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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30화 (130/283)

##  130화. 병문안은 힘드네…….

“소주, 소주. 폐하는 정말로 대단하세요. 봉호를 내리자마자 소주의 품계를 바로 올려주시다니.”

“운문비단이 아무리 대단해도 폐하가 소주를 총애하는 것보단 덜하지요.”

“그럼요! 품계 올라가는 게 최고예요.”

“품계만 올라가면 그깟 운문비단, 나중에 백 필도 가질 수 있는걸요?”

왜 저래? 비밀 장소로 가서 무공 수련을 한 다음 저녁 즈음에 돌아와보니, 원웅과 부성은 뜬금없이 떡돌이를 칭송하느라 입이 바쁘다.

……돈 받았나? 떡돌이한테?

좀 수상쩍어서 가만히 쳐다보자, 두 사람은 내 시선을 피하면서도 계속해서 운문비단도 좋긴 하지만, 역시 황제의 총애가 최고라면서 계속 떡돌이 홍보를 해댔다.

“소주, 오 공공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이 소리가 난 뒤에야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과도한 칭송이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오 공공을 보는 게 먼저이기에 나는 밖으로 나갔다.

오 공공은 마당에 서 있었는데, 곁에는 쟁반을 불편한 자세로 든 다른 태감도 하나 있었다.

오 공공이 내게 인사를 올리고 그 태감에게 눈짓하자, 그 태감은 들고 있던 커다란 쟁반을 내게 내밀었다.

“귀인. 폐하께서 소주께 이걸 전하라 하셨습니다.”

오 공공이 자랑하듯 겉에 덮어둔 천을 벗기자, 뜻밖에도 그 안에서 나타난 건 운문비단이었다.

더욱 이상한 건 그걸 본 원웅과 부성이 자기들끼리 이상한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단 거다.

얼핏 보니 ‘몰라’라는 입 모양을 하던데…… 무슨 뜻이지? 뭘 모른단 거지?

“그리고 귀인.”

하지만 오 공공이 재차 말을 이어가서,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더 전할 게 있는가?”

“예. 전에 말씀드린 그 무공 건 말입니다.”

‘개원이!’

“개 답응의 사촌을 스승으로 부르기로 했지요. 그자가 자리를 비워 전에 말을 전하지 못했사온데, 이번에 만났답니다.”

개원이 이름을 듣자마자 궁녀들의 수상한 행보는 싹 머리에서 날아갔다.

괜히 긴장이 되어서 치맛자락을 움켜잡을 뻔했으나, 가까스로 손을 뒤로하고 물었다.

“한다던가?”

“황명인데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아무리 개원이가 대단한 영웅이라도 황제의 명령은 어쩔 수 없지. 다른 나라에서 살 거 아니면.

젠장. 하지만 참 곤란하게 됐어. 개원이에게 무공을 배우다니.

앞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겠는데?

내가 천년비라는 것도 들키지 않아야 하지만, 복수하려면 그의 마음까지 홀려야 하잖아.

얼굴을 마주하고 무공을 보이면서 두 가지 다 할 수 있을까?

제발 내 손이 그가 틈을 보인 새 살수를 펼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내일 미시 경에 입궐하기로 했으니, 그때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귀인.”

“내일부터 배우는가?”

‘이렇게 빨리? 바로?’

“아닙니다. 수업 전에 인사를 드리러 오는 거지요. 아마 내일은 어떤 식으로 배울지, 일주일 중 언제 수업을 할지, 몇 시진 수업할지, 어디에서 수업할지 등을 맞추지 않을까요?”

* * *

내가 뒷짐을 지고 초조하게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원웅이 운문비단 한 필을 햇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다가 물었다.

“소주. 오늘은 혼자 산책 가지 않으시네요?”

산책이 아니라 무공 수련하러 다닌 거야……. 하지만 오늘은 혼자 갈 마음이 없긴 하다.

“응.”

당장 몇 시간 후에 개원을 봐야 하는데. 심란해서 수련이 될까?

무공 수련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집중이다. 특히 내공 수련을 할 때는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이런 날엔 차라리 훈련을 안 하는 게 낫다. 내 생각엔.

“근데 넌 비단 들고 혼자 뭐 해?”

“온 귀인이 준 비단은 소주께서 무조건 잠옷으로 만들라 하셨잖아요. 하지만 이제 세 필이 더 생겼으니, 이것들도 어떻게 쓸지 고민해 봐야지요.”

