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숨는 사람과 잘 발견하는 사람
내가 배를 잡고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자, 떡돌이는 황급히 나를 안아 들었다.
“소여야. 왜 이러느냐? 소여야!”
떡돌이는 급하면 이름을 부르는구나. 하긴. 흐느끼면서 계란아! 반숙아! 하고 외치면 놀리는 것 같겠지.
어쨌든 이왕 피를 뿜은 김에 아픈 척도 해야겠다 싶어서, 나는 입가에 손을 올리고서 콜록콜록 기침까지 했다.
“소여가 왜 이러는 게냐?”
“모르겠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안 드셨는데.”
원웅이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꾀병을 들킬 뻔하긴 했으나, 순간 낸 기지 덕에 꾀병도 들키지 않았다.
“폐, 폐하. 소금. 소금이요. 실은 제가 아예 굶으려니 배가 너무 고파서 소금을 좀 집어 먹었습니다.”
“소금을? 아니 왜 굳이 소금을.”
황제는 당황한 눈치였으나, 내가 계속 피를 줄줄 흘리자 이럴 때가 아니다 싶은지 오 공공에게 외쳤다.
“어의! 궁의를 데려와라! 빨리!”
갓 건져낸 오징어가 된 기분으로 축 늘어져 있자니, 떡돌이는 나를 방 안으로 데려가 침상에 눕혀 주었다.
“괜찮으냐. 응? 많이 아파?”
“독 먹어 봤어요, 폐하?”
“아니, 짐은 안 먹어 봤지.”
“안 먹어 봤음 말을 말아요. 아야. 많이 아파요.”
떡돌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걸 보니, 내 통증을 조금 의심하는 기색이다.
그냥 조용히 있는 게 낫겠어.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하지 않던가.
“아야아…….”
꺼져가듯이 마지막 통증을 호소하고서 나는 급격히 시들어버린 낙엽처럼 입을 다물고 눈을 꼭 감았다.
속아 넘어간 건가? 다행히 떡돌이는 더 말을 걸지 않았다.
* * *
“귀인께선 괜찮으십니까, 폐하?”
황제가 밖으로 나오자 그림자인 승언이 안개처럼 스르륵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보였다.”
좀 꾀병을 부리는 것도 같았고. 황제는 솔직한 대답은 감추고서 눈을 매섭게 한 채 승언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의는?”
“달려오고 있을 겁니다.”
“우 귀인은?”
“억울하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처소에 가두어두라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월요 황제는 날카로운 눈으로 천 귀인의 처소에 있는 부엌을 노려보았다.
천 귀인이 진짜로 독을 먹었든 먹지 않았든, 저 안에서 독이 나온 건 분명한 일.
이미 한 차례 독을 먹고 사경을 헤맨 적이 있는 천 귀인의 부엌에서 또다시 독이 나온 건 그만큼 보안이 취약하단 뜻이었다.
* * *
“폐하! 저는 억울합니다!”
우 귀인은 흐느끼면서 무릎을 꿇고 사립문을 향해 외쳤다.
“폐하! 제가 천 귀인을 죽여달라 했다면, 왜 폐하께 그런 이야기를 꺼냈겠습니까! 저는 억울합니다, 폐하!”
우 귀인은 흙을 쥐었다가 팽개치면서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을 정도로 울었다.
그 비통한 외침에 곁에 선 궁녀들까지 함께 훌쩍거릴 정도였으나,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황제에게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태감들을 시켜 우 귀인을 그녀의 처소에 억지로 가둔 오원요는 물론 이 목소리를 다 들었다.
그러나 황제의 측근 태감으로 살아가다 보면 온갖 일을 보고 듣게 되는데.
우 귀인이 이번에 받게 된 벌은 사실 그가 본 벌 중 비교적 약한 축에 속했다.
품계를 낮추고, 허락이 있을 때까지는 처소 마당까지만 나갈 수 있게 연금.
냉궁에 보내는 것도 아니다 보니, 오원요의 동정심은 이 상황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우 귀인이 회임한 온 귀인 곁에서 호가호위하며 천 귀인을 따돌린 일은 이미 궁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던가.
