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진실을 알면 퍽 괴로울 사람
청적에 앉아 대나무로 만든 부채를 홀로 팔락거리고 있을 때였다.
“조용할 땐 조용한 나름대로 괜찮군.”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떡돌이가 옆에 앉으면서 평소처럼 떡을 내밀었다.
나는 떡을 받았지만 반갑게 아는 척을 해 주진 못했다.
내가 떡만 우물우물 씹자 떡돌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내가 떡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다고 생각하나? 떡돌이는 들고 온 떡의 냄새를 맡고서 중얼거렸다.
“안 상했는데.”
그러더니 떡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했다.
“이 떡은 싫어하는 모양이지?”
“넌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구나.”
그 모습이 참 안타까워 보여서 혀를 차자 떡돌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어?”
나는 딱 잘라서 정정해주었다.
“풀이 죽은 게 아니야.”
떡돌이는 손을 뻗더니 내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여기가 만두처럼 튀어나왔는데. 풀이 죽은 게 아니라고?”
“그래. 난 뭘 좀 고민하는 거야.”
“무슨 고민이지?”
떡돌이는 질문을 하면서도 ‘보나마자 심각한 고민은 아닐거야’라는 표정이었다.
자기가 황제이니, 이 세상에서 자기 고민이 가장 크고 어렵다 생각하기라도 하나?
하지만 내 고민도 만만치 않게 컸다.
천년비진쾌도래. 나는 우 귀인이 묻었던 그 종이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어젯밤, 그 종이와 머리카락을 발견한 후.
그걸 도로 파묻긴 뭐해서, 나는 일단 그것들을 처소로 들고 돌아왔다. 어떻게 해야겠단 생각도 없었다.
그 탓에 처소로 온 다음에는 달리 둘 장소가 없어서 쩔쩔매다가 천장 지붕 틈에 숨겨 놨지.
아무리 궁녀와 태감이 청소를 열심히 해도 지붕 아래까지 청소하진 않을 테니 그 쯤에 숨겨 두면 괜찮겠지 싶어서.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만약 그 종이를 땅에 파묻으면 나는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가나? 내가 고민하는 건 이 부분이었다.
“계란아?”
내가 말을 하다 말고 생각에 잠겨 멍해지자 떡돌이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싶은지 진지하게 불렀다.
떡도 승언이에게 다 건네서 자기는 빈손이었다.
“왜 그러느냐. 말해봐라.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주지.”
“떡돌아.”
“그래.”
“넌…… 내가 사라지면 어떨 거 같아?”
바로 ‘슬프겠지’란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떡돌이는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내가 사라져도 괜찮단 거야? 후궁이야 이미 여럿이고 더 뽑을 수도 있으니 상관없단 거야?
그가 무슨 대답을 하든 상관없어서 물은 건데, 막상 대답이 늦어지자 괜히 화가 나서 나는 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내가 사라지면 슬프다고 말해야지!”
하지만 떡돌이는 순순히 허벅지를 내게 맡긴 채 말없이 고민만 했다.
“좀 더 생각해보고.”
“그게 생각씩이나 해야 할 일이야? 덜 생각하면 안 슬퍼?”
그게 황당해서 더욱 빠르게 찰싹찰싹 두드려댔지만, 떡돌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의 다리에서 손을 떼고서 승언이에게 떡을 가져오라 해 먹고 있자니, 떡돌이가 그제야 답을 찾고서 중얼거렸다.
“사라진다는 게 뭘 말하는 거지? 이별? 아니면…… 죽음?”
“어느 쪽이든.”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간 다음, 이 몸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니까.
전에는 내가 원래 몸으로 돌아가면 천소여가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에 원래 몸으로 돌아갔을 때 아니란 걸 알게 됐지.
떡돌이는 한층 더 표정이 심각해져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알아봐야지.”
“뭐를?”
“네가 사라진 게 자의일지 타의일지.”
“자의면 어떻고 타의면 어떤데?”
자의면 아름다운 작별이 되는 거고 타의면 찾으러 와 준단 건가?
떡돌이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손을 뻗더니 내 머리카락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그는 내 머리카락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주며 웃었다.
그 태도가 어쩐지 조금 야한 듯해, 괜히 몸 여기저기가 간질간질해졌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가 대답을 피하는 듯해서 나는 다시 그의 다리를 두드리며 재촉했다.
“대답은?”
떡돌이는 대답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표정에 몹시 의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에도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나?”
“그럴 리가.”
하지만 떡돌이는 표정을 펴는 대신 계속 나를 미심쩍게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말해주었다.
“네가 안 떠나면 좋지?”
“왜 질문형이야. 끝을 내려.”
단호하게 요구하자 떡돌이는 바로 내 부탁을 반영해주었다.
“네가 안 떠나면 좋겠지.”
“왜 꼭 말을 그렇게 모호하게 해?”
“네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기 싫어서.”
“!”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자, 그는 내 콧등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곧 웃으면서 달래는 시늉을 했다.
“농이다. 네가 떠나면 싫지. 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말거라. 불안하지 않느냐.”
* * *
커다란 책상 위에 놓인 하얀 종이에 비원은 천천히 글씨를 썼다.
그 모습은 느릿하고 여유로웠다. 급한 일이라고는 일절 없어 보일 만큼.
하지만 붓을 내려놓을 때 그의 표정에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종이 한 장을 꽉 채운 비원은 다시 그것을 구겨서 옆으로 치우고 새 종이를 꺼냈다.
목적이 있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천 귀인이 천년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타천천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천 귀인이 쓰러졌을 때 천년비 영혼이 돌아왔단 걸 알게 된 후.
