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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46화 (146/283)

##  146화. 하얀 가면 소동

“개 답응. 무슨 일 있어요?”

촉비는 함께 먹을 간식거리를 챙겨 개시시를 보러 왔다가 깜짝 놀라 물었다.

활발하진 않지만 늘 밝던 개시시가 침울한 얼굴로 뭔가를 포장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촉비를 따라온 궁녀가 설탕을 발라 튀긴 떡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촉비는 대답을 기다리며 개시시의 손을 보았다.

그녀는 멍한 상태로도 종이 포장지로 뭔가를 열심히 싸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마도요.”

“그건 뭔가요?”

“천빈 마마 품계가 올라갔잖아요. 축하하려고 준비한 선물이에요.”

촉비는 고개를 기웃했다.

“혹시 선물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건가요?”

개시시의 얼굴이 즐거운 빛이 하나도 없어 보이자 호기심이 들기도 걱정이 들기도 하는 듯했다.

개시시는 한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그냥…… 집안일이에요. 마마, 마마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행궁에서 지내는 동안 옆방을 쓰게 돼서. 인사차.”

촉비가 뜨끈한 그릇에 덮은 천을 거두자, 김이 나는 새하얀 간식이 나타났다.

덜어 먹으라고 빈 접시를 앞에 놓아주며, 촉비는 반쯤 가려진 개시시의 ‘선물’을 쳐다보았다.

* * *

떡돌이의 팔이 물살이 아니란 걸 낱낱이 살피고 나자 팔씨름을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의 팔이 강인하고 두껍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내 마음이 아주 넓고 흡족하고 너그러워져서.

“팔씨름은 안 하겠어.”

“자신만만해하더니 왜.”

떡돌이는 내가 도량이 깊어져서 그를 봐주겠다고 하자, 오히려 즐거워하며 겉옷을 도로 입고는 물었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서 그에게 내보였다.

“?”

떡돌이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떨떠름하게 자기 손을 내 손에 맞닿게 했다.

“이게 어떻단 거지?”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꽉 틀어쥐고서 웃었다.

“네 팔은 단단한데 부드러워서 좋아, 떡돌아.”

“!”

* * *

추워서 행궁에 내려온 거면 따뜻하게 방에 콕 틀어박혀 각자 생활하면 될 것을. 굳이 행궁에 내려와 연회를 또 연다고 한다.

“난 안 가면 안 돼?”

뜨끈하게 데워둔 이불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버텼지만, 원웅과 부성은 얼굴이라도 비춰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애타는 표정들을 보다가 결국 마지못해 일어나 옷을 입고 머리를 치장했다.

“나랑 연비는 행궁에 내려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기념하다니, 말도 안 돼. 나랑 연비는 안 불러도 되잖아.”

“재밌는 공연도 있다니까 가서 기분 좀 풀고 오세요, 마마.”

“네. 재미있을 거예요.”

원웅과 부성이 좋은 말로 달래주었고, 나는 억지로 연회장에 갔다.

이후 연회 자리는 예상대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밖보다는 따뜻했지만 내 침상만큼은 따뜻하지 않았고, 공연에서 추는 춤은 너무 느려서 흥미가 가지 않았다.

옆의 후궁은 춤이 너무 우아하고 예쁘다고 감탄했지만, 글쎄. 춤이라면 역시 속도지. 나는 빠릿빠릿하게 추는 춤이 좋다고.

빠 빠 빠빠빠! 빠빠 빠빠빠! 이 박자가 좋단 말이야.

아니면 내 홍학춤처럼 아예 정적이던가.

아무래도 언젠가 기회를 잡아 내 빠릿빠릿한 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

그러면 다들 ‘천빈은 춤도 잘 추네!’라고 감탄하겠지.

어쩌면 떡돌이는 감동을 받아 울지도 모른다.

‘천빈은 홍학춤도 잘 추고 까마귀 춤도 잘 추네!’ 하면서.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천빈?”

“나도 춤을 잘 추거든요.”

“정말인가요?”

“네. 내 춤을 생각했더니 흐뭇하네요.”

