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마마!
퀘퀘한 나무 감옥 안에는 피 냄새인지 쇠 냄새인지 구분하기 힘든 냄새가 가득 차 비위가 약한 사람을 헛구역질하게 만들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철을 끄는 소리와 힘겨운 신음 역시도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횃불이 가까스로 어둠을 밝혔지만 음산함까진 없애지 못한 이 감옥 깊숙한 곳에 원노행은 묶여 있었다.
두 팔이 각기 기둥 하나씩에 따로 묶인 상태였는데, 간수들이 높낮이를 건성으로 잡아 묶은 터라 묶여 있는 것만으로도 양어깨의 높이가 달라 뻐근했다.
그런 고통스러운 자세로, 원노행은 단정한 머리가 산발이 되어 기몽을 노려보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문초를 끝낸 기몽은 감옥 밖으로 나와 부하가 건넨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았다.
그러고서 곧장 수사청 밖으로 나가려 하자, 부하가 따라 걸어가며 걱정스레 물었다.
“장군. 바로 폐하께 가실 겁니까?”
긴 시간에 걸친 문초로 기몽의 안색이 초췌해진 걸 보고 물은 것이었으나, 기몽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갈아입을 새가 없다. 급히 보고드려야 할 일이다.”
수건을 부하에게 건넨 그는 그 길로 곧장 황제를 찾아갔다.
황제는 어전 책상에 앉아 있다가, 기몽이 들어오자 보던 책을 덮고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그러고는 기몽이 인사하려는 것까지 생략하라 손짓하고서 물었다.
“알아보았느냐.”
“예. 범인은 황후 마마를 노린 것이라 합니다.”
“황후를?”
그러나 생각한 것보다도 기몽의 보고가 더욱 위험한 내용이자, 황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왜 안비를 쏘았지?”
“안비 마마를 노린 건 아니었답니다. 황후 마마를 노렸는데, 황후 마마와 후궁들이 다 붙어 있는데다 거리가 멀어서 힘들었답니다. 그 와중에 천 귀인께서 바로 쫓아오자, 신중하게 목표를 가늠할 수 없어 일단 쏘았답니다.”
“어디 사람이지? 왜 황후를 노렸다더냐?”
“자결해버려서 뒷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자결?”
설마 수사청 내에서 자결하게 두었단 건가. 황제가 언짢게 쳐다보자, 기몽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단전은 끌고 가자마자 폐했고, 독을 물고 있을까 봐 입안 수색까지 했는데…….”
“그래도 독을 가지고 있었군.”
“예. 보통 준비를 해온 게 아니었습니다.”
황제는 끄덕였으나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기몽은 황제의 눈치를 보다가 얼른 입을 열었다.
“그자의 얼굴을 그려 누구인지 찾아보겠습니다. 혹시 사건 전에 목격자가 더 있는지도요.”
“그리하라.”
그래도 여전히 황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드러났는데도, 그 표정이 확연히 보일 만큼.
기몽은 그게 오로지 자신을 향한 것만이 아니란 걸 눈치채고서 조심스레 물었다.
“폐하? 달리 하명하실 게 있으신지요.”
“……수오부 군왕과 한패였던 이들이 차례로 암살당하고 있지.”
“예?”
뜬금없이 수오부 군왕에 대한 말이 나오자, 기몽은 어리둥절해 되묻다가 바로 황제의 말을 알아듣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설마. 황후 마마도 그런 이유로 목표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하십니까?”
옆에 서 있던 오원요 역시 놀라서 황제를 휙 돌아보았다.
* * *
일어나면서 기지개를 켜는데, 곁에 선 원웅과 부성의 시선이 평소보다 배로 부담스러웠다.
두 사람 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날 보고 있었다. 온몸으로 존경을 표현하고 싶단 것처럼.
“내 어떤 점에 감동한 거야?”
한숨을 쉬면서 묻자, 원웅과 부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로 외쳤다.
“전 소주가 활을 못 쏘시는 줄 알았어요.”
“잘 쏜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평소처럼 허, 아니, 이렇게 잘 쏘시는 줄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두 사람은 내가 활을 잘 쏜다고 한 말을 못 믿었나 보다. 그런데 활로 침입자를 잡아 버리니 감동한 눈치.
