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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81화 (81/283)

##  81화. 시침할까

왜 이번에는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좌경에 비추어진 내 모습, 정확히는 천소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젠 익숙해진 얼굴이 새삼 또 낯설어 보인다.

“황후 마마께서 몸이 다 나을 때까지는 문안에 오지 말라 하셨어요.”

원웅이 머리를 빗겨줄 때마다 두피에 빗이 닿는 감각은 제대로 느껴지는데도.

“그래.”

“황후 마마가 무섭긴 하셔도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으시네요.”

“그래.”

“폐하께서도 오늘은 처소에서 떠나지 말라 하셨어요. 폐하도 여기서 주무시고 가실 거라고…… 소주, 제가 너무 시끄러운가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멍하니 거울만 보고 있었더니, 원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가 조용히 있고 싶은데, 자기가 눈치 없이 구는 건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니. 괜찮아. 그냥 이것저것 생각 좀 한다고.”

“생각이요?”

“내가 어떻게 하다가 다시 살아났을까, 이런 생각.”

“소주! 그런 무서운 말씀 마세요!”

원웅은 펄쩍 뛰었지만 정말인걸. 나와 달리 ‘진짜 천소여 영혼’은 여기도 저기도 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천소여의 영혼은 이미 다른 사람으로 환생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갔나? 그래서 안 오나? 근데 그런 게 있긴 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한다 한들 내가 뭘 어찌 알까. 어디다 물어볼 수 있는 데도 없고.

* * *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저녁 식사를 할 때쯤 떡돌이가 찾아왔다.

떡돌이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부성이 내 식사 시중을 들기 위해 한 손에는 접시를, 한 손에는 기다란 젓가락을 쥐었던 때였다.

부성이 얼른 뒤로 물러서자 떡돌이는 손도 대지 않은 상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안 먹었느냐?”

“네. 이제 먹으려고요. 먹는 동안 거기 계세요.”

부성이 물러났으므로 나는 직접 젓가락을 들면서 떡돌이에게 당부했다.

그런데 막 음식을 집으려다 보니, 부성이 내게 소리 없이 눈치를 주지 않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음식을 집었는데, 부성이 또 내게 눈치를 주었다.

“왜?”

역시나 알 길이 없어서, 입에 콩나물무침을 넣으면서 묻자, 부성은 아예 안절부절못하면서 떡돌이의 눈치를 살폈다.

대답은 떡돌이가 맞은편에 앉으면서 대신 해주었다.

“짐도 아직 안 먹었다. 같이 먹자.”

아. 저거 물어보라고 눈치를 준 거구나.

“당연히 드셨을 줄 알았어요. 부성아, 폐하 먹을 떡 좀 가져와 줘.”

내가 머쓱하게 말하자, 부성이 “네.” 하고 대답하더니 얼른 처소 밖으로 나간다.

“밥으로 가져와라.”

“예, 예, 폐하.”

하지만 황제가 뒤에서 재차 지시하자, 부성은 나가던 걸 멈춰서서 또 인사를 한 다음 허둥지둥 나갔다.

부성이 나가자 황제는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짐이 매일 떡만 먹고 지내는 줄 아느냐?”

“이름값을 못 하시네요.”

“짐의 이름이 아니니까.”

그 사이, 원웅과 부성은 얼른 밥 밥 한 공기와 다른 반찬을 몇 개 더 가지고 들어와 탁자에 잘 차려 놓았다.

그러고서 물러나 서자, 떡돌이가 손짓하며 지시했다.

“다들 나가라. 천 귀인은 짐이 챙기겠으니.”

그 지시에 원웅과 부성은 물론, 떡돌이를 따라 들어왔던 태감들까지 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떡돌이는 나물 반찬을 직접 덜어서 내 앞접시에 내려놓아 주었다.

“자. 먹거라.”

“줄 거면 고기 위주로 줬음 좋겠어.”

어쨌든 떡돌이가 준 반찬을 집어서 입에 넣자, 입안에서 양념 된 나물이 강렬한 향을 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왔다.