“많이 잘 추나 봐요?”

“보면 다들 ‘와! 와! 와!’ 하고 외치게 돼요.”

그런데 온 귀인과 소곤거리면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네 번째로 춤을 춘 무리가 지나가고 다섯 번째 춤을 춘 무리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떡돌이가 이렇게 물었다.

“촉비. 괜찮으냐?”

나는 온 귀인에게 내 ‘빠 빠 빠빠빠’ 박자를 어깨로 보여주다 말고서 떡돌이를 보았다.

그러고서 다시 떡돌이 시선을 따라 촉비를 보았다.

정말로 촉비가 몹시 창백한 얼굴로 울적하게 있었다.

촉비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몰리자, 당황해 일어서더니 두 손을 모으고서 말했다.

“황송합니다, 폐하. 신첩이 흥을 깨 버렸네요.”

“안색이 좋지 않은데. 몸이 좋지 않다면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먼 길을 왔으니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떡돌이는 촉비에게 내가 원하던 말을 해주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나 촉비는 고개를 젓더니,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촉비의 뒤에 있던 궁녀가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을 움찔거렸다.

떡돌이는 그걸 눈치채고서 이번에는 그 궁녀에게 말했다.

“촉비가 무슨 일로 저러는 거지? 네가 말해 보아라.”

궁녀는 황제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황송합니다, 폐하. 어젯밤에 특이한 가면을 쓴 궁녀가 들어와서 촉비 마마의 방에서 도둑질을 하였습니다.”

떡돌이는 그 대꾸에 더욱 떨떠름해서 물었다.

“궁녀라니? 어느 궁녀 말이냐?”

“가면 때문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폐하. 궁녀 복장이었지만 궁녀가 아닐지도 모르고요.”

“?”

“하여튼 그 도둑이 마마께서 소중히 여기던 보물을 가져가셔서, 몹시 놀란 데다 속상해하십니다.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주무셨어요.”

궁녀가 말을 끝내자 촉비는 나무라듯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뭐 이런 일을 다 구구절절 말하냐는 듯.

하지만 구구절절 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리는 거라, 좀 속이 보였다.

진짜로 말 안 하길 원했다면 중간에 끊었을 텐데.

반면 떡돌이는 그 도둑이란 부분이 더 신경 쓰이는 듯했다.

“도둑이 얼굴은 가려도 가면은 못 가렸을 거 아니냐. 무슨 가면을 쓰고 왔지?”

“하얀빛이 도는 은색 가루로 덮어둔 가면입니다, 폐하. 빛 아래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려서 정말로 예뻤어요.”

그 궁녀가 대답하는 사이 촉비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바닥만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젓가락으로 짙은 분홍색의 튀김을 집어 먹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가면 생김새가 턱 속에 걸려 동작을 멈추었다.

‘가면? 은색 가루, 하얀빛?’

어제 개시시가 나한테 선물한 가면 같은데?

품계가 올라간 걸 축하한다고, 찾아와서 가면을 주고 갔지.

하얀 부분이 전부 백금이라 아주 값비쌀 것 같다고 원웅이 좋아해서 기억나.

내가 그걸 어디 뒀더라?

어쨌든 생김새가 비슷하니 오해를 살 수도 있겠어. 그 가면은 치워둬야겠다.

적당히 자리를 떠야겠다 싶어서,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내가 엉덩이를 떼기 전. 촉비가 먼저 일어나더니 떡돌이에게 하소연했다.

“폐하. 도둑이 훔쳐간 보물은 제가 사가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라, 금액을 떠나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부디 폐하께서 모든 방을 뒤져 도둑을 찾아주세요.”

떡돌이는 전혀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마침 모두 여기 모여 있으니, 지금 방을 검문하면 좋겠군. 도둑이 그걸 숨길 새도 없을 테니. 사라진 물건이 어떤 것이지, 촉비?”

“새 문양의 황옥입니다, 폐하.”

“그래. 오원요.”

“예, 폐하.”

