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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27화 (127/283)

##  127화. 화살을 추적

월요 황제는 천 귀인이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다가 자신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로도 모자라 아예 따라가려고 하자, 승언이 얼결에 함께 일어나며 물었다.

“폐하? 어디 가십니까?”

“반숙이는 자존심이 강하지 않으냐.”

천 귀인이? 승언은 동의하진 않았으나 황제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월요가 단상에 마련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자 뒤로 태감과 궁녀들이 우르르 붙었다.

월요는 손을 저어서 따라오지 말란 신호를 보내고 승언만을 데리고 바쁘게 걸어갔다.

“그 자존심 강한 애가 시합을 망쳤으니 울 만도 하지.”

“우셨습니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뛰쳐나간 거 아니냐.”

“그렇습니까?”

“그래. 천 귀인은 양파 깔 때만 우는 사람이라.”

월요는 천 귀인이 달려간 방향으로 급히 이동했다.

“짐이 달래주어야겠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분기를 삭이는 천 귀인의 모습이 월요 황제의 눈에만 선했다.

승언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일단 황제를 따라서 뛰었다.

다행히 낙엽이 가득 쌓여 있는데다 천 귀인이 뛰쳐나가는 걸 보자마자 따라 나온지라, 누군가 어디로 달아났는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천 귀인을 따라 쫓아가고 있자니, 그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둔 곳에서 빠르게 화살이 날아가는 게 아닌가.

황제는 우뚝 멈추어 섰다.

승언도 뛰던 걸 멈추고 황제를 보호하듯 그의 앞으로 가 섰다.

“방금…….”

화살이 날아간 것 같다고 승언이 입을 열기 전. 화살이 날아간 방향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합장 쪽입니다.”

승언이 월요 황제에게 빠르게 알렸다.

“누군가 그쪽으로 화살을 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승언의 눈동자는 아까 천 귀인이 달아난 쪽으로 향했다.

천 귀인이 그쪽으로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살이 나왔고, 후궁 중 하나가 부상을 입었다.

자연스럽게 천 귀인의 짓인가, 의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월요는 대답 대신 그쪽 방향으로 다급하게 뛰었다.

그러나 월요가 천 귀인을 찾기 전. 근처를 돌아다니던 병사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폐하.”

그들을 이끌고 온 기몽은 황제가 경기장에 있지 않자, 의아해 하면서도 얼른 인사를 올렸다.

“폐하께서도 안비 마마를 공격한 자를 찾아 이리로 오셨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기몽은 얼른 범인을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연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힐긋거렸다.

“폐하. 우선 범인을 쫓아야 하니 병사들을 저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이렇게 되자 월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라.”

월요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몽은 병사들을 끌고 황제가 가려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월요는 작은 목소리로 승언에게 재빨리 지시했다.

“저들보다 먼저 가라. 가서 천 귀인이 그곳에 있거든 데리고 도망치라.”

“예.”

승언은 대답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 모습을 감추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월요는 눈살을 찌푸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문제가 된 방향으로 달려갔다.

기몽 장군의 말을 들어보니 화살에 맞은 사람은 안비 같은데…….

저절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주먹이 쥐어졌다.

월요는 만약 천 귀인이 정말로 안비를 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어떻게 하고 말 것도 없이 정해진 절차란 게 있고 법도가 있지만…….

하필 안비와 천 귀인 사이에는 약간의 문제도 있지 않던가. 안비가 천 귀인에게 수상한 차를 먹인 사건.

사람들은 천 귀인이 그때의 원한을 잊지 않고 벼르다가 결국 안비에게 해코지를 한 거라 여길 것이다.

마침내 공터에 도착해 천 귀인을 찾은 월요는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욕설을 뱉을 뻔했다.

‘미치겠군.’

상황은 상상보다 좋지 않았다.

천 귀인은 활을 들고 있었고, 그 주위를 병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승언은 대체 어딜 간 거지?’

먼저 달려가서 천 귀인을 빼내라고 보낸 승언은 어디로 간 건지 아예 보이질 않는데, 기몽은 천 귀인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귀인. 활을 내려놓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나마 천 귀인이 활을 바닥으로 겨누고 있어서 분위기가 아주 험악하진 않으나, 기몽이 경고를 하는데도 천 귀인은 활을 내려놓지 않았다.

월요가 다가가자 기몽은 인사를 올리고서 작게 속삭였다.