“그만하십시오, 우 귀인. 여기서 이러셔봐야 폐하께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목청이 찢어져라 외쳐대고 있으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오원요는 달래듯 말해보았다.
그러나 우 귀인은 멈추지 않은 채 어깨를 곧 쓰러질 사람처럼 떨었다.
“난 정말로 천 귀인에게 독을 먹인 적이 없소. 천 귀인을 죽이라 한 적도 없고. 이건 다 천 귀인이 판 함정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진정하라고!”
“천 귀인이 판 함정이라니요. 그러면 천 귀인께서 스스로 독을 먹고 피를 토하기라도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랬겠지!”
“세상에 누가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스스로 독을 먹습니까…… 게다가 비원 그자 이야기를 꺼낸 건 귀인이십니다.”
“천 귀인도 그 자리에 있었지 않소! 내 얘기를 듣고서 함정을 팠겠지!”
“비원과 거래를 한 건 소주이신데, 어떻게 천 귀인이 그 자리에서 비원과 함정을 판단 말입니까.”
“그건…… 무슨 수가 있었겠지!”
오원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지요’라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자, 우 귀인은 얼굴이 벌게졌다.
나름 명문가의 적녀로 태어나 귀하게 자라온 몸이다 보니, 태감 주제에 나를 무시하는 거냐고 버럭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우 귀인은 가까스로 인내심을 발휘해 그 말을 꾹 눌렀다.
황제에게 미움을 산 상황에서 그의 최측근인 오원요에게까지 밉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그녀는 연신 눈물을 쥐어짜면서 “하지만 난 정말 억울하단 말이오.” 하고 중얼거렸고, 오원요는 끌끌 혀를 차다가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다.
“귀인이 하신 일에 비하면 그래도 큰 벌을 받지 않은 겁니다. 조용히 반성하며 지내시면 감금은 풀어주실 겁니다. 폐하께서는 독한 분이 아니시니까요.”
* * *
탕 궁의는 내 맥이 많이 상했으니 잘 보양해야 한다 했고, 아주아주 쓴맛이 나는 탕약을 처방해주고 돌아갔다.
덕택에 나는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쓴 탕약과 단 설탕 과자만 번갈아 먹어댔다.
이번 사건 때문에 많이 바빠졌는지 떡돌이는 오 공공을 보내 안부를 물었을 때를 제외하곤 아직 찾아오지 않았고.
아직 안 찾아왔다고 한들 이삼일 정도지만.
하여튼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오늘도 떡돌이는 안 올 테고 나는 탕약을 먹어야겠지,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원웅이 기뻐하는 건지 두려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알려주었다.
“소주, 폐하께서 삼각째 기다리고 계세요.”
“정말이야?”
“네. 방에 들어가면 소주를 깨운다고, 일부러 밖에서 기다리세요.”
내가 낮잠 자는 사이에 온 건가? 평소처럼 안 들어오고 밖에서 뭐 한대?
“들어오시라 해.”
이상하긴 해도 나는 얼른 허락한 다음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서 일어나려 했으나, 그 사이에 밖에서 알아서 소리를 듣고 들어온 떡돌이가 손을 저어 말렸다.
“되었다. 몸도 안 좋은데 그대로 있거라.”
이윽고 원웅과 부성이 나가자, 떡돌이는 내게 수사 결과와 뒷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우 귀인이 우 답응이 됐다고? 그리고 자택에 감금되었어?”
“정확히는 마당 밖으로 못 나오게 된 거지.”
“품계가 내려갔단 거지?”
“그래. 이젠 네가 더 품계가 높다.”
“그렇구나.”
“계속 억울해한다더군.”
“그래?”
사실 이미 내 궁녀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나는 처음 듣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우 귀인은 대체 뭘 억울해하는 거야? 비원이 사실은 날 존경하고 있었단 점과 그가 약속 장소에 몸소 안 나가고 쪽지를 남겨두었단 걸 빼면 거짓은 없잖아?
우 귀인은 실제로 비원에게 나와 촉비를 없애 달라고 했다며. 없애 달라 했던가 몰락시켜 달라 했던가, 하여튼.
비원은 그걸 쪽지로 표현한 거고, 약속한 대로 내 처소 음식에 독을 넣은 건데. 대체 뭐가 그리 억울하단 건지.
