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첨벙첨벙첨벙
떡돌이는 황제다운 풍모를 뽐내면서 맞은편에 털썩 앉더니, 한쪽 팔만 무릎에 괴고 위험한 분위기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물에 흠뻑 젖은 옷자락 사이로, 어젯밤 내내 살펴보던 그의 보물이 위용을 슬며시 드러냈다.
“오.”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여보다가, 눈을 비비고 또 깜빡거려보았다.
“오.”
환상이 아니네.
떡돌이는…… 소문과 달랐다. 그는…… 쭉정이도 아니었고…… 내관도 아니었고…… 물론 내관이란 소문은 원래도 없었지만…….
하여튼 그는 정말로……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나는 침을 삼키고서 그를 빤히 보았다.
‘떡돌이는 얼굴도 예쁘고 몸도 예쁜데. 다른 데도 예쁘구나.’
* * *
저 여자. 뭐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월요는 자꾸 자신을 가지고 노는 천빈에게 똑같이 약 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예전에 그를 내관으로 오해했던 일이 아직도 잔여물로 남은 듯한 천빈의 오해도 풀어주고 싶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그녀의 생각과 달리, 아주 대단하고 위엄 있는,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제답단 걸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반숙이가 부끄럽거나 놀라는 표정 없이 무슨 사냥감 보듯 그를 쳐다보자, 처음의 각오는 사라지고 슬슬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현듯 첫 시침 때의 천 귀인이 떠올랐다.
조금도 쑥스러운 기색 없이 아주 당당한 말을 하던 천 귀인.
그때도 이미 기미가 보이긴 했다. 월요는 어쩐지 제 무덤을 판 기분이 들어서 슬며시 자세를 바꾸었다.
그 순간. 반숙이가 피풍의를 벗어 옆에 휙 던지더니, 물에 뛰어들어왔다.
놀라서 일어나려던 월요는,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 다가오기 시작하자 더욱 놀라서 도로 주저앉았다.
천빈이 헤엄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물소리가, ‘첨벙 첨벙’ 아니라 ‘첨벙첨벙첨벙’으로 들릴 정도였다.
피풍의를 벗었다지만 그래도 옷이 치렁하니 거슬릴 텐데.
전혀 개의치 않고 빠르게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돌진하는 상어 같아서, 월요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다시 일어섰다.
천빈은 이미 그때쯤 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반. 반숙아.”
놀라서 말이 더듬더듬 나간 월요는, 천빈이 얼굴이 아니라 눈동자가 빨개져 있단 걸 발견했다.
얼굴이 빨가면 귀여웠을 텐데.
눈동자가 빨개져 있자 좀 위험한 느낌이 들어서, 월요는 얼른 몸에 걸친 얇은 옷 끄트머리를 당겨 다리를 감추었다.
그러나 천빈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의 보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폐하는 정말 안 예쁜 데가 없어.”
“고맙지만 그 말을 꼭 거길 보고 해야 할까.”
이에 월요가 아예 걸치고 있던 윗옷을 벗어서 다리 사이에 얹자, 천빈은 아쉽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보여주려 불러놓고 왜 감추고 그래.”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니까! 열은 월요가 올랐다. 그는 천빈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그들은 부부간의 일을 치른 적도 없는데. 그러면 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쪽은 흥분만 하고, 부끄러움은 자기 혼자 가지고 있는 듯하자 좀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후궁들도 입궁 전, 첫날밤에 대한 교육을 집안의 여자 어른들에게 책으로 배우고 온단 건 들었지만, 그래도 책으로 보는 것과 실전은 다를 텐데.
이쯤 되자 월요는 의심스러워졌다.
천씨 가문의 공오부인. 천빈의 모친. 대체 딸에게 뭘 가르쳐서 보낸 거지?
* * *
떡돌이는 막상 판을 깔아 놓고선. 내가 다가오니 부끄러운가 봐.
하지만 그와 달리, 나는 이렇게 작정하고 만들어 낸 야릇한 분위기를 처음 겪자 여러모로 마음이 동해 있었다.
‘개원이는 점잖고 단정했는데. 떡돌이는 전혀 다르구나.’
이 상황에 마음이 끌려 속으로 수십 번 감탄이 나왔다.