어휴 참.
“말했잖아. 난 전설이라고 전설.”
뭘 이런 걸 가지고.
“아무렴요! 그깟 과녁 아무리 잘 맞혀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그럼요! 나쁜 사람을 잡아야 좋은 화살이지요!”
“그럼. 사람을 잘 맞혀야지.”
“네?”
아. 이건 아닌가.
어쨌든 저렇게 감탄들을 하고 있으니 뿌듯해서 흐뭇한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나는 두 궁녀를 보며 같이 히히 웃은 다음 침대에서 바로 튀어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한 궁사의 자세도 취해주었다.
“내가 활을 잘 쏘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내게 ‘명궁님’이라 부르겠네.”
“그럼요!”
“좋은 날이니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그치?”
“그럼요 그럼요!”
“오늘은 아주 아주 고소한 산자탕을 만들어 드릴게요!”
그런데 한참 궁녀들과 신이 나서 떠들고 있자니,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부성은 산자텅을 만들러 나가다가 도로 들어와서는 작게 알려주었다.
“소주, 오 공공이 오셨어요!”
오 공공? 오 공공이라면 떡돌이 뒤를 매일 따라다니는 측근 태감인데?
그 태감이 나한테 왜 왔나 싶어서 문을 보고 있자니, 오 공공은 안으로 들어와 내게 꾸벅 인사를 올렸다.
“천 귀인께 인사 올립니다.”
“무슨 일인가?”
나는 좀 기대하는 마음이 들어서 얼른 그에게 물었다.
혹시 떡돌이가 내 궁술 실력에 감탄해서 오 공공을 보낸 게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활을 잘 쏘는지 비법을 알려달라고?
분명 그런 것 같았다.
“예. 폐하께서 이번에 귀인이 큰 공을 세우셨다고, 품계를 올리겠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 공공이 한 말은 내가 생각한 말과 전혀 달랐다.
“응? 품계?”
갑자기 웬 품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원웅과 부성이 먼저 작게 탄성을 뱉는다.
그쪽을 보니,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서 가까스로 발을 땅에 붙였다 떼길 반복하고 있었다.
오원요가 가면 당장 뛰어오를 기세로.
“갑자기 품계라니?”
다시 오 공공을 보며 묻자, 그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설명 아닌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이런 일로 품계가 올라간 후궁이 없긴 합니다, 소주. 그래도 공은 공이니까요. 게다가 아주 큰 공이지요.”
“난 활을 잘 쏘지.”
“그럼요. 게다가 알아보니, 범인은 황후 마마를 노리려 했다는군요.”
“그런가?”
“네. 소주께서, 아니, 이젠 천빈 마마가 되시겠군요. 마마께서 황후 마마를 구하신 겁니다. 대단하십니다. 당연히 품계가 올라가야지요.”
오 공공은 간신배 같은 목소리를 잘 내는구나.
그가 평소보다 간드러지게 칭찬하자, 저절로 고개가 빳빳이 위로 올라간다.
천빈! 세상에, 천빈!
“그럼 나 지금부터 천빈인가?”
빈 같은 자세를 취하며 묻자, 오 공공은 하하 웃으면서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대로 옷을 갖춰서 책봉례를 해야지요. 내무부에서 이제 의상을 준비할 테니, 마마께서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럼 난 그동안 얼마 남지 않은 귀인 시절을 즐기며 기다려야겠군.”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마.”
오 공공이 ‘마마’를 강조해 불러준 다음 나가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원웅과 부성은 서로 손을 잡고 ‘꺅 꺅’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아 마마래요!”
“아 마마예요!”
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마마. 마마.” 하고 말하자, 원웅과 부성은 물론 귀자까지 합세해 셋이서 날 둘러싸고 만세를 부르며 “마마! 마마!” 하고 외쳐주는데, 그 모습이 꼭 혈교 광신도들과 다를 바가 없어 흐뭇했다.
“앞으로 내가 누구?”
“마마!”
“날 부르는 말은?”
“마마!”
“나는 마마! 너희는 마마 궁녀! 너는 마마 내시!”
개시시가 들어오면서 우리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기 전까지는, 어쨌든 우리끼리 즐겁긴 했다.
