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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38화 (138/283)

##  138화. 떠보기 위한 질문들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고 41천도에 다녀올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거 참.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게 없네.

이럴 땐 내가 제갈세가 사람들만큼 머리가 좋았으면 싶기도 하다. 한 일각 정도만. 아니, 이각.

그런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영 수상쩍은 눈빛이 느껴진다.

‘뭐야?’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문가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문은 아까처럼 닫혀 있었고, 그 주위엔 모르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중이었다.

객잔은 딱 아까만큼만 활기차고 더 들어온 사람도 없다. 점소이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다니고.

“흠.”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내가 뭘 잘못 느꼈나?’ 생각하고 말겠지.

하지만 나는 천라지망을 피해 도망 다녀본 천년비다.

뭔가 아니다 싶은 감이 오면 완벽하게 안심될 때까지 확인해봐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놓여.

생각을 끝내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객잔 주인에게 돈을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이후 일부러 길이 좁고 하나뿐인 곳으로 들어가 느릿하게 걸어갔다.

길이 넓고 사람이 많고 여러 갈래인 곳은 추적자에겐 좋지만, 추적자를 찾는 사람에겐 좋지 않으니까.

‘역시.’

누군가 쫓아오고 있네.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지니 확실히 알겠다.

내 원래 몸이었더라면 더 잘 알았겠지만.

좋아. 와봐. 누군지 몰라도 내가 아주 모가지를 똑 따 주마.

나는 굽이진 골목을 돈 다음, 그쪽으로 걸어가는 척 발소리를 내다가 다시 발소리를 죽여 골목 모퉁이에 딱 기대어 섰다.

그리고 날 따라온 놈이 나타나자마자 머리통을 똑-.

“천빈 마마.”

따려 했는데.

“개새, 원?”

나타난 인간은 뜬금없이 개원이었다.

내가 여기 있단 걸 알면서도 다가온 건지, 아주 침착하게 내 공격을 피한 개원.

“개 소협이 여기 왜 있지?”

내가 놀란 척 묻자 개원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다음 수업에 관해 논의하러 행궁에 가던 길에 마마를 뵙고 따라왔습니다.”

그는 내가 먼저 캐묻기 전에 날 따라다닌 게 맞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고는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짓는데…….

그래도 수상해. 내가 지나가는 걸 보고 따라온 거라면 그냥 와서 인사를 하거나 해야지.

내가 객잔에 갔다 골목길에 갔다 노점상에 갔다 하는 걸 그냥 뒤에서 따라만 다녔다고?

“그냥 부르지 그랬나.”

떨떠름해서 묻자 개원은 이번에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호위를 데리고 나오지 않으신 걸 보고 몰래 나오셨다는 걸 알아서요. 방해하지 않고 뒤에서 마마를 지키려 하였습니다.”

왜 말하는 사람이 개원이란 것만으로도 이렇게 신뢰가 안 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영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개원은 차분하게 웃고서 제안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마마와 함께 다녀도 괜찮겠습니까? 이렇게 화려한 복색으로 혼자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 * *

혼자 다녀도 하나도 위험하지 않지만, 여기서 거절하는 건 일반적인 후궁으로 보이지 않을 듯했다.

물론 일반적인 후궁이란 것도 그냥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상상 속 모습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런 고로 나는 개원이 자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속내는 있었다. 그가 천소여에게 푹 빠지게 만들려는 속내.

“뒤에서 지키려 하지 말고 그냥 부르지 그랬느냐.”

이런 목적을 가진 탓일까? 나란히 서서 거리를 걸어가는데, 평소보다 내 목소리가 좀 더 상냥하게 들렸다.

개원이도 내가 상냥하게 대해주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실룩실룩 올라갔다.

좋냐? 좋아?

“혼자 있고 싶으신 것 같아서요.”

“그래, 나한테 하려던 말은 무엇인데?”

“연비 마마께서 다 나으셔서 행궁을 관리하신다니, 이제 마마는 저와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갔습니다. 날짜를 새로 잡아야 하니까요.”

“훈련. 해야지.”

그래야 내 영약을 먹을 수 있을 테니.

젠장. 하지만 개원이에게 뭘 배울 생각을 하니 아주 배알이 뒤틀리는구먼!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나는 일부러 개원이 없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경치 좋다고 중얼거렸다.

실제로는 저기에 뭐가 있는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면서도.

“마마께서는 여기에 왜 홀로 나오신 겁니까?”

“그냥. 일주일 동안 아픈 언니를 대신해 존…… 열심히 일했거든. 그러니 쉬러 나온 거다.”

“마마께선 어지시군요.”

참 사분사분하게도 말하네, 개원이.

“다들 나한테 그리 말하긴 해.”

그런데 뭐야. 일부러 개원이 없는 방향을 보면서 걷고 있는데 개원이 날 계속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시선을 못 떼?

몇 걸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아무리 걸어가도 개원은 계속 날 보기만 했다.

이러다가 고꾸라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국 내 쪽에서 먼저 개원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소리 없이 웃으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왜 자꾸 보느냐?”

그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결국 나도 대놓고 물어버리자,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마를 뵈니, 마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져서요.”

“그냥 남들처럼 똑같았다. 똥오줌 못 가리고 맨날 울었지.”

“송구합니다. 제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군요. 그보단 좀 더 이후의 시절이 궁금합니다.”

“별거 없어. 그때도 그냥 남들처럼 살았으니까. 그 뭐야. 수 놓고 있잖느냐. 수 놓고…… 경전도 읽고 그런 거.”

근데 귀한 집 아가씨들이 읽는 게 경전 맞나? 헷갈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귀족 아가씨의 어린 시절은커녕, 난 평범한 어린 시절도 보내지 못했다.