“태감들을 데리고 가 사람들의 방을 확인해라. 뒤집어엎진 말고. 확인한 다음은 원래대로 정리해두고 나와야 한다.”

“예, 폐하.”

조금 멍했던 정신이 또렷해졌다. 지금 좀…… 곤란한데.

당연히 새 모양 황색 보옥 따위는 없었다. 만약 다른 데서 새 보석이 발견된다면 상관없지.

하지만 새 문양 보옥이 나오지 않는다면? 도둑 궁녀가 썼다던 가면과 외관상 비슷해 보이는 내 가면이 오해를 사진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밖으로 나간다면, 누가 봐도 수상해서 미리 방을 치우러 가는 것이었다.

다른 후궁들은 다들 태연하게 음식만 마저 먹고 있지 않은가.

“왜 그래요, 마마?”

내가 초조하게 눈을 굴리자 옆에 앉은 온 귀인이 이상한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머리에는 오류라도 난 것처럼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하는 글자만 연달아 흘러갔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닫혔던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나갔던 태감들이 다시 우르르 들어왔다.

“촉비의 보옥은 찾았느냐.”

황제가 묻자, 작은 함을 들고 나타난 태감은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대신 이걸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며 자기가 들고 온 함을 내미는데…… 궁전에서 쓰는 저런 작은 상자 모양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거다.’

개시시가 선물한 가면. 그 가면을 담은 상자인 게 확실해.

황제는 무심하게 상자를 받아 뚜껑을 열더니, 촉비와 촉비의 궁녀에게 그걸 보여주며 물었다.

“도둑이 쓰고 나타난 게 이것이냐?”

촉비는 고개를 기웃하며 애매하게 중얼거렸다.

“많이 비슷하긴 한데…… 제가 많이 놀라서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폐하.”

반면 촉비의 궁녀는 확신해서 외쳤다.

“예, 폐하. 그거예요! 도둑이 쓰고 나타난 게 그것입니다. 값비싸 보여서 제가 똑똑히 기억해뒀어요.”

황제는 태감에게 다시 상자를 건네면서 차갑게 물었다.

“누구의 방에서 나온 물건이지?”

태감은 주저하면서 힐긋 내 눈치를 살폈다.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말은 해야 한다 싶었던지, 태감은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천빈 마마의 방에서 나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황제는 눈썹을 찡그렸다.

“천빈?”

그가 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나 아냐. 내가 미쳤어?

아니, 고개를 저을 것도 없다 싶어서 나는 얼른 일어나 큰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촉비 마마의 새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폐하.”

하지만 미리 벼르기라도 한 것처럼, 몇몇 후궁이 날 따라 일어나더니 짠 것처럼 나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천비는 행궁에 먼저 도착해서 이곳 지리를 잘 알지요. 천빈일지도 모릅니다, 폐하.”

“천비는 촉비와 부딪친 적이 있으니, 보석 때문이 아니라 복수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건지도 몰라요.”

“어쨌든 도둑이 쓰던 가면이 천빈에게서 나왔으니 수사를 해 보아야 합니다, 폐하.”

이게 우연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촉비나 개시시가 날 노린 건가? 아니면 두 사람이 같이? 어느 쪽이든 머리 한 번 잘 썼구나.

“천빈이 촉비의 보옥을 훔칠 사람 같진 않습니다, 폐하. 하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수사는 해보는 게 낫다 생각됩니다.”

황후가 중립에 가까운 말을 하며 황제를 보았고, 황제는 참 골치 아프게 됐단 얼굴로 다리를 바꿔 앉았다.

그때였다.

“그 가면은 제 것입니다, 폐하!”

내 뒤에 서있던 부성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나는 놀라서 부성을 보았다. 무슨 소리야? 아니잖아? 나랑 어제 같이 선물을 처음 봐 놓고서 자기 거라니?

“네 거라고?”

황제 역시 믿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부성은 손을 달달 떨면서도 “네!” 하고 거듭 외쳤다.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가면은 제 것입니다, 폐하. 그러니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제가 받겠습니다.”

설마…… 부성. 나 때문에 거짓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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