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나는 양파 깔 때만 울어
“나중에 이야기하지.”
황제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서 황급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덩달아 일어나 그 뒤를 따라갔다.
“너는 왜 오는 게냐?”
“친해요.”
그리고 안 친하더라도, 다른 후궁이 죽었다는데 여기서 ‘잘 다녀와요’ 하고 손 흔드는 게 더 이상하잖아?
어쨌든 나는 치렁한 치마를 끌어안다시피 위로 올렸고, 우리 두 사람은 동영궁을 지나 희원궁으로, 염 귀인의 처소로 황급히 달려갔다.
이미 그곳에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같이 희원궁에 사는 우 귀인은 염 귀인의 침상 옆에 붙어서 흐느껴 울고 있었는데, 온 얼굴이 다 빨개져 있었고.
“무슨 일이냐.”
황제가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급히 물러났으나, 우 귀인은 정신없이 우느라 황제가 왔는데도 물러나지 못했다.
그걸 본 오 공공이 나서서 무어라 하려 했으나, 황제는 우 귀인이 너무 슬퍼하자 고개를 저어 그냥 두라고 말렸다.
오 공공이 물러서자, 황제는 이번에는 우 귀인의 곁에서 같이 울고 있는 염 귀인의 측근 궁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염 귀인의 궁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모르겠습니다, 그게…….”
하지만 그 대답이 신통치 않자, 황제는 목소리가 갑자기 확 낮아져서 으르렁거렸다.
“모른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어째 아는 게 없구나. 제 주인들이 픽픽 죽어가는데 다들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 말에 염 귀인의 궁녀는 사색이 되어서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어의는?”
황제는 그 모습을 무시하고서 어의를 찾으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틈에서 탕 궁의가 나와 인사를 올렸는데, 그는 이미 진맥을 마친 분위기였다.
“어찌 된 일이냐. 갑자기 왜 쓰러진 건가.”
거기에 대고 황제가 아까 궁녀를 질책했을 때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탕 궁의는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인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신이 기별을 받아 왔을 때는 이미 쓰러지신 후였습니다, 폐하.”
염 귀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잠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틈에 염 귀인에게로 슬며시 손을 뻗어 보았다.
우 귀인이 내 손을 물어뜯을 것처럼 내려치는 바람에 건드리지 못했지만.
“기몽을 불러와 수사하라 지시하라.”
그 사이 황제는 오 공공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내가 쓰러졌을 때 기몽 장군이 수색을 하고, 그 후에 내가 깨어났지. 이번에도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가 보다.
염 귀인의 측근 궁녀도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듯 몸을 연신 들썩이며 흐느꼈다.
잠시 뒤 불려온 기몽 장군은 두 후궁이 연이어 쓰러지자 당혹스러운 표정이지만,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일단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때와 다르게 염 귀인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 * *
“나중에 다시 오마.”
황제는 밤을 새우면서 내내 곁을 지켰으나, 조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진시가 되자 결국 오원요를 데리고 처소를 떠났다.
대신 황제가 나가자 이번에는 황후가 찾아왔다.
황후는 어두운 얼굴로 곧장 침상에 누운 염 귀인에게 다가갔지만, 이때 염 귀인은 이미 죽은 사람의 낯빛이었다.
“어쩌다가…….”
평소 늘 덤덤한 황후지만, 갑자기 후궁이 죽자 충격이긴 한지 내색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입술이 잘게 떨렸다.
우 귀인은 밤새 울다가 혼절까지 두 번 한 탓에, 이제는 너무 지쳐서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했고 황후가 왔는데도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후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인지, 굳이 허우적거리는 우 귀인을 불러 무어라 하는 대신 염 귀인의 궁녀에게 물었다.
“염 귀인이 어디 아프기라도 했느냐?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본궁이 알기로 염 귀인은 늘 건강했지 않느냐.”
“네. 평소엔 건강하셨지요. 하지만 며칠 내내 계속 몸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입맛이 없다며 통 식사도 못 하시고…… 며칠 동안 잠도 주무시지 못하셨습니다.”
“병이 있었느냐?”
“아닙니다. 그저…….”
염 귀인의 궁녀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자, 황후가 재촉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속히 다 말하라.”
“아닙니다.”
“말하라.”
황후가 엄한 목소리를 내자, 시들시들해 침상에 기대어 있던 우 귀인이 갑자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해! 말하라고!”
궁녀는 놀라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무릎을 꿇었다.
“최, 최근 고민이 있으셔서, 그냥 그 생각을 하느라 못 주무신 겁니다.”
“고민이라니?”
황후가 재차 묻자 궁녀는 난처한 얼굴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경을 쳐야 제대로 말할까.”
황후가 이번에는 좀 오싹하게 말하자, 궁녀는 그제야 눈 굴리던 걸 멈추었으나 뜬금없이 내 쪽을 힐긋 보았다.
나는 왜? 의아해서 같이 쳐다보자, 궁녀는 갑자기 주먹으로 제 치맛자락을 쥐더니 이를 악물고 외쳤다.
“천, 천 귀인 때문입니다.”
뭐?
황후가 내 쪽을 미간을 찌푸리고 본다.
뭐야 나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으나, 우 귀인은 궁녀의 말을 바로 믿는지 미친 사람처럼 날 향해 외쳤다.
“천 귀인! 또 당신 때문이야!”