어쨌든 떡돌이가 날 위해서 일을 빨리빨리 진행해 주었기에,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 위해 이불에서 슬그머니 손을 꺼냈다.
위엄있게 손을 쥔 다음에 고맙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을 딱 꺼내자마자 떡돌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하자.”
“어?”
나는 손을 도로 내리고서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내 말대로 하자니, 뭘?
“네 말대로 앞으론 거리를 두자. 짐은 네 앞에서도 면사를 쓰겠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면사 이야기는 까먹고 있다가 방금 생각났다.
그래, 내가 앞으론 거리를 두자고, 내 앞에서도 얼굴을 보이지 말아 달라고 했지. 했는데…… 아니, 그 이야기가 왜 갑자기 지금 나와?
너무 뜬금없는 시기 아냐?
황당해서 쳐다보았으나 떡돌이는 그 말을 끝으로 내 손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지체 없이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은 참으로 가볍고 가뿐해서, 나는 이불을 붙잡은 채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 있었다.
* * *
“우 귀인은 비원과 만날 수 있다 했는데, 비원은 우 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남겼지. 그 자리엔 천 귀인이 있었고.”
“예, 폐하.”
“독이 탄 음식이 있는데, 천 귀인은 물론 아랫사람들 그 누구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지요.”
“이를 우 귀인이 지적하자마자 천 귀인이 입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
황제의 말에 연신 ‘그렇지요 그렇지요’라고 대답하던 오원요는 걱정스레 물었다.
“폐하께서도 천 귀인이 일부러 독을 먹었다 생각하시는 건지요?”
“천 귀인은 전에도 이상한 걸 마시고 피를 토한 적이 있다. 당시 천 귀인의 차에 수상한 걸 섞은 궁녀는, 그게 그런 종류의 독이 아니었다고 했어. 아이를 회임하기 어렵게 만드는 약이지, 먹고 피를 토하는 약이 아니었다고.”
당시에는 그 궁녀가 입이 무겁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천 귀인은 또다시 ‘필요한’ 상황이 되자 피를 토했다.
실제로도 맥이 약해지고 기혈이 얽히는 둥 몸도 안 좋아지긴 했지만, 너무 교묘한 때에 피를 토하지 않았나.
피만 토했더라면 그러려니 했겠으나, 세 가지 우연이 나란히 겹쳐지자 월요 황제는 이 사실들에 의구심이 들었다.
“천 귀인이 비원이란 자와 관련이 있단 건 맞을 거다.”
“폐하…….”
“우 귀인이 스스로 무덤을 판 거라 일단 넘어가 주긴 하겠지만.”
눈을 감은 월요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천 귀인에게도 비밀이 있단 걸 아는데. 그녀의 비밀에 대해선 자꾸 넘어가려 하니, 이는 객관적이지 못하다.”
오원요는 덩달아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떨구었다.
“천 귀인과 거리를 두고…… 좀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겠어.”
“예, 폐하.”
“혜비도 주시하도록 해라.”
“예.”
“천 귀인에겐 미안하지만 짐은 당분간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겠다. 선을 긋고 잠시 마음을 다스려야겠어.”
* * *
이제 몸도 다 나아서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오히려 떡돌이 얼굴은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면사 쓰고 만나자 했더니, 아예 사라져버렸어.
청적에 가도 보이지 않고 비밀 장소에 가도 보이지 않고, 시침 들라 부르지도 않는다.
희한한 건…….
청적에 가면 떡이 놓여 있고, 비밀 장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꼭 ‘지나가던’ 오 공공이나 승언이 다가와서 떡을 주고 가고, 밤에 산책하고 있으면 조금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서 떡돌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데 있었다.
바람이 좋아 창문을 열고 자면 또 ‘지나가던’ 오 공공이나 승언이 와서는 문을 열고 자면 위험하다고 창문을 닫으라 하고 간다.
창문을 닫으면서 보면 먼발치에서 또 떡돌이가 날 보고 있다. 본인은 내가 자기를 눈치챈 걸 전혀 모르는 눈치지만.
‘날 피하는 거야 마는 거야? 왜 저렇게 주위에서 어슬렁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