어릴 때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뭘 하면서 지냈다고 꾸며낼 수가 없으니, 그냥 이렇게 둘러대는 거다.

남들처럼 살진 못했지만, 남들이 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는단 건 아니까.

다행히 개원은 내 말에 넘어갔는지 “그렇군요.” 하고 중얼거렸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속으로 중얼거리고서 나는 이 화제를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다른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 개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친구 중에 마마와 많이 닮은 친구가 있습니다.”

아주 신경 쓰이는 말을.

“!”

“마마를 뵙고 있으면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

얘 의외로 말이 많네, 생각하다가 나는 심장이 철렁해서 오히려 마구 웃어댔다.

하지만 속은 아주 조마조마했다. 개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슨 뜻인가,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나와 많이 닮은 친구라니. 수상쩍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누굴 얘기하는 거지? 혹시 천년비를 말하는 건가? 내 얘기야?

……아닐 거야. 난 개원이 친구가 아니니까.

“그게 누군데?”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좀 걸리는 게 있어 대놓고 묻자, 개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피해 나를 더욱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마마는 들으셔도 모를 사람입니다.”

그럼 애초에 말을 하지 말던가.

“누군데? 말을 했으면 알려줘야 내가 시원하지.”

“나중에…… 기회가 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마.”

“지금이 그 기회인데.”

재차 조르자 개원은 나를 힐긋 보더니, 눈으로 웃으면서 사람을 간 보듯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듯 마마와 닮은 사람입니다. 웃으면 같이 웃게 되고, 울면 같이 울게 되고, 화내면 같이 화내게 되는 사람입니다.”

“정답! 거울!”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마마.”

“아아. 그래.”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지요.”

어느 점이 나랑 닮았단 건지 모르겠다. 일단 우는 점에서 나와 확실하게 다르다. 난 양파 깔 때 외엔 울지 않으니까.

“개 소협, 눈에 콩깍지가 상당하군.”

하지만 개원의 말에는 동의해주기도 싫어서, 나는 딱 잘라 말하고서 뒷짐을 지고 걸었다.

개원은 바로 따라오지 않는 듯하더니, 내가 걸어가다가 힐긋 뒤를 돌아보자 얼른 다시 따라왔다.

* * *

“차라리 날이 작년보다 빨리 추워졌으니, 행궁에 아예 공식적으로 빨리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승언이 옆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제시해보지만, 월요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염치를 무릅쓰고 어마마마께 여쭈어보았다. 아버님이 어떻게 했을 때 가장 기쁘게 놀랐냐고. 계략에 당해 잠시 냉궁에 계실 적에, 아버님이 나타나서 용포를 벗어 주셨다더라. 그게 제일 기억에 남으셨대.”

아니, 대답을 하긴 했으나 전혀 엉뚱한 대답이었다. 월요의 정신이 이미 다른 곳에 반쯤 가 버린 탓이었다.

하긴. 그가 멀쩡한 상태라면, 행궁에 있는 천빈이 잘 지내나 궁금하다고 바로 쫓아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오나 폐하. 천빈 마마는 냉궁이 아니라 행궁에 계시온데…….”

“냉궁엔 이미 가보았다. 끄떡도 없더라. 추위도 안 타고.”

“아…….”

“그렇다고 한 번 더 해보려고 애를 냉궁에 보낼 수도 없지 않느냐.”

“그것도 그렇습니다.”

승언은 아무리 그래도 태후가 들려준 일화와 지금 월요 황제가 준비하는 깜짝 만남은 너무 다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인 그는 발언권이 크지 않는지라, 승언은 그저 입을 다물고 황제가 행궁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뒤만 따랐다.

“반숙이가 짐을 보면 놀라서 펄쩍 뛰겠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월요 황제는 입꼬리를 흐뭇하게 올리고서 성문 근처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서 승언에게 지시했다.

“너는 얼른 들어가서 귀자에게 짐이 여기 와 있으니, 반숙이를 데리고 이쪽으로 오라 이르라. 절대로 짐이 왔단 소리는 하지 말고.”

“예, 폐하.”

승언은 다른 그림자들에게 황제를 잘 부탁한다고 눈짓을 주고서, 행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담벼락을 살폈다.

그런데 채 이동하기 전.

그는 주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걸 느끼고서 반사적으로 월요 황제를 돌아보았다.

그쪽에서 일이 있어 돌아본 것이라기보단, 늘 황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시선이 돌아간 것이었다.

다행히 황제는 습격도 받지 않았고 멀쩡했다.

올 때처럼 평범한 문사 차림이었고 얼굴에 면사도 제대로 두르고 있었다. 암살자도 없고 그를 알아본 이도 없다.

그러나 황제 그 본인이 어느 한 방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앞으로 승언이 월담해야 할 방향이 아니라, 조금 뒤쪽 길거리를.

승언은 월요 황제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덩달아 고개를 돌렸다. 대체 뭘 보셨기에……?

이윽고 그의 눈에도 월요 황제가 보고 놀랐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개 답응의 사촌인 개원. 다른 하나는 월요 황제가 찾는 천빈이었다.

두 사람이 조금 거리를 두고 선 채 나란히 걸어가는 광경이었다.

천빈은 좀 부루퉁한 얼굴이었지만 개원 쪽은 천빈에게 연신 말을 걸면서 자꾸만 얼굴을 힐긋대고 있고. 뒤에 호위는 아무도 없다.

설마 둘만 나온 건가? 둘이서 외출한 건가? 승언의 표정도 월요 황제와 엇비슷하게 변했다.

아이구야. 승언은 속으로 탄식하면서 황제를 힐긋 보았다.

면사 위로 드러난 월요의 눈동자는 이미 몹시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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