떡돌이는 내 요구대로 이번엔 고기 반찬을 덜어 주었고, 나는 그걸 또 집어 먹으면서 생각했다.

천소여 몸으로 들어와서 사실 손꼽히게 좋은 두 가지 중 하나가 이거라고.

안락한 침상과 맛있는 음식들.

이 때문에 원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았을 때도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거기도 하고.

진짜 천소여가 나 때문에 못 돌아올지도 모르고, 딱히 여기서도 날 붙잡아줄 사람은 없고 하니 결국에는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저쪽에 있는 고기전 줘.”

“계란아.”

그런데 떡돌이가 준 전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자니,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고기 집어서 준 거? 황제가 후궁에게 고기 주면 안 돼?”

“짐은 황후와 동침하지 않는다.”

고기 얘기가 아니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백에,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황제가 재차 말했다.

“황후와 동침해야만 하는 날이 정해져 있다. 어쩔 수 없이 찾아가긴 하지만 진짜로 동침하진 않아.”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떡돌이는 손수건을 꺼내더니 내 입가를 직접 닦아주었다.

나는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줘?”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비밀이라면서 말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걸 또 식사 도중에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떡돌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짐이 황후에게 가는 걸 보고는 충격을 받고 기절까지 했으니까.”

“아닌데?”

“그럼 뭐 때문에 쓰러졌지?”

“나는…… 그냥 뭐.”

할 말은 많지만 들려줄 많이 없어서 내가 우물거리자,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거 봐라.”

그 웃음을 듣는데 자존심이 좀 상했다.

마치 내가 그를 지나치게 연모하기라도 해서, 그가 황후와 동침한 데 충격을 받아 쓰러졌단 듯이 말하잖아?

절대로 그런 게 아닌데!

하지만 떡돌이한테 내 원래 몸이 어쩌구 진짜 천소여가 어쩌구 그런 말은 아예 할 수 없으니 갑갑했다.

떡돌이는 내가 젓가락을 들고 있지 않자, 이번에는 아예 입에 고기반찬을 물려 주면서 내 눈치를 가만히 살폈다.

일단 받아먹긴 하자.

하지만 여전히 자존심이 상한다. 황제의 저 말에 기분이 좀 풀리는 것까지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웃겨. 떡돌이가 황후랑 동침했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계란아.”

“있어 봐. 내가 지금 좀 생각을 하고 있어.”

“몸이 괜찮아지면…… ‘진짜 시침’을 들어봐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떡돌이가 입에 고기를 넣어 주어서 우물우물 먹다가, 나는 뒤늦게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시침? 거시기? 하자고?

“왜 갑자기?”

늘 베개로만 사용했으면서!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너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사랑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유란 게 괘씸했다.

“왜 멋대로 남을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어?”

하지만 내가 황당해서 묻자, 황제는 오히려 자기가 더 질책하듯 말했다.

“툭 하면 기절하고. 사람 심장 떨어지게 하고. 놀라 있으면 다시 깨어나질 않느냐. 제발 좀 그러지 마라.”

“이거 이거 이 폐하 말하는 거 좀 봐. 나더러 깨어나지 말란 거야?”

“왜 자꾸 사람 의도를 안 좋은 쪽으로 곡해하지?”

“내가 왜 기절했는데? 떡돌이 네가 말야, 응, 내가 말야, 응?”

떡돌이가 날 무시하고 간 게 속상했다 말하자니 자존심이 상하네. 게다가 아까 이 비슷한 말을 부정했잖아.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자, 떡돌이는 그 기색을 눈치채고서 눈웃음을 지으며 놀려댔다.

“짐이 뭘?”

“…….”

“왜 말을 하다 마느냐. 계속 말해보라.”

“어쨌든 진짜 시침을 들라 하자니. 지금 좀 혼란스러워.”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 시침하지 않은 게 내 선택이었다면, 이젠 네가 선택할 차례란 걸 알려주었을 뿐이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어떤 마음의 준비?”