떡돌이 개원이와 다른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다른 후궁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줬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좀 신경이 쓰이지만, 당장은 떡돌이의 모습만으로도 열이 올랐다.
게다가 떡돌이가 보여주는 이 놀라운 자태는, 복수를 하기 전에는 그와 동침하지 않으리란 내 결심을 자꾸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게 했다.
자. 나는 개원이 위치도 알고, 개원의 사촌인 개시시에 대해서도 알고, 개원이 ‘천년비’를 또 죽이기 위해 여기서 멀리 떠나지 않으리란 것도 알잖아.
그런 떡돌이와 운우지정을 나눈다고 해도 복수하는 데 문제없지 않을까? 개원이는 계속 ‘천년비’를 찾아 후궁들 근처를 맴돌 텐데?
맞아. 내 생각이 맞아.
본능이 이성을 설득하는 데 거의 성공하려는 순간.
마침 떡돌이의 긴 목을 따라 물방울이 주륵 흘러내려왔다.
나는 며칠간 굶은 사람처럼, 내게 남은 물방울이 그것 하나뿐인 것처럼 얼른 떡돌이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떡돌이는 놀랐는지 몸을 움찔하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낮게 신음했고, 나는 완전히 머리 안이 얼얼해졌다.
“폐하…… 예뻐.”
귀에 속삭이면서 나는 그의 몸을 따라 한 손을 내렸다.
그런데 딱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떡돌이가 내 손을 딱 잡아 버렸다.
인상을 쓰고서 내려다보니, 그가 내 손목을 움켜잡고서 자기 보물을 건드리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떡돌아. 왜?”
왜 이러나 싶어 쳐다보자, 떡돌이는 뜻밖에도 얼굴이 발개진 채 말했다.
“여기까지.”
황당해서 나는 입을 벌렸다.
“뭐?”
이렇게 차려입고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잔뜩 분위기를 잡아 놓고서. 자기가 직접 자신의 위엄 있는 물건을 자랑해 놓고서.
여기까지? 농담인가? 우리는 부부인데?
그러나 농담이 아니었다. 떡돌이가 정말로 일어났으니까.
“정말 가려고?”
그 뒷모습을 보며 불렀으나, 떡돌이는 대답도 않고 일어서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더니 뒤늦게 내가 생각났단 것처럼, 나를 뒤돌아보며 친근한 척 지시했다.
“옷이 물에 젖었다. 감기 걸릴라. 너도 얼른 방에 돌아가 쉬어야지.”
그 달아나는 뒷모습을 기가 막혀서 보고 있으려니, 아까 잠시 눌려 버렸던 이성이 욕을 하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 * *
한편, 월요 황제는 유쾌하게 침전으로 돌아갔다.
어제 자신을 한껏 자극해 놓고서는 옆에서 편안하게 잠들어버린 천빈에게 복수했단 기분에 아주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다가 옷자락이 목덜미에 닿자, 그는 천빈이 자신의 목 옆에 입을 맞춘 감각이 재차 떠올라 몸을 떨었다.
월요는 천빈이 입을 맞춘 그 부위에 자신의 손을 덮고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그는 태연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속눈썹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월요는 손을 떼고서 희미하게 웃었다. 마음에 들었다. 반숙이도 나한테 감정이 없진 않구나.
유혹하자마자 바로 넘어오는 그 모습이 귀엽게 여겨졌다. 당시에는 놀라서 멍하게 있었으면서.
월요는 옷을 다 갈아입자 뿌듯하게 웃고서 자기 침상으로 가 누웠다.
승언은 황제가 눕는 걸 확인하고서, 방 안을 밝혀둔 촛불 중, 커다란 촛불 몇 개만 골라서 껐다.
그런데 웬일인지, 누운 지 일 각 정도도 지나지 않아서 황제가 눈을 번쩍 뜨더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승언은 아무 생각 없이 황제를 보았다가, 그가 식은땀까지 흘리자 놀라 다가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승언아.”
그러나 황제는 식은땀만 흘리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까지 잠겨 있었다.
그걸 보자 승언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
“예, 폐하. 하명하십시오. 어의를 부를까요?”
황제는 따뜻한 물에 몸을 오래 담가두어야지, 나갔을 때 몸이 가장 혈색 있어 보일 거라고 했다.
