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이러고서 자자
“춤을 춰요 춤을 춰요 천 씨가 춤을 춰요, 아, 제대로 추고 있어요.”
내가 신이 나서 어깨를 털면서 덩실덩실 박자를 타는 동안, 원웅과 부성, 귀자는 평상을 둘러싸고 서서 잘한다 잘한다 박수를 쳐주었다.
처음에는 셋 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나중에는 활짝 웃으면서 자기들도 폴짝거리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원래 즐거운 기분은 전염되기 쉬우니까.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더욱 흥에 겨워서 허공에 손가락을 찌르면서 현란하게 발을 놀렸다.
하지만 원웅과 부성이 입으로 만들어주는 박자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툭’ 하는 소리에 멈추었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나는 춤 추던 걸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사립문 너머에서 오 공공이 황급히 떨어뜨린 등롱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떡돌이는 그 옆에서 턱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오 공공과 달리 주울 생각이 없어 보이고.
“어라? 폐하네요.”
그 모습을 보자 순간 반가워서 함박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나는 얼른 표정을 관리하고서 연비처럼 차갑게 웃었다.
떡돌이를 보자 반갑기도 했지만, 그가 날 두고 온 귀인에게 가버린 일이 똑똑히 기억나서. 잊어버리기엔 시간이 얼마 안 지났잖아.
“너는 짐이 안 오면 더 좋아할 거란 생각은 했지. 베개를 끌어안고 신이 나서.”
하지만 떡돌이는 자기가 먼저 온 귀인에게 갔으면서. 뭐가 그리 당당하다고 기막힌 표정으로 이런 말이나 했다.
“한데 넌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구나. 춤까지 추고. 짐이 안 오니 그리 좋으냐?”
심지어 조금 빈정거리는 투이기까지 해서, 저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원웅과 부성도 황제의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는지, 박수 치던 걸 멈추고 나와 떡돌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떡돌의 그런 태도에 오히려 더 발끈해서 평상에서 내려와 항의했다.
“폐하가 춤을 추는데 저라고 박수만 쳐야 하나요?”
“?”
떡돌이는 내가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할 줄 알았나. 인상을 구겼다.
“짐은 춤을 추지 않았는데.”
지금 춘 건 아니지. 하지만 온 귀인의 아기가 태어나면 출 거잖아.
나는 단호하게 턱을 들어 올리고서 ‘나는 당당하다’란 얼굴로 떡돌이를 보았다.
실제로도 나는 몹시 당당했다.
그저 혼자 춤을 추었을 뿐인데. 그걸로 떡돌이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떡돌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내게 기선제압이 된 건지 한숨을 내쉬고는 다가와서 머리를 눌러 턱을 원위치시켜주었다.
그러고는 뒷짐을 지며 내 침실을 눈으로 가리켰다.
“짐이 안 온다고 네가 그리 좋아할 걸 생각하니, 분이 나서 못 가겠다. 들어가자.”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차갑게 흥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막상 튀어나오고 보니 코웃음 소리가 너무 컸다. 게다가 쓸데없이 기뻐하는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입꼬리 끝이 실쭉 올라가고 말아서, 나는 놀라서 입을 가리고 주위를 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본 것 같지 않아. 승언이만 제외하고.
“…….”
못 볼 걸 봐버렸단 승언에게, 나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다음 얼른 떡돌이를 따라 들어갔다.
* * *
창문 한쪽을 연 탓에 바람이 불자 벽에 건 등롱이 흔들렸고, 등롱이 흔들릴 때마다 방 안에 까맣게 진 그림자도 같이 움직였다.
어찌 보면 밝고 어찌 보면 음침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황후는 긴 다리를 뻗고서 말없이 긴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궁녀는 그 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그러다 창문이 바람에 활짝 열리면서 탕 소리를 내자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괜히 민망해서 황후에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마마. 온 귀인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누굴까요?”
말을 뱉자마자 생각에 잠긴 황후를 방해한 듯해 후회했으나, 황후는 턱을 괴고 있다가 팔을 내리며 바로 대답해주었다.
“그럴 사람은 많지. 온 귀인은 처음으로 회임을 했으니까. 온 귀인이 무사히 아이를 낳길 바라는 사람은 우리 가문 사람들과 태후 마마뿐일 거다.”
“네? 폐하는요? 폐하도 첫 아이를 빨리 얻고 싶지 않으실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묘하게 중얼거린 황후가 희미하게 웃자 궁녀는 고개를 기웃했다.
그러다 누군가 창밖을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나자 궁녀는 얼결에 그쪽을 쳐다보다가 “아.” 하고 방금 막 떠오른 듯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지. 마마. 내무부 태감에게 들었는데요, 개 답응의 궁녀와 천 귀인의 궁녀가 매번 은밀히 뭔가를 주고받는답니다.”
“개 답응? 가문에 무림인이 있다던?”
“네. 어쩌면 둘이 합쳐서 온 귀인을 공격한 건 아닐까요?”
“개 답응은 왜?”
“천 귀인을 위해서요. 온 귀인이 회임하는 바람에, 온 귀인을 주축으로 천 귀인이 따돌림받지 않습니까. 개 답응은 천 귀인과 좀 친한 눈치랍니다.”
“글쎄.”
자신이 말해 놓고는 자신이 확신이 드는 듯, 궁녀가 밝은 얼굴로 눈을 빛냈다.
그러나 황후는 시원스레 대답하는 대신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이 꼭 온 귀인 일에 관련이 있진 않겠지. 하지만 남몰래 무언가를 주고받는 건 신경 쓰이는군.”
* * *
잘 자고 있자니 옆에서 “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부드러운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떡돌이의 잠든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아. 그래. 떡돌이가 날 혼자 두는 게 기분 나쁘다면서 방에 들어와 놓고서는, 내 비좁은 침상에 같이 자자고 비집고 들어왔지.