그는 정말로 천 귀인 몸에 천년비 영혼이 있나 시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우 귀인에게도 염 귀인과 같은 조건을 내밀었다.
‘천년비진쾌도래’라 쓰인 종이를 묻을 것.
우 귀인은 그 의뢰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 귀인이 쓰러졌단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우연이었나.’
이번에야말로 찾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잠시 아쉬워하던 비원은 곧 싸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런 멍청한 후궁이 풍랑공이 아닌 걸 기뻐해야지.’
비원은 천년비를 흠모했지만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천년비는 강하단 이유로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걸 다 이겨내는, 고결하고 비극적인 파란 달 같은 영웅이었다.
천 귀인이 쓰러진 시기와 천년비가 깨어난 시기가 너무 교묘해서 잠시 ‘동일인?’하고 의심했지만, 두 사람이 동일인일 거란 상상을 하면서 얼마나 애가 탔던가.
‘아니라니 다행이다.’
또다시 천년비의 영혼을 찾을 길이 요원해졌으나, 비원은 애써 이 일을 좋은 쪽으로 결론 내리고서 마침내 붓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 * *
떡돌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없으면 외로워할 것 같아.
그러니까 쉽게 대답을 못 하고 그렇게 말을 비비 꼰 게 아닐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분명 그렇다. 떡돌이는 내가 떠난단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서 무슨 말을 못 했던 거야.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개원의 모습을 한 사악한 누군가가 옆에 환상처럼 나타나서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닌가? 하지만 떡돌이는 날 좋아하는데…….’
-떡돌이는 황제잖아.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고…….’
-황제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너도 알잖아.
그치. 황제는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지.
가끔 그가 내게 하는 행동을 보면 자꾸 까먹게 되긴 하지만, 맞아. 황제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
그래서 황제는 날 시침에 부르긴 해도 그냥 품고 자기만 하니까.
음. 그러면 황제가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건 달리 할 말이 없어서일까?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소주?”
멍하니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부성이 다가오다가 놀라 물었다.
“소주,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괜찮으세요?”
“생각할 게 있어서.”
“무엇인데요?”
나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한테 한 번 더 물어보지, 뭐.”
“네?”
“확실하게 물어보는 게 좋잖아.”
“무슨 말씀이신지…….”
천년비 어쩌구 하는 종이를 묻어서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말하는 거다.
하지만 이건 측근 궁녀들에게도 상담할 수 없지.
아직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 안 돌아가고 버틸까.
원래 몸으로 돌아가 봤자 날 기다리는 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죽여주지!’ 하고 벼르는 개원이.
악적 천년비를 죽여 명성을 높이겠다고 달려들 정파 새끼들.
친구도 연인도 없이 홀로 돌아다니는 세월. 그 정도뿐이니까.
몸은 다시 강해지겠지만 지금의 평화는 사라질 테고, 생활을 도와주는 궁녀들도, 멋들어진 서신을 적어 보내주는 친구도, 술병을 들고 찾아와 마시자며 웃는 친구도, 수 놓는 걸 틱틱거리며 가르쳐주는 친구도 전부 다 사라질 거다.
날 볼 때마다 떡을 주고, 내게 “계란아.” 하고 웃으며 부르는 그 남자까지도.
하지만 내가 몸을 돌려주지 않으면 천소여는 어떻게 될까. 그걸 모르니 계속 여기 있어도 될지 모르겠고…….
“소주?”
“폐하한테 좀 다녀올게.”
결국 한 번 더 떡돌이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나는 원웅에게 부탁했다.
“걸칠 옷 좀 가져다줘.”
“밤 산책을 가실 건가요?”
“폐하한테 간다니까.”
내가 얇은 피풍의를 걸치자 원웅이 동그란 통 안에 등불을 넣은 귀여운 등롱을 들고 함께 나왔고, 우리는 둘이 꼭 붙어서서 황제의 침궁 쪽으로 걸어갔다.
“들여보내 줄까요?”
원웅이 걱정스럽게 묻긴 했지만…… 아마 들여보내 줄 거야. 안 들여보내 주면 또 뭐 어때?
“안 들여보내 주면 돌아가면 되지.”
그런데 계속 그렇게 걸어가고 있자니, 멀지 않은 곳에서 ‘딱 딱 딱’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에는 등불 여러 개가 동동 떠가고 있고, 그 중앙의 가마에 금색 용포를 입고 옆으로 기대어 앉은 황제가 보였다.
황제는 팔걸이에 한쪽 팔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잘됐다. 가서 물어보자.”
그런데 마침 잘됐다 싶어서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자니, 근처에 가기도 전에 사방을 살피며 걸어가던 오 공공이 나를 알아보고서 먼저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천 귀인 아니십니까. 이 밤중에 여긴 무슨 일로……?”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내 말에 오 공공은 “폐하요.” 하고 힐긋 가마 쪽을 쳐다보았다. 황제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가마에 기대어 있었다.
자나?
“괜찮은가?”
나는 다시 질문하며 오 공공을 보았다.
그런데 오 공공은 좀 멋쩍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쩔쩔매며 서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달래듯 말했다.
“내일 말씀하시지요, 귀인. 폐하께선 지금 황후 마마께 가는 길이거든요.”
“아. 그러면 이 근처에서 기다려도 되나?”
내 질문에 오 공공은 난처한 얼굴로 원웅을 보았다. ‘네가 나서봐라’ 하는 얼굴로.
신호를 받자마자 원웅은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돌아가요, 소주. 내일 날이 밝은 후에야 돌아오실 텐데, 밤새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