하지만 두 궁녀는 개시시가 웃는 소리를 듣자 바로 얼굴이 빨개져서 손을 내렸다. 왜. 뭐가 부끄러운 건데? 즐거웠잖아?
“귀인께선 궁녀들과 사이가 좋네요.”
“사가에서부터 데려온 궁녀들이라 그래요.”
“그래도 유독 사이가 좋아 보여요, 귀인.”
원웅과 부성이 머쓱하게 그녀에게 인사를 올리고 달아나듯 나가자, 개시시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꾸벅 인사를 올렸다.
“같이 대화나 하려고 왔는데. 덩달아 좋은 소식을 들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천빈 마마.”
들었구나…… 방음 약한 벽이 또다시 한 건 했어.
하긴. 방 안에서 ‘마마 마마’ 외쳐대면 들릴 수밖에 없지.
그보다 개시시를 보니 생각났다. 개원이에게 내 무공 스승이 되어 달라 부탁한다던 일.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나?
하지만 개시시에게 그 일을 물어볼 수는 없기에 나와 그녀는 그냥 궁술 시합에 관한 이야기나 나누었다.
이후 그녀가 돌아간 뒤에는 온 귀인이 찾아왔는데, 그녀 역시 소식을 듣고 온 건지 날 보자마자 깔깔 웃으면서 외쳤다.
“들었어요! 이제 마마라면서요!”
귀자가 들어오다 말고 멍하니 쳐다보자, 급격히 얌전해져서 우수에 찬 척 창가로 시선을 올렸지만.
온 귀인은 원래 저런 성격이구나. 후궁 될 거라고 성격을 많이 관리하고 있나 보네.
하지만 귀자가 나가자마자 온 귀인은 다시 히히 웃으면서 자기 궁녀에게 손짓했다.
“그걸 가져와. 빨리.”
그러자 온 귀인의 궁녀가 들고 온 쟁반을 내밀었고, 온 귀인은 손수 쟁반을 덮은 천을 들추었다.
놀랍게도 쟁반을 들추자마자 구름을 뚝 뗀 것처럼 하늘하늘한 옷감이 나왔다.
“이게 뭐예요?”
놀라서 묻자, 온 귀인은 뿌듯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운문비단이에요. 구름 같은 촉감으로 유명한 비단이요. 언예국에서만 나는 데다 거기서도 몹시 귀한 건데, 이번에 우리 가문에서 가까스로 세 필을 구했거든요. 어머니께서 그중 한 필은 마마께 드리라고 가져다주셨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주 보드라워 보이긴 해. 정말로 구름처럼 보여.
잠옷으로 쓰면 침상에서 절대로 안 일어나고 싶어질 것 같은데?
더듬더듬 그 비단을 만져보고 있자니, 세상에 이런 촉감도 있구나 싶어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이게 궁전 안 세상이구나.
놀라서 온 귀인을 보자, 그녀는 운문비단보다 자기가 더 보드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 심장 한구석이 뿌듯해져 왔다.
사람들은 이래서 다들 친구를 두는구나. 친구는 선물을 해주니까.
세상에. 나도 이제 사람들한테 선물을 받고 있어. 먹거나 건드리면 죽는 거 아니고, 쓸데없지만 좋은 것들로!
“고마워요, 온 귀인. 우리는 이제부터 사이 좋은 친구예요!”
“정말요?”
* * *
천년비가 공도 세우고 품계도 올리고 친구도 생긴 일상에 한참 즐거워하는 그 시각.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개원은 심부름꾼이 전한 이야기에 긴장했다.
“도련님. 도련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폐하께서 보내신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황제 말이냐?”
“예.”
“무슨 일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도련님을 뵈면 직접 할 거라고요.”
개원은 혹시 황제가 후궁들 사이에 끼어 있는 천년비를 발견한 건지, 아니면 천 귀인과 자신이 너무 스스럼없이 서신을 주고받은 게 걸린 건지 알 수 없어 걱정했다.
그때 마침 개원이 돌아왔단 소식을 들은 황제가 다시 사람을 보내었고, 개원에게 황제의 어명을 전달해주었다.
“폐하께서 천 귀인이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니, 개 대인께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귀인께 무공을 가르쳐 달라 청하셨소.”
그의 짐작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어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