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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23화 (123/283)

##  123화. 무공을 익히고 싶어요

한시가 급한 상황 같기에, 나는 온 귀인의 처소로 가는 대신 무작정 의부로 뛰었다.

온 귀인의 처소로 가 봤자 어차피 궁의가 다시 그쪽으로 와야 하니까.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름 모를 궁의 하나가 마침 진료 상자를 들고나오다가 나와 온 귀인을 발견하고 당황해 물었다.

“천 귀인 아니십니까?”

궁의는 온 귀인의 얼굴을 모르는 눈치였으나 짐작으로나마 환자가 누군지는 바로 알아본 듯 곧 뒷걸음질 쳐들어가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온 귀인이야. 많이 놀랐네. 배가 아프대.”

나는 궁의를 따라 들어가며 간단하게 사정을 요약해주었다.

“탕 궁의도 불러오게. 계속 온 귀인을 진맥했을 테니.”

“네, 네! 이쪽으로!”

궁의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가 그곳 침상에 온 귀인을 눕히는 사이, 어느새 다른 궁의가 달려왔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그 궁의가 온 귀인의 손목에 얇은 천을 깔고 진맥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괴로워, 아파 죽겠다. 아프다고!”

온 귀인이 진맥이고 뭐고 통증이 심한지 울상을 지으며 외치는 바람에 천이 떨어졌으나, 궁의는 다시 천을 들어 온 귀인의 팔에 올려두며 빌었다.

“송구합니다, 귀인. 진맥을 해야 당장 무슨 약을 처방할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계속 있지 않아도 되겠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러고서 마당을 몇 바퀴 서성이고 있자니, 궁의들이 온 귀인의 방으로 바쁘게 오가는 게 보였다.

개중에는 탕 궁의도 있었는데,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탕 궁의는 나를 발견하자 평소보다 약식으로 바쁘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얼른 온 귀인이 누운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뒤에는 태후 마마가 부축을 받아 도착했고, 얼마 뒤에는 황제가 도착했고, 얼마 뒤에는 황후와 후궁들이 도착했다.

이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안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나는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온 귀인이 침상에 누운 채 울고 있었다.

후궁들은 조금 뒤쪽에 서서 자기들끼리 시선을 주고받고, 황제는 온 귀인의 침상 곁에 서 있고, 태후 마마도 그쪽에 있었다.

“천 귀인. 이쪽으로 와요.”

개시시가 나를 보자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쪽으로 후다닥 다가가자, 개시시는 내 손을 잡고 옆으로 끌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쪽 상황을 본다면.

마침 태후 마마가 탕 궁의에게 물었다.

“이미 늦은 게냐?”

그 목소리에는 비통한 기색이 가득했다.

탕 궁의는 차마 눈도 맞추기 어렵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태후 마마.”

“어떻게 이럴 수가…….”

“개월 수로 따지자면 임신 초기를 갓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안정적인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더욱 조심해야 했는데, 최근에 연달아 크게 놀라셨으니까요.”

탕 궁의가 말을 마치자마자 흐느끼던 온 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부주의했단 말이냐!”

탕 궁의는 황급히 무릎을 굽혔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건 다 귀인의 잘못이 아닌데, 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태후가 손을 젓자 탕 궁의는 온 귀인의 눈치를 보며 일어났다.

태후는 손수건을 꺼내 온 귀인의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 주면서 애써 달래는 목소리를 냈다.

“몸조리를 잘해야지. 괴롭겠지만 이리 화를 내면 몸에 좋지 않아.”

오랫동안 바라온 손주가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온 귀인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 여기는 듯했다.

“태후 마마…….”

그러나 온 귀인은 태후가 손을 꼭 잡아주자 더욱 속이 상한지 울상을 짓고 꺽꺽 흐느꼈다.

그러다가 태후가 그녀를 보듬고서 등을 다독이자 더욱 눈물을 펑펑 쏟았다.

황제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듯 면사 위로 드러난 눈가가 굳어 있었다.

그때. 태후가 온 귀인을 보듬고서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내내 흐느끼던 온 귀인이 갑자기 황후를 노려보며 외쳤다.

“태후 마마, 이 일은 전부 황후 마마 때문입니다. 황후 마마가 제 아기와 태후 마마의 손주를 죽인 겁니다!”