“와보니 천 귀인께서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폐하.”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

자신이 왔는데도 쳐다도 보지 않고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는 천 귀인을 곁눈질하며, 월요는 자기도 모르게 대신 변명을 했다.

“천 귀인이 쏜 건 아닐 거다. 얼결에 활을 주웠는데 너희가 들이닥치니 굳은 거겠지.”

기몽이 당황해서 쳐다보자 월요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너도 보지 않았느냐. 천 귀인은 활을 후궁 중에서 제일 못 쏜다.”

“……그건 그렇지요.”

그 말은 기몽도 순순히 인정했다.

조금 전 천 귀인이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그 궁술 실력은 기가 막힐 정도로 형편없었으니까.

하지만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집요한 기몽은 절대로 말 몇 마디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 계시는데다 화살까지 주우셨다면 범인을 보셨겠지요. 흔적이라도요.”

어떻게 해서든 천 귀인을 수사청에 데려가겠단 의지가 드러나는 목소리에 월요는 그의 이름을 견몽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그때.

“기몽!”

허공을 멍하니 보는가 싶던 천 귀인이 갑자기 버럭 외치더니 끝이 바닥을 향하던 화살촉을 기몽을 향해 겨누었다.

“!”

기몽은 놀라고 병사들은 천 귀인에게 달려가려는 찰나.

“숙여!”

천 귀인이 버럭 외치고 기몽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가 허리를 숙이자마자 천 귀인이 쏜 화살이 ‘핑’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갔다.

천 귀인이 다시 화살을 내리자 병사들이 황급히 천 귀인 쪽으로 가 그녀를 둘러싸고 긴장해 몸을 굳혔다.

천 귀인이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인데, 그녀를 가장 총애하는 황제는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상황.

황제가 천 귀인을 어떻게 하라고 말도 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이대로 두었다가 천 귀인이 또 활을 쏠지 모르는 상황.

이렇다 보니 병사들은 난처해졌다.

그러나 월요는 병사들에게 천 귀인을 포박할 권한을 주는 대신,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더니 뜬금없는 명령을 내렸다.

“기몽. 천 귀인이 활을 쏜 방향으로 가봐라.”

* * *

“폐하께서 천 귀인에게 완전히 푹 빠지셨군요.”

기몽이 황제의 지시대로 천 귀인의 화살이 날아간 방향으로 가는 동안.

그를 따라온 측근 부하가 작게 투덜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수상쩍은 상황에서도 천 귀인을 두둔하려 하시다니요.”

화살이 날아와 안비를 맞혔고, 안비는 일전에 천 귀인을 공격한 적이 있는 후궁이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는 활과 천 귀인뿐.

심지어 천 귀인은 병사들이 왔는데도 활을 버리지 않고 버티다가 갑자기 기몽을 향해 활을 쏘지 않았던가.

숙이라 말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당장 수사청으로 끌고 가야 할 터인데.

황제는 천 귀인을 어찌하란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몽에게 천 귀인의 화살을 찾아오라 지시했다.

부하에겐 이게 너무 불합리하게 여겨졌다.

“영민하신 폐하께서 이렇게-.”

“그만.”

기몽은 딱 잘라 부하의 투덜거림을 막았다.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폐하라면 더욱.”

“죄송합니다.”

부하는 시무룩해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사과를 끝내자마자 부하는 갑자기 “장군!” 하고 외쳤다.

“저거!”

기몽도 동시에 부하가 본 것과 같은 걸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기몽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서 축축해진 땅을 보았다.

기몽은 축축한 흙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다음 들어 올려 색을 확인했다.

“피다.”

누군가 이곳에 피를 흘리며 지나갔다.

“화살은 없군.”

기몽이 중얼거리자 부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천 귀인께서 누군가를 쏘아 맞히신 겁니까? 진범을요?”

“잡아 오면 알겠지.”

기몽은 굽혔던 무릎을 편 다음 부하에게 양옆으로 헤친 티가 나는 수풀을 가리켰다.

“핏자국을 따라가 봐라.”

“예.”

부하는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기몽은 황제에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다른 때라면 같이 추적했을 것이나, 지금 천 귀인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천 귀인을 총애하는 황제 탓에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고 있으나, 어쨌든 불쾌할 터.

더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그가 얼른 가서 이 상황을 알려주어야 했다.