“잠옷 하나 더 해줘. 돌아가면서 입게.”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 했어요. 소주께서 운문비단 잠옷을 많이 좋아하시니까요.”

“응.”

“그리고 저…… 소주, 이건 제가 나설 부분은 아니지만요…….”

“응?”

“이걸로 폐하의 잠옷도 만들어서 소주가 드리면 어떨까요?”

뭐래.

“난 혼자 다 독차지하고 싶어.”

솔직하게 말했더니 원웅이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어서, 나는 아차 싶었다.

친구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 안 하나 봐.

“아니야. 계속 얘기해 봐.”

“부부나 연인끼리는 일부러 문양이나 모양을 맞춰서 옷을 입거나 손수건을 나눠 가지잖아요. 소주도 폐하와 그런 잠옷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런가?”

본 적이 있어야지.

협공이 특기인 연인이 날 죽이러 왔기에, 같은 사인으로 보내준 적은 있지만.

“네. 그리고 저…… 소주께서 수 놓는 걸 안 좋아하시는 건 알지만, 직접 작게라도 수를 놓으면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흑합이 나 대신해주면-.”

“의미가 없죠.”

원웅…… 너무 딱 잘라 말하잖아.

“으음.”

하지만 이런 건 나보다 원웅이 잘 알겠지. 내가 후궁이 된 뒤로 친구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 사귄 경력이 짧으니.

“알았어.”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원웅은 활짝 웃더니 기뻐하며 외쳤다.

“그럼 소주와 폐하 잠옷 모양을 한 쌍처럼 만들게요.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알았어…….”

“아, 그리고 소주. 제 생각엔요, 폐하께선 소주와 한 쌍으로 옷을 입고 싶어서 비단 세 필을 주신 거 같아요!”

“무슨 소리야. 그럼 한 필이 남잖아.”

“한 필은 아껴 뒀다가 아기님 쓰라고 하신 거 같아요!”

뭐? 떡돌이가 그런 꿍꿍이를 가지고 비단을 보냈다고?

황당해서 진짜냐고 물으려는데, 부성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소주. 황후가 사람을 보냈어요.”

덩달아 작은 목소리로 “왜?” 하고 묻자, 부성은 자기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황후의 상궁인 영영이 안으로 들어와 내게 인사를 올렸다.

“천 귀인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볼일을 말했다.

“귀인, 황후 마마께서 안비 마마가 다쳤으니 후궁들이 모여 병문안을 가자 하십니다.”

“따로 가면-.”

원웅이 내 뒤에서 영영이 못 보도록 팔 뒤를 살짝 잡는 걸 보니 그냥 순순히 수긍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보다.

“안 되겠지. 같이 가는 게 좋지. 알겠네.”

내가 바로 알아듣고 말을 바꾸자, 영영은 생글 웃고서 바로 안비의 처소로 오라 말하고는 나갔다.

후우…….

“귀찮네. 친하지도 않은데 병문안이라니.”

* * *

그래도 황후가 오라고 하면 가야 된다.

“병문안을 가는 거니까 수수하게 입는 게 좋을 거예요. 옷을 갈아입혀 드릴게요.”

원웅의 제안에 따라 나는 약간 노란기가 도는 배꽃 색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안비의 처소로 갔다.

다행히 같은 동영궁에 머물기 때문에 그리 멀진 않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코앞.

그러나 가장 가까운 데 살면서도 나는 늦게 온 편인지, 안비의 처소 안에는 이미 다른 후궁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황후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황후에게 인사를 건네자 다른 후궁들이 갑자기 안비의 침상 곁에서 떨어져 서는 바람에, 나는 얼결에 그쪽으로 밀려갔다.

안비에게도 한마디를 해야 하는 건가 봐.

가까이에서 보니 안비는 침상에 누워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픈가 보네.’

그 모습을 보자니 안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 죽어가네요.’라고 말하기도 뭐해서, 나는 긍정적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중요 장기는 비켜 맞아서 다행이에요, 안비 마마.”

하지만 안비는 내가 싫은지, 좋게 말해줬는데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따졌다.

“본궁을 놀리는 건가?”

“아프셔서 그런지 말을 너무 꼬아서 이해하시네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얼른 달래 주었지만, 안비는 더욱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상체를 일으키려고까지 했다.

“윽.”

아픈지 도로 누웠지만. 아이구야.

“흥분하면 안 좋아요, 안비 마마.”