우두커니 서서 사태를 바라보던 황후가 그 뜬금없는 외침에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개시시가 내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태후 마마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온 귀인은 태후 마마의 손수건을 간절히 두 손으로 붙잡더니 더욱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설명했다.

“황후 마마가가 절 시체 위에 앉게 했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제게 그런 배려를 했을 때 이상하게 여겨야 했는데!”

황후는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자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어마마마.”

황후가 바로 부인했지만 온 귀인은 계속해 주장했다.

“다들 보았습니다, 태후 마마. 황후 마마가 저더러 시체를 가리키면서! 저 위에 앉으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그 위에 직접 앉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테고…… 그러면 제 아기도……!”

입술을 깨문 온 귀인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황후를 노려보았다.

눈에서 당장에라도 원한 서린 귀신이 나와 황후를 할퀼 분위였다.

황후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겨지는지 태후와 황제를 번갈아 보며 거듭 부인했다.

“온 귀인은 후궁이기도 하지만, 저와 친척이기도 한데 제가 그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온 귀인에게 앉으라 권한 건 저 애가 회임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황후와 친한 촉비도 얼른 앞으로 나서서 말을 보탰다.

“폐하. 태후 마마. 황후 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 온 귀인이 앉은 자리는 낙엽으로 뒤덮여 있어서, 안에 시체가 있으리란 생각은 누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나오자마자 온 귀인은 이번에는 촉비 쪽까지 같이 공격했다.

“촉비 마마에게 화살이 같이 돌아갈까 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처음에 황후 마마께 그 자리를 권한 게 촉비 마마여서요?”

“온 귀인! 말을 조심해라!”

촉비가 서늘하게 외쳤으나 온 귀인은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분노를 드러낼 뿐이었다.

“둘이 한패일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촉비 마마가 황후 마마를 공격하려 했는데, 일이 꼬여서 황후 마마가 날 공격한 게 됐나요?”

여기에 황후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그만.”

내내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자마자 동시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황제는 떡돌이일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온 귀인을 보았다.

황제와 눈이 마주치자 온 귀인은 서럽다는 듯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폐하…… 저는…… 어떻게 저는…….”

황제는 그 모습을 보더니 직접 몸을 굽혀 온 귀인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누가 거기에 시체를 두었는지, 네게 피 묻은 나비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꼭 범인을 잡아줄 테니 진정하거라. 흥분하다 몸이 더 상하겠다.”

그러고 있자니 탕 궁의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저…… 폐하. 태후 마마. 온 귀인께서는 약을 드시고 푹 주무셔야 합니다. 온 귀인께서는 이제부터 푹 쉬시며 몸조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태후는 모두 다 나가자 말하며 후궁들을 보냈고, 황후는 주저하다가 입술을 꾹 닫고서 밖으로 나갔다.

황제 역시 태후를 따라 나갔다.

그런데 나도 그 사이에서 개시시와 나가려 하고 있자니, 온 귀인이 갑자기 “천 귀인!” 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돌아보자 그녀가 우리가 헤어진 자매쯤 되는 듯 간절하게 날 불렀다.

“잠들 때까지 천 귀인이 나랑 같이 있어 줘요. 제발요.”

황제와 태후 마마는 물론 다른 후궁들까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고, 나도 당황했다.

“나요?”

황당해서 대놓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눈물이 그렁해져서 부탁했다.

“내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할 때 날 안아준 건 천 귀인뿐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겠어요. 천 귀인이 나랑 있어 줘요.”

아니, 난 안아준 게 아니라 안아서 운반한 건데.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 전에 태후 마마가 한숨을 내쉬면서 먼저 내 칭찬을 해버렸다.

“천 귀인은 참으로 착하기도 하지. 그래. 둘이 같이 있도록 하거라.”

아니, 나 아직 있을 거란 말 안 했는데요.

그뿐만이 아니다. 개시시도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말을 보탰다.

“천 귀인은 늘 사람들을 잘 챙기니까요.”

나름대로는 내 평판을 높여주기 위해 말을 보탠 눈치인데…… 아니, 난 병간호 잘 못 한다고!

게다가 온 귀인이랑 방에 둘이 남아서 무슨 대화를 하겠어!

하지만 내 선택권은 없는 건가. 다들 나를 칭찬하면서 나가버렸다. 나만 남겨두고.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 귀인.”