서로 자리를 넓게 차지하려고 투닥투닥하다가 결국 떡돌이가 내게 팔베개를 해주는 거로 합의를 보고 내가 그의 품 안에 들어가서 잤는데.
어느새 떡돌이는 자기 팔을 회수해 있고, 나는 그와 얼굴을 정면으로 맞대고 자고 있다.
범인이 떡돌이인가. 이 약은 너구리, 혹시 팔 저리다고 팔 회수한 거 아냐?
내가 춤추는 거나 방해하고 말이야. 자기는 온 귀인이랑 춤출 거면서.
생각하니 골이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겨 보려 했는데.
달이 구름 사이에서 벗어나면서 창문 너머로 하얗게 달빛이 들어와 떡돌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빛을 받은 떡돌이의 얼굴이 너무나 곱고 피부는 너무나 깨끗해서,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대신 그의 얼굴을 숨죽이고 구경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겼을까?’
피부는 관리를 하는 걸까? 원웅과 부성은 내 피부에 늘 공을 들여준다.
열심히 미용수를 만들고, 피부에 뭘 펴 발랐다가 지워주기도 하면서.
덕택에 천소여 얼굴은 눈썹은 쳐졌지만 피부에서는 윤이 난다. 그런데 떡돌이는 그런 나보다 더 피부가 좋았다.
떡돌이도 관리를 할 거야. 아니면 이런 피부가 나올 수가 없어.
손을 들어 매만져보니 어찌나 보송보송한지.
다른 피부도 이리 보송하나?
손을 올려 지나치게 풍성하지도, 빈약하지도 않은 눈썹을 손끝으로 더듬더듬 매만져보았다.
그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반듯한 것도 신기해.
이윽고 눈썹을 따라서 그의 얼굴 중 가장 입체적인 콧날을 따라 손을 미끄러뜨렸다.
손은 자연스럽게 그의 불그스름한 입술에 안착했다. 닫아도 예쁘지만 웃으면 더 예쁜 입술.
그 입술을 매만져보고 있자니, 손에 닿는 말랑한 감촉이 너무나 좋았다.
이런 얼굴로 온 귀인과 아기를 만들었단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온 귀인도 떡돌이 얼굴을 이렇게 조물조물 만졌을까?
온 귀인이 보기에도 떡돌이는 잘났겠지?
그때. 감겨 있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더니, 보물처럼 꼭 감추고 있던 옥구슬 같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평소보다 어두워 보이는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순간 가슴이 아니라 배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내 심장이 언제 거기로 이동했나.
“야하긴. 자는 사람 얼굴을 가지고.”
하지만 자기가 내 심장을 뚝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서, 떡돌이는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으면서 날 놀려댔다.
그러다 내가 손을 올려 그의 입을 막자, 그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입을 닫았다.
내가 손을 내리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지만.
“방금 그게 뭐지?”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서 “쉬.”하고 조용히 하란 신호를 보냈다.
떡돌이가 그 신호를 받고서 입술을 닫자, 그 순순한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떡돌이는 대체 내가 왜 웃는지 모르겠단 얼굴이었지만, 나도 사실 내가 왜 웃는지 알 수 없기에 나는 설명하는 대신 그냥 손만 내리고 설명했다.
“폐하는 조용히 있으면 더 사랑스러워.”
“그래서 닥치고 있으라 한 거냐. 칭찬 같지 않은데.”
“폐하가 말을 야무지게 못 해서 그래.”
“야무진 말은 어찌하지? 너처럼 하나?”
“모르겠어.”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나는 야무진 말을 못 하는 건지도 모르거든.
나는 야무진 말에 대해 알려주는 대신 떡돌이의 입술을 다시 더듬어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떡돌이도 자기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떡돌이도 내 입술을 만지고 싶은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손을 보아도 멈추지 않고 손은 위로 올라왔다.
떡돌이도 정말 내 입술을 만지고 싶나? 그래서 그러나?
그의 손이 우리의 얼굴 사이까지 올라오는 걸 보고서 나는 그가 만지기 쉽도록 입술을 살짝 벌려주었다.
하지만 떡돌이는 내 입술을 만지지 않았다. 기껏 손을 올려놓고서는 제 눈을 가릴 뿐.
“폐하는 취향이 음흉해. 눈을 왜 가려?”
그 분위기 없는 태도에 황당해 물어도 떡돌이는 절대로 손을 치우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방어하는 거다. 네가 또 눈을 찌를까 봐.”
아.
“그땐 네 눈이 너무 예뻐서 찔렀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럼 다른 데가 예쁘면 다른 데도 찌를 거냐.”
“응.”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얼굴을 내밀어 아까 손으로 만져보았던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슬쩍 포개보았다.
“!”
표정을 보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입술이 말랑한데도 그가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만히 대기만 한 채, 내 손을 들어올려 우리의 입술 사이에 대고 속삭였다.
“폐하는 입술이 예뻐.”
맞닿은 입술이 어쩐지 기분 좋아서.
깊은 입맞춤은 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이렇게 입술을 포개는 건 괜찮을 것 같아.
떡돌이가 언제 오나, 이제 오나, 왜 안 오나 생각하면서 혼자 춤을 추는 것보단.
어쩌면 달빛 아래에 그의 얼굴이 너무 환하게 빛나서, 순간 내가 거기에 홀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러고 자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그렇게 속삭이고서,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꽉 내게로 당겼다.
그러고 있자니 떡돌이 굳건하게 가리고 있던 자기 눈가에서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손으로 가리는 사이 열이 올랐나. 아까는 어둡기만 하던 그의 눈동자에 은은하게 열기가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떡돌이가 약간 잠긴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러고서…… 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