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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48화 (148/283)

##  148화. 자존심이 상한 황제

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는 방법을 모른다.

내가 귀인에서 빈 자리에 오른 건 후궁들에게 활을 쏘던 범인을 잡아서인데. 그런 범인이 언제 또 나타날지 안단 말인가.

나타나면 또 잡으려 하긴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

결국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아는 비 중 그나마 내 아군에 제일 근접한 비에게 찾아갔다.

어떻게 비가 됐는지 물어보면 되겠지.

“천빈 마마 오셨군요.”

연비의 상궁은 나를 보자 밝게 웃으면서 아는 척 인사하고는,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연비에게 내가 왔단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바로 밖으로 나와서 문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지요. 마마께서 마마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앞에 꼿꼿하게 앉아 책을 읽은 연비가 보였다.

“나 왔어, 언니.”

다가가서 무슨 책인가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그건 <양의억액의효과정>이었다.

“난 이거 다 읽었는데!”

연비는 아직도 이거 읽는구나! 그걸 보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내가 자랑하자, 연비는 빙그레 웃더니 책을 덮고서 옆으로 밀어두었다.

“기특하다.”

그걸로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연비의 상궁이 찻잔을 가져오다가 상황을 보더니 낄낄 웃으면서 알려주었다.

“마마께서도 당연히 다 읽으셨어요. 하지만 기본이 중요하시다고, 저렇게 한 번씩 다시 훑어보고 그러세요.”

“아아. 그런 거구나.”

신기하네. 저거 진짜 머리 아프던데. 굳이 한 번 더 볼 생각을 하다니.

하긴. 듣고 나니, 나는 한 번 보고 안 봐서 이미 내용을 다 까먹었긴 해.

어쨌든 역시 연비는 또순이야. 연비라면 비가 될 방법을 잘 알고 있을지도 몰라.

상궁이 차를 타주고 나가자마자, 나는 잘됐다 싶어서 얼른 물었다.

“언니. 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이런저런 사고에 얽히지 않되 당하지도 않고, 조용히 지내되 존재감을 잃지 않고, 폐하의 시침을 못 들어도 폐하께 잊히지 않아야 하고, 태후 마마께 좋은 인상을 보여야지.”

“그러기만 하면 돼?”

“이건 기본이란다.”

“더 나아가면 뭘 해야 하는데?”

“너처럼 또렷한 공을 세우거나, 이번에 우리가 행궁 관리를 맡아서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로 내명부에 도움 되는 일을 하는 거지.”

“그 외에는?”

“네 지지자들과 잘 어울리다 보면, 그 사람들도 틈을 보아서 네 품계를 올리자고 말할 거란다.”

“어떻게?”

“나라에 큰일이 생기거나 큰 행사를 진행할 때 품계를 올리기도 하거든. 너와 손잡은 관리들이 그때 네 장점을 열거하면서 올리자고 해주겠지.”

연비는 차를 마시고는 ‘이제 됐니?’ 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야.

여기서 내가 생각한 건 공을 세우는 것밖에 없지만, 다른 것들도 다 비슷한 수준이 아니던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더 빨리 비가 될 순 없어?”

“가면 사건 때문에 화가 났구나.”

연비는 다 알고 있구나. 나는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일로 원웅이 끌려가서 얻어맞았어. 가짜 자백을 시키려고 애를 완전 쥐어패 놨거든. 이게 말이 돼? 기몽 장군은 제대로 수사하려고 제 발로 뛰어다니는데, 원웅을 끌고 간 놈들은 애를 때려서 죄를 만들려 했어.”

말하다 보니 다시 화가 나려고 한다.

원웅이 그런 일을 겪은 게 오로지 나 때문이란 데 더욱 화가 났다.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내 사람이기 때문이란 것 말이다.

누군가의 복수를 위해 그 주위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무림에도 비일비재하단 건 나도 안다.

무림뿐만이겠어? 민간인들도 누군가를 상처 주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적이 무수히 많던 시절의 나는 오히려 그런 일을 겪지 못했다.

내 주위 사람이라고 할 이들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있던 게 개원인데, 개원이야 뭐. 내 적들이 숭앙하는 인물이었으니, 날 대신해 공격받을 일은 없었지.

원래 개원이를 질시하던 이들이 그의 명성을 깎아내리려 시도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이들조차도 개원을 공격하러 가진 못했다.

그랬다간 자기들까지 정파의 적으로 몰릴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여기선 날 공격하지 못하니 바로 내 궁녀들을 연달아 잡으려 했어. 생각보다 화가 난다. 치사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열이 올라와서 나는 마구 손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보니, 연비가 날 보는 시선이 아주 묘했다.

“왜 그래?”

그게 이상해서 묻자, 연비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능글맞게 웃었다.

“기억을 잃더니 성격이 완전히 변했구나. 사람 성격은 환경을 따라가는 건가?”

“그래? 원래 난 어땠는데?”

‘진짜 천소여’는 이제 죽어서 이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녀에게 흥미가 있다.

아직도 ‘진짜 천소여’가 어떻게 용고를 구했고, 누구를 먹이려다가 자기가 먹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니까.

연비는 차를 한 모금 다시 마시고서 어깨를 으쓱했다.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지.”

“착했다고?”

“하지만 사람들한테 곁을 잘 주지 않았어.”

“아.”

“아랫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의 너라면 궁녀가 조금 고초를 겪었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펄쩍 뛰지 않았을 거란다.”

“그래?”

그렇구나. 이렇게 들어선 뭐. 왜 용고를 먹었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품계가 올라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단 거지? 바로 비가 될 방법 따윈 없는 거네?”