“잠시.”

그러나 황제에게 돌아가려던 기몽은 혹시 적이 생각보다 강해서 부하를 죽이고 달아날 가능성을 떠올리고, 마음을 바꾸어 다시 부하를 불렀다.

“예, 장군.”

“네가 가라. 내가 추적하겠다.”

* * *

날 둘러싼 사람들, 긴장한 표정, 숨 막히는 분위기.

모두 다 익숙한 것들이다.

물론 날 둘러싼 이들이 병사들이고 그들 사이에는 떡돌이가 내게 의문의 눈짓을 계속 보내고 있으며, 병사들이 함부로 날 공격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나는 태연히 기몽이 진범을 데리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떡돌이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니 얼른 상황을 설명해주고 싶지만, 이 와중에 내가 무어라 한들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입을 다물고 침착한 태도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아까 내가 쏜 화살 방향으로 달려갔던 병사가 다가오더니,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몽 장군은?”

그러나 같이 간 기몽이 보이지 않아 황제가 묻자 그는 얼른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대답했다.

“누군가 활에 맞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사는 그 말을 하고서는 나를 뒷산에서 호랑이를 타고 내려온 사람을 보듯 바라보았다.

“장군께서는 그 사람을 따라가시고, 절 먼저 보내 이 사실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으며 나와 황제를 번갈아 보았다.

“물러나라.”

그러다 황제가 지시를 내리자 나를 에워싸고 있던 병사들은 기다렸단 듯이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이 좀 진정된 듯하자 떡돌이는 다시 내게 눈짓을 보냈지만, 이번에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기몽이 기절한 누군가를 끌고 왔다. 내가 쏜 화살은 그자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폐하.”

기절한 이를 병사들 틈으로 던져 놓은 기몽은 황제의 근처로 가 인사를 올리고 설명했다.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보니 누군가 활을 맞고 달아난 흔적이 있었습니다. 쫓아가자 이자가 나왔고요.”

말은 기몽이 하는데, 병사들의 시선은 내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귀인,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보니…….”

수풀 뒤쪽에서 승언이 역시 기절한 누군가를 들고 나타나자 병사들은 더욱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황제 앞에서 무기를 든 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참으로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시선.

나는 어깨를 당당하게 쭉 펴고서 두 손을 펼치며 나의 자랑스러움을 드러냈다.

물론 아까 말을 했으면 턱도 먹히지 않았을 사정도 이제야 이야기했다.

“시합을 하다가 보니 수상한 자가 후궁들 쪽을 노리고 있었어요, 폐하. 급히 달려왔지만 수상한 자는 이미 활을 쏜 직후였죠.”

나는 기절한 사람 둘을 눈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마침 폐하의 그림자가 왔기에, 한 명은 잡아달라 부탁하고, 한 명은 제가 활을 쏜 거예요.”

사실 병사들이 이쪽으로 오는 기색이 없었다면 나도 직접 수상한 자를 쫓아가 잡았을 텐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기에 좀 번거롭지만 놓아주고 일부러 활로 쏜 거지.

내가 때려눕힌 다음에 병사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이상하고, 때려눕힌 다음 알아서 발견되게 방치하면 저자가 범인이란 게 묻힐 수도 있으니.

어때?

병사들은 내 설명에 다들 감탄해서 입을 벌렸다.

황제 역시 좀 얼떨떨해서 물었다.

“궁술 시합에서 중간만 할 거라더니. 활을 잘 쏘지 않느냐.”

“제가 ‘중간만 할 것’이란 말은, 하향지원할 걸 거란 소리였어요, 폐하.”

“!”

* * *

“단주. 원노행이 황제에게 잡힌 듯합니다.”

수하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다리던 인형평은 아무 연락이 오지 않자 곧장 타천천을 찾아가 보고했다.

“원노행 뿐만 아니라 심부름꾼까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타천천은 책상 앞에 서서 커다란 붓으로 글씨를 쓰다 말고서 인형평을 돌아보았다.

인형평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평소보다 목소리가 좀 더 다급했다.

“고초를 받으면 분명 입을 열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태평했다.

“그 사람이 거기에 있으니 당연히 실패했겠지.”

“그 사람이요?”

천년비가 후궁으로 있는 걸 모르는 인형평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타천천은 설명해주는 대신 뒷짐을 지고 웃었다.

“애초에 실패하라 내린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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