마음의 준비가 뭐가 있겠어. 그냥 마음의 준비지.

잠자리를 하는 건 문제가 아니야. 떡돌이는 잘생겼고, 얼핏 보니 몸도 좋았으니까.

물론 그가 성능이 의심스러운 물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직접 시험해보면 알 일이니, 이것도 문제없다.

문제는 나는 무공 수련을 한 다음 개원이에게 복수하러 이곳을 떠날 거란 거지.

복수를 하려면 빨리 수련을 해서 강해져야 하는데. 황제와 동침을 하다가 덜컥 아이라도 생기면?

게다가 그 아이는 고귀한 황족이다.

현재 떡돌이는 아이가 없으니, 내가 딸을 낳든 아들을 낳든 그 애는 무조건 모든 황실 사람들이 금이야 옥이야 하며 기를 테지.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가 날 버렸는데, 나까지 내 아이를 버릴 수 없으니 나도 그 애를 금이야 옥이야 기를 테고.

그러면 어째. 아이가 다 크려면 20년쯤 걸리니, 내 복수는 20년 뒤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있어. 황족들은 혼인을 빨리하잖아. 그럼 20년 뒤에는 손주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손주가 클 때까지 기다리느라 복수가 또 20년이 밀릴지도 몰라. 그러면 총 40년이 밀리잖아.

그 애도 황족일 테니 빨리 혼인할 테고, 그러면 증손주가……!

세상에!

내가 입을 쩍 벌리자, 떡돌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아주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단 건 알겠군.”

“있어 봐.”

나는 손을 내밀어서 그가 좀 조용히 하게 만든 다음, 다시 머리를 팽팽 굴렸다.

안 돼. 60년이나 복수를 미루면 개원이는 호호할아버지가 될 거야.

그때쯤 되면 그는 내 존재도 잊어버리고 있을 텐데. 그건 복수가 아니야.

그가 날 기억하고 있을 때, 그가 한 짓을 조목조목 짚어주면서 복수해야 한다고!

“계란아.”

황제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혼자 머리 굴리지 말고 제발 말 좀 해봐라. 제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방금 전 거시기 얘기를 한 사람치고 몹시 진지하고 서글퍼 보여서 나는 덩달아 굳고 말았다.

떡돌이는 호수처럼 아련하고 그윽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또 짐을 놔두고 기절할 생각을 하는 게냐.”

“아니야.”

“그러면? 시침을 강요하는 게 아니니 말을 해봐라. 왜 이렇게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된 건지.”

“나는 그냥…… 그냥 호호할아버지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

“?”

내가 나지막하게 속삭이자, 아련하게 날 바라보던 떡돌이가 내 뺨에서 손을 내리더니 팔짱을 끼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상태로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우리가 동침하는 게 노인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내 증손주 말이야!”

“……역시 모르겠는데.”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말이라, 나는 ‘아휴 아휴’ 소리만 내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역시 설명할 길이 막막한지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떡돌이가 수긍할 만한 말을 둘러댔다.

“지금까지 비밀로 했는데, 사실 나는 함부로 동침할 수 없는 그…… 어떤 비밀이 있어.”

“비밀?”

“그래. 아주 대단한 비밀.”

내 말에 떡돌이는 혼란스러워하던 걸 멈추더니, 상체를 내 쪽으로 숙이면서 흥미롭단 듯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비밀이 무엇인데? 궁금하군. 동침과 관련 있는 비밀인가?”

“음. 응.”

“말해봐라. 뭔지나 듣자.”

“그게…… 나는 말이지.”

“그래.”

“나는 그, 뭐야, 사실…….”

그런데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오원요가 밖에서 “폐하! 폐하!”하고 불러댔다.

그 소리에 황제는 귀를 들이밀던 걸 멈추고서 “무슨 일이냐.” 하고 큰 소리로 밖을 향해 외쳤다.

잠시 뒤, 오원요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황망한 얼굴로 외쳤다.

“폐하! 염 귀인께서 죽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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