가 함정이었기에 촉비는 협박범을 피하지 않고 역으로 함정을 팠다.

-협박이 두려워 물건 위치를 바꾸는 척 상궁에게 들려 보내겠습니다.

협박범이 원하는 게 촉비를 공격하는 것이었는지, 월요를 공격하는 것이었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이번에 협박범이 노린 건 월요가 아니라 촉비였다.

“……폐하.”

오원요는 걱정스럽게 월요의 눈치를 살폈다.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그는, 월요가 이 일로 몹시 화가 났으리라 여겼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월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천빈에게 간다.”

* * *

“상궁께선 괜찮으실까요?”

궁녀가 걱정스럽게 묻는 말에 촉비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당연하지. 이 서신은 폐하께서 맡기신 건데, 괜찮지 않을 리가. 사안이 크니 기몽도 이건 우리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풀어줄 거다. 그 사냥개는 수사엔 아주 정직하거든.”

궁녀는 안심해서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시 또 걱정이 되어 물었다.

“폐하께 협박범이 보따리 내용물을 바꿔치기해뒀단 걸 말씀드리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그자들이 가짜 보따리를 만들어 가짜 필첩을 넣어 뒀는데 마마께서 진짜 보따리로 도로 바꾸신 거요…….”

“할 필요가 뭐가 있지? 천빈이 내가 숨긴 걸 노렸단 건 똑같은데?”

* * *

처소로 돌아와서 뜨거운 차를 후 후 불어 마시면서,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해보았으나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차만 마시고 있자니, 밖에서 황제 폐하가 온다고 태감이 소리를 질렀다.

곧 떡돌이가 나타났고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서 얼른 일어났다.

“다들 나가라.”

그러나 평소와 달리 떡돌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괜찮아?”

그 모습에 걱정이 되어서 묻자, 떡돌이는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날 보는 눈동자가 간질간질했는데. 오늘은 영 그러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혹시…… 촉비 보따리에서 나온 물건이 문제 될 물건이었어?”

떡돌이에게 피해를 줄 만한 물건이었을까?

떡돌이는 차갑게 대답했다.

“네게 실망이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렇다’로 알아들었다.

아니면 그가 나한테 화를 낼 이유가 없으니까.

“너한테 문제 될 내용이야?”

“짐은 그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어? 그럼?”

“네가 하는 짓이 고궐과 똑같기 때문이다.”

고궐이라면 떡돌이가 싫어하는 장공주 신랑 아닌가.

장공주 옆에서 성격 좋은 사람인 척 붙어 있다가 배반하고 떠났다는?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그 사람이랑 같아? 나는 누굴 배반한 적이 없는데?”

“앞에서는 순진한 척. 계략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 척. 그런 데는 관심도 없는 척 굴어 놓고. 뒤에선 음흉하게 사람을 내칠 계략을 세우고. 이런데도 네가 그자와 같지 않다고?”

“그 서신이 나와서가 아니라…… 내가 촉비를 공격해서 화났단 거야? 고작 그거 때문에?”

“촉비를 공격한 게 맞는다는 걸 인정하는구나.”

“먼저 내 궁녀를 공격한 건 그 여자잖아.”

“그래. 같은 수준이어서 아주 좋겠구나.”

“!”

휙 돌아선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그대로 가버렸다.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으나, 황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

나쁜 놈. 나는 촉비 보따리 안에서 선황제 서신이 나와서 자기한테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촉비를 공격했다고 화를 내? 나쁜 놈. 진짜 나쁜 놈.

내가 고궐이랑 똑같은 사람이려면 촉비가 아니라 저를 공격했겠지. 이 숭어대가리 같은 놈.

무공을 익히는 날이라 연무장에 나왔지만, 아직 개원은 오지 않고 분노만 찾아온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목검을 마구 휘두르다가 이조차 싫어져서 수풀 변두리로 가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서 얼마나 있었을까. 조금 멀찍한 데에서 태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선황제 폐하께서 막판에 황제 폐하랑 대판 싸우고 황태자를 바꾸려 했던 게 정말인가?”

“설마. 선황제 폐하께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태후 마마랑 폐하를 찾으셨는데 뭘. 싸워도 진즉 화해하셨겠지.”

“그럼 그 서신은 뭔데?”

“그냥 서신이겠지. 싸웠을 때 흉본 거겠지 뭐 그리 깊게 생각해?”

“하지만…….”

태감들은 이동하면서 속삭이고 있었던지, 곧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역시 떡돌이. 그 서신 때문에 뭐 안 좋게 된 거 아닐까? 내가 촉비를 공격해서 화난 건 핑계고, 사실은 서신 때문에 화난 게 아닐까?

초조하게 풀을 뜯다가 나는 결국 떡돌이를 만나기 위해 연무장에서 내려와 그를 찾아갔다.

고의로 서신이 공개되게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행동으로 떡돌이가 피해를 봤다면 미안하다고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마마. 폐하께선 일이 바쁘십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갈 때마다 늘 들여보내주던 황제는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반 시진이 지나도, 한 시진이 지나도, 두 시진이 지나도.

“마마. 폐하께서 날이 추우니 그만 들어가라 하십니다.”

오 공공을 보내서 돌아가란 말은 계속 전했지만, 그래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온갖 관리들과 태감들이 드나들어도.

결국 하늘이 붉어지다가 완전히 어두워지는 걸 보고서야, 나는 황제가 내게 단단히 화가 난 걸 알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냥 오시지 왜 거기 계속 서 계셨어요, 마마!”

내가 방으로 돌아오자, 원웅과 부성은 옷을 갈아입도록 도와준 다음 따뜻하게 데운 이불에 들어가게 하고서 손과 발을 주물러주었다.

귀자는 설탕을 넣고 끓인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손발이 완전히 어셨잖아요.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요!”

나는 멍하게 우유잔을 받고서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연기를 후 후 불었다.

사실은 거기에 더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천라지망을 피할 때 며칠 밤을 불편한 자세로 새운 적도 있는걸.

하지만 그러면…… 떡돌이도 못 나오고 저 전각 안에 갇혀 있어야 할 테니까.

내가 문을 막고 있으면 그는 내 얼굴이 보기 싫어서 안 나올 테니까. 그러면 너무 답답할 거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갑자기 콧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콧물이 흐르자, 부성은 얼른 손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코를 풀고서, 세 사람에게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서 우유를 한 잔 다 마신 다음 이불 안에 완전히 파고 들어가 버렸다.

아니면 콧물이 아니라 진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우는 건 싫으니까. 콧물 선에서 끝내자.

그런데…….

‘누구지?’

이불 안에서 킁킁거리고 있는데 밖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떡돌인가? 나한테 냉정하게 대하고 나니 역시 미안한 거지?

떡돌이가 왔을 거란 생각에 잠시 기대가 들었으나, 곧 그 기대는 사라졌다.

떡돌이가 아닐 거야. 떡돌이가 이렇게 인기척 없이 올 리가 없어.

‘그럼 누구지?’

대답하듯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데 있지 말고. 같이 떠나자 천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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