“난…… 난 정말 자네가 입만 열면 화가 나. 폐하가 자네를 총애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마마는 폐하랑 다른 사람이니까요.”

안비는 떡돌이에게 공감이 가지 않는지 이마를 짚으며 화를 냈고, 안비의 궁녀는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가며 “마마!” 하고 외쳤다.

궁녀는 내 혓바닥이 안비의 심장이라도 관통한 양 울면서 안비를 살피더니, 날 향해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천 귀인, 안비 마마께서는 지금 편찮으시니 약 올리지 마십시오. 그런 말씀을 하시려면 그만 돌아가 주세요!”

내가 뭘 어쨌단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황후가 불러서 온 건데 어떻게 마음대로 돌아가라고.

어쨌든 안비가 날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뒤로 물러나 후궁들 틈에 끼어서 섰다.

그래도 안비가 내 덕에 정신이 바짝 든 모양이니 도움은 된 거 같은데.

하지만 안비는 정신이 들다 못해 너무 들었는지, 진정하고 이마에서 손을 떼자마자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치를 떨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황후 마마. 황후 마마를 대신해 활을 맞은 건 저인데. 애먼 천 귀인이 품계가 올라가다니요. 저 방자한 꼴을 보세요.”

“천 귀인은 범인을 잡지 않았는가.”

황후가 나름 달랜다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범인을 잡은 건지 범인 근처에 서 있다가 어부지리를 취한 건지 모르지요.”

안비는 막말까지 내뱉고는 나중엔 싸늘하게 웃으며 후궁들에게 도움까지 구했다.

“과녁도 못 맞히는 천 귀인이 범인을 활로 잡다니. 말이 되나요? 안 그런가요?”

“…….”

“모르지요. 범인을 잡은 게 천 귀인의 자작극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우 귀인이 연금된 뒤 후궁들 사이에서 내 대우는 꽤 좋은 편이지.

그 덕에 몇몇 후궁들은 안비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으나, 몇몇은 귀가 솔깃한지 내 쪽을 의심스럽단 듯 쳐다보았다.

안비 말마따나 다들 직접 본 게 아니다 보니, 안비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눈치들이었다. 그들이 본 건 내가 활을 이상한 방향으로 쏜 것뿐이니까.

하지만 저들이 믿건 말건 상관없기에 그저 대꾸하지 않고 웃기만 하자, 안비는 자신을 비웃냐고 묻고 온 귀인은 자기가 발끈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서 “천 귀인은요!” 하고 뭐라 두둔해줄 분위기이던 찰나.

“천 귀인이 활 쏘는 걸 목격한 건 소신과 폐하입니다, 안비 마마.”

문가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어느새 문가에 기몽 장군이 서 있었다.

“황후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귀한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몽은 황후에게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는, 안비 쪽을 돌아보며 픽 웃었다.

“소신의 말은 못 믿으셔도 폐하의 말씀은 믿으셔야지요, 안비 마마.”

황제의 사냥개인 기몽이 ‘네가 지금 폐하 말을 못 믿겠다고 한 거냐’는 걸 돌려 말하자, 안비는 얼굴이 이젠 하얗다 못해 파랗게 변해서 “나는…….”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몽은 안비의 변명을 듣는 대신, 그녀의 곁에 두 손을 모으고 불편하게 서 있는 궁의에게 물었다.

“마마의 치료가 언제 끝나는가?”

“아직 치료를 더 받으셔야 합니다, 장군님.”

“마마께도 수사할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쾌차하시면 바로 알려주게.”

그 말에 안비는 놀라서 물었다.

“나는 왜 수사를 받는단 건가?”

“수사엔 증인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기몽은 덤덤하게 대답하고는 내 쪽을 힐긋 보았는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멍하게 같이 보고 있으려니 입꼬리를 씰룩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황후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가버렸다.

안비가 이불을 꽉 틀어쥐는 걸 보며 나는 괜히 찝찝해져서 미간을 구겼다.

* * *

병문안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기몽이 그 상황에서 날 도와준 게 고맙긴 한데…… 고마운 마음보다 의아한 마음이 더 들어서 이렇다.

그 사냥개는 내 정체를 의심하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날 도와줬을까, 영 신경이 쓰이네.

하지만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기몽에 대한 건 금세 날아가 버렸다.

“곧 미시네요, 소주.”

부성이 한 말 때문에.

젠장. 개원을 만날 시간이 코앞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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