“하나 있지.”

“있어? 뭔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연비는 짓궂게 웃으며 넓은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렸다.

“폐하는 아직 아이가 한 명도 없어. 아직 폐하의 나이가 젊어 다들 괜찮을 거라 말은 하지만,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지. 이럴 때 아이를 낳는다면, 그게 공주든 황자든 품계가 바로 높아질 거다.”

“!”

* * *

“반숙아.”

“응.”

“……아까부터 짐의 신체 부위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은데. 짐의 착각일까.”

밤이 되어 떡돌이가 찾아와 옆에 누웠는데. 연비가 한 말이 귓가를 아른거리면서 자꾸 잊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상체를 일으켜 앉고서, 이불 안에 꼭꼭 감춰진 떡돌이의 보물창고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 열정이 느껴졌을까. 눈을 감고 있던 떡돌이가 반쯤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나를 쳐다보며 내 시선을 지적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서 솔직하게 인정했다.

“맞아. 폐하의 보물을 보고 있었어.”

떡돌이는 눈가에 손을 올렸다가 떼고는 자신도 상체를 일으켰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내가 뭘.”

“네가 부부간의 은밀한 일을 떠올리고서 짐을 노릴 거란 기대는 이미 접었다. 너는 반숙이니까. 그러니 말하라. 또 뭔 짓을 하려고 거길 노리는 게냐.”

“아기가 태어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어.”

“!”

떡돌이는 이상해. 뭔 짓을 하려고 쳐다봤느냐기에 솔직하게 말했는데, 그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곧 고개를 젓고서 중얼거렸다.

“함정이다. 다른 뜻이 있겠지. 절대로 저 말뜻 그대로 했을 리가.”

저게 뭔 말인가 싶어서 듣고 있으려니, 그가 갑자기 침상 밖으로 나가 물을 마시고 왔다.

그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은 다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 말이 무슨 뜻이었지?”

뭐야. 지금 떡돌이 이 황제가, 나를 바보 취급한 건가? 내가 이 말의 뜻도 모르고 말했을 거라 여기나?

황당해라! 사람을 어떻게 보고!

“풀어서 해줘?”

“그래.”

“폐하 거시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고 있었어.”

구체적으로 말해주자 떡돌이는 이번에는 발끈해서 바로 대답했다.

“아주 훌륭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 마라.”

“하지만 세간에 소문이 도는걸. 폐하가 쭉정이일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러느냐!”

“다들 표현이야 둘러서 하지. 폐하가 혹시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은 아니냐고. 그게 그 말이잖아. 둘러서 표현하지만 대놓고 말하면 그거야.”

조금 부루퉁해진 떡돌이의 얼굴은 성능이 의심스러운 그의 하체와 달리 아주 완벽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날렵한 콧날과 우아한 눈매는 개원이만큼 잘생겼지만…… 개원이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억지로 개원이를 머릿속에서 밀어내고서, 다시 내 목표물에 집중했다.

그래. 연비 말이 맞아. 아이를 가지면 바로 비가 될 거야.

하지만…… 그러면 내 복수는? 내 복수가 물 건너가는데?

참. 이것도 저것도 쉽지 않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왜 한숨을 쉬지? 반숙이 너, 방금 뭘 생각한 거냐?”

“아무 생각도 안 했어.”

“하지만 한숨을 내쉬지 않았느냐. 딱 짐의 그 위치에 대고 한숨을 내쉬지 않았느냐. 솔직히 말하라. 무슨 생각을 하였어?”

“아무 생각도 안 했다니깐.”

“거짓말!”

초조하게 이불을 쥐었다 펴는 떡돌이의 손등을 두드려주고서, 나는 다시 제자리에 누워 이번엔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떡돌이가 자기를 보고 한숨을 내쉬지 말라니 어쩔 수 없지.

떡돌이는 뭔가 불편한 듯 연신 나를 보며 몸을 뒤척였지만, 내가 냉정하게 눈길을 주지 않자 결국 또 침상 밖으로 나가 물을 마시고 돌아왔다.

옆에 누운 그가 무어라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내 고민이 깊다 보니 들리지 않았다.

후우…… 진짜 개원이 때문에 뭘 하든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네.

그런데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꼭 잡아 오지 않는가.

고개를 돌리자 떡돌이가 눈 주위가 조금 붉어진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그래?”

그 표정이 좀 결연해 보여서 묻자, 떡돌이는 내 손을 잡지 않은 손을 뻗어 내 뺨을 잡더니 짓궂게 웃으면서 볼살을 잡아 늘였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그의 손등을 두드리자, 떡돌이는 코웃음을 치면서 날 놓아주더니 아주 건방지게 경고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반숙아.”

“응.”

“오늘 이런 식으로 짐을 가지고 논 걸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무슨 소리야?”

“내일 보아라.”

뭐를?

* * *

떡돌이가 뭘 경고한 건지는 다음날이 되자 알 수 있었다.

해가 붉게 깔리는 저녁 무렵.

오 공공이 찾아와 떡돌이가 행궁에 있는 온천으로 날 부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따라가 보니 웬걸.

사람이 70명은 붙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금색 커다란 욕조에 떡돌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잠자리 날개처럼 속이 다 비치는 얇은 붉은색 윗옷을 걸친 채, 물속에 들어간 그의 머리 위로 석양빛이 아름답게 내려앉았다.

궁녀들과 태감들은 모두 자리를 물러주었다.

물속에 들어간 그를 빤히 보고 있자니, 떡돌이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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