심지어 탕 궁의까지도 ‘내가 널 오해했나 봐’란 시선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평소보다 깊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갔다.

얼결에 문이 닫히자 나와 온 귀인 둘만이 남게 되었다.

혹시…… 꿍꿍이가 있나 싶어 온 귀인을 돌아보니, 꿍꿍이는커녕 그녀는 안 그래도 천소여를 닮아 처진 눈이 더욱 슬프게 변해서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함께 있어 줘요, 천 귀인. 무서워요. 천 귀인이 옆에 있어야 잠들 수 있을 거 같아요.”

“?”

* * *

급하게 수사를 마친 기몽은 황제가 어전이 아니라 의부 근처에 있단 이야기를 듣고 그쪽으로 갔다.

그가 다가오자 황제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곧장 물었다.

“시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느냐.”

그 질문을 듣자 ‘왜 여기에 서 계시나’ 하는 의문은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이 치솟아 기몽은 입술을 꾹 다물고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황제가 눈동자만 돌려 그를 보자, 어쨌든 대답을 피할 수는 없는지라 기몽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목이 없는 시체여서 확실하진 않지만…….”

“않지만?”

“강흠예군 같습니다.”

강흠예군의 월요 황제의 사촌으로 명실상부한 종친이었다.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강흠예군?”

“예. 강흠예군이 선황제 폐하께 받은 후 늘 보물처럼 간직하고 다니며 자랑하시던 보라색 보옥에 대해 아십니까? 그게 시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 *

온 귀인이 잠든 걸 확인한 다음 밖으로 나오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림 악적 천년비가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 사람이 다 있다니.

온 귀인은 심지어 지금까지 나와 친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자기를 안고 뛰어준 일이 그렇게 고마웠나?

그런데 밖으로 나와 원웅과 부성을 찾고 있자니, 한발 앞서 황제가 날 불렀다.

“소여야.”

또 이름으로 부르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별명이나 불러대긴 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황제는 의부 근처의 담벼락에 서 있었는데, 황제 때문에 주위에 아무도 사람이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둘만 있을 때와 달리 반말을 하지 않고 묻자, 그는 걸치고 있던 얇은 겉옷을 벗어 내 위에 덮으며 물었다.

“너는 좀 괜찮으냐?”

“내가 뭘요?”

“시체를 봤다며.”

“아, 난 시체…….”

많이 보기도 하고 많이 만들기도 해서 괜찮단 말은 하면 안 되겠지.

“안 봤어요. 온 귀인 본다고.”

얼른 둘러대자 황제는 다행이라 중얼거리더니 나를 끌어안고서 몇 마디 위로하는 말을 던졌다.

세상에. 보통 사람들은 시체를 보고 나면 위로하는 말을 듣는구나…….

왜지? 위로를 들어야 하는 건 시체가 된 사람 아닌가?

어쨌든 위로를 하기에 듣고 있자니 한참 뒤. 황제가 내 등을 몇 번 쓸어주다가 물었다.

“어마마마께서 너를 몹시 칭찬하셨다. 상심한 온 귀인 앞에서 칭찬하기 어려워서 거기선 하지 않았지만.”

“아. 정말요?”

“그래. 네가 나서준 덕에 그래도 온 귀인이라도 빨리 치료받았으니까.”

“다행이네요.”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황제는 내게 덮어준 자기 겉옷의 끈을 묶어 주고서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마마마께서 네게 꼭 상을 주라 하시더군. 혹시 가지고 싶은 게 있느냐?”

“상이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에 내가 그에게 돈 얘기를 한 게 떠올랐는지 귓속말로 물었다.

“돈으로 줄까?”

당연하지! 상은 돈이지! 나는 바로 흔쾌히 대답하려 했으나 전에 비원이 준 영약이 떠올라 마음을 바꾸었다.

“그럼 폐하. 나, 무공을 익히고 싶어요. 스승을 붙여줘요.”

이러면 자연스럽게 영약을 먹을 수 있겠지!

내가 무공을 익힌다는데, 황제가 영약 하나 안 구해다 주겠어? 황제가 영약을 구해다 주면 비원이 준 영약과 섞어 먹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공 상승. 이상하지도 않아.

젠장, 역시 나는 바보가 아냐.

“괜찮아요?”

눈을 빛내며 묻자. 황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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