신빙성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황제가 그러겠다고 하니 다들 그러게 뒀다.
그런데 황제가 저렇게 땀을 흘리고 목이 가라앉자, 승언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날이 추운데 너무 뜨거운 물에 오래 있어서 황제가 감기에 걸린 건 아닐까?
“짐이 미쳤다.”
그러나 황제가 중얼거리는 소리는 감기와는 관련이 없게 들렸다.
“예?”
승언이 당황해 물었으나, 월요는 대답 대신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짐이 미쳤지.”
그가 이마를 짚고 돌아누워 끙끙거리자, 승언은 황제가 정말 왜 이러나 싶어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다 오원요 쪽을 보며 도움을 청하자, 오원요는 혀를 차고서 다가오더니 승언의 팔을 잡고 황제의 침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알려주었다.
“폐하는 늘 천빈 마마와 가까워질 기회를 노리셨지만, 마마 때문에 이루지지 못하셨지. 그런데 오늘은 직접 기회를 만들어 놓고선 직접 차버려서 저러시는 거다.”
“아.”
승언이 이해하고서 황제를 보는 사이. 오원요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 소리가 다 들렸던 건지, 황제가 작게 한탄했다.
“내관인 오원요도 하는 걸 짐이 어찌…….”
* * *
그 시각.
날이 어두워졌지만 주루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웃고 떠들면서 먹고 마시느라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어서, 그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 몇몇 사람들은 세상의 고뇌를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무거운 표정으로 술을 연거푸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중에는 개원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잊어야 하나. 그게 그녀가 원하는 건가. 왜 날 떠났는지조차 모르는데.”
술에 취한 개원은 혼잣말까지 해가면서 쓸쓸히 즐거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이곳이 아닌, 행궁 저 너머에 가 있었다.
그의 마음이 천빈에게 폐가 될 거란 개시시의 이야기와 이미 황제에게 마음이 사로잡힌 것 같던 천년비의 태도, 자결해서 그를 떠나더니, 되살아나서도 모른 척하는 천년비가 연달아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심장을 욱신거리게 하는 일들이었으나 그 외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사실은 그녀가 살아 있음에 만족해야 하는데.
거기서 그치지 못하고 우울해하는 자신이 참 못났다 싶었다.
이 때문에 개원은 술기운으로 굳이 내공을 몰아내는 대신, 자신을 취하게 해 줄 술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다행히 효과가 있어서 점점 정신이 몽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원은 몇 번 잠에 취했다 빠지길 반복하면서 연신 술을 혼자 마셔댔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 천년비가 서 있었다. 다른 몸에 들어간 천년비가 아니라 진짜 천년비가.
개원은 멍하니 그 천년비를 보다가, 이건 환상일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환상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개원은 자신도 모르게 울면서 묻고 말았다.
“왜 나를 모른 척하지?”
그 애달픈 질문에, 천년비. 정확히는 천년비의 몸에 들어간 아유정은 난처해졌다.
그녀는 타천천의 지시로 개원을 데리러 온 것이었는데.
늘 멀쩡하고 철두철미하던 개원이 자신을 보며 묻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술에 취한 탓에 자신을 진짜 천년비라 여기는 것 같고.
“저…… 대협?”
“왜 나를 모른 척해?”
“대협.”
아유정은 탁자 위에 한가득 놓인 빈 병들을 힐긋 보고서, 한숨을 내쉬고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대협. 일어나시지요. 많이 취했습니다.”
다행히 개원은 탁자에 뻗었던 상체를 일으켜 세우긴 했다.
하지만 상체를 세우자마자, 개원은 아유정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처연하게 바라보았다.
아유정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개원이 자신의 손을 소중한 보물처럼 들고서 이마를 비비자 더욱 기겁했다.
“이유라도 말해줘. 제발 이유라도 말해줘. 응?”
게다가 그러면서 뱉는 애원이라니.
아유정은 당황해 손을 끌어당겼다. 아니, 끌어당기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개원이 세게 잡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손에 힘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강시술에 오류가 생겼나? 당황한 아유정이 손에 연신 힘을 주어도 마찬가지.
결국 이도 저도 못한 아유정은 그에게 ‘지금 술에 취했다’고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우는 개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몸엔 있지도 않은 심장이 고통을 호소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