그러고는 내게 달려와 멱살을 잡으려 하기에, 놀아줄 기분이 나지 않아 내공을 살짝 담아 손의 혈도를 짚어버렸다.
“아악!”
우 귀인이 고통스러워하며 제 손을 잡고 옆으로 쓰러지자, 안 그래도 일련의 사건들로 그녀를 못마땅하게 보는 황후는 더 참아주지 못하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발 넌 좀 물러나 있어라!”
우 귀인이 꾀병을 부린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우 귀인은 억울한 얼굴로 물러났지만 나를 계속 쏘아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 귀인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 궁녀 말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나 때문에 염 귀인이 고민했다니?
“내가 수를 배우러 와서 그래?”
귀찮았나? 이거 외엔 짚이는 게 없어서 내가 묻자, 궁녀는 고개를 황급히 숙이면서 희미하게 웅얼거렸다.
“아닙니다.”
“제대로 이야기하라.”
황후가 우 귀인 쪽에서 시선을 돌리며 묻자, 궁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중얼중얼 대답했다.
“소주께서는 천 귀인을 음해했단 누명을 샀고, 그 일로 아직까지도 수사청을 오가며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계속 힘들어하셨고, 그게 쌓이셨다가…….”
“중첩된 거구나.”
“예.”
궁녀는 그대로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믿기 힘들었다. 염 귀인이 수사를 받는 게 힘들어서 제대로 잠을 못 자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고? 그게 말이 돼?
염 귀인이 최근에 좀 피곤한 기색이긴 했지만, 화통하고 농담도 잘했는데?
그러고 있자니 황후가 내 쪽을 보며 사람들이 다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천 귀인의 탓은 아니지.”
하지만 궁녀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는 듯 이번에는 궁녀 쪽을 보며 덧붙였다.
“네 입장에선 천 귀인이 원망스러울 만하지만.”
아니, 저 궁녀 입장에서 봐도 나는 이해가 안 가는데?
하지만 우 귀인은 궁녀의 말을 이미 신봉하는 듯, 나를 거의 가문의 원수를 보는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무시하고서 염 귀인 쪽을 쳐다보았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염 귀임은 궁궐에 와서 생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물론 저 궁녀의 말처럼, 염 귀인이 나 때문에 고민하다가 죽었단 헛소리는 믿지 않지만. 그래도 친구가 죽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우 귀인이 다시 염 귀인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하자 염 귀인 처소의 궁녀와 태감들이 같이 흐느꼈고,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어의 열 명이 모여서 염 귀인을 진맥했고, 그녀가 사망했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 서명까지 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완전히 사망한 것이다.
시체를 다루는 태감들이 그녀의 시신을 들것에 옮기고 그 위에 깨끗하고 하얀 천을 덮는 것까지 보고 있자니, 황후가 그만들 물러가란 지시를 내렸다.
나는 부성의 부축을 받아 내 처소로 걸어갔지만 내 처소로 돌아가는 길은 이상하게 평소보다 길었다.
발아래로 계속 새로운 길이 나타나고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자니 뒤에서 훌쩍이며 따라오던 부성이 물었다.
“소주는…… 슬프지 않으세요?”
“슬퍼.”
“그런데도 안 우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부성은 너무 울어서 눈가가 팅팅 부어 있었다.
“너는 많이 우네.”
“전…… 전 모르겠어요. 처음엔 염 귀인이 싫었지만, 소주와 친해진 후로는 좋은 분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나도 염 귀인이 좋아.”
부성은 ‘그런데 어떻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세요?’ 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양파 깔 때만 울어.”
그래서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녀는 ‘그게 말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진짜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앞으로 계속 걸어갔으나, 부성은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뒤에서 바로 따라오지 않았다.
상관없는 문제라, 나는 계속 홀로 걸어가면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난 울지 않아.
난 울지 않아.
난 양파 깔 때만 우는 사람이니까.
난 울지 않아. 절대로.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눈물은 겉잡을 수없이 많아진다. 울어대면 앞이 보이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울지 않을 거다. 아주 오래전에 다짐한 것처럼.
물론 여기는 그때 같은 적진이 아니지만…… 어쨌든 앞으로 친구는 만들지 말아야겠어.
익숙해져서 눈물은 안 흘릴 수 있는데, 눈 안쪽이 너무 뜨겁고 괴롭잖아.
* * *
“사람들이 천 귀인이 저승에서 도망 나오는 바람에 저승사자가 염 귀인을 대신 데려갔다고 수군거립니다.”
오원요의 보고에 월요 황제는 면사를 옆에 두고 눈두덩이를 누르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헛소리들을.”
“연달아 두 귀인의 숨이 멎었는데, 한 분은 다시 살아났지만 한 분은 돌아가셨으니까요.”
“…….”
황제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한 후궁들에게 애정을 보내진 않았으나, 어쨌든 그 후궁들은 명목상 그의 부인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유도 없이 급사하였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황제는 이번에는 천 귀인을 자주 살피는 그림자 초한에게 물었다.
“천 귀인은 상태가 어떠하냐. 친했다던데.”
“우 귀인은 식음을 전폐하고 제정신이 아닙니다만…… 천 귀인께선 평소처럼 생활하십니다.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산책도 잘 다니시고요.”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이 좀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폐하.”
“안 좋게 보다니?”
“친한 후궁이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니, 비정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일전에 천 귀인이 당당하게 한 말을 떠올리고서 쓰게 웃었다.
“진짜로 양파 깔 때만 우나보